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1Q84 1~3 세트 - 전3권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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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점만 가면 이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벌써 십여 년 전이다.

지금도 독서 편식이 심하지만 그때는 더했기에 관심도 없던 책이었는데 세월이 지나 어느새 우리 집에도 꽂혀있게 되었고 마침 읽을 책이 딱 떨어져서 드디어 펴들게 되었다. (사실 꽂혀있은지도 꽤 되었지만;;)

워낙 전설적인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이고 국내에서만 200만 부 이상이 팔렸다는 사실만으로 책의 재미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소개가 가능할 것 같다.

만만하지 않은 두께에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꽤 긴 이야기지만 읽은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오래된 작품이긴 하지만 작품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책을 읽을 사람이라면 주의하기 바란다.)

2권까지는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덴고와 아오마메의 시각이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분량은 길지만 스토리라인 자체는 상당히 단순한 편이다.

아무 연관성 없어 보이는 '수학학원 강사 겸 소설가 지망생'과 '스포츠센터 트레이너 겸 냉혹한 암살자'가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리며 진행되는 사랑 이야기인데, 이들이 사실은 어릴 적 단 한순간,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설정이다.

이렇게 쓰니 참 매력 없어 보이는 줄거리인데 이게 한동안 베스트셀러일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나 작가가 가진 문장력과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전개,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인 독특한 세계관 덕분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러브 스토리니 둘이 이어지든지 말든지 둘 중에 하나의 결말을 향해 가겠지만, 그 안에 벌어지는 일들이 꽤나 많고 엮여있는 인물들도 많아서 아래 구절처럼 전개가 쉽게 예상되는 작품은 아니다.

역사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명제는

'그 당시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1권, pg 10)

1984년이라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명시해 둔 굉장히 현실적인 배경에서 시작하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공기 번데기'라는 소설의 내용이 그들의 현실 세계와 겹치면서 판타지스러운 느낌으로 이어진다.

작품의 제목인 1Q84는 아오마메가 갑자기 자신이 살던 세계와 다른 세계에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이 현실이 무슨 현실인지를 알아보겠다는 뜻에서 Question의 Q를 따 1Q84년이라 부르자고 정한 것이다.

지금은 마블 영화 덕에 그리 어색하지 않은 개념인 '멀티버스'라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전환(현실과 비현실이 부자연스럽게 공존하는)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충분한 페이지에 걸쳐 한 겹씩 상세히 묘사를 해 나가기 때문에 읽다 보니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게 되었다.

(물론 블루투스 임신에 이르자 '이거 선넘네'라는 생각이 좀 들기는 했다.)

작가의 명성답게(?) 섹슈얼한 묘사도 꽤나 많이 등장하는데 정작 주인공 둘의 주요 서사는 10살 때 손 한번 잡은 것이 전부라는 점이 신선한 대비로 다가온다.

작품 내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 역시 20년 전에 아오마메가 교실에서 덴고의 손을 잡았던 그 짧은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사에서 선택이 갖는 중요성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작품 역시 어떤 선택을 하느냐, 그리고 그 선택들이 어디로 인도하느냐가 스토리의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우리의 기억은 개인적인 기억과 집단의 기억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거야."

덴고는 말했다. "그 두 가지 기억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지.

그리고 역사라는 건 집단의 기억을 말하는 거야.

그것을 빼앗으면, 혹은 고쳐 쓰면 우리는 정당한 인격을 유지할 수 없어."

"당신도 고쳐 썼어."

(1권, pg 544)

3권부터 우시카와라는 자의 시각이 추가된다.

덴고에게 후원금을 주겠다며 접근했던 그는 아오마메를 쫓기 위해 다시 그들의 주변을 맴돈다.

여기서 작가는 일부러 우시카와의 시각을 한 발짝 늦게 알려준다.

쫓는 자의 시각이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쫓기는 자의 시각이 먼저 등장하는 것이다.

반대로 되어야 할 것 같지만 묘하게 의도된 시점 차이 때문에 3권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전개 자체는 꽤나 느리다고 할 수 있는지라 호불호가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미끄럼틀에서 달 한번 쳐다보는 데 50페이지가 걸리니 솔직히 나도 3권 중반부터는 살짝 짜증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갈 수밖에 없었던 건 물론 결말이 궁금해서이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구절들이 나와주기 때문이다.

