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상실 - 좋은 일자리라는 거짓말 전환 시리즈 2
어밀리아 호건 지음, 박다솜 옮김 / 이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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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을 자주 읽은 편이라 제목만 봐도 대충 무슨 내용이 펼쳐질지 예상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있는 빨갱이 친구는 계속해서 이런 책으로 손을 뻗게 만든다.

원제는 'Lost In Work: Escaping Capitalism', 직역하면 '노동에서 길을 잃다: 자본주의 탈출하기' 정도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책을 다 읽은 후 생각해 보니 역시 원제가 책을 더 잘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여느 노동 관련 서적과 마찬가지로 노동의 역사를 훑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이미 정리한 바와 같이 노동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가 된 배경에는 대량생산을 위한 자본의 축적과 이로 인한 생산수단의 박탈 과정이 있었다.

모든 노동자가 생산자로서 스스로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내던 시대에서 전체 공정의 극히 일부분만을 담당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오늘날 소비자는 자신의 옷이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른다.

옷과 섬유와 맞은 우리의 관계는 지난 두 세기 동안 극적으로 변화했다.

천을 짜고 바느질을 하고 옷을 수선하는 방법을 알았던 우리가

이제는 단추 다는 법조차 모른다.

(pg 45)

이 과정에서 고용주는 직원들에게 업무 조건에 관한 방대한 권한이 부여된 반면 고용인 입장에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 있는 자유' 외에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노조 설립 등 노동권이 강화되던 시기가 있었으나, 제조업의 쇠퇴와 서비스업의 부상,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이마저도 사문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가 긱-워커(배민라이더 등 건 단위로 일을 부여받는 플랫폼 노동자)를 양산하는 다양한 서비스 업종이라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겠다.

보람 있거나 안정적인 일자리의 수는 줄고 있으며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래 감소세가 심해졌다.

현시대 경제에서는 다수의 노동자가 불안정한 서비스직 종사자로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타인의 집과 사무실을 청소하고 그들이 안락하게 살도록 돕는다.

복지가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무급 노동으로,

특히 돌봄노동으로 내몰린 사람들도 있다.

(pg 77)

게다가 직장에서의 개인들도 이전보다는 더 많은 노동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는 책 '가짜 노동'에서도 지적했던 관리 및 감독 업무의 증가 등으로 인한 것들도 물론 포함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직장에서의 낮은 보수 때문에 해야 하는 부업(n잡), 고용형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강요받는 자기 개발 의무까지 모두 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터에서의 과잉 노력은 노동자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기 쉽다. - 중략 -

계약된 업무 내용에 충실하게 일하고 기대받은 작업을 숙달하는 수준에 만족하는 사람은

현대 일터에서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쉴 새 없이 발전하고, 능력을 갈고닦고, 모든 사람을 고객처럼 대접하고,

절차를 개선시키고, 반성하고, 칭찬하고, 검토하고, 변화하라는 기대를 받는다.

초경쟁적인 일터에서는 직원 간 경쟁으로 인해 이런 압박에 불이 붙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 이를 부추기는 건 경영진이다.

(pg 96-97)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층은 자본을 위해 일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일이 나를 원하는 것보다 내가 일을 원하는 정도'가 더 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은 일자리의 감소를 낳고 노동자는 기술에 비해 교체하기가 쉬우며 사회제도 역시 해고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간다.

이런 사회에서 일은 개인에게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임금 사회에서 유급 노동과 일자리는 타인에게 인정받는 주된 경로다. - 중략 -

일이 인간의 사회적 삶의 점점 더 많은 부분으로 확장되면서

일에 대항할 만한 인정의 원천이-우정, 취미, 공유되는 사회적 관습 등이-사라졌다.

그리하여 일자리를 잃으면 자본주의 안에서 가능한

제한적이며, 계급화되고, 도구적인 인정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pg 103)

그렇다면 노동자 계급에게 해답은 무엇일까?

너무도 식상하고 뻔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정답이 바로 노동조합의 강화일 것이다.

저자 역시 노동조합이 현재 위기에 빠져있고, 자신의 일터에서의 소소한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층이 어떻게든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려면 단합된 의지로 정치적인 조직을 형성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더 잘 대표되어야 하는 건 단지 이상화된 개념들의 시장에서

노동자 권리를 더 잘 보장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을 근본적으로 뒤엎기 위해서다.

힘을 키우는 것은 단지 바깥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자기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변두리를 맴도는데 머물지 않고 세상을 아예 변화시킬 힘을 얻어내기 위해서다.

(pg 180)

전반적으로 노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책 한 권으로 훑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문제의 한 축을 이루는 페미니즘이나 인종 관련 시각 역시 잘 요약되어 있어 균형감도 좋았다.

달리 말하면, 기존에 노동 관련 책들을 좀 읽어 본 독자라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저자만의 독특한 해석이나 방향성이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분량도 200페이지 정도로 짧고 문장들도 그리 현학적이지 않아 읽는데 부담이 없다는 건 큰 장점이었다.

점점 더 노동이 소외되는 현실에서 새롭게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한다던가, 노동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자 하는 독서 모임 등 노동에 대한 배경지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을 때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단의 운명이, 우리가 공유하는 자유와 즐거움이 전부 위험에 처해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일에 결부되는 치욕, 소소한 잔인성, 착취, 절망이 없는

미래는 실현 가능하다.

싸워서 쟁취할 가치가 있으리라.

(pg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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