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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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단편집으로 처음 나온 지는 꽤 된 작품인데 몇 년 전 살짝 개정되어 나온 버전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를 포함한 여덟 작품을 수록한 책으로 각각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다 읽는다 해도 짧은 장편 한 권 정도의 분량이라 읽는 부담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그 안에 각기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상당히 인상적인 삶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단편집을 읽을 때면 습관적으로 각각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공통점이 뭘까를 찾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쉽게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절대 원치 않았던 만남'이다.

그리 친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한 쪽으로 사상이 트여 불쑥 찾아온 대학 동창, 이삿날 자신의 짐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안하무인의 이삿짐센터 직원, 집 나갔던 오빠가 불쑥 데리고 들어온 모르는 여자, 남 몰래 마음에 품었지만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사별을 겪은 친구, 원나잇이나 하려고 했는데 사랑한다고 진득하게 달라붙는 여자, 1년의 마지막 날 밤 업무 때문에 찾아온 남편의 직장 상사, 수영장에서 만난 이성의 중학교 동창, 결혼 전 친구들 모두와 아무렇게나 관계를 가졌던 한 여자 동창생에 이르기까지...

정말 인생의 어느 순간에 어떻게 만나도 그저 최악이라는 말만 나오게 될 만남을 주제로 여덟 개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살면서 겪기 쉽지 않은 형태의 삶들이지만 그런데도 묘하게 공감이 되면서 불편해진다.

제발 저런 상황은 겪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불쾌한(?) 사연들이 이어지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작가의 맛깔나는 문장들이 읽을 때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첫 작품인 '보물선'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는데 '돈에 미친 사람'과 '사상에 미친 사람'이 만나게 되면서 겪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돈에 미친 사람'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객관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를 자각하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찬찬히 면면들을 둘러보았다. 저 철면피들.

수천 명의 재산을 간단하게 꿀꺽하고도 아침이면 호텔 식당의 메로구이를 집요하게

발라먹는 저 놀라운 식욕, 추악한 욕망.

문제는 재만도 그들과 전적으로 같은 종자라는 데 있었다.

'보물선' 중

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는 마치 그 옛날 채만식의 '치숙'을 보는 것처럼 사춘기 소녀의 시각으로 본 가족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만 유독 화자가 어린 소녀라 그런지 문체가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읽는 맛이 좋았다.

스토리 자체는 평이한 느낌이지만 문체 덕분에 인상에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오빠는 아빠를 이긴다. 아빠는 엄마를 이긴다. 그런데 엄마는 오빠를 이긴다.

나는? 엄지공주다. 나는 너무 작기 때문에 누구도 나 따위를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오빠가 돌아왔다' 중

내가 '어디?'라고 묻지 않고 '뭐?'라고 물은 이유는 '

너도 가자'라는 말이 너무도 생소했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는 도대체 '너도 가자' 같은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도'라는 주격조사와 '하자'형 어미는 우리집에서 여간해서 발견되지 않는

일종의 사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빠가 돌아왔다' 중

이어지는 '너의 의미'에서는 3류 감독이면서 지위를 이용해 어린 여자들이나 꼬셔 잠이나 자려는 주인공에게 진지하게 사랑한다고 달라붙는 여성이 나타나자 혼란스러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책에서 가장 블랙코미디스러운 맛을 잘 살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경험은 많지만 사랑은 두려워하는 중년 남성의 찌질한 감성이 잘 살아 있다.

나는 사랑이 호르몬의 이상분비 때문에 빚어지는 일종의 병리현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남자다.

사랑이, 우리가 지금 하려고 하는 멜로영화에서 그렇듯이,

애들 코 묻은 돈 우려낼 때나 써먹는, 일종의 청소년용품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유일하게 내가 모르는 것은 바로 내 앞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저 여자다.