"일정 나이를 넘으면 인생이란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의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빗살 빠지듯이 하나하나 당신 손에서 새어나갑니다.

그리고 그 대신 손에 들어오는 건 하잘것없는 모조품뿐이지요.

육체적인 능력, 희망이며 꿈이며 이상, 확신이며 의미,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것이 하나 또 하나, 한 사람 또 한 사람, 당신에게서 떠나갑니다. - 중략 -

그것이, 예, 말하자면 나이를 먹는다는 겁니다."

(2권, pg 160)

"아버님은 정말로 그 일을 좋아하셨나봐. NHK 수신료를 수금하러 다니는 걸."

"좋다든가 싫다든가,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을 거야." 덴고는 말했다.

"그럼 어떤 종류의 문제였는데?"

"그것이 아버지에게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던 거야."

"그럴까?" 아다치 구미는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런 삶의 방식이 어떤 의미에서는 정답인지도 몰라."

"그럴지도."

(3권, pg 555)

"멀리까지 간다고 했지." 다마루는 말한다. "얼마나 멀어질까."

"그건 숫자로는 잴 수 없는 거리예요."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 사이의 거리처럼."

(3권, pg 653)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

불행했던 과거와 그냥저냥 별 불만은 없었던 현재를 지나 두 사람이 '행복'이라는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미래가 보이며 끝이 난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고독한 한 소년과 고독한 한 소녀다. 초겨울의 방과후 교실.

상대에게 무엇을 내밀어야 할지, 상대에게 무엇을 원해야 할지,

두 사람은 힘을 갖지 못했고 지식도 갖지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랑받은 적도 없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도 없었다. - 중략 -

그때의 두 사람은 알지 못했지만, 그곳은 세계에 단 하나뿐인 완결된 장소였다.

한없이 고립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고독에 물들지 않는 장소.

(3권, pg 675-676)

3권까지 다 읽고서 인상적인 구절을 정리하다 보니 1권 초반부에 이미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이 구절이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는 구절이었다는 걸 읽을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두 사람은 나비와도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나비는 그 무엇보다도 허망하고 우아한 생물이랍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게 태어나 한정된 아주 조금의 것만을 조용히 원하고,

이윽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살그머니 사라져요. 아마도 이곳과는 다른 세계로."

(1권, pg 178)

다 읽은 후 재미있었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재미있었다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렇게 광풍을 일으킬 정도로 대단했는지를 물으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텍스트를 이미지로 떠올리며 그 작품이 전해주는 감상을 온전히 느끼는 것에 익숙한 독자라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전개가 너무 느려서 때로 답답함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또한 작품 속에서 소개된 판타지스러운 요소들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웠다.

독자는 리틀 피플이 어떤 존재인지, 공기 번데기는 무슨 역할을 하는지, 심지어 왜 만드는 건지도 이 긴 분량 안에서 명확히 읽어낼 수 없다. 그저 막연하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읽고나서 찜찜함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이런저런 아쉬움들이 좀 남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품이니만큼 읽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는 결코 아니므로 책을 읽어볼 생각이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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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폭식 사회 : 기술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가? -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2023년도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선정 우수과학도서
이광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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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무슨 뜻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술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가?'라는 부제를 보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미래의 '대안'이자 '희망'이라고 믿는 기술이 지금처럼 아무 제한 없이 폭주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지하자원이 부족한 땅에서 '기술이 곧 경쟁력'이라 믿고 자란 사람들에게 저자의 외침이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해 책을 집어 들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가상의 공간이 실제 세계에 영향을 주는 현상도 가속화됐다.

수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한 가상화폐부터 NFT와 크립토 아트 등 실제로 우리가 만져볼 수 있는 개념이 아닌 것들이 실물 자산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디지털 공유와 개방의 역사에 견줘봐도, NFT와 크립토아트의 출현은 크게 미심쩍다.

이는 무한 복제, 비경쟁성, 한계비용 제로, 익명성 등 아이디어와 지식 공유의 오래된

디지털 전통과도 크게 배치된다.

