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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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을 시작으로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오르부아르'도 읽었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이 '오르부아르'로 시작된 3부작의 마지막편이라 한다.

두 번째인 '화재의 색'은 읽지 못했는데 검색해 보니 다행히 본 작품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는 것 같다.

이 책도 600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작품인데 '오르부아르' 역시 700페이지쯤 되는 분량이다 보니 이 책을 읽기 전에 꼭 '오르부아르'를 읽어야 하는지가 궁금할 텐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선 작품을 읽었다면 반가운 이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꼭 읽었어야 할 필요는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설명을 다 해주고 있기도 하고, 그저 반가운 이름이 한두 번 등장한다 정도로 가볍게 언급하는 수준이어서 굳이 앞선 작품들을 모두 섭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부담 없이 읽어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르부아르'가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전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 평화롭던 일상에서 시작해 사람들의 평범했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때까지 이어진다.

이 작가의 책이 보통 중반까지는 조금 지루하다가 중반 이후부터 신기하게 재미있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 역시 초반에는 여러 인물들의 시각에서 옴니버스처럼 각기 다른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반 이후부터 이 이야기가 하나의 줄기로 모이면서 굉장한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역시 이번에도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루이즈는 '오르부아르'에 등장했던 꼬마인데 이 작품에서는 장성해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있다.

어느 날 일하던 음식점에 늘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던 한 노인이 이상한 제안을 하는데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가 갑자기 그 노인이 자신의 머리를 쏴 자살하는 바람에 그녀는 그 의사와 자신의 삶에 감추어진 비밀들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올곧은 성품을 지닌 군인 가브리엘은 같은 부대에 있는 라울이라는 양아치를 만나면서 인생이 조금씩 꼬이기 시작한다.

야바위부터 약탈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위해 온갖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라울의 계략에 말려 가브리엘 역시 악행에 가담하게 되고 결국은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전쟁이 심화되고 국가의 행정이 마비되자 죄수를 적절히 처리할 필요가 생겼고, 이 임무를 담당하게 되는 페르낭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편지를 호주머니에 쑤셔 넣은 그는 원칙상 천천히 말했다.

"아무것도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약속이었다.

(pg 415)

그리고 이 책의 백미이자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디카프리오가 생각나는 역할인 데지레라는 인물이 있다.

처음에는 변호사였다가, 전시에서의 언론 통제를 담당하던 공보국 직원을 거쳐 어느 외딴 마을의 신부로 마무리되는 그의 여정은 그야말로 '말발'의 진수를 보여준다.

계속 신분을 바꾸는 사기꾼이지만 그 역할에 심취해 진짜 성자가 되는 그의 여정은 다소 우울한 다른 인물들의 행보와 대비되어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전쟁을 다룬 작품이니만큼 전쟁을 둘러싸고 인간들이 보여주는 여러 비이성적인 모습들이 잘 드러난다.

매트리스나 옷장 등 이해할 수 없는 짐들을 싸 들고 피난길에 나서는 사람들,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목으로 현금을 불에 태워 없애는 공권력의 모습, 명령 체계도 없이 우왕좌왕하는 군대, 피란민들에게 바가지요금을 물려 물이나 음식을 제공하는 사람들까지 전쟁은 인간의 추악함을 다양한 측면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 추악함 속에서도 타인과 함께 살아남기 위한 숭고한 노력들이 포착된다.

자신의 물과 음식을 기꺼이 나누고 버려진 아이를 돌보며 다친 자를 부축하고 거처가 없는 사람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는 존재 역시 인간들인 것이다.

각각의 인물들에게는 여정을 떠나야만 하는 본인들만의 이유가 있지만, 그 여정의 끝은 어느 시골 마을의 한 성당에서 수렴된다.

그리고 그들을 그곳으로 이끌게 된 것은 독일군의 무자비한 총탄이었다.

여정의 계기가 된 여러 이유들은 생존이라는 절대원칙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서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도움을 베풀고 그 도움들이 모여 불가능해 보이는 그들의 여정이 한 지점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다.

갈가리 찢기고 버려진 이 나라의 모습 자체인 이 피란민의 물결 속에서

자동차는 천천히 덜컹거렸다.