'너의 의미' 중

언급하지 않은 다른 작품들도 모두 충분히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후미에 개정판을 내게 된 작가의 소감도 있어서 뭔가 작가를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된 것 같아 좋았다.

작가의 바람처럼 꽤나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설은 작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작가에게로 와서 소설이 된다.

그렇게 나온 소설을 읽고 사람들은 세상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된다.

'개정판을 내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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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자유로운 삶을 위한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장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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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 해석본은 읽어본 적이 있어서 노장사상의 다음 타자(?)인 장자의 저술이 어떤 느낌인지도 읽어보고 싶었다.

찾아보면 이미 상당히 많은 책들이 나와 있는데 가장 최근에 발간되었기도 하고 장자의 원문과 역자의 해설이 같이 실려있다는 소개에 읽어보게 되었다.

책을 받아들면 일단 그 묵직함에 한번 놀라게 된다.

한자 원문까지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읽는 사람에게는 물론 힘든 여정이겠으나, 나처럼 해석된 부분과 역자의 해설만 읽는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으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읽는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이해도 빠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장자가 말하는 '도'의 개념이 원래 어렵기도 하지만, 이런 동양 고전은 본래 금방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해하며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비유도 많고 말장난 같은 부분도 많아서 한참 읽은 것 같은데 그동안 뭐 읽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 경우가 많아 진도가 팍팍 나가는 느낌을 주는 책은 분명 아닐 것이다.

800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내편, 외편, 잡편을 합쳐 총 33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중 장자가 직접 썼다고 추정되는 것은 내편에 수록된 7편 정도이고, 외편과 잡편은 후학들의 손길이 닿았을 것이라 추정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외편과 잡편에 이르러 이해되는 부분이 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내편을 읽고 외편과 잡편으로 넘어가서인지, 이해를 돕기 위한 후학들의 서술이 덧붙여져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편에서 언급한 내용이 외편과 잡편에 부연하는 식으로 구성된 글들이 많아서 되도록이면 순서대로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긴 내용이지만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도의 흐름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공자는 틀렸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후자에 대한 비중이 생각보다 큰데, 인의예지라는 인간 사회의 형식과 규칙을 중시했던 공자의 사상이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지양하고자 했던 노장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한다.

장자는 공자가 인간이 설정한 관념을 사람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오히려 사람들을 현혹시킨다고 말한다.

백조는 날마다 씻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게 물들이지 않아도 검소.

흑백의 본질은 [좋다 나쁘다] 변론하기에는 부족하고,

명예의 과시는 널리 [과시]하기에는 부족하오.

샘물이 마르면 물고기들이 서로 더불어 육지에 있으면서 서로 습기를 뿜어주고

서로 거품으로 적셔주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만 못한 것이오!

(pg 345)

위 구절은 노자가 공자에게 해주는 말 중 하나인데, 공자의 인의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혀 마치 물이 없는 곳에서 서로 위해주는 물고기처럼 살게 만드는 요인인 반면 본래 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넓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처럼 서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식하지조차 못하기 때문에 이것이 훨씬 더 좋은 삶이라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천하 사람들은 다 [자신을 희생하여] 목숨 바친다.

저들이 자신의 목숨 바친 것이 인의이면 세속에서는 그를 군자라고 말하고,

자신의 목숨 바친 것이 재물이면 세속에서는 그를 소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목숨 바친 것은 한 가지인데 군자가 있고 소인이 있다.

만일 자신의 행명을 헤치고 본성을 훼손하는 것이면 도척도 백이일 뿐이니

또 어찌하여 그 사이에서 군자와 소인을 [차별하여] 구분할 것인가!