영원히 "자유롭고자 하는" 정보의 본성은 인류의 잠재적 창작 원천이 되고

복제와 공유를 독려하면서 디지털 '자유 문화'를 확장해오지 않았던가?

(pg 43)

문제는 이러한 기술의 결실이 일부 계층에 독식되며 그를 떠받치는 수많은 디지털 잡일(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하류노동)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AI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단순 코딩 노동부터 디지털 영상 편집 등의 콘텐츠 생산 노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비정규 직업이 생겨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확대된 플랫폼 기술의 적용은 수많은 긱 워커를 양산해왔다.

'언택트' 경제는 자동화된 소비에 비례해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인간 노동을 동원해야

가능한 플랫폼 체계에 의지하고 있다. - 중략 -

플랫폼 노동의 증가로 인해 신규 고용 창출이 많이 늘어난 듯 보이기도 한다. - 중략 -

플랫폼 기술로 형성된 자원 유통 방식의 급격한 기술혁명과 맞물려 코로나19 재난 시대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노동을 값싼 심부름꾼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pg 81-82)

정보통신업계 지원 정책과 비교하면

고용과 노동의 질적인 개선과 안정에 대한 문제의식은 희박했다.

더 안정되고 '양호한 일자리'와 직업 훈련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을

함께 고민했어야 했지만, 청년 수탈의 임시직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pg 143)

이처럼 기술의 폭주는 사회의 취약 계층에 더 가혹한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게다가 이들 플랫폼에 과도하게 의지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근에 있었던 카카오톡 마비 사태다.

저자는 사태가 이렇게 되도록 방관 혹은 부채질한 정부를 통렬한 시각으로 비판하고 있다.

'닷컴 시장 교란종'이던 카카오를 현재 국가 기간 통신망처럼 보이도록 부채질했던 과오는 어찌 보면 각종 공적 서비스를 카카오톡 알림 등에 쉽게 연동해왔던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무신경증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 중략 -

규제의 공백 지대에서 마구 헤엄치던 시장 포식자를 그저 방관해왔던 시절에다

카카오 플랫폼에 각종 공적 서비스를 얹혀 연동해오던 관행이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대한 플랫폼 공룡을 국가가 나서서 키운 꼴이 되었다.

(pg 126)

또한 이렇게 기술 개발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가 담긴 정책 기조가 정권에 관계없이 늘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디지털 뉴딜'이나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상은 그 단어의 차이만 존재할 뿐 기본 기조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환경과 노동에 대한 고려는 구색 맞추기 수준에 불과하고 구체적인 정책은 모두 기술의 무한한 개발에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기후 위기와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 등 노동 문제의 해결이 기술 개발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국가 주도적인 기술 개발 러시에서 시민 정보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우려도 꽤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사기업이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취합하는 정보들을 사업에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한 데이터 3법의 제정이 그러한 현상의 주요한 분수령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기술의 개발과 이를 통한 경제 성장만을 목표로 달려온 것의 폐해는 적지 않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저자는 지금부터라도 환경 문제에 대한 '생태 감각'을 되살리고 인간의 노동 문제를 직시하는 '연대 감각'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와서 문명의 이기를 완전히 폐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생산의 규모를 줄이고, 성장주의적 광란에서 일정 부분 거리를 두는

경로 수정은 가능하다고 본다. - 중략 -

폭주하는 기관차를 완전히 멈춰 세우고, 자본주의적 속도 욕망을 무력화할

다른 삶과 생명 공존의 기획이 필요하다.

(pg 180)

우선은 청정의 비물질인 양 가장하는 첨단기술이 환경에 미치는 독성 효과를

풀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기술의 반생태적 속성을 밝히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

환경과 기술의 통합적 논의 없이 기후 위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어렵다.

동시에 플랫폼 알고리즘 등 디지털 기술이 노동자와 시민의 심신에 미치는 '독성'의

제거 방법 또한 찾아야 한다.

이는 공생과 호혜의 생태주의적 기술을 모색하는 일과 다름없다.

