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 그 모든 우연이 모여 오늘이 탄생했다.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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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연애소설 느낌의 제목이지만 내용은 꽤 알찬 과학 지식을 담고 있는 교양서다.

원제는 독일어로 'Alles Zufall', 우리말로 '우연의 모든 것'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원제가 책의 주제를 더 함축적으로 잘 요약하고 있다.

하지만 원제는 너무 재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나름 잘 바꾼 제목이라 할 수 있겠다. (이래서 문과들의 활약도 중요하다.)

이 책은 운동방정식을 알면 물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고전 물리학자들의 시각(즉 세상이 운명적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이 현대 양자역학 등 최신 과학 이론들에 힘입어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연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시각으로 변화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는 책이다.

원자 수준의 작은 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양자역학에서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측정하는 순간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기본 입자부터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기본 전제다.

저자는 우리가 태어나는 과정 역시 우연의 산물이라 말한다.

부모 중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하필 그날 관계를 갖지 않았다면, 임신인 줄 모르고 독한 약물을 복용했다면 등등 우리의 탄생과 관련된 부모님들의 오만가지 행동들은 모두 우연의 산물이다.

게다가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자라나게 된 것 역시 우연의 산물이다.

부모가 바란 우리의 모습과 우리의 현재 모습이 아주 일치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도 전자의 위치와 속도처럼 피드백 효과가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시스템에는 변수가 너무 많이, 너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모두 고려한 예측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람의 미래에 큰 영향을 준다고 믿는 유전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 모두가 만족할만한 예측을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탄생뿐 아니라 진화라는 긴 관점에서도 생물은 역시 우연을 통해 살아남았다.

구조적으로 더 단순해 보이는 생물이 진화 과정상 훨씬 후대에 발생한 종인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다윈은 자연의 다양성을 우연으로 설명한다.

어떤 생물도, 인간의 어떤 특성도, 계획에 따른 것은 없다.

진화가 무슨 일을 불러왔건 간에 목표도 의도도 없었으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겠다는 야망 같은 것은 더더욱 없었다.

중요한 건 그저 살아남는 것이었다. - 중략 -

어쩌다 우연히 생겨났고, 그것이 필요하거나 크게 장애가 되지 않아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것밖에는 별다른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없는 특징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파란 눈이 더 나을 것도 없고 갈색 눈이나 초록색 눈이 더 나은 것도 아니다.

(pg 118)

물론 종교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의 삶이 다 높으신 어떤 뜻에 따라 계획된 대로 흘러간다고 믿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부분은 과학의 관점에서 논증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논의에서 제외한다.

어떤 이론을 검증하려면 그 이론에서 출발한 예측이 현실과 일치하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만약 현실과 맞지 않으면 우리는 그 이론을 폐기하고,

현실과 일치하면 그 이론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더 나은 테스트로 검증한다.

하지만 형이상학적 결정론에서는 이런 테스트가 불가능하다.

제한된 이성을 가진 인간들로서는 그 이론에서 출발한 어떤 예측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pg 57)

어찌 됐든 우연이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라는 것은 여러 과학 이론들로 증명할 수 있겠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어쩌면 온 우주에 우리뿐일지도 모를 지적 생명체로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보다 특별하기를 바란다.

나의 탄생이 그저 우연의 산물이기보다는 특별한 어떤 목적의 결과물이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주변에서 운명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될 일들도 많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처럼 9.11테러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하필 추락할 비행기에 탑승해 생을 마감한다거나 잃어버린 아들을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에서 마주친 사람의 사례처럼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역시 수학적 확률에 따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우연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의 뇌가 수많은 무작위 속에서 무엇이든 연관성을 찾으려는 쪽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 증명한다.

그리고 세상이 우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므로 우리의 자유의지라는 것이 온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분 나빠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는 예측할 수 없음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스스로 정할 수도, 예언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많은 결정들은 우연한 것처럼 보인다.