어디에나 얼굴들, 얼굴들이 있었다.

어떤 거대한 장례 행렬 같다고 루이즈는 생각했다.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패배의 가혹한 거울이 된 거대한 장례 행렬이었다.

(pg 459)

작가의 스타일답게 이 작품에서도 절대적인 선역이나 악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지니며, 자신의 생존을 우선하지만 그렇다고 타인에게 늘 날을 세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그런 양가적인 행보를 조금씩 보여준다.

사기꾼이 성자의 길을 걷기도 하고 지독한 장사꾼이 다리를 다친 동료를 끝까지 책임지기도 하며 자신도 환자면서 다른 환자들을 먼저 돌보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도 아닌 아이를 돌보기 위해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가 하면 범죄로 은닉한 돈을 범죄자들에게 줄 음식을 사기 위해 쓰기도 한다.

이처럼 늘 선하게만, 늘 악하게만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또 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손길도 끊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띠지에 적힌 '악마 같은 플롯을 지닌 책'이라는 광고 문구가 무색하지 않게 전쟁이라는 참혹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상당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

그래서인지 꽤 두껍게 느껴지지만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 '화재의 색'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조만간 읽어서 작가의 3부작을 온전히 감상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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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상실 - 좋은 일자리라는 거짓말 전환 시리즈 2
어밀리아 호건 지음, 박다솜 옮김 / 이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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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을 자주 읽은 편이라 제목만 봐도 대충 무슨 내용이 펼쳐질지 예상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있는 빨갱이 친구는 계속해서 이런 책으로 손을 뻗게 만든다.

원제는 'Lost In Work: Escaping Capitalism', 직역하면 '노동에서 길을 잃다: 자본주의 탈출하기' 정도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책을 다 읽은 후 생각해 보니 역시 원제가 책을 더 잘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여느 노동 관련 서적과 마찬가지로 노동의 역사를 훑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이미 정리한 바와 같이 노동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가 된 배경에는 대량생산을 위한 자본의 축적과 이로 인한 생산수단의 박탈 과정이 있었다.

모든 노동자가 생산자로서 스스로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던 시대에서 전체 공정의 극히 일부분만을 담당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오늘날 소비자는 자신의 옷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른다.

옷과 섬유와 맞은 우리의 관계는 지난 두 세기 동안 극적으로 변화했다.

천을 짜고 바느질을 하고 옷을 수선하는 방법을 알았던 우리가

이제는 단추 다는 법조차 모른다.

(pg 45)

이 과정에서 고용주는 직원들에게 업무 조건에 관한 방대한 권한이 부여된 반면 고용인 입장에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 있는 자유' 외에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노조 설립 등 노동권이 강화되던 시기가 있었으나, 제조업의 쇠퇴와 서비스업의 부상,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이마저도 사문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가 긱-워커(배민라이더 등 건 단위로 일을 부여받는 플랫폼 노동자)를 양산하는 다양한 서비스 업종이라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겠다.

보람 있거나 안정적인 일자리의 수는 줄고 있으며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래 감소세가 심해졌다.

현시대 경제에서는 다수의 노동자가 불안정한 서비스직 종사자로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타인의 집과 사무실을 청소하고 그들이 안락하게 살도록 돕는다.

복지가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무급 노동으로,

특히 돌봄노동으로 내몰린 사람들도 있다.

(pg 77)

게다가 직장에서의 개인들도 이전보다는 더 많은 노동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는 책 '가짜 노동'에서도 지적했던 관리 및 감독 업무의 증가 등으로 인한 것들도 물론 포함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직장에서의 낮은 보수 때문에 해야 하는 부업(n잡), 고용형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강요받는 자기 개발 의무까지 모두 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터에서의 과잉 노력은 노동자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기 쉽다. - 중략 -

계약된 업무 내용에 충실하게 일하고 기대받은 작업을 숙달하는 수준에 만족하는 사람은

현대 일터에서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쉴 새 없이 발전하고, 능력을 갈고닦고, 모든 사람을 고객처럼 대접하고,

절차를 개선시키고, 반성하고, 칭찬하고, 검토하고, 변화하라는 기대를 받는다.