(pg 246)

전체적으로 기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많이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다만 저자가 여기저기에 쓴 글을 모아둔 것 같은 형식의 책이어서 목차나 글의 순서가 논리정연하다는 느낌은 다소 부족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앞에서 봤던 주장의 연속이어서 다소 집중력을 흐리게 하기도 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 자체는 꽤 신선하고 의미 있었다.

바로 지난달에 있었던 카카오톡 먹통 사태 등 국내의 최신 사례들을 통해 이해를 돕는 점도 좋았다.

기술이 인간을 해방할 것이라는 막연한 청사진은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너무나 무력하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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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 이론이란 무엇인가?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물리학 특강, 개정판
제프리 베네트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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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양자역학을 비롯한 과학 교양서를 몇 권 접하고 있는데 워낙 자연과학 기본 지식이 적다 보니 솔직히 이해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쉽게' 읽힌다는 책들이 나오면 반가운 기분으로 집어 들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책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일반 독자 수준에 맞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발간된 지는 꽤 되었는데 이번에 개정판이 새로 나올 정도로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인기가 많은 책이라 한다.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속도가 변하면 시간 흐름이 달라진다.', '빛의 속도에 근접하면 에너지의 증가분이 물체의 질량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작용해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도로밖에는 알지 못했는데 이번 책을 통해 그래도 상대성 이론이 무엇을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인지 정도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뉴턴의 고전 물리학은 지구의 평균적인 중력 하에서 일어나는 물체의 운동을 예측하는 것에는 뛰어났지만,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 정도로 빠르거나 물체의 질량이 어마어마하게 큰 행성이나 항성을 대상으로 할 경우 오차가 크게 발생했다.

이를 해결한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

상대성 이론에서 밝혀낸 바에 의하면 '운동'은 '상대적'이고 빛의 속도는 '절대적'이다.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또 실제 우주에서 그 계산이 맞았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상대성 이론은 '이론'으로서 탄탄한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성 이론으로 인류는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면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고 질량을 가진 물질은 중력을 발생시키며 주변의 시공간을 왜곡시킨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인슈타인의 유산은 보통 그의 발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되고,

그가 물리학과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혁신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공간과 시간이 따로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고,

중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으며,

그의 이론은 이제 블랙홀 같은 특이한 물체에서부터

우주 전반의 기하학적 구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이해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pg 243)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이해'되기는 어렵다.

우리가 지구 안에서 일상적으로(미미한 질량과 속도를 가진 채) 살아가는 동안에는 이러한 시공간의 왜곡을 실제로 관찰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이러한 상대성 이론의 결과를 수식이 아닌 '사고 실험'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독자의 머릿속에 우주선을 두 대 띄워 다양한 방법으로 사고 실험을 유도한다.

그러면서 물체의 속도가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빛의 속도는 왜 함께 변할 수 없는지, 그리고 속도가 변화할 때 그 변화 주체에게 발생하는 현상들이 무엇인지 등등 상대성 이론을 통해 알아낸 것들을 하나하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준다.

책의 시작과 끝에 상대성 이론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었던 블랙홀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그 어떤 빛도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관측을 통해서는 블랙홀이라는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의 연구로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난 질량을 가진, 그러면서도 크기는 작은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를 '블랙홀'이라 명명하고 이것이 전 우주에 엄청나게 많이 분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어떤 물질도 블랙홀 안에 들어갔다 나올 수 없는 만큼 블랙홀의 내부를 물리적인 예측이 아닌 경험적인 연구로 더 알아낼 방법은 아직까진 없다.

이 부분에서 최근에 역주행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노래 제목이기도 한 '사건의 지평선'에 대한 개념도 소개되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요약하면 사건의 지평선은 본질적으로 블랙홀 내부와 바깥 우주 사이의 경계다.

바깥에서 봤을 때 사건의 지평선은 세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즉, 바깥 우주로 돌아오기가 불가능해지는 장소이고, 시간이 멈춘 것으로 보이는 장소이며, 빛이 무한히 적색이동을 하는 장소이다. 하지만 경계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블랙홀로 떨어지는 물체에게 사건의 지평선은 그저 블랙홀 안에서 기다리는 운명으로

향하면서 그 너머로 가면 바깥 우주와 더 이상 접촉할 수 없는 장소일 뿐이다.