자기 연관성이 초래하는 많은 결과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자신을 꿰뚫어볼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pg 85)

게다가 예측 불가능한 행동이 생존에 유리한 지점들이 반드시 존재했다.

바다에서 가장 처음 육지를 밟은 생물은 그 이전에는 어느 개체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다는 것이고 이것을 시작으로 현존 인류까지 진화해왔으니 예측 불가능성이 반드시 나쁜 개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예측 불가능한 행동은 경쟁에 유리하고, 협력과 신뢰를 가능하게 한다.

인간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 뇌가 복잡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의도를 숨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자연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놓은 듯하다.

(pg 171)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어차피 우연으로 돌아가는 세상, 막 살면 그만이라는 메시지로 끝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우연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연을 최대한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 말한다.

한 번에 큰 변화를 주려 하지 말고 단계를 나눠 조금씩 움직인다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우연의 한계를 나름 한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작은 걸음으로 겸손하게, 하지만 성공적으로 전진하는 것에 그리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최종적이고, 단호한 해결책을 찾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거나 변화시켜야 할 경우 작은 걸음으로 가는 것이 최상의 길이다.

(pg 321)

양자역학뿐 아니라 진화생물학, 행동심리학, 뇌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풍부한 사례를 통해 우리 세상을 '우연'이 만들어가고 있음을 설명해 주고 있어서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뭔가 잡지식이 굉장히 늘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서술도 친절한 편이고 현학적이거나 이론적인 설명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읽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무신론자이자 유물론자인지라 개인적으로 저자의 주장이 아주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사례가 워낙 많아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세상이 우연이라는 멋진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

우연은 우리에게 신중함을 가르쳐준다.

이것이 바로 우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우연은 현재에 민감하게 만든다.

현재야말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아니던가?

우연에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은 생동감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pg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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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이TV 방울이의 하루 상식 레벨업 코믹북 2 방울이TV 방울이의 하루 상식 레벨업 코믹북 2
스튜디오 왓츠비 지음, 방울이TV 원작 / 서울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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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만화로 된 책은 혼자서도 곧잘 읽어서 만화로 되어 있으면서 내용도 좋은 책은 얼마든지 읽게 해주고 싶은 요즘이다.

지난해 말쯤 1권이 발매된 방울이 시리즈인데 이번에 2권이 나와서 이번에도 아이에게 선물할 수 있게 되었다.

1권을 너무 좋아했던 터라 2권이 왔다는 소식에 퇴근한 애비 얼굴보다 훨씬 반가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루 상식 레벨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만큼 어린이가 생활하면서 알아두면 좋을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이번에는 특히 주인공인 방울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 체험을 해보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바코드 찍는 방법, 카드를 긁는 방법 등 아주 기초적인 부분까지 묘사되어 있었다.

덕분에 아이들도 자주 만나게 되는 편의점 언니, 오빠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우리가 편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뒤에서 얼마나 많은 노고가 필요한지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다.

미성년자에게는 복권을 판매하지 않는 것이나 술, 담배를 살 때에는 반드시 신분증 검사가 필요하다는 사실 등 어린이들이 구매할 수 없는 물건들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알려주고 있는 부분이 좋았다.

그밖에도 다양한 상식들이 실려 있다.

집사람이나 내가 주말에는 커피를 자주 마시는 편인데, 커피를 많이 마시면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지식도 알려준다.

어른들이 하는 건 다 따라 해보고 싶은 것이 어린이의 마음일 텐데 이 부분을 읽고서 굳이 커피를 입에 대보지 않아도 어른들이 왜 마시지 말라고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1권에서는 기상캐스터라는 직업에 대해 자세히 다뤘다면 이번 2권에서는 스튜어디스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방울이가 여자아이여서 여성들이 주로 하는 직업을 먼저 다루는 모양인데, 다음 편에서는 특정 성별이 많이 종사하는 직업군이 아닌 일반적인 직업들도 다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를 하다 보니 아이들 책도 많이 접하게 되는데 가끔 아이들 책도 만들기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모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이왕이면 내용도 좋고 재미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 둘을 충족하는 책을 만들기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내용도 좋고, 아이가 몇 번이고 읽는 걸 보면 재미도 있는 모양이라 일단 안심이 된다.

