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스턴 씨의 달빛서점
모니카 구티에레스 아르테로 지음, 박세형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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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대여한 책인데 본인 취향이 아니라며 반납한다길래 반납 전에 후다닥 읽어본 책이다.

정직한 제목 그대로 리빙스턴 씨가 운영하는 한 서점에서 일어나는 두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까칠남 코스프레를 잘하는 달빛서점 주인 리빙스턴 씨와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런던으로 온 고고학자로 정식 직장을 찾을 때까지 달빛서점에서 임시 직원으로 일하게 되는 아그네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물론 둘이 커플이 되는 지나치게 식상한 전개는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서점'이라는 배경에 걸맞게 책과 출판에 관련된 용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 아그네스의 친구가 즐겨 읽는다는 '필굿 소설'이라는 장르가 등장한다.

'필굿 소설'이란 등장인물들이 골치 아픈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정의하며 리빙스턴 씨가 그런 책만 읽는 사람들을 약간 무시하는 느낌으로 사용하는 용어인데, 재미난 점은 이 소설이 '필굿 소설'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사건'이라 부를만한 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도난 사건이 슬쩍 등장하나 싶더니 그저 등장인물들 간의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되며, 두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K-드라마처럼 '제3자가 얽히고 오해가 쌓이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울고 짜고...' 이런 부분이 거의 없거나 아주 짧게 다뤄진다.

그럼 사실 재미가 없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 또 끝까지 읽게 되는 매력은 있었다.

솔직히 문학과 그리 친하지 않고 이런 장르와는 특히 더 거리가 먼 편이라 읽으면서도 '왜 계속 읽고 있지?'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된 원동력은 빠르게 진행되는 전개와 영미 문학 전반에 걸친 폭넓은 이해에서 오는 인용구들 덕분이었다.

'서점 주인'이라는 설정에 걸맞게 리빙스턴 씨의 대사에는 영미 문학에서 인용한 문구들이 많이 등장한다.

셰익스피어 작품들에서부터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에 이르기까지 꽤 범위가 넓어서 영미 문학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작품을 즐길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나처럼 영미 문학을 잘 모르는 독자라 하더라도 내용이 워낙 심플해서 걱정할 부분은 전혀 없으며 역자의 주석도 중간중간 잘 달려 있어서 그 정도만 숙지해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여하간 그리 복잡하지 않은 영국의 변두리 지역에서 펼쳐지는 소소한 사랑 이야기들인지라 따뜻한 감성으로 힐링이 되는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겠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은 수많은 영향들의 총합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다른 이들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서점이 언제나 우리에게 최고의 안식처가 되어주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물론 지금 세상에서 '달빛서점'처럼 감성적인 공간은 현실적인 이유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책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삶 자체야.

언제부터 삶이 금전적 이익을 가져다주었지?"

하지만 책에서 안식을 얻는 방법은 지금도 유효하기에 많은 이들이 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책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작품이므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나 힐링이 될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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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
제임스 볼 지음, 김선영 옮김 / 다산초당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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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제목 덕분에 관심이 간 책이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언론이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언론의 편향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던 시기여서 관련된 수많은 책들이 나와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약 20년 정도가 흐른 지금의 언론은 객관성은커녕 보도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독자들이 판단해야 할 정도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가결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가짜 뉴스'를 다루고 있다.

사실을 살짝 왜곡한 것이나 특정 입장의 주장만을 인용하는 등의 편파성은 물론이고 근거 자체가 희박하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일 등 100% 거짓말로 이뤄진 보도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현혹하기 위해 각종 매체에 쏟아져 나오는 저질 기사들을 통틀어 '개소리(bullshit)'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가 지은 책이라 사례가 모두 영국과 미국의 사례로 채워져 있지만 다행한(?) 점이라면 사례들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 적용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만큼 우리의 현실과도 밀접하다는 사실이다.

제임스 볼의 책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에 한국의 사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을수록 국내 상황과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너무 똑같아서 피식 웃음이 날 정도인 것도 있습니다.

한국의 개소리도 '글로벌 스탠다드'를 잘 따르고 있는 셈이죠.

(추천 및 감수의 글 중)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러한 개소리 문화가 정치적 당파와 무관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가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주범으로 상대방 진영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 세력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가짜 뉴스를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열성적 지지자들이 어느 정도 접점이 있는 이야기를 놓고

해석에서 의견 차를 보였다면, 지금은 상대 진영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보고,

그들의 이야기가 편향됐으며 사실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여긴다.

또 서로가 유난히 가짜뉴스에 휩쓸린다고 본다.

