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나 SF, 판타지 쪽 장르 소설들은 그래도 좀 읽어본 편인데 '호러'는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장르가 아닐까 싶다.
이미 단편집만 세 권이나 낸 작가인데다(후미 작가의 말에 따르면 본인의 사주이기도 하고) 책 소개도 흥미로워서 읽어보게 되었다.
총 여덟 작품이 실려있으며 표제작이 가장 마지막에 실려있다.
표지부터 어딘가 음산한 느낌을 주며 호러라는 장르를 명확하게 표방하고 있는 만큼 수록 작품 전체에 피비린내가 가득하다.
사실 전쟁 영화와 더불어 호러 영화를 가장 싫어할 만큼 잔인한 콘텐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도 전반적으로 잔인함의 수준이 상당히 높고 결말도 굉장히 찜찜한 느낌인지라 읽으면서 심리적인 저항감이 굉장히 심했다.
그럼 읽지 않으면 될 텐데, 희한하게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이 도착한 날 그 자리에서 여섯 작품을 내리읽었고, 다음 날 오전에 완독했으니 흡인력이 상당했다고 평해도 좋을 것이다.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무서움을 즐기듯 보기 싫은데 계속 보고 싶은(?) 묘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이 '읽는 재미'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호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의 재미는 탁월한 편이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첫 시작은 의식이 남은 채로 몸이 좀비화되는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 비용을 아끼려는 자식에게 버림받는 노년의 감염자가 등장하는 '반짝이는 것'이다.
이 작품의 공포감은 생사의 기로를 앞둔 상황에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주는 긴장감 때문인데, 수록작 중 '목소리'라는 작품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진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가족의 생사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주는 긴장감이 상당했다.
표제작인 '부디 너희 세상에도'에서도 좀비 바이러스가 주제이긴 하나, 첫 작품과는 결이 매우 다르고 제4의 벽이라는 참신한 방법으로 익숙한 주제의 식상함을 많이 덜어낸 느낌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얼굴보다 더 자주 보게 되는 '화면'을 주제로 한 '화면 공포증'이라는 작품도 우리 주변에 너무도 익숙하게 존재하는 사물이 새로운 공포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참신함이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