앞으로 시리즈가 더 나올 것 같은데 나올 때마다 아이가 읽고 싶어하지 않을까 싶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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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 기자의 할 일, 저널리즘 에세이
김성호 지음 / 포르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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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기자가 쓴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에 대한 에세이다.

그리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내 느낌이 그랬다.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이야 모르는 바 아니고, 열심히 해봐야 '기레기' 소리나 들어야 하는, 절이 싫어 떠난 중이 어떤 말을 했을지 조금은 뻔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도 담백하지만 솔직해 보이는 제목이 결국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책 내용은 솔직히 예상한 범위를 넘지 않는다.

인쇄 매체는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고 클릭 하나에 울고 웃어야 하는 언론사의 현실.

그렇기 때문에 팩트 체크는 사치요, 주어지는 보도자료 적당히 편집해 조회 수 잘 나올 제목이나 궁리하는 기자들의 행태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물가 상승률 정도나 반영되는 최저임금 상승에는 거품을 물고 반대하지만 자신이 얻어먹을 밥값이 줄어들었다며 김영란법을 욕하는 그들을 표현하기에 '기레기'라는 단어만큼 잘 어울리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언론사도 결국은 회사입니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고, 갈수록 더 잘 먹고 잘 살아야 합니다.

무너지는 수익 모델을 뒤로한 채 고고하게 취재하고 보도하는 건

어려운 데다 바람직한 일도 아닙니다. - 중략 -

클릭 수가 돈이 되는데 자극적인 기사를 마다할 회사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저자는 그런 동료 기자들에게서 느낀 환멸과 자신 역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자괴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을 마치 술 한잔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제 몫의 부끄러움을 매일 감당해내는 소수의 기자와 무엇이 부끄러운 건지도 까먹은

다수의 기자가 무참하게 섞여 있는 게 한국 언론의 오늘입니다.

언론인으로서 그가 해낸 성취들 중에는 얼마 전까지도 큰 이슈가 되었던 수술실 CCTV 이슈가 있다.

저자는 수술실에서 발생한 불법 의료 행위들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만나며 집요하게 기사로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 그 결과 관련 법령의 입법이라는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최근에 성형외과 CCTV 유출 사건을 빌미로 관련 법령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던데 저자가 이 소식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해진다.)

저자는 특히 저널리즘과 자긍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언론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에게 귀 기울였던 사례들이 기억에 남는다.

누구나 살다 보면 한 번은 억울한 일을 경험할 수 있지만 언론은 힘없는 자들의 억울함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저자 역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사를 썼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기사를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내가 부자였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처럼 보이지 않았다면

이런 취급을 받지는 않았겠지요?"

세상엔 사소한 억울함이 널려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겪었는데 어디 하소연할 수 없어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습니다.

남이 보기엔 큰 일 아니니 참고 넘어가라 하지만

본인은 억울하여 넘길 수 없는 때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억울함은 억울함을 풀 길 없는 이들에게 집중됩니다.

뿐만 아니라 조직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공익제보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런 기사를 작성한 자신에게 어떤 피해가 왔었는지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세상에 정의가 점점 사라진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이유를 이런 사례들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생각합니다. 어째서 누군가는 공익제보를 하는지요.

예견된 위험을 감수하며 모두를 위한 목소리를 기꺼이 내는 이들을요.

그들을 그런 결정으로 이끄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인류애든 정의감이든 그런 거창한 것들이

가장 평범한 인간들에게 깃들어 있는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기자라서 즐거웠던 많은 일들 가운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는

바로 그런 이들과 만나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언론이 언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상은 최근에 일어난 것도,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조직 자체가 '이윤 추구'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언론 역시 기업의 편, 자본의 편, 힘 있는 자들의 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게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기댓값이 있다.