이런 문제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언론 기관에 있다.

뉴스가 전달되는 통로가 인쇄 매체에서 인터넷 매체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언론사들은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겪게 된다.

사람들이 더 이상 뉴스를 유료로 접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사는 수익을 낼 수단이 필요했고, 이 지점을 광고 회사들이 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클릭과 조회로 먹고살아야 하는 이들은 필연적으로 자극적인 문구나 이미지를 단 가짜 뉴스를 양산하기 시작했고 이런 기사들이 기존의 언론사 사이트에도 링크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여기에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SNS가 탄생하면서 이 기사들을 독자들이 직접 퍼나르는 구조까지 더해지자 이제는 클릭 수 그 자체를 위해 터무니없는 거짓말까지 기사의 형태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게다가 정치인들이 홍보 수단으로 SNS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들이 마치 사실처럼 퍼져나가게 되어 일반적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조차 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넘쳐나는 뉴스 정보를 알고리즘이 선택해 이용자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필터 버블(내가 원래 관심 있는 주제의 기사만 접하게 되는) 현상도 점점 심해져 사람들은 점차 더 극단적인 정보에 노출되고 이는 곧 확증 편향의 심화로 이어지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양극화는 전문가 집단에서도 쉽게 발견될 만큼 보편적이며 우려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터무니없는 기사를 제대로 된 기사와 나란히 배치하고, 두 기사를 전혀 구분하지 않으며,

큰 실수를 해놓고도 공지 없이 넘어가면서 매체들은 개소리 문화를 퍼뜨린다.

독자의 흥미를 자극한다면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언론에서도 이를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각종 팩트체크 활동들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팩트체크에서 확인한 사실이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속도와 범위는 매우 미미한 반면, 개소리가 확산되는 속도와 범위는 너무도 빠르고 넓다.

게다가 인터넷에 퍼진 정보는 세월이 지나도 검색이 되기 때문에 생명력 또한 길다.

인터넷의 허위 정보와 싸우는 일은,

하나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여러 개의 과녁에 총을 겨누는 것과 같다.

문제의 원인이 미디어와 독자 모두에게 있는 만큼 해결책 또한 양쪽 모두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미디어는 다시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독자 또한 필터 버블에서 스스로 나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뉴스 리터러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미디어를 얻는다.

뉴스 미디어와 허위 사이트 둘 다 소비하는 대중이 있으니 그런 정보를 만든다.

정치인은 유권자가 반응한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가 서로 교류하게 해줄 뿐이다.

개소리가 기승을 부리고 믿을 만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도 소비자이자 유료 독자이자 유권자로서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사례가 주로 등장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가짜 뉴스로 인한 혼란은 비슷하기 때문에 얻을 것이 많았던 책이다.

어느 정도로 비슷한가 하면, 아래의 구절은 현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 지난해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을 정도다.

(책 속에서는 트럼프 측근들의 행보를 설명하기 위한 구절이었다.)

냉소주의가 오래 이어지면 결국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키워 투표율이 낮아지고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율이 떨어진다. 악순환이 시작된다.

정치인은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과 부동층에게 호소하기보다,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는 쪽으로 선거 유세를 한다.

지지층을 향해 상태 후보가 우리의 핵심 이슈를 위협한다고,

이를테면 '당신의 총기를 빼앗아'가고, '여성의 결정권을 없앤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선거가 우리의 권리를 지킬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경험자보다는 아웃사이더가,

과거의 업적보다는 미래의 공약이 더 유리하다.

그 결과 예상 밖의 후보가 갑자기 부상한다.

가짜 뉴스의 폐해는 고스란히 일반 대중들에게 돌아온다.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언론을 멀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정부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사람들이 인지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에 결국 정부를 견제할 수단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물론 우리나라의 언론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는 없다.

언론 내부에서 스스로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이 이러한 언론의 행태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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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시드
김도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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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 현실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당연히 픽션이니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전혀 아니고, 배경 설정과 내용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드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책 소개글을 읽다가 한국의 현실을 잘 반영한 스릴러 작품이라는 말에 흥미가 일어 읽어보게 되었다.

작품의 주인공인 정하는 서울의 20평대 전세 아파트에 살며 어린 딸과 아들을 둔 젊은 엄마다.

쇼윈도 부부조차도 아닌, 서로에게 무관심할 뿐인 남편과 함께 그저 아이들 엄마로서의 삶에만 충실한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피를 뒤집어쓴 채 부러진 칼을 들고 집에 와 허겁지겁 뒷정리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본능적으로 남편이 무언가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안 정하는 다음날 락스로 화장실의 모든 흔적을 제거한다.