(pg 220)

잡편에 실린 한 글에서는 심지어 한 도적이 공자에게 '나는 대놓고 도적질을 하지만 너는 사람들을 속여 도적질을 하는 것이니 네가 더 나쁘다'라며 호통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지금 그대는 문왕과 무왕의 도를 닦아서 천하의 여론을 장악하면서

후세 사람들을 가르치고, 넓은 도포에 얇은 띠를 두르고

교묘한 말과 거짓된 행동으로 천하 군주들을 미혹되게 하여 부귀를 구하려고 하니,

도둑질이 그대보다 큰 것이 없는데,

천하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대를 일러 도구라 부르지 않고,

나를 도적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pg 692-693)

이처럼 공자의 사상이 인간이 만들어 낸 말뿐인 가치들을 중시하는 것이라 생각한 장자는 인위적인 도덕의 구분이나 선악의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저절로 그러하듯한 경지를 본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고 이것을 '도'로 명명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는 한계가 있으나,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한계가 없는 것을 따르게 되면 위태로울 따름이다. - 중략 -

선한 일을 행하여 명성을 가까이하지 않고,

악한 일을 행하여 형벌을 가까이하지 않아야 한다.

중도의 경지를 따라 [그것을] 근본원리로 삼으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생명을 온전하게 할 수 있으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고, 타고난 수명을 다할 수 있다.

(pg 101)

특이하게도 '도'를 따르는 것이 '타고난 수명 대로 살 수 있는 길'이라는 문장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이는 장자가 살았던 시대가 춘추전국시대로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서로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다 죽어 나가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장자는 좋은 나무일수록 목재로 베어지기 쉽듯 사람도 너무 유용하게 쓰이려고 노력하면 단명하게 된다고 말한다.

유능한 왕이나 황제 역시 자신의 유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면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기 쉬워지므로 장자가 생각한 가장 좋은 군주는 아래와 같은 특징을 지닌다.

"현명한 왕의 다스림이란 공적이 천하를 덮을지라도 자기가 한 것이 아닌 것처럼 하고,

가르침이 만물에 베풀어지더라도 백성들이 믿기지 않도록 하며,

[공적이] 있는데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만물로 하여금 저마다 기뻐하게 하며,

헤아릴 수 없는 데에 서서, [어떤 것도] 없는 데에서 노니는 것이다."

(pg 201)

'도'라는 것이 자연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 '도'의 정체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해한 '도'란 그저 만물에 깃들어 있고 만물을 만물이게 만드는 힘이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나도 '도'를 말로 표현했기 때문에 '도'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인위적으로 가르치거나 억지로 시켜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 인간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여 '자신'이라는 것마저 잊을 수 있을 정도로 내면의 진정한 평화를 얻는 경지에 스스로 다다라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노닐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전적 의미 그대로 자연 속에서 '한가로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노는' 것이 도를 갖춘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말하는 좋은 것이란 인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덕에 좋은 것일 뿐이고,

내가 말하는 좋은 것이란 인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타고난] 본성과 목숨의 실정에 맡기는 것일 뿐이다.

내가 말하는 귀 밝은 것이란 그것이 남의 소리를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듣는 것일 뿐이고,

내가 말하는 눈 밝은 것이란 자신이 남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는 것일 뿐이다.

(pg 221)

순임금이 승에게 물었다.

"도란 가히 얻어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이오?"

[승이] 말했다.

"당신의 몸도 당신의 소유가 아니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도를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순임금이 말했다.

"내 몸이 내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면 누가 소유한 것이오?"

[승이] 말했다.

"이는 천지가 형체를 맡긴 것입니다.

삶도 당신의 소유가 아니니, 이는 천지가 조화를 맡긴 것입니다.

[타고난] 본성과 목숨도 당신의 소유가 아니니,

이는 천지가 [변화의] 허물을 맡긴 것입니다. - 중략 -

[도는] 천지의 굳센 양기이니, 또한 어떻게 얻어서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pg 503-504)

자연의 흐름을 추구하는 삶을 살다보니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가 노래를 부른 일화도 소개된다.

노래를 부르는 장자에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고 지적하자 장자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막 죽었을 때 내가 어찌 슬퍼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시원을 살펴보니 본래 삶이 없고, 단지 삶만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으며, 단지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 기도 없다네.

