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자유로운 삶을 위한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장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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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 해석본은 읽어본 적이 있어서 노장사상의 다음 타자(?)인 장자의 저술이 어떤 느낌인지도 읽어보고 싶었다.

찾아보면 이미 상당히 많은 책들이 나와 있는데 가장 최근에 발간되었기도 하고 장자의 원문과 역자의 해설이 같이 실려있다는 소개에 읽어보게 되었다.

책을 받아들면 일단 그 묵직함에 한번 놀라게 된다.

한자 원문까지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읽는 사람에게는 물론 힘든 여정이겠으나, 나처럼 해석된 부분과 역자의 해설만 읽는 사람이라면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으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읽는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이해도 빠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장자가 말하는 '도'의 개념이 원래 어렵기도 하지만, 이런 동양 고전은 본래 금방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해하며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비유도 많고 말장난 같은 부분도 많아서 한참 읽은 것 같은데 그동안 뭐 읽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 경우가 많아 진도가 팍팍 나가는 느낌을 주는 책은 분명 아닐 것이다.

800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내편, 외편, 잡편을 합쳐 총 33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중 장자가 직접 썼다고 추정되는 것은 내편에 수록된 7편 정도이고, 외편과 잡편은 후학들의 손길이 닿았을 것이라 추정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외편과 잡편에 이르러 이해되는 부분이 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내편을 읽고 외편과 잡편으로 넘어가서인지, 이해를 돕기 위한 후학들의 서술이 덧붙여져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편에서 언급한 내용이 외편과 잡편에 부연하는 식으로 구성된 글들이 많아서 되도록이면 순서대로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긴 내용이지만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도의 흐름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공자는 틀렸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후자에 대한 비중이 생각보다 큰데, 인의예지라는 인간 사회의 형식과 규칙을 중시했던 공자의 사상이 모든 인위적인 것들을 지양하고자 했던 노장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한다.

장자는 공자가 인간이 설정한 관념을 사람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오히려 사람들을 현혹시킨다고 말한다.

백조는 날마다 씻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게 물들이지 않아도 검소.

흑백의 본질은 [좋다 나쁘다] 변론하기에는 부족하고,

명예의 과시는 널리 [과시]하기에는 부족하오.

샘물이 마르면 물고기들이 서로 더불어 육지에 있으면서 서로 습기를 뿜어주고

서로 거품으로 적셔주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만 못한 것이오!

(pg 345)

위 구절은 노자가 공자에게 해주는 말 중 하나인데, 공자의 인의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혀 마치 물이 없는 곳에서 서로 위해주는 물고기처럼 살게 만드는 요인인 반면 본래 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넓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처럼 서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식하지조차 못하기 때문에 이것이 훨씬 더 좋은 삶이라 말하고 있는 부분이다.

천하 사람들은 다 [자신을 희생하여] 목숨 바친다.

저들이 자신의 목숨 바친 것이 인의이면 세속에서는 그를 군자라고 말하고,

자신의 목숨 바친 것이 재물이면 세속에서는 그를 소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목숨 바친 것은 한 가지인데 군자가 있고 소인이 있다.

만일 자신의 행명을 헤치고 본성을 훼손하는 것이면 도척도 백이일 뿐이니

또 어찌하여 그 사이에서 군자와 소인을 [차별하여] 구분할 것인가!

(pg 220)

잡편에 실린 한 글에서는 심지어 한 도적이 공자에게 '나는 대놓고 도적질을 하지만 너는 사람들을 속여 도적질을 하는 것이니 네가 더 나쁘다'라며 호통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지금 그대는 문왕과 무왕의 도를 닦아서 천하의 여론을 장악하면서

후세 사람들을 가르치고, 넓은 도포에 얇은 띠를 두르고

교묘한 말과 거짓된 행동으로 천하 군주들을 미혹되게 하여 부귀를 구하려고 하니,

도둑질이 그대보다 큰 것이 없는데,

천하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대를 일러 도구라 부르지 않고,

나를 도적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pg 692-693)

이처럼 공자의 사상이 인간이 만들어 낸 말뿐인 가치들을 중시하는 것이라 생각한 장자는 인위적인 도덕의 구분이나 선악의 개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저절로 그러하듯한 경지를 본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고 이것을 '도'로 명명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는 한계가 있으나,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한계가 없는 것을 따르게 되면 위태로울 따름이다. - 중략 -

선한 일을 행하여 명성을 가까이하지 않고,

악한 일을 행하여 형벌을 가까이하지 않아야 한다.

중도의 경지를 따라 [그것을] 근본원리로 삼으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생명을 온전하게 할 수 있으며, 어버이를 봉양할 수 있고, 타고난 수명을 다할 수 있다.