하지만 며칠 후 평소와 똑같이 출근한다는 말을 남긴 채 남편이 돌연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3개월 뒤,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큰 평수에 사는 한 남자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여기까지가 대략 작품의 3분의 1 정도이고 이후에는 이 두 사건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 안에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었는지가 밝혀지는 흐름으로 진행된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마케팅용으로 쓴 문구들이 거짓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정말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 한국인이 아니면 공감하기 힘든 정서를 잘 녹여냈다.

특히 쓸데없는 '오지랖' 문화와 이 때문에 발생하는 '남 눈치 보는' 문화를 기가 막히게 보여준다.

이웃들의 온갖 소문을 떠들고 다니는 이웃 아줌마가 매일같이 찾아와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욕먹기 싫어 내치지 못하는 정하의 모습은 살면서 한 번쯤은 본 듯한 전업주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우리 집사람에게도 비슷한 동네 친구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이 없어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어려움보다도 남들의 손가락질에 아이들과 자신이 받을 상처를 더 걱정하는 모습 역시 '정상적인' 가족의 범주를 넘어선 가정에게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시각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내가 그리던 그림 속에는 남편이 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그림 속에 애들 아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자리에 실루엣이 있긴 했지만

그건 다른 남자가 남편이 되었어도 상관없는 역할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 역할을 채우고 있던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없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중략 -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라니. 공동주택촌의 뒷담화 소재로 전락하기 딱 좋은 그림이었다.

(pg 173)

초반의 긴장감과 뛰어난 현실 묘사, 그리고 빠른 사건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400페이지가 살짝 넘는 약간 두꺼운 느낌을 주는 책이지만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는 점이 놀랍게 느껴질 정도로 문장도 읽는 맛이 좋아서 읽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름만으로는 작가의 성별이 짐작되지 않는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세상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기만 하는 한 여성의 시각을 매우 잘 풀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 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여기까지만 읽기를 권한다.)

좋은 의도가 깔려 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배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노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저어서 어딘가로 가려고 하는데

나에게만 노가 없다.

그들이 저으면 젓는 대로 나는 어딘가로 실려 간다.

(pg 249)

하지만 결말이 결국 신데렐라 스토리로 마무리된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물론 내 주제에 더 좋은 결말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내 상식에서는 돈 많은 남자가 애 둘 딸린 과부에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극정성을 쏟는 일이 과연 얼마나 일어날까 싶다.

하기야 이 넓은 세상에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긴 할 테니 내 시각이 편협하다면 편협한 것이라 생각한다.

쓰레기 같은 전 남편에게 제대로 된 정의 구현이 없었다는 점도 못내 아쉬운데 그것은 또 그것 나름대로의 현실감을 주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도착한 날 전부 읽었을 정도로 상당히 즐겁게 읽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영화 '기생충'처럼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과 이로 인해 생겨난 기묘한 인간관계를 잘 표현했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치정 문제까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은 소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앞 동 아파트 남자는 꼭 이선균이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문장들이 꽤 좋았고 스토리도 흥미로워서 다음 작품에서는 조금 더 속 시원한 결말과 함께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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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하시대 - 당신은 게으른 게 아니라 진심으로 지쳤을 뿐이다
로라 판 더누트 립스키 지음, 문희경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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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인 제목을 가진 책.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금 시대가 과부하를 불러오는 걸 넘어 과부하를 찬양하는 시대라는 사실에 어느 정도는 동의할 것이다.

인류를 편안하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기술이 발전한 시기지만 사람들의 노동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무한 경쟁 속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쁨을 자랑하고 번아웃이 된 자신을 뿌듯해(?) 하는 기묘한 문화마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런 문화가 우리의 삶을 좀먹는다는 당연한 진리를 담담한 문체로 전달하며 사람들을 소진시키는 문화에 경종을 울려준다.

우리 삶에 과부하를 가져다주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상당한 것들은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착취하는 수준으로 몰아대는 완벽주의부터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업무 관련 연락들, 사람들의 화려한 모습만을 부각시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내지는 '나도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생각을 갖게 하는 SNS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좀먹는 요인은 다양하다.

책에서 다양한 원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수면'은 그 자체로 과부하의 원인이자 결과가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수면이 부족하면 당연히 기력이 소진되기 쉽고, 기력이 소진되어 과부하가 오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점점 더 기력이 소진되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면 부족은 건강에 또 다른 악영향을 주어 점점 더 회복이 어렵게 만든다.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의 악순환에 빠지는 이유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하면

지방이나 설탕 함량이 높은 음식, 즉 정크푸드가 당기기 때문이다.

