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복복서가 x 김영하 소설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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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단편집으로 처음 나온 지는 꽤 된 작품인데 몇 년 전 살짝 개정되어 나온 버전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를 포함한 여덟 작품을 수록한 책으로 각각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다 읽는다 해도 짧은 장편 한 권 정도의 분량이라 읽는 부담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그 안에 각기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상당히 인상적인 삶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명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단편집을 읽을 때면 습관적으로 각각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공통점이 뭘까를 찾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쉽게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절대 원치 않았던 만남'이다.

그리 친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한 쪽으로 사상이 트여 불쑥 찾아온 대학 동창, 이삿날 자신의 짐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안하무인의 이삿짐센터 직원, 집 나갔던 오빠가 불쑥 데리고 들어온 모르는 여자, 남 몰래 마음에 품었지만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사별을 겪은 친구, 원나잇이나 하려고 했는데 사랑한다고 진득하게 달라붙는 여자, 1년의 마지막 날 밤 업무 때문에 찾아온 남편의 직장 상사, 수영장에서 만난 이성의 중학교 동창, 결혼 전 친구들 모두와 아무렇게나 관계를 가졌던 한 여자 동창생에 이르기까지...

정말 인생의 어느 순간에 어떻게 만나도 그저 최악이라는 말만 나오게 될 만남을 주제로 여덟 개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살면서 겪기 쉽지 않은 형태의 삶들이지만 그런데도 묘하게 공감이 되면서 불편해진다.

제발 저런 상황은 겪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불쾌한(?) 사연들이 이어지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작가의 맛깔나는 문장들이 읽을 때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첫 작품인 '보물선'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는데 '돈에 미친 사람'과 '사상에 미친 사람'이 만나게 되면서 겪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돈에 미친 사람'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객관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를 자각하게 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찬찬히 면면들을 둘러보았다. 저 철면피들.

수천 명의 재산을 간단하게 꿀꺽하고도 아침이면 호텔 식당의 메로구이를 집요하게

발라먹는 저 놀라운 식욕, 추악한 욕망.

문제는 재만도 그들과 전적으로 같은 종자라는 데 있었다.

'보물선' 중

표제작인 '오빠가 돌아왔다'는 마치 그 옛날 채만식의 '치숙'을 보는 것처럼 사춘기 소녀의 시각으로 본 가족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만 유독 화자가 어린 소녀라 그런지 문체가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읽는 맛이 좋았다.

스토리 자체는 평이한 느낌이지만 문체 덕분에 인상에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오빠는 아빠를 이긴다. 아빠는 엄마를 이긴다. 그런데 엄마는 오빠를 이긴다.

나는? 엄지공주다. 나는 너무 작기 때문에 누구도 나 따위를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오빠가 돌아왔다' 중

내가 '어디?'라고 묻지 않고 '뭐?'라고 물은 이유는 '

너도 가자'라는 말이 너무도 생소했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서는 도대체 '너도 가자' 같은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도'라는 주격조사와 '하자'형 어미는 우리집에서 여간해서 발견되지 않는

일종의 사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빠가 돌아왔다' 중

이어지는 '너의 의미'에서는 3류 감독이면서 지위를 이용해 어린 여자들이나 꼬셔 잠이나 자려는 주인공에게 진지하게 사랑한다고 달라붙는 여성이 나타나자 혼란스러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책에서 가장 블랙코미디스러운 맛을 잘 살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경험은 많지만 사랑은 두려워하는 중년 남성의 찌질한 감성이 잘 살아 있다.

나는 사랑이 호르몬의 이상분비 때문에 빚어지는 일종의 병리현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남자다.

사랑이, 우리가 지금 하려고 하는 멜로영화에서 그렇듯이,

애들 코 묻은 돈 우려낼 때나 써먹는, 일종의 청소년용품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유일하게 내가 모르는 것은 바로 내 앞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저 여자다.

'너의 의미' 중

언급하지 않은 다른 작품들도 모두 충분히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후미에 개정판을 내게 된 작가의 소감도 있어서 뭔가 작가를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된 것 같아 좋았다.

작가의 바람처럼 꽤나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설은 작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작가에게로 와서 소설이 된다.

그렇게 나온 소설을 읽고 사람들은 세상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된다.

'개정판을 내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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