(pg 101)

특이하게도 '도'를 따르는 것이 '타고난 수명 대로 살 수 있는 길'이라는 문장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이는 장자가 살았던 시대가 춘추전국시대로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서로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다 죽어 나가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장자는 좋은 나무일수록 목재로 베어지기 쉽듯 사람도 너무 유용하게 쓰이려고 노력하면 단명하게 된다고 말한다.

유능한 왕이나 황제 역시 자신의 유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면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기 쉬워지므로 장자가 생각한 가장 좋은 군주는 아래와 같은 특징을 지닌다.

"현명한 왕의 다스림이란 공적이 천하를 덮을지라도 자기가 한 것이 아닌 것처럼 하고,

가르침이 만물에 베풀어지더라도 백성들이 믿기지 않도록 하며,

[공적이] 있는데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만물로 하여금 저마다 기뻐하게 하며,

헤아릴 수 없는 데에 서서, [어떤 것도] 없는 데에서 노니는 것이다."

(pg 201)

'도'라는 것이 자연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진짜 '도'의 정체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해한 '도'란 그저 만물에 깃들어 있고 만물을 만물이게 만드는 힘이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나도 '도'를 말로 표현했기 때문에 '도'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이를 인위적으로 가르치거나 억지로 시켜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 인간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여 '자신'이라는 것마저 잊을 수 있을 정도로 내면의 진정한 평화를 얻는 경지에 스스로 다다라야 한다는 것이다.

책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 '노닐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사전적 의미 그대로 자연 속에서 '한가로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노는' 것이 도를 갖춘 삶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말하는 좋은 것이란 인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덕에 좋은 것일 뿐이고,

내가 말하는 좋은 것이란 인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타고난] 본성과 목숨의 실정에 맡기는 것일 뿐이다.

내가 말하는 귀 밝은 것이란 그것이 남의 소리를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듣는 것일 뿐이고,

내가 말하는 눈 밝은 것이란 자신이 남을 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는 것일 뿐이다.

(pg 221)

순임금이 승에게 물었다.

"도란 가히 얻어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이오?"

[승이] 말했다.

"당신의 몸도 당신의 소유가 아니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도를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순임금이 말했다.

"내 몸이 내가 소유한 것이 아니라면 누가 소유한 것이오?"

[승이] 말했다.

"이는 천지가 형체를 맡긴 것입니다.

삶도 당신의 소유가 아니니, 이는 천지가 조화를 맡긴 것입니다.

[타고난] 본성과 목숨도 당신의 소유가 아니니,

이는 천지가 [변화의] 허물을 맡긴 것입니다. - 중략 -

[도는] 천지의 굳센 양기이니, 또한 어떻게 얻어서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pg 503-504)

자연의 흐름을 추구하는 삶을 살다보니 자신의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가 노래를 부른 일화도 소개된다.

노래를 부르는 장자에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고 지적하자 장자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 사람이 막 죽었을 때 내가 어찌 슬퍼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시원을 살펴보니 본래 삶이 없고, 단지 삶만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으며, 단지 형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 기도 없다네.

황홀한 사이에서 섞이고 변해서 삶이 있게 되었으며,

지금 또 변해서 죽음으로 간 것이니,

이것은 서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운행하는 겪이라네.

그 사람이 [천지라는] 큰 집에서 편안히 누워 쉬면서 잠들었는데,

내가 슬픈 곡소리를 따라서 곡을 한다면 스스로 천명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쳤다네."

(pg 408-409)

자신의 장례를 치르려고 준비하는 제자들과 나눈 대화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장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하늘과 땅을 널과 덧널로 생각하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생각하며,

별들을 주옥으로 생각하고, 만물을 부장품으로 생각할 것이니,

내 장례 도구가 갖추어지지 않았는가?" - 중략 -

제자들이 말했다. "저희는 까마귀와 솔개가 선생님을 쪼아 먹을까 두렵습니다."

장자가 말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땅 아래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될 터인데,

저쪽에서 빼앗아 이쪽에 주는 것이니 어찌 이리도 치우친 것인가!"

(pg 761-762)

솔직히 읽는 시간들이 아주 유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책은 아니었고 나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일독이라도 해냈다는 뿌듯함이 생각보다 크고, 처음에 이해 안 되는 부분을 그냥 넘어가다 보면 외편과 잡편에 이르러서 '아 이게 그런 뜻이었구나' 싶은 순간도 생겨서 뒤로 갈수록 탄력이 붙는 느낌이었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거의 없는 나지만, 이 책은 오래 두고 생각날 때 조금씩 읽어보면 더 도움이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어도 불안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무위와 자연을 외치는 장자의 사상이 현대인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지는 읽는 이마다 다를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굶어죽는 사람이 없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장자가 지금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이 인간에서 너무 멀어졌다며 탄식하지 않을까 싶다.

이럴 때일수록 노장사상이 갖는 '도'가 무엇인지, 우리가 우리의 본성에서 얼마나 멀어지고 있는지를 다시금 떠올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분명 큰 의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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