책 표지도 그렇고 분량도 그렇고 청소년들을 위한 가벼운 SF 소설이라는 생각에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줄거리가 눈길을 끌었다.
두뇌 정보를 업로드한 양자 두뇌와 복제한 더미 신체로 영생을 누리는 사회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라는 소개를 보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로드된 데이터가 있어서 '영생'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사회라면 '살인'이라는 범죄가 원칙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다시 만들면 그만이므로) 여기서 발생하는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지가 우선 궁금했다.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답을 먼저 하자면 뇌 속의 기억은 양자 두뇌로, 신체는 더미로 만들 수 있지만 한 번에 하나의 개체만 만들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이 양자 두뇌가 파괴된다면 그대로 그 개체는 복구될 수 없다는 설정으로 이를 해결하고 있었다. (즉 Ctrl+C가 아닌 Ctrl+X로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배경 설정이야 어찌 됐든 공각기동대를 한 편이라도 봤다면 익숙한 설정이어서 그리 신선할 건 없었지만 나름 그 속에서 생각해 볼 문제들을 던져주고 있는 점이 좋았다.
작품에 대한 기대가 그리 높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내용이어서 꽤 재미있게 읽었다.
작품의 제목이 곧 화자를 소개하고 있다.
사건분석관은 사법권을 가진 경찰의 일종으로 복잡하고 특수한 강력 범죄들을 조사,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단순한 치안 문제는 순수한 기계인 안드로이드들이 대신하고 있다.)
때문에 일반인들과는 달리 더 성능이 좋은 더미 신체를 가졌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총 4개 챕터로 4개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알고 보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그런 내용, 전개 자체는 단순한 편이다.
하지만 사건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꽤 의미가 있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두뇌를 복사한 양자 두뇌를 여러 더미에 이식해 복제 인간을 만들었고, 그중의 하나가 다른 복제인간들을 모두 파괴했다면 이는 살인인가? 자신이 자신을 죽인 것이므로 자살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기계 오작동에 지나지 않는가?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법인격은 복제를 진행한 원본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본래의 인격에 이런저런 제약이나 강화를 거친다면 이 역시 인간 본연의 인격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작품 속 사건분석관들처럼 뇌 수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아예 범죄를 저지를 수 없도록 뇌 수술을 강제했다면 이를 온전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작품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일 텐데, 과연 두뇌의 기억을 복사해 다른 몸에 심는 행위를 우리는 '영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방법이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일까? 그리고 과연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