초경쟁적인 일터에서는 직원 간 경쟁으로 인해 이런 압박에 불이 붙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 이를 부추기는 건 경영진이다.

(pg 96-97)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층은 자본을 위해 일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일이 나를 원하는 것보다 내가 일을 원하는 정도'가 더 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은 일자리의 감소를 낳고 노동자는 기술에 비해 교체하기가 쉬우며 사회제도 역시 해고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간다.

이런 사회에서 일은 개인에게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임금 사회에서 유급 노동과 일자리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주된 경로다. - 중략 -

일이 인간의 사회적 삶의 점점 더 많은 부분으로 확장되면서

일에 대항할 만한 인정의 원천이-우정, 취미, 공유되는 사회적 관습 등이-사라졌다.

그리하여 일자리를 잃으면 자본주의 안에서 가능한

제한적이며, 계급화되고, 도구적인 인정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pg 103)

그렇다면 노동자 계급에게 해답은 무엇일까?

너무도 식상하고 뻔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정답이 바로 노동조합의 강화일 것이다.

저자 역시 노동조합이 현재 위기에 빠져있고, 자신의 일터에서의 소소한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층이 어떻게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려면 단합된 의지로 정치적인 조직을 형성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더 잘 대표되어야 하는 건 단지 이상화된 개념들의 시장에서

노동자 권리를 더 잘 보장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을 근본적으로 뒤엎기 위해서다.

힘을 키우는 것은 단지 바깥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자기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변두리를 맴도는데 머물지 않고 세상을 아예 변화시킬 힘을 얻어내기 위해서다.

(pg 180)

전반적으로 노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책 한 권으로 훑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문제의 한 축을 이루는 페미니즘이나 인종 관련 시각 역시 잘 요약되어 있어 균형감도 좋았다.

달리 말하면, 기존에 노동 관련 책들을 좀 읽어 본 독자라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저자만의 독특한 해석이나 방향성이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분량도 200페이지 정도로 짧고 문장들도 그리 현학적이지 않아 읽는데 부담이 없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점점 더 노동이 소외되는 현실에서 새롭게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한다던가, 노동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자 하는 독서 모임 등 노동에 대한 배경지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을 때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단의 운명이, 우리가 공유하는 자유와 즐거움이 전부 위험에 처해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일에 결부되는 치욕, 소소한 잔인성, 착취, 절망이 없는

미래는 실현 가능하다.

싸워서 쟁취할 가치가 있으리라.

(pg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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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꼬미 동물병원 1 - SBS TV 동물농장 X 애니멀봐 공식 동물 만화 백과 쪼꼬미 동물병원 1
김강현 지음, 이연 그림, 최영민 감수 / 서울문화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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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동물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다.

양친이 모두 동물 털에 알레르기가 있어 우리 아이는 딱히 뭘 키울 엄두를 낼 수가 없다는 것이 가끔은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털이 없는 파충류나 양서류, 곤충, 어류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런 동물들은 또 집사람이 기겁을 하는지라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동물도 엄연한 하나의 생명인 이상 귀여운 봉제인형처럼 생각 없이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아이에게 못 기르는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곤 한다.

아무리 설명을 잘 해도 아이가 가진 욕구가 줄어들기는 어려운데 이번에 반려동물에 관한 좋은 책이 나와서 아이와 같이 읽어보게 되었다.

책 전면에 TV동물농장에서 자주 보던 수의사 선생님이 인사를 한다. (물론 저자는 다른 사람이다.)

특이하게도 반려동물들의 귀엽고 건강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동물 병원을 찾은 동물들이 어떤 병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소개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이 부분이 다른 동물 책과 달라서 좋았는데, 아이들이 동물 또한 아플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반려동물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귀여울 때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늙고 병들어 죽기 전까지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각오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책 내용은 하루라는 흰색 강아지가 병원을 찾은 동물들을 소개하는 형식의 만화로 되어 있어서 한글을 뗀 아이들이라면 혼자서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당연히 등장하는 동물들의 기본적인 정보도 실사진과 함께 잘 담겨 있다.