이런 음식들은 몸의 쾌락 정서에 신호를 보내서 뇌의 보상 중추를 만족시킨다.

잠이 부족하면 이런 보상 중추가 활성화되고(그래서 쾌락을 갈망하고),

그사이 실행 기능은 억제되어 실제로 의지력이 약해진다.

(pg 66)

수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스트레스 외에도 상당히 많지만 스마트폰, 특히 SNS의 과도한 노출도 한몫한다.

특히 SNS는 우리의 시간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 정신 건강 전반을 악화시킬 수 있다.

"i세대의 정신 건강이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위기에 놓여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동시에 발전하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강도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소외받는다고 느끼는 청소년 수가 모든 연령 집단 가운데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외로움이 증가한 것처럼 소외받는다고 느끼는 비율이 빠르고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pg 70)

사실 우리가 소진된다고 느끼는 이유들은 그리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 방법 또한 아주 참신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스스로 자주 확인하고, 그때 필요한 것을 보충하는 것이 전부이다.

수면이 부족하면 수면 시간을 절대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고, 업무가 너무 많다면 타인의 눈에 거슬리는 한이 있어도 업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쉬는 시간에 자신의 삶을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SNS, OTT 시청, 뉴스 검색,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닌 사회생활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갖는 약속 자리 등등)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취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등산을 추천하는데, 실제로 자연의 흙을 밟을 때 우리 몸속으로 흙 속의 미생물들이 들어오면 세로토닌이 분비되기 때문에 정신건강에 굉장히 좋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지나치게 신경 쓰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신의 경험을 온전히 소화하는 능력이 약해서 포화 상태가 되고

과부하에 취약해진다.

(pg 103)

일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들으면 '말이야 쉽지' 하면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겠지만, 사실 저자도 쉽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반드시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의식적인 시도'가 선행되어야 하고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구나 빛과 그림자를 비롯해 타고난 성향이 있지만 우리에겐 훈련이란 선택지가 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이해하고,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선택을 훈련하라.

매일 조금씩이라도 '뭔가를' 해보라.

(pg 267)

270여 페이지 정도로 길지 않고 삽화도 꽤 많은 편이어서 읽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책이다.

저자가 '과부하'에 걸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의도로 쓴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것 역시 최대한 부하가 걸리지 않게 하려는 생각으로 집필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삽화들이 내용에 부합하면서도 굉장히 웃긴데,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pg 50)

사실 현대인에게 피로와 스트레스는 삼시 세끼 챙겨 먹듯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쌓이고 있는지를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쌓이고' 있으며 적절히 해소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리를 주저앉히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아주 대단한 통찰을 가져다주는 책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자신의 부하를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 작은 시도들을 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두루 읽어봄직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술은 사람과 생각과 정보를 '연결'해주려는 목표로 발전해왔지만 모든 연령대에서

갈수록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더 많이 고립된다는 보고가 끊임없이 나온다.

왜일까? 우리의 심신이 꼭 그만큼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pg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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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런틴 워프 시리즈 4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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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내가 행복한 이유'라는 단편집을 통해 강한 인상으로 남았던 그렉 이건의 장편 소설이다.

작가의 초창기 작품이지만 국내에는 최근에야 번역되어 출간된 모양이다.

상당한 수준의 과학 지식을 훌륭한 스토리 속에 녹여내는 작가인지라 그의 장편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 서점에서 보자마자 사서 읽게 되었다.

제목인 쿼런틴(quarantine)은 코로나19 때문에 뉴스에 많이 등장한 단어인데, '격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지름이 명왕성 궤도보다 두 배나 더 큰 정체불명의 검은 물체가 태양계를 가둬버린다.

편의상 이를 '버블'이라 불렀고, 이 때문에 태양계 밖에 존재하는 별들은 지구에서 관측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즉 우주가 지구를 '격리'시킨 셈이다.

당연히 과학계는 물론이고 언론과 온갖 사이비 종교들이 내놓는 저마다 다른 해석들이 범람하며 지구는 큰 혼란을 맞게 된다.

하지만 3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버블이 나타났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자 사람들은 버블을 그저 거기에 존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게 된다.

주인공인 '닉'은 버블이 나타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사이비 종교집단의 테러로 아내를 잃은 전직 경찰이자 사립 탐정이다.

