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낼 수 없는데 힘을 내라니 - 잘 살려고 애쓸수록 우울해지는 세상에서 사는 법
고태희 지음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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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 없나 전자도서관을 뒤지던 중 제목 참 잘 지었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읽게 된 책이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사실 '힘내'라는 말을 듣고 진짜 힘이 났던 적은 극히 드물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차 조심하라고 하는 잔소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들 하기 싫어서 안 할까.

저자는 이러한 말이 진짜 싫을 수밖에 없었던 우울증 환자다.

정확한 병명은 '2형 양극성 정동장애'로 흔히 조울증이라 불리는데 우울증이 더 깊어진 단계라 보면 된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병을 완치한 경험이 아닌 지금도 생생하게 겪고 있는 우울증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나도 몇 년 전 우울증으로 친동생을 잃은 유가족인지라 관심이 갔다.

읽고 나서 어쩌면 생전의 그 녀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사실 가까운 사람 중 누군가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위로랍시고 해봐도 도리어 화를 내기 일쑤고 그렇다고 그냥 놔두자니 소외감 느끼는 것 같고..

저자 역시 같은 경험을 한 모양이다.

이런 말들은 그 의도와 다르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은 상처를 남긴다.

조언을 실천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의지가 생기는 것은 일상생활을 꾸릴 수 있을 만큼 증상이 호전된 후의 이야기다.

어떤 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저자는 그저 곁에 있어주겠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말이야 쉽지 사실 가족이라 하더라도 늘 같이 붙어 있을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친구라면 더욱이 곁에 있어주겠다는 말 자체가 위선으로 들리기 쉽다.

저자 역시 남편이 해외 출장이 잦은 케이스여서 걱정되지만 병세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남편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곁에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져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저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것이 최선이다.

그에게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심정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이 병을 극복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꽤 들겠지만 당신 곁에 붙어 있겠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나에겐 가장 큰 위로였다.

기간이 길지 않다면 그럭저럭 위로하며 지나갈 수 있겠지만 병세가 쉽게 좋아지지 않고 장기화되면 곁에 있는 사람들도 지치게 마련이다.

솔직히 '그럼 뭐 어쩌라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내 동생 역시 중학생일 때부터 우울증이 있었으니 근 15년을 우울증으로 고생하다 간 케이스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적잖이 피로감이 있었던 것 같다.

홀로 부산에 내려가겠다며 가족들을 떠나서 살았으니 강제로 병원을 데려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 큰 성인을 억지로 부모님 계신 곳으로 끌고 올 수도 없었다.

정신적인 문제이니 병을 불러오는 원인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심리치료를 통해 몇 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피플 플리저(people pleaser)로 부모님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살아왔던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겪은 왕따 경험, 가스라이팅 고수였던 전 직장 대표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 읽은 책 '나는 소속되고 싶다'에서 피플 플리저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정신 질환을 앓기 쉽다고 했었다.

저자 역시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고 타인의 기대에 도달하지 못하면 심하게 좌절하는 등 전형적인 피플 플리저의 모습이 책 곳곳에 보이는데 이것이 발병에 큰 원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 동생 역시 '독립해야 한다'라는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

특정 나이가 되면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이 당연하고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을 주입받고 자라서 그런지 나이 먹고 부모님한테 신세를 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었다.

(그래봐야 떠날 때 당시 나이가 서른이었으니 사실 좀 더 기대도 될 나이긴 했다.)

물론 부모님 입장에서는 옳은 교육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항상 너의 뒤에 있을 테니 언제까지고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하고 살려무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하지만 나는 동생에 비하면 매우 운이 좋았던 케이스라서 동생이 겪은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나도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여하간 저자의 병세도 현재진행형이니만큼 책에 뭔가 끝맺음이 있지는 않다.

다만 우울증을 겪는 환자의 사고와 행동이 어떤 형태를 보일 수 있는지 관찰할 수 있는 책이라 보면 되겠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저자를 보며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

증세가 꽤 호전된 후에 쓴 글이겠지만 아래와 같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담겨 있다.

물론 저자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호의를 곡해해서는 안 된다.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작은 격려라도 건네받았다면 그들의 호의를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기분을 망칠 각오를 하고 곁에 온 그들의 용기를 이해해야 한다. - 중략 -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것도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우울증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한다.

어째 신년부터 정신질환 관련 책을 연달아 읽은 셈이 되었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을 잃은 후 환자가 쓴 책을 읽으니 이해가 더 잘 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 스스로가 자살자 유족으로서 우울함에 빠져들지 않고 있는지 스스로 체크해 보기 위함이었다.

읽으면서 저자보다는 저자의 남편에게 더 감정이입이 잘 되는 걸 보니 다행히 난 우울증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모양이다.

책을 끝까지 놓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라도 하면 생전의 그 녀석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였다.

이 책을 녀석이 죽기 전에 읽었다면 나는 조금 더 따뜻하게 녀석을 대할 수 있었을까.

설령 나에게 시간을 되돌릴 능력이 있다고 해도 솔직히 자신이 없다.

15년간 녀석의 들쑥날쑥한 병세에 지쳐 있었던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어차피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었다는 확인을 받고 싶어 이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쪼록 책으로 만난 인연이지만 저자는 이런 상실감을 남겨두고 떠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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