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폭식 사회 : 기술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가? -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2023년도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선정 우수과학도서
이광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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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무슨 뜻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술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가?'라는 부제를 보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미래의 '대안'이자 '희망'이라고 믿는 기술이 지금처럼 아무 제한 없이 폭주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지하자원이 부족한 땅에서 '기술이 곧 경쟁력'이라 믿고 자란 사람들에게 저자의 외침이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해 책을 집어 들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가상의 공간이 실제 세계에 영향을 주는 현상도 가속화됐다.

수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한 가상화폐부터 NFT와 크립토 아트 등 실제로 우리가 만져볼 수 있는 개념이 아닌 것들이 실물 자산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디지털 공유와 개방의 역사에 견줘봐도, NFT와 크립토아트의 출현은 크게 미심쩍다.

이는 무한 복제, 비경쟁성, 한계비용 제로, 익명성 등 아이디어와 지식 공유의 오래된

디지털 전통과도 크게 배치된다.

영원히 "자유롭고자 하는" 정보의 본성은 인류의 잠재적 창작 원천이 되고

복제와 공유를 독려하면서 디지털 '자유 문화'를 확장해오지 않았던가?

(pg 43)

문제는 이러한 기술의 결실이 일부 계층에 독식되며 그를 떠받치는 수많은 디지털 잡일(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하류노동)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AI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단순 코딩 노동부터 디지털 영상 편집 등의 콘텐츠 생산 노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비정규 직업이 생겨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확대된 플랫폼 기술의 적용은 수많은 긱 워커를 양산해왔다.

'언택트' 경제는 자동화된 소비에 비례해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인간 노동을 동원해야

가능한 플랫폼 체계에 의지하고 있다. - 중략 -

플랫폼 노동의 증가로 인해 신규 고용 창출이 많이 늘어난 듯 보이기도 한다. - 중략 -

플랫폼 기술로 형성된 자원 유통 방식의 급격한 기술혁명과 맞물려 코로나19 재난 시대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노동을 값싼 심부름꾼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pg 81-82)

정보통신업계 지원 정책과 비교하면

고용과 노동의 질적인 개선과 안정에 대한 문제의식은 희박했다.

더 안정되고 '양호한 일자리'와 직업 훈련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을

함께 고민했어야 했지만, 청년 수탈의 임시직 일자리가 대부분이었다.

(pg 143)

이처럼 기술의 폭주는 사회의 취약 계층에 더 가혹한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게다가 이들 플랫폼에 과도하게 의지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최근에 있었던 카카오톡 마비 사태다.

저자는 사태가 이렇게 되도록 방관 혹은 부채질한 정부를 통렬한 시각으로 비판하고 있다.

'닷컴 시장 교란종'이던 카카오를 현재 국가 기간 통신망처럼 보이도록 부채질했던 과오는 어찌 보면 각종 공적 서비스를 카카오톡 알림 등에 쉽게 연동해왔던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무신경증이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 중략 -

규제의 공백 지대에서 마구 헤엄치던 시장 포식자를 그저 방관해왔던 시절에다

카카오 플랫폼에 각종 공적 서비스를 얹혀 연동해오던 관행이 익숙해지면서,

어느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거대한 플랫폼 공룡을 국가가 나서서 키운 꼴이 되었다.

(pg 126)

또한 이렇게 기술 개발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가 담긴 정책 기조가 정권에 관계없이 늘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디지털 뉴딜'이나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상은 그 단어의 차이만 존재할 뿐 기본 기조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환경과 노동에 대한 고려는 구색 맞추기 수준에 불과하고 구체적인 정책은 모두 기술의 무한한 개발에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기후 위기와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 등 노동 문제의 해결이 기술 개발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국가 주도적인 기술 개발 러시에서 시민 정보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우려도 꽤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사기업이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취합하는 정보들을 사업에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한 데이터 3법의 제정이 그러한 현상의 주요한 분수령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기술의 개발과 이를 통한 경제 성장만을 목표로 달려온 것의 폐해는 적지 않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저자는 지금부터라도 환경 문제에 대한 '생태 감각'을 되살리고 인간의 노동 문제를 직시하는 '연대 감각'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 와서 문명의 이기를 완전히 폐절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생산의 규모를 줄이고, 성장주의적 광란에서 일정 부분 거리를 두는

경로 수정은 가능하다고 본다. - 중략 -

폭주하는 기관차를 완전히 멈춰 세우고, 자본주의적 속도 욕망을 무력화할

다른 삶과 생명 공존의 기획이 필요하다.

(pg 180)

우선은 청정의 비물질인 양 가장하는 첨단기술이 환경에 미치는 독성 효과를

풀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기술의 반생태적 속성을 밝히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

환경과 기술의 통합적 논의 없이 기후 위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어렵다.

동시에 플랫폼 알고리즘 등 디지털 기술이 노동자와 시민의 심신에 미치는 '독성'의

제거 방법 또한 찾아야 한다.

이는 공생과 호혜의 생태주의적 기술을 모색하는 일과 다름없다.

(pg 246)

전체적으로 기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많이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다만 저자가 여기저기에 쓴 글을 모아둔 것 같은 형식의 책이어서 목차나 글의 순서가 논리정연하다는 느낌은 다소 부족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앞에서 봤던 주장의 연속이어서 다소 집중력을 흐리게 하기도 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 자체는 꽤 신선하고 의미 있었다.

바로 지난달에 있었던 카카오톡 먹통 사태 등 국내의 최신 사례들을 통해 이해를 돕는 점도 좋았다.

기술이 인간을 해방할 것이라는 막연한 청사진은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너무나 무력하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필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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