(pg 192)

사건의 지평선 안의 어떤 것도 관찰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관찰 증거나 실험 증거를 모을 방법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홀의 안은 관찰 가능한 우주 밖에 놓여 있듯이 과학의 영역 밖에 놓여 있다.

(pg 214)

저자는 상대성 이론에 대한 소개를 끝낸 후 과학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인류가 이렇게 발전해 온 원동력에 과학적 지식의 단순한 축적뿐 아니라 과학적인 태도로 무장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이유도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가 처음에는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증거가 충분히 강력해지면 과학자들은 결국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과학의 정의도

'증거를 이용하여 우리가 합의에 이르게 돕는 방식'이다.

(pg 221)

상대성 이론의 시작은 물론 아인슈타인이었지만 그의 생각을 '이론'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은 뒤에 이어진 수많은 과학자들의 실험과 관측, 계산의 결과였다.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론이었지만 데이터를 통해 이를 증명할 수 있다면 그 이론은 진리에 가깝다고 보는 과학적 태도가 이러한 과정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점은 자명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인슈타인의 가장 큰 유산은

과학적 사고의 엄청난 힘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은 십 대 시절에 만약 빛을 타고 간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수학과 물리학을 깊이 있게 배워서 이 질문을 실제적으로 조사했고,

여러 가지 생각의 결과를 탐구했다. 이것이 과학의 본질이다.

(pg 243)

일반적인 독자들에게 상대성 이론이 그리 쉬운 주제일 리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나 역자가 쉽게 읽힐 수 있는 글을 만들어 내려고 상당히 노력했다는 점이 읽으면서 잘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번역된 글이 매끄러우면서도 이해하기 쉬워서 역자의 노력도 높이 사고 싶다.)

그림과 도표도 많아 사고 실험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이해하기가 꽤 좋았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맛보고 싶은 사람뿐 아니라 일반 상식 측면에서도 과학적 사고 실험이 어떤 느낌인지 경험해 볼 수 있었기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한 번쯤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분량도 그리 길지 않아서 제목만 보고 '벽돌책'을 상상했다면 결코 부담되지 않는 양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저자는 아래의 문단으로 책을 마치고 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꼭 옮겨두고 싶었다.

시공간의 이해에 근거해 볼 때, 시공간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영원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한 사건이 일어나면,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우주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은 사건의 연속이고, 이들 사건을 함께 모으면

당신은 우주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아마 우리가 남길 흔적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 되도록 좀 더 신중하게 처신할 것이다.

(pg 248-249)

우주에 수많은 은하가 있지만 우주 공간 자체가 점점 더 빠르게 확장하고 있고 어떤 은하들은 빛의 속도보다도 빠르게 우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직접 행성들을 돌면서 우리 이외의 생명체를 찾아다니는 일은 점점 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다른 지적인 존재를 찾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은 사실상 온 우주에 우리들밖에 없다고 보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의 흔적이 영원히 우주에 남는다는 저자의 말이 무겁지만 겸허하게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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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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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작품이 김영하 작가가 쓴 첫 장편소설이라는 말에 읽어보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 중 네 번째로 읽은 작품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읽은 감상을 남기기가 가장 어려운 느낌이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작품의 주 화자는 자살을 컨설팅해 주는 한 남자다.

작품 속에서 총 두 명의 여인이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살해하도록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사람들이 무의식 깊은 곳에 감금해두었던 욕망을 끄집어내고 싶을 뿐이다.

일단 풀려난 욕망은 자가증식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상상력은 비약하기 시작하고 궁극엔 내 의뢰인이 될 소질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등장하는 '유디트'라는 작품명으로 불리는 여성은 시종일관 염세적인 태도를 보이며 두 명의 남자를 만난다.

C라는 영상 예술에 종사하는 남성과 택시 기사를 하는 K라는 남성인데 이 둘은 형제 사이다.

유디트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 C는 '미미'라는 행위예술가를 만나 협업을 하게 된다.

영상 매체에 찍히는 것을 줄곧 거부하던 미미는 예외적으로 C와 영상작업을 함께 하게 되고, 이후 역시 자살 컨설턴트를 만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고객과의 일이 무사히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고객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쓴다.

