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속되고 싶다
호란 량 지음, 박은영 옮김 / 사유와공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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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이자 대만계 영국인인 정신의학과 의사가 집필한 책.

굳이 저자의 배경을 언급한 이유는 책 내용 속에 그녀가 의사로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민자이자 여성으로서 저자 자신이 겪어야 했던 사례들이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직관적인 제목답게 책 내용은 인간에게 있어서 '소속감'이라는 감정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부족할 경우 각종 정신질환에 노출되기 쉽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특히 저자가 아동 정신의학 전공이라서 어린아이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미성년자들의 사례가 많이 등장하는데,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안타까운 아이들의 사례에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지 않았다.

저자는 인간에게 소속감 결여를 가져오는 네 가지 이유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중 첫 번째인 '공허'의 감정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 유대감이 부족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당연히 아이일 때부터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이 감정을 크게 느낄수록 가정에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나는 아동 정신과 의사로서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고 수용과 지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최대한 강조할 수밖에 없다.

부모의 수용과 지지는 다음 세대를 위한 정신 건강 백신이나 마찬가지이며,

다른 백신처럼 아이를 완벽히 보호해 주지는 않아도 꼭 필요하다.

자신감을 지닌 행복한 어린이는 자기 인식과 참을성, 유머로 무장해서

어지간한 난관은 극복해 낼 수 있다.

(pg 65)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학교로 가게 되고 이때부터는 '부적응' 문제가 소속감 결여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는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이후에 등장하는 원인인 '비위 맞추기'와 '외로움' 역시 '부적응'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책에 수많은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육체적 증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통증이나 어지러움 등 신체적인 이상이 있어 여러 검사를 해봤는데도 딱히 원인을 찾을 수 없다면 정신적인 문제 때문일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고,

누구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면 나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잘못됐다고 느낄 때, 거절하는 용기가 있어야 옳은 것을 찾는다.

우리가 찾는 것은, 단지 우리를 참고 받아들이는 곳이 아닌

진정으로 소속될 수 있는 곳이다.

(pg 106)

저자는 개인에게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위해 육아를 하는 부모의 입장뿐 아니라 다 큰 성인이 자신을 돌봄에 있어서도 어떤 것들이 중요한지를 설파한다.

특히 자기가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이 타인의 시선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다른 이의 기분을 맞추는 사람(피플 플리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웰빙의 증진을 향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삶의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당신이 하는 일은 자신을 위한 것인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인가?'

(pg 145)

그리고 사람에 지쳐 모든 관계를 끊고 살겠다고 결심한다 해도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는 사람들처럼 혼자 산에 들어가 살 작정이 아니라면 타인과의 관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연인들도 사회적 관계가 아예 없이 100% 자급자족으로 사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인간의 본능인 '우리'와 '저들'을 나누려는 습성에서 벗어나 타인은 누구나 조금씩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다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고 타인을 더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제정신'과 '정신 이상', '남자'와 '여자', '흑인'과 '백인'. '우리 편'과 '저쪽 편'으로

나누는 일이 너무 잦고 '우리'로 묶이는 일은 너무 없다.

사실은 '속함'과 '속하지 않음' 역시 하나의 시각일 뿐이며,

사회가 특정 시점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깎여 나가고 변화될 수 있다.

- 중략 -

대부분 태도를 바꾸는 일에는 별다른 대가가 필요치 않다.

그저 다른 관점이 필요할 뿐이다.

(pg 218)

하지만 그 어떤 해결책도 사회 그 자체를 바꾸는 것 이상의 효과는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개인들이 갖는 정신질환의 상당수가 사회적 편견에서 기인하거나, 혹은 이 때문에 더 악화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피부색이 달라서, 여성이어서, 이민자여서, 경제력이 부족해서 정신질환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위에 열거한 사회적 약자의 경우 정신질환의 발견 자체가 늦어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발견하더라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더라는 점이다.

사회는 이들을 잊었다. - 중략 -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딸, 아들, 자매, 형제이며, 이들의 존재에서 눈을 돌리는 게

더 편하다고 해도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이들 존재의 불행은 우리 사회의 누적된 실패의 결과다.

내가 이처럼 사회의 가장 힘든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이렇게 해야 우리가 사회로부터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더 많은 포용과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pg 245)

저자는 자신이 이민자와 여성으로서 겪어온 수많은 차별 사례를 열거하며 이러한 것들이 아직 우리의 정신을 지배한다면 정신 질환의 사회적 감소는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우리나라야 인종으로 인한 정신 질환 발병 비율을 측정하긴 어렵겠지만, 사회적 계층이나 성별, 사는 지역, 주거 형태에 따른 비율을 연구해 보면 유의미한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회적으로 부유하거나 유명한 연예인들도 우울증을 겪지만 비율로 보면 미취업 청년들이나 은퇴한 노인 빈곤층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의사가 저술한 책이어서 보다 학술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의학적인 내용은 사례 위주로만 등장하고 생각보다 PC(정치적 올바름)적인 내용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읽었고 나 역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저자의 영국 사회에 대한 분노가 상당한 수준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국가의 재정이 흔들릴 정도로 사회 혼란이 심화되고 있기에 저자의 업무 분야인 사회 복지나 보건 제도 같은 것들이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그런 모양이다.

때문에 단순한 심리학이나 정신 질환 관련 책이라 생각하고 읽은 사람이라면 약간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저자의 메시지 자체는 충분한 의미가 있고,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좋은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결국 내가 봐 온 바에 따르면, 최선의 해법은 의료가 아니라 환경이었다.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적절하게 지지해 줄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pg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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