어느 날 한 병원에서 지체장애인이 실종돼 찾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조사를 맡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입 부분은 마치 탐정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닉이 찾아야 했던 로라에게 접근하면서 이 사건이 단순한 납치가 아닌 버블의 정체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부터 이 작품이 가진 놀라운 점이 드러나는데, 바로 양자역학의 해석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본래의 우주는 양자가 가진 특성인 중첩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즉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였는데 인간이 나타나면서 한 가지 상태로만 고정되는 상태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를 '파동함수의 수축'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로라가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 파동함수를 수축시키지 않고 확산 상태로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확산 상태에 있으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할 수 있고, 이 중 최선의 선택지를 골라 수축하면 그 선택이 바로 현실(과거)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때 선택받지 못한 모든 경우의 수는 그냥 파괴되어 버리는데, 이것이 태양계 바깥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누군가가 지구를 격리한 것이 바로 버블이라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 중 하나가 이 능력을 획득하기 전까지,

우주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을 테니까요.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모든 개연성들이 공존하는 우주.

파동함수는 결코 수축하지 않고 그 대신 점점 더 복잡화되기만 했겠죠. - 중략 -

하지만 본래의 우주가 그토록 다양하고, 그토록 복잡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 일각에서 이것들 모두를 전복시키고,

자기 자신을 창조한 문제의 다양성 자체를 소멸시켜 버린 생물이 진화했던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피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pg 207)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설정 중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중요한 것이 또 있는데 바로 모드(mod)의 활용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단어일 텐데 게임에서 모드는 캐릭터의 외형이나 능력치를 수정하는 등 본래의 프로그램에 특정한 변형을 가하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드 역시 뇌 속에 장착하는 일종의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된다.

작품 속 설명으로는 뇌 배선을 변경해 주는 것인데, 설치하고 나면 머릿속에서 이를 불러와 다양한 기능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 읽었던 한 뇌과학 책에서 뇌의 배선 과정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책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미완성인 채로 태어나 각종 감각 기관들에 의해 완성된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참조)

이 작품 속의 모드는 그러한 과정을 단축시키고 감각의 범위를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파동함수의 확산 기능 역시 모드의 형태로 뇌 속에 설치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모드에도 모드의 이름과 기능은 물론이고 제조사명과 가격까지 명시해두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예컨데 '암호 비서(<뉴로컴>, 5,999달러)'라는 식으로 소개가 된다.)

물론 이 모드의 활용을 둘러싼 논란도 작은 비중이지만 다뤄지고 있다.

모든 사람의 뇌는 자연 상태에서도 알아서 배선을 바꿉니다.

모든 사람은 자체적인 이상에 맞춰서 스스로를 형성하려고 합니다.

신경 모드가 그런 일을 실로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실제로 제공해 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

그걸 끔찍하다고 낙인찍을 수 있는 겁니까?

(pg 328-329)

근래에 양자역학과 뇌과학 관련 교양서를 몇 권 읽었었는데 읽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이나 용어 정도라도 익혀둔다면 이 작품을 이해하기도 훨씬 쉽고 재미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파동함수의 확산과 수축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파동함수가 확산하는 현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작가가 이 현상이 발생한 경우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글을 잘 따라가다 보면 '아 이런 느낌이구나'하는 시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있는 이 도시가 공존하는 수많은 가능성들의 안개로 분산되어 버리는 것을

막고 있는 존재가 다름 아닌 내 주위 군중들이라는 생각은,

믿기 힘들다기보다는 솔직히 말해서 무의미하다고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낯익은 현실이 제아무리 복잡하고 기괴할 정도로 반직관적인 기반에 입각해 있다 하더라도, 현실은 어디까지나 낯익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러더퍼드가 원자는 거의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발표했을 때,

지면이 예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덜 견고해지기라도 했나?

진실 자체는 그 무엇도 변화시키지 않는 법이다.

(pg 218)

존재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찾아낼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선택을 해야만이 그것이 현실로 확정이 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닉 역시 어려운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그 선택을 피할 방법은 없다.

어찌 되었든 우리 인간은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살도록 진화했고, 과거는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선택을 하고, 그 결과 단 하나의 고유 상태만 살아남게 돼.

그건 비극이 아냐.

그건 우리들의 존재 그 자체이고, 우리에게 가능한 유일한 방식이야.

(pg 415)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분명 아니겠지만 취향만 맞다면 엄청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다 읽고 나면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가 조금은 넓어진 것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렉 이건이 왜 '작가들의 작가', '현존하는 최고의 SF작가'라는 칭송을 받는지도 이 책을 통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작가의 작품들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는 않았는데 모쪼록 다른 작품들도 빨리 한국어로 만나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사실을 말하지만, <버블>은 결코 인류를 가뒀던 적이 없다.

단지 인류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도록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갇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무한대의 자유라는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강제로 직면해야 했기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pg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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