그럼으로써 나는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스토리를 정리했는데 다 읽은 지금 봐도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어떤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좀 찾아봤으나 딱히 공감이 가는 것도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을 읽은 뒤와 느낌이 비슷했다.

본래 문학보다는 비문학을 더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상 소설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등장인물들의 행보나 선택이 그다지 공감되지 않았다.

원래 염세적인 캐릭터였던 유디트의 선택은 일면 이해가 가지만, 주도적으로 예술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 미미의 행보는 다소 의아한 느낌이 들었고, 형제 관계면서도 서로에게 관심도, 무관심도, 증오도, 애정도 아닌 그 무언가의 관계인 C와 K의 사이도 짧은 내 인생 경험으로는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내려놓지 못하고 끝까지 다 읽은 것이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이는 물론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 때문이 가장 클 것이고, 분량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섹슈얼한 장면이 꽤나 많이 나와서 자극적인 맛에 계속 읽게 된 것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검색하면 바로 나오는 명화들을 빌어 등장인물이나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어서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좋았다는 점도 몰입도를 높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꽤 많이 팔리는 책인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왜인지 나는 이런 염세적인 느낌이 나는 소설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작가의 비교적 최근작들을 읽은 편인데, 내 취향엔 그의 최근작들이 더 맞는 것 같다.

어쨌든 부족한 내 취향과 이해력을 탓하는 시간이었지만 꽤나 독특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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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사랑 맑은아이 15
신영란 지음, 오오니시 미소노 그림 / 맑은물 / 2022년 10월
평점 :
품절


아이 책이지만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백과 형식의 책이 아닌 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을 읽어줄 때에는 무슨 내용일지 꽤나 신경이 쓰인다.

아동용이라 하더라도 내용상 폭력적인 부분이나 차별적인 요소가 없는지를 한 번쯤 고민해 보게 되는데 이 책은 아이를 향한 아빠의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을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읽어줄 수 있었다.



표지에 보이는 황제펭귄에 관한 이야기다.

황제펭귄의 암컷은 알을 낳으면 수컷에게 알을 품게 하고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데, 이때 알이 부화한 후 새끼에게 먹일 수 있도록 소화 기관이 아닌 별도의 먹이 저장 주머니에 저장해둔다.

암컷이 돌아오면 부화한 새끼에게 먹이를 먹인 후 수컷이 교대해 먹이를 찾으러 떠난다.

새끼가 다 자랄 때까지 이 행동을 반복하는데 이 책의 내용에도 실제 황제펭귄의 이러한 습성이 잘 녹아있다.

표지에 그려진 슬퍼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 이야기의 스포를 담고 있다.

지극정성으로 알을 품고 있던 아빠였지만 날씨의 변덕으로 알이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깨져버리고 만다.

알을 잃어버린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아빠는 알과 비슷한 크기의 얼음덩어리를 알 대신 품는다.

모든 펭귄들의 알이 부화했지만 당연히 얼음덩어리는 부화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아빠에게 어디선가 고아 펭귄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빠 펭귄은 그 고아 펭귄을 자식으로 삼아 키우기로 결심한다.

먹이를 가지고 돌아온 엄마 펭귄은 그 새끼가 자신의 새끼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새끼에게 자신이 저장해 둔 먹이를 먹이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슬프지만 감동이 있는 이야기였다.

사실 자신의 DNA를 물려받지 않은 어린 개체를 정성 들여 키운다는 것은 인간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실제로 황제펭귄은 고아 펭귄이 발생할 경우 알을 잃은 성인 개체가 돌보려 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동물들에게도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지는 부분이다.

부모를 잃었지만 양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으며 자랄 새끼 펭귄을 보니 안도감이 들었다.

책을 다 읽어준 후 아이에게 "이 새끼 펭귄은 이제 어떻게 될 것 같아?"라고 물었더니 "엄마랑 아빠랑 잘 지낼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야기 자체의 서사도 좋았고 흔하지는 않겠지만 모든 가족이 반드시 혈연으로만 맺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에게 간접적으로 인지시켜줄 수도 있었던 따뜻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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