적어도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

그 책임을 조금만 더 무겁게 느껴주기를 바라는 것이 일반 대중들의 기대일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란 끝내 진실에 닿을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자의 불행도 그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기자는 제가 진실에 닿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끝없이 진실을 좇아야 하는

운명을 가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다.

결국 그러한 구조를 만든 것은 우리 사회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일말의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사는 독자에게 다가가 비로소 완성됩니다.

기자의 목표는 제가 공들인 기사가 마땅히 읽을 만한 이에게 읽혀

의미 있는 정보가 되는 겁니다.

좋은 기사와 좋은 독자의 만남이지요.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은 책인데 생각보다 깊은 울림이 있었다.

물론 언론이 당장에 큰 변화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고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이름을 걸고 기사를 쓴다는 건 잘못을 감내하는 일입니다.

기사 끄트머리의 작은 오탈자부터 누군가 분명한 피해자가 있을 중대한 잘못에 이르기까지,

모든 잘못이 온전히 제 탓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저자가 감성적인 글도 굉장히 잘 쓴다는 점이다.

언론인 출신이고 지금은 글로 먹고사는 사람이니 당연히 사실을 전달하는 글은 잘 쓰리라 생각했지만 감성적으로도 이렇게 괜찮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문장이 깔끔해 쉽게 읽히면서도 그 안에 울림이 있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인상 깊은 구절도 꽤 많았던 것 같다.

인터넷의 발달이 오히려 진실을 가려버리는 요즘, 기자는 무엇을 써야 하고 우리는 무엇을 읽고 믿어야 할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드는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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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처음 하기 사전 - 슬기로운 학교생활을 위한
정명숙 지음, 김윤정 그림 / 제제의숲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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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벌써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한 살을 더 먹을 뿐인데 뭔가 학교에 간다고 하면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아이에게 선행으로 지식적인 것들을 더 알려주기보다는 태도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는데 마침 딱 알맞아 보이는 책이 나와서 아이와 함께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에 대놓고 '일곱 살'이라고 적혀 있으니"나도 일곱 살인데" 하며 아이 눈도 따라 커진다.

만 나이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제목을 개정해야겠구나 싶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책은 딱 내가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내용들로 가득하다.

이제 초등학생이 되실(?) 몸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스스로 해보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와 식사, 양치질, 옷 갈아입기 등 등교 전에 해야 하는 일들이 1장에서 먼저 나오고 2장에서는 학교에 가는 도중에 지켜야 할 교통 법규와 버스 탑승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어서 수업 시간에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각종 학용품들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쉬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등등 학교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것들이 나오고 하교 후 집에서 씻고 숙제하는 것까지 하루 일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목차만 쭉 읽어봐도 요즘 초등학생이 하루 종일 어떤 일과로 움직이는지 시뮬레이션이 가능할 정도로 알찬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딱딱하게 설명만 이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모든 챕터의 시작이 수수께끼로 되어 있어서 아이가 먼저 수수께끼의 정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며 주제로 넘어갈 수 있다.

처음에는 아이와 함께 쭉 훑어보면서 수수께끼만 풀어봐도 아이가 재미있어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나오면 자세히 같이 읽어보면 될 구성이었다.

(pg 46-47)

천둥벌거숭이마냥 뛰어다닐 줄만 아는 것 같은데 어느새 어린이집 왕고가 되어 1년 뒤엔 초등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나름 심경이 복잡하다.

조금 있으면 애비는 뽀뽀도 못하게 하겠구나 싶기도 하고 아기 때는 참 시간 안 가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금방금방 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니 사람 마음이라는 게 간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모쪼록 남은 1년을 알차게 보내서 아이가 처음 학교라는 나름 큰 조직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도 재미있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부모에게도 이 책이 좋은 지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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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소년범을 변호했을까 - 우리 사회에서 낙인찍힌 그들을 위한 변론,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김광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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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변호사가 쓴 직관적인 제목을 가진 책이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각종 매체들에서 촉법소년의 범죄를 다루는 시각이 조금 우려스러웠던 터라 현직 변호사로서 직접 관련 청소년들을 만나온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200페이지 초반으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에 15개의 사례가 실려 있으며 각각마다 저자가 만난 다양한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사연 없는 범죄가 어디 있으랴만은 각각마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드는 사연들이 담겨 있고 청소년들이 저지르게 되는 범죄의 형태도 다르지만 핵심은 하나다.