아이와 함께 읽으면서 동물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원형 탈모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부터 발병한 원형 탈모가 아직도 완치가 되지 않아 고생인데 동물도 다를 바 없다니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물론 주인이 애지중지 키우는 동물들이기는 하겠으나) 본성과 맞지 않게 도시의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처지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pg 42-43)

여태 게임에만 초판 한정 부록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이들 책에도 초판에는 한정 부록들이 실려 있다.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잘라서 편지를 써볼 수 있어서 우리 딸은 아주 좋아했다.



내년이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가니 이 정도는 혼자 잘라서 엄마, 아빠에게 편지도 한 장씩 써주었다.

이러니 부모 입장에서는 좋은 책이 있으면 얼마든지 접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동물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나 그림 위주의 책이 아니라 동물의 질환과 실제 치료 과정이 담겨 있어서 다른 동물 책과는 차별점이 느껴졌다.

비록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지는 못하는 입장이지만 다양한 동물의 사례를 통해 아이가 간접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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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너희 세상에도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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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나 SF, 판타지 쪽 장르 소설들은 그래도 좀 읽어본 편인데 '호러'는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장르가 아닐까 싶다.

이미 단편집만 세 권이나 낸 작가인데다(후미 작가의 말에 따르면 본인의 사주이기도 하고) 책 소개도 흥미로워서 읽어보게 되었다.

총 여덟 작품이 실려있으며 표제작이 가장 마지막에 실려있다.

표지부터 어딘가 음산한 느낌을 주며 호러라는 장르를 명확하게 표방하고 있는 만큼 수록 작품 전체에 피비린내가 가득하다.

사실 전쟁 영화와 더불어 호러 영화를 가장 싫어할 만큼 잔인한 콘텐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도 전반적으로 잔인함의 수준이 상당히 높고 결말도 굉장히 찜찜한 느낌인지라 읽으면서 심리적인 저항감이 굉장히 심했다.

그럼 읽지 않으면 될 텐데, 희한하게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이 도착한 날 그 자리에서 여섯 작품을 내리읽었고, 다음 날 오전에 완독했으니 흡인력이 상당했다고 평해도 좋을 것이다.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무서움을 즐기듯 보기 싫은데 계속 보고 싶은(?) 묘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이 '읽는 재미'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호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의 재미는 탁월한 편이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첫 시작은 의식이 남은 채로 몸이 좀비화되는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 비용을 아끼려는 자식에게 버림받는 노년의 감염자가 등장하는 '반짝이는 것'이다.

이 작품의 공포감은 생사의 기로를 앞둔 상황에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주는 긴장감 때문인데, 수록작 중 '목소리'라는 작품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진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가족의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주는 긴장감이 상당했다.

표제작인 '부디 너희 세상에도'에서도 좀비 바이러스가 주제이긴 하나, 첫 작품과는 결이 매우 다르고 제4의 벽이라는 참신한 방법으로 익숙한 주제의 식상함을 많이 덜어낸 느낌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얼굴보다 더 자주 보게 되는 '화면'을 주제로 한 '화면 공포증'이라는 작품도 우리 주변에 너무도 익숙하게 존재하는 사물이 새로운 공포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참신함이 돋보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화면 속 사람들을 동경해왔다.

그곳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타자로 존재하며, 스스로를 주인공 자리에서 내몰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니까.

(pg 111, '화면 공포증' 中)

개인적으로 수록작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에이의 숟가락'이라는 작품이었다.

숟가락이라는 특이한 도구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한 소녀(!)의 이야기인데 짧은 분량 안에서 인간의 뒤틀린 소유욕이 어떻게 정신을 파괴해 가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의 현신이건 살인의 신이건, 숟가락은 에이의 하나뿐인 친구였다.

에이는 자신과 숟가락이 서로를 완벽하게 소유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pg 65)

그 밖에도 이름을 부르면 잡아먹는 괴물이라든가 기시감이라는 느낌으로 미래를 경험하는 남자, 모든 질문에 답을 해주는 뇌의 나무 등 판타지적인 요소를 차용하지만 그 요소들을 우리의 현실과 절묘하게 조합함으로써 판타지와 현실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기묘한 공포감을 잘 묘사한 작품들이 실려있다.