황홀한 사이에서 섞이고 변해서 삶이 있게 되었으며,

지금 또 변해서 죽음으로 간 것이니,

이것은 서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운행하는 겪이라네.

그 사람이 [천지라는] 큰 집에서 편안히 누워 쉬면서 잠들었는데,

내가 슬픈 곡소리를 따라서 곡을 한다면 스스로 천명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쳤다네."

(pg 408-409)

자신의 장례를 치르려고 준비하는 제자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장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하늘과 땅을 널과 덧널로 생각하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생각하며,

별들을 주옥으로 생각하고, 만물을 부장품으로 생각할 것이니,

내 장례 도구가 갖추어지지 않았는가?" - 중략 -

제자들이 말했다. "저희는 까마귀와 솔개가 선생님을 쪼아 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땅 아래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될 터인데,

저쪽에서 빼앗아 이쪽에 주는 것이니 어찌 이리도 치우친 것인가!"

(pg 761-762)

솔직히 읽는 시간들이 아주 유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책은 아니었고 나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일독이라도 해냈다는 뿌듯함이 생각보다 크고, 처음에 이해 안 되는 부분을 그냥 넘어가다 보면 외편과 잡편에 이르러서 '아 이게 그런 뜻이었구나' 싶은 순간도 생겨서 뒤로 갈수록 탄력이 붙는 느낌이었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거의 없는 나지만, 이 책은 오래 두고 생각날 때 조금씩 읽어보면 더 도움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어도 불안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무위와 자연을 외치는 장자의 사상이 현대인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지는 읽는 이마다 다를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굶어죽는 사람이 없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장자가 지금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이 인간에서 너무 멀어졌다며 탄식하지 않을까 싶다.

이럴 때일수록 노장사상이 갖는 '도'가 무엇인지, 우리가 우리의 본성에서 얼마나 멀어지고 있는지를 다시금 떠올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분명 큰 의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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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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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창식이 형의 '숨'을 읽고 꽤나 감명을 받았던 터라 주저하지 않고 읽게 된 그의 첫 단편집이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총 여덟 편의 중단편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고 그중 에이미 아담스와 제레미 레너 주연의 영화 '컨택트'의 원작이자 책의 제목과 조금 다른 제목을 가진 '네 인생의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영화가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원작에서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영상으로 잘 옮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 영화도 엄청 재밌게 봤던 터라 원작을 읽는 재미가 상당했다.

물론 다른 작품들 역시 저자의 명성답게 상당한 재미를 가져다준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될 생각. 너는 명백하게,

기가 막힐 정도로 나와는 다르다는 사실.

이 생각은 네가 나의 복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게 또다시 일깨워줄 거야.

너는 매일처럼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나 혼자 만들어낼 수 있었던 존재는 결코 아니야.

'네 인생의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는 읽는 순서가 반대였기 때문에(그의 두 번째 책을 먼저 읽었으니) 두 책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첫 작품인 '바빌론의 탑'이나 '일흔두 글자', '지옥은 신의 부재' 같은 작품들은 SF와 판타지의 경계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 둘의 명확한 구분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저자가 하드 SF를 추구한다는 것을 상기하면 다른 작품들과 다소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세 작품 모두 우리의 현실과 비슷하면서도 중요한 것들이 하나씩 매우 다른 세계를 인상적으로 창조해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지옥은 신의 부재'는 드라마 '지옥'의 세계관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이 작품이 더 오래된 작품이므로 영향을 받았다고 치면 드라마가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겠지만 내 추측일 뿐이다.)

그가 지옥에 가고 사라가 천국에 가는 것과, 두 사람 모두 지옥으로 함께 가는 것 중에서

양자택일을 하라면 그는 후자를 택했을 것이다.