위기청소년은 범죄자이기 전에, 피해자이기 전에 하나의 '청소년'이다.

그리고 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배우고 경험해가는 존재다.

그 배움과 경험의 절대치는 성인에게서 나온다.

즉, 청소년의 어떠한 행동 뒤에는 반드시 '어른'이 존재한다.

(pg 5)

'금쪽이' 방송을 봐도 아이가 문제인 경우보다는 부모의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는 사례가 많은 것처럼 사실 청소년 범죄의 이면에도 불안정한 가정에서의 양육과 어린 시절부터 경험하는 폭력이 체화되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범죄의 모든 책임을 온전히 청소년 본인에게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책의 주된 논지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저자가 변호에 성공한 케이스뿐 아니라, 실패한 케이스도 많이 담겨 있다.

청소년 범죄의 경우 판사가 미리 증거를 모두 열람하고 오기 때문에 유죄라는 것이 전제된 상태로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아 변호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물론 처분 자체도 성인에 비해 관대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전문직인 당사자가 자신의 실패 사례를 매체에 공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적지 않은 실패 사례들을 공유하며 이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을 함께 전달하고 있어서 저자가 청소년 범죄 문제에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사례가 다양할 뿐이지 저자의 메시지 자체는 매우 심플하다.

우리 사회가 촉법소년 등 청소년 범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일면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떠들썩하게 보도하는 언론에서 부추긴 측면이 크며 실제 청소년 범죄의 비율과 건수는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촉법소년 사건 중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할 정도로 심각한 범죄(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등)는 당연히 형법의 적용을 받아 처리하게 되므로 현행법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많은 이들이 주장하는 청소년 범죄의 형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겠다.

비행을 저지른 청소년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은 가장 쉬운 처벌이지만

가장 지양해야 할 조치다.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은 사회에서 배워야 한다.

소년원이나 교도소에서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으로 교육을 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간접 교육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을 사회만큼 직접 배울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렇게에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즉 사회화 시기에 있는 청소년은 사회 안에 있어야 한다.

(pg 100)

그리고 청소년 시기에 교화가 아닌 사회 격리를 통한 처벌은 한 번의 실수를 반복되는 범죄로 이어지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근 청소년 범죄 통계를 살펴보면 초범률은 감소하나 재범률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별 문제없이 자란 청소년들도 자라서 자리잡고 사는 것이 힘든 사회인데 청소년 시기에 범죄로 사회에서 격리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쉽게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최근 청소년범죄의 특성은 전체 범죄율은 감소하는 반면 누범율은 증가한다는 것이다.

특히 3~4범 이상 누범자들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즉 이것은 초범자는 줄어드는 반면에 재범자 중 일부는 계속해서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을 뜻한다.

(pg 132)

사실 이성적으로는 저자의 주장에 꽤 공감하는 편이다.

요즘 애들은 그 시기면 알 것 다 아는 나이이니 성인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에 그리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시민의 기본 권리인 투표권부터 성인과 동일하게 부여해야 옳다.

뉴스만 봐도 결정할 수 있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 조차도 판단할 나이가 안됐다고 명시한 사람에게 범죄에 대한 책임은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고 믿을 근거가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나 역시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다 보니 충격적인 청소년 범죄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청소년 범죄의 형량을 높여 범죄율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쉽게 쓸려가게 마련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방법이 통계 수치로 보나, 전문가들의 의견으로 보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지 저자가 '청소년 범죄는 그리 심각하게 걱정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하나의 사회 문제에 단 하나의 해결책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보다 심층적인 논의를 통해 청소년 범죄도 예방하고 단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른 청소년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충분한 재사회화가 이루어지는 방안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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