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을 시작으로 작가의 책을 연달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오르부아르'도 읽었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이 '오르부아르'로 시작된 3부작의 마지막편이라 한다.
두 번째인 '화재의 색'은 읽지 못했는데 검색해 보니 다행히 본 작품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는 것 같다.
이 책도 600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꺼운 작품인데 '오르부아르' 역시 700페이지쯤 되는 분량이다 보니 이 책을 읽기 전에 꼭 '오르부아르'를 읽어야 하는지가 궁금할 텐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앞선 작품을 읽었다면 반가운 이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꼭 읽었어야 할 필요는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설명을 다 해주고 있기도 하고, 그저 반가운 이름이 한두 번 등장한다 정도로 가볍게 언급하는 수준이어서 굳이 앞선 작품들을 모두 섭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부담 없이 읽어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르부아르'가 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전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 평화롭던 일상에서 시작해 사람들의 평범했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때까지 이어진다.
이 작가의 책이 보통 중반까지는 조금 지루하다가 중반 이후부터 신기하게 재미있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 역시 초반에는 여러 인물들의 시각에서 옴니버스처럼 각기 다른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반 이후부터 이 이야기가 하나의 줄기로 모이면서 굉장한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역시 이번에도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루이즈는 '오르부아르'에 등장했던 꼬마인데 이 작품에서는 장성해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있다.
어느 날 일하던 음식점에 늘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던 한 노인이 이상한 제안을 하는데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가 갑자기 그 노인이 자신의 머리를 쏴 자살하는 바람에 그녀는 그 의사와 자신의 삶에 감추어진 비밀들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올곧은 성품을 지닌 군인 가브리엘은 같은 부대에 있는 라울이라는 양아치를 만나면서 인생이 조금씩 꼬이기 시작한다.
야바위부터 약탈에 이르기까지 생존을 위해 온갖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라울의 계략에 말려 가브리엘 역시 악행에 가담하게 되고 결국은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전쟁이 심화되고 국가의 행정이 마비되자 죄수를 적절히 처리할 필요가 생겼고, 이 임무를 담당하게 되는 페르낭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