아내와 이별하는 것보다는 그녀가 신으로부터 영원히 추방되는 쪽을 원했던 것이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사라는 행복할 터였지만,

그는 오로지 그녀와 함께 있는 경우에만 행복해질 수 있었다.

'지옥은 신의 부재'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마지막 작품인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였다.

여기서는 타인의 얼굴을 볼 때 예쁘거나 잘생겼다는 판단을 내리는 뇌의 중추를 일부 제약해 외모로 인한 차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사람들이 이에 대한 갑론을박을 벌이는 내용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역시 외모지상주의가 맹위를 떨치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논의가 발생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만약 사람들이 겉모습으로 서로를 판단하지 않는 환경에서 살 수 있다면?

그런 환경에서 우리의 자식들을 기를 수 있다면?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중

역시 읽고 나니 현존하는 최고의 SF작가라고 추앙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입도는 말할 것도 없고 저자 특유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작품을 많이 발표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국내에서의 인지도도 상당하다고 하니 앞으로도 많은 작품들이 더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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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낼 수 없는데 힘을 내라니 - 잘 살려고 애쓸수록 우울해지는 세상에서 사는 법
고태희 지음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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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 없나 전자도서관을 뒤지던 중 제목 참 잘 지었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읽게 된 책이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사실 '힘내'라는 말을 듣고 진짜 힘이 났던 적은 극히 드물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차 조심하라고 하는 잔소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들 하기 싫어서 안 할까.

저자는 이러한 말이 진짜 싫을 수밖에 없었던 우울증 환자다.

정확한 병명은 '2형 양극성 정동장애'로 흔히 조울증이라 불리는데 우울증이 더 깊어진 단계라 보면 된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병을 완치한 경험이 아닌 지금도 생생하게 겪고 있는 우울증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나도 몇 년 전 우울증으로 친동생을 잃은 유가족인지라 관심이 갔다.

읽고 나서 어쩌면 생전의 그 녀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사실 가까운 사람 중 누군가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위로랍시고 해봐도 도리어 화를 내기 일쑤고 그렇다고 그냥 놔두자니 소외감 느끼는 것 같고..

저자 역시 같은 경험을 한 모양이다.

이런 말들은 그 의도와 다르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상처를 남긴다.

조언을 실천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의지가 생기는 것은 일상생활을 꾸릴 수 있을 만큼 증상이 호전된 후의 이야기다.

어떤 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저자는 그저 곁에 있어주겠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말이야 쉽지 사실 가족이라 하더라도 늘 같이 붙어 있을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친구라면 더욱이 곁에 있어주겠다는 말 자체가 위선으로 들리기 쉽다.

저자 역시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은 케이스여서 걱정되지만 병세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남편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곁에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져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저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에게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심정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이 병을 극복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꽤 들겠지만 당신 곁에 붙어 있겠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나에겐 가장 큰 위로였다.

기간이 길지 않다면 그럭저럭 위로하며 지나갈 수 있겠지만 병세가 쉽게 좋아지지 않고 장기화되면 곁에 있는 사람들도 지치게 마련이다.

솔직히 '그럼 뭐 어쩌라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내 동생 역시 중학생일 때부터 우울증이 있었으니 근 15년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간 케이스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적잖이 피로감이 있었던 것 같다.

홀로 부산에 내려가겠다며 가족들을 떠나서 살았으니 강제로 병원을 데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 큰 성인을 억지로 부모님 계신 곳으로 끌고 올 수도 없었다.

정신적인 문제이니 병을 불러오는 원인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심리치료를 통해 몇 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피플 플리저(people pleaser)로 부모님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살아왔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겪은 왕따 경험, 가스라이팅 고수였던 전 직장 대표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 읽은 책 '나는 소속되고 싶다'에서 피플 플리저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정신 질환을 앓기 쉽다고 했었다.