저자의 이력을 보니 호러뿐 아니라 SF, 로맨스, 심지어는 동화에 이르기까지 창작의 폭이 굉장히 넓은 모양이다.

선택할 수 있는 책들도 많아서 조만간 호러가 아닌 작품도 접해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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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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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어서는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기 쉽지 않은데, 간단히 정리하면 현대 사회가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으며 이것이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비만으로 고민하고 있던 저자는 어느 날 마트 직원에게 살찌는 음식을 산다는 핀잔을 듣게 된다.

그러다 우리 사회가 비만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구조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하며 이것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사회적인 관계를 통해서 느끼게 된다.

무인도에 혼자 산다면 당연히 수치심을 느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술에 취해 이웃에게 실수를 했다면 다음 날 수치심을 느끼고 반성하게 되는 것처럼 비교적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던 시기에는 수치심이 공동체가 정한 규칙들을 지키게 하는 일종의 자정작용 같은 순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SNS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통해 수치심이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수치심이 과거와는 다른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페이스북과 구글 같은 거대 기업이 이끄는 디지털 업계는

온라인에서 조롱으로 이윤을 얻을 뿐 아니라 이런 행동을 이용하고 퍼뜨린다.

대형 연구실에서 수학자는 심리학자 및 인류학자와 긴밀히 협업해

이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 기계를 학습시킨다.

이들의 목적은 이용자를 온라인에 끌어들여 광고라는 금광을 캐는 것이다.

이용자를 단단히 붙잡는 수단으로 조롱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pg 136)

디지털 거물 기업이 갈등에서 얻는 횡재는 그저 운 좋게 얻은 게 아니다.

이들은 돈이 되는 논쟁을 부채질하도록 자사 플랫폼을 설계한다.

또 이용자의 견해를 극단으로 몰아가곤 하는데,

그렇게 해야 논쟁이 과열되어 이용자가 쉽게 이탈하지 않는다.

(pg 142-143)

저자는 자신의 사례로부터 출발한 비만 외에도 마약중독, 빈곤 등의 문제가 마치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초래된 결과라는 사회적 인식이 당사자들에게 부당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라고 본다.

가령 복지제도를 신청하는 과정에 자신의 가난을 상세하게 증명해야 한다면 이는 당사자에게 부당한 수치심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이어트 산업, 재활 산업 등이 거대한 비즈니스를 형성하고 있어서 당사자들에게 지속적인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있다.

당연히 이렇게 지속적인 수치심에 노출될 경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고,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수치심 렌즈로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즉 모든 관계와 만남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무심코

흘린 말과 농담조차 남에게 수치심을 전달하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각자 여러 형태의 수치심을 주고받으며 이 감정과 엮인다.

(pg 179)

물론 이러한 수치심 체계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도 존재한다.

미투 운동이나 흑인 인권운동 등 사회 인식 개선에 큰 영향을 준 운동들이 대부분 가해자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형태로 진행됐다.

저자는 이러한 수치심의 긍정적인 효과를 물론 인정하지만 이 경우에도 해당 개인에게 그러한 언행의 선택지가 있었는지, 현실을 개선할 영향력이 있는 개인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수치심이 그 실수를 만회할 기회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한 번의 실수가 영원한 낙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일베 용어를 썼다가 논란이 되면 그 이미지를 벗겨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고 비난받을 만한 일이지만 사과와 반성이 뒤따른 다음에도 계속해서 조롱할 정도의 일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수치심 체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사람들 스스로가 모두 실수하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우리 주변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고 속죄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잘못 때문에 영원히 수치심의 늪에 갇혀야 하는가에 대해선 재고할 필요가 있다.

(pg 299)

현대 사회에서 수치심이 작용했던 여러 사례들을 잘 정리해 주고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어떻게 변화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물론 그래서 읽기에 어려운 느낌이 없다는 부분은 좋았다.

저자가 미국인이니 미국 사례가 많이 등장하지만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특정인들이 '조리돌림' 당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라 그런지 그리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인터넷 문화가 사람들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일이 적지 않은데 이를 수치심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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