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임 머신 - 수치심이 탄생시킨 혐오 시대, 그 이면의 거대 산업 생태계
캐시 오닐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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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어서는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잡기 쉽지 않은데, 간단히 정리하면 현대 사회가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으며 이것이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비만으로 고민하고 있던 저자는 어느 날 마트 직원에게 살찌는 음식을 산다는 핀잔을 듣게 된다.

그러다 우리 사회가 비만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구조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하며 이것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사회적인 관계를 통해서 느끼게 된다.

무인도에 혼자 산다면 당연히 수치심을 느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술에 취해 이웃에게 실수를 했다면 다음 날 수치심을 느끼고 반성하게 되는 것처럼 비교적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던 시기에는 수치심이 공동체가 정한 규칙들을 지키게 하는 일종의 자정작용 같은 순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SNS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통해 수치심이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수치심이 과거와는 다른 부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페이스북과 구글 같은 거대 기업이 이끄는 디지털 업계는

온라인에서 조롱으로 이윤을 얻을 뿐 아니라 이런 행동을 이용하고 퍼뜨린다.

대형 연구실에서 수학자는 심리학자 및 인류학자와 긴밀히 협업해

이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고리즘 기계를 학습시킨다.

이들의 목적은 이용자를 온라인에 끌어들여 광고라는 금광을 캐는 것이다.

이용자를 단단히 붙잡는 수단으로 조롱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pg 136)

디지털 거물 기업이 갈등에서 얻는 횡재는 그저 운 좋게 얻은 게 아니다.

이들은 돈이 되는 논쟁을 부채질하도록 자사 플랫폼을 설계한다.

또 이용자의 견해를 극단으로 몰아가곤 하는데,

그렇게 해야 논쟁이 과열되어 이용자가 쉽게 이탈하지 않는다.

(pg 142-143)

저자는 자신의 사례로부터 출발한 비만 외에도 마약중독, 빈곤 등의 문제가 마치 개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초래된 결과라는 사회적 인식이 당사자들에게 부당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라고 본다.

가령 복지제도를 신청하는 과정에 자신의 가난을 상세하게 증명해야 한다면 이는 당사자에게 부당한 수치심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이어트 산업, 재활 산업 등이 거대한 비즈니스를 형성하고 있어서 당사자들에게 지속적인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있다.

당연히 이렇게 지속적인 수치심에 노출될 경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되고,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수치심 렌즈로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즉 모든 관계와 만남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무심코

흘린 말과 농담조차 남에게 수치심을 전달하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각자 여러 형태의 수치심을 주고받으며 이 감정과 엮인다.

(pg 179)

물론 이러한 수치심 체계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도 존재한다.

미투 운동이나 흑인 인권운동 등 사회 인식 개선에 큰 영향을 준 운동들이 대부분 가해자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형태로 진행됐다.

저자는 이러한 수치심의 긍정적인 효과를 물론 인정하지만 이 경우에도 해당 개인에게 그러한 언행의 선택지가 있었는지, 현실을 개선할 영향력이 있는 개인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수치심이 그 실수를 만회할 기회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한 번의 실수가 영원한 낙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일베 용어를 썼다가 논란이 되면 그 이미지를 벗겨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고 비난받을 만한 일이지만 사과와 반성이 뒤따른 다음에도 계속해서 조롱할 정도의 일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수치심 체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사람들 스스로가 모두 실수하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우리 주변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고 속죄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잘못 때문에 영원히 수치심의 늪에 갇혀야 하는가에 대해선 재고할 필요가 있다.

(pg 299)

현대 사회에서 수치심이 작용했던 여러 사례들을 잘 정리해 주고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어떻게 변화했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물론 그래서 읽기에 어려운 느낌이 없다는 부분은 좋았다.

저자가 미국인이니 미국 사례가 많이 등장하지만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특정인들이 '조리돌림' 당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라 그런지 그리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인터넷 문화가 사람들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일이 적지 않은데 이를 수치심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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