저자 역시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고 타인의 기대에 도달하지 못하면 심하게 좌절하는 등 전형적인 피플 플리저의 모습이 책 곳곳에 보이는데 이것이 발병에 큰 원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 동생 역시 '독립해야 한다'라는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

특정 나이가 되면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이 당연하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을 주입받고 자라서 그런지 나이 먹고 부모님한테 신세를 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었다.

(그래봐야 떠날 때 당시 나이가 서른이었으니 사실 좀 더 기대도 될 나이긴 했다.)

물론 부모님 입장에서는 옳은 교육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항상 너의 뒤에 있을 테니 언제까지고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하고 살려무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하지만 나는 동생에 비하면 매우 운이 좋았던 케이스라서 동생이 겪은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나도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여하간 저자의 병세도 현재진행형이니만큼 책에 뭔가 끝맺음이 있지는 않다.

다만 우울증을 겪는 환자의 사고와 행동이 어떤 형태를 보일 수 있는지 관찰할 수 있는 책이라 보면 되겠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저자를 보며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

증세가 꽤 호전된 후에 쓴 글이겠지만 아래와 같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물론 저자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호의를 곡해해서는 안 된다.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작은 격려라도 건네받았다면 그들의 호의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기분을 망칠 각오를 하고 곁에 온 그들의 용기를 이해해야 한다. - 중략 -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우울증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어째 신년부터 정신질환 관련 책을 연달아 읽은 셈이 되었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을 잃은 후 환자가 쓴 책을 읽으니 이해가 더 잘 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 스스로가 자살자 유족으로서 우울함에 빠져들지 않고 있는지 스스로 체크해 보기 위함이었다.

읽으면서 저자보다는 저자의 남편에게 더 감정이입이 잘 되는 걸 보니 다행히 난 우울증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모양이다.

책을 끝까지 놓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라도 하면 생전의 그 녀석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이 책을 녀석이 죽기 전에 읽었다면 나는 조금 더 따뜻하게 녀석을 대할 수 있었을까.

설령 나에게 시간을 되돌릴 능력이 있다고 해도 솔직히 자신이 없다.

15년간 녀석의 들쑥날쑥한 병세에 지쳐 있었던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어차피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 이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쪼록 책으로 만난 인연이지만 저자는 이런 상실감을 남겨두고 떠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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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속되고 싶다
호란 량 지음, 박은영 옮김 / 사유와공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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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이자 대만계 영국인인 정신의학과 의사가 집필한 책.

굳이 저자의 배경을 언급한 이유는 책 내용 속에 그녀가 의사로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민자이자 여성으로서 저자 자신이 겪어야 했던 사례들이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직관적인 제목답게 책 내용은 인간에게 있어서 '소속감'이라는 감정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부족할 경우 각종 정신질환에 노출되기 쉽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특히 저자가 아동 정신의학 전공이라서 어린아이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미성년자들의 사례가 많이 등장하는데,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안타까운 아이들의 사례에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지 않았다.

저자는 인간에게 소속감 결여를 가져오는 네 가지 이유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중 첫 번째인 '공허'의 감정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 유대감이 부족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당연히 아이일 때부터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이 감정을 크게 느낄수록 가정에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나는 아동 정신과 의사로서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고 수용과 지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최대한 강조할 수밖에 없다.

부모의 수용과 지지는 다음 세대를 위한 정신 건강 백신이나 마찬가지이며,

다른 백신처럼 아이를 완벽히 보호해 주지는 않아도 꼭 필요하다.

자신감을 지닌 행복한 어린이는 자기 인식과 참을성, 유머로 무장해서

어지간한 난관은 극복해 낼 수 있다.

(pg 65)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학교로 가게 되고 이때부터는 '부적응' 문제가 소속감 결여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는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이후에 등장하는 원인인 '비위 맞추기'와 '외로움' 역시 '부적응'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책에 수많은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육체적 증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통증이나 어지러움 등 신체적인 이상이 있어 여러 검사를 해봤는데도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정신적인 문제 때문일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고,

누구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면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잘못됐다고 느낄 때, 거절하는 용기가 있어야 옳은 것을 찾는다.

우리가 찾는 것은, 단지 우리를 참고 받아들이는 곳이 아닌

진정으로 소속될 수 있는 곳이다.

(pg 106)

저자는 개인에게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위해 육아를 하는 부모의 입장뿐 아니라 다 큰 성인이 자신을 돌봄에 있어서도 어떤 것들이 중요한지를 설파한다.

특히 자기가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타인의 시선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다른 이의 기분을 맞추는 사람(피플 플리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웰빙의 증진을 향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삶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당신이 하는 일은 자신을 위한 것인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가?'

(pg 145)

그리고 사람에 지쳐 모든 관계를 끊고 살겠다고 결심한다 해도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는 사람들처럼 혼자 산에 들어가 살 작정이 아니라면 타인과의 관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연인들도 사회적 관계가 아예 없이 100% 자급자족으로 사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인간의 본능인 '우리'와 '저들'을 나누려는 습성에서 벗어나 타인은 누구나 조금씩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다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고 타인을 더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제정신'과 '정신 이상', '남자'와 '여자', '흑인'과 '백인'. '우리 편'과 '저쪽 편'으로

나누는 일이 너무 잦고 '우리'로 묶이는 일은 너무 없다.

사실은 '속함'과 '속하지 않음' 역시 하나의 시각일 뿐이며,

사회가 특정 시점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깎여 나가고 변화될 수 있다.

- 중략 -

대부분 태도를 바꾸는 일에는 별다른 대가가 필요치 않다.

그저 다른 관점이 필요할 뿐이다.

(pg 218)

하지만 그 어떤 해결책도 사회 그 자체를 바꾸는 것 이상의 효과는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개인들이 갖는 정신질환의 상당수가 사회적 편견에서 기인하거나, 혹은 이 때문에 더 악화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피부색이 달라서, 여성이어서, 이민자여서, 경제력이 부족해서 정신질환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위에 열거한 사회적 약자의 경우 정신질환의 발견 자체가 늦어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발견하더라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더라는 점이다.

사회는 이들을 잊었다. - 중략 -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딸, 아들, 자매, 형제이며, 이들의 존재에서 눈을 돌리는 게

더 편하다고 해도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이들 존재의 불행은 우리 사회의 누적된 실패의 결과다.

내가 이처럼 사회의 가장 힘든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렇게 해야 우리가 사회로부터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더 많은 포용과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pg 245)

저자는 자신이 이민자와 여성으로서 겪어온 수많은 차별 사례를 열거하며 이러한 것들이 아직 우리의 정신을 지배한다면 정신 질환의 사회적 감소는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우리나라야 인종으로 인한 정신 질환 발병 비율을 측정하긴 어렵겠지만, 사회적 계층이나 성별, 사는 지역, 주거 형태에 따른 비율을 연구해 보면 유의미한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회적으로 부유하거나 유명한 연예인들도 우울증을 겪지만 비율로 보면 미취업 청년들이나 은퇴한 노인 빈곤층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의사가 저술한 책이어서 보다 학술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의학적인 내용은 사례 위주로만 등장하고 생각보다 PC(정치적 올바름)적인 내용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읽었고 나 역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저자의 영국 사회에 대한 분노가 상당한 수준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국가의 재정이 흔들릴 정도로 사회 혼란이 심화되고 있기에 저자의 업무 분야인 사회 복지나 보건 제도 같은 것들이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그런 모양이다.

때문에 단순한 심리학이나 정신 질환 관련 책이라 생각하고 읽은 사람이라면 약간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저자의 메시지 자체는 충분한 의미가 있고,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결국 내가 봐 온 바에 따르면, 최선의 해법은 의료가 아니라 환경이었다.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적절하게 지지해 줄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pg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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