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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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그 책의 저자가 자신의 집필 모티브로 삼은 책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해서 이 책 역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모티브가 된 책이 이 책이므로 순서상 이 책을 먼저 읽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어 읽게 된 책이다.

최근 여러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과학적 사실을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주는 책들을 많이 발표하고 있는데 이 책 역시 '분류학'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생물학의 한 분야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가 어떤 생물을 분류할 때 '어류', '조류', '곤충류'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카테고리들을 정의하는 것이 '분류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분류학의 기저에는 인간이 무엇이든 유형화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그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MBTI 같은 몇 가지 성격 유형으로 나누고자 애를 쓰는 것은 단순한 재미 이상으로 우리가 이 수많은 개체들을 특정 유형으로 구분 짓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있는 이 엄청난 수의 동물과 식물을 관찰하면서 이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저자는 이렇게 세계를 유형화하여 인식하는 능력을 '움벨트'라는 단어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는 개념이어서 그대로 옮겨 보았다.

움벨트는 글자 그대로 '환경' 또는 '주변 세계'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지만,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단어로 더 구체적인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 생물학자들에게 움벨트란 지각된 세계, 즉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의미한다. 각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 및 인지 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이다.

(pg 35)

중요한 것은 움벨트가 우리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능력 중 하나라는 점이다.

아이를 키워보면 경험하게 되는데, 어느 날 아이가 처음으로 지나가는 요크셔테리어를 보았다고 했을 때 부모가 그 동물을 '개'라고 가르친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아이는 처음 보는 품종의 개, 예컨대 요크셔테리어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진돗개를 만난다 하더라도 그 동물이 고양이나 돼지가 아닌 '개'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린다.

이러한 '유형화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어서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그 무언가를 경험했을 때 본능적으로 그것을 특정 유형에 넣고 싶어 한다.

이러한 능력은 진화적으로 생존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추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식물들 중에서 먹어도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부터 구분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연을 민감하게 관찰하고 구분하는 개체가 더 오래 살아남아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능력이 모두에게 있지만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각 사람들마다도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시대나 문화권에 따른 차이도 크게 나타날 것이다.

더욱이 생활터전이 그리 넓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에 비해 지금의 인류는 땅 끝에서부터 바다 깊은 곳에서까지 새로운 생물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있는데 이를 하나의 움벨트로 분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때문에 '분류학'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통일된 체계를 만들지 못해 내외부에서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려왔다.

논란의 핵심은 움벨트가 아무리 인간의 선천적이고 중요한 능력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과학자들은 수학적 통계를 이용하는 수리분류학, 화학적으로 DNA를 연구하는 분자생물학, 다른 특질은 제외하고 오직 진화상의 새로움에만 의지하는 분기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움벨트를 객관적인 무언가로 대체해 나갔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종이라는 실체는 분류학자들이 추정하는 바 별개의 한 종이 되기

충분할 만큼 다른 것들과 다르지만, 그러나 새로운 종을 구성해야 할 정도로 기존의

모든 종과 다르지는 않으며, 기존에 알려진 한 종의 단순한 변형으로 간주될 만큼

비슷하지는 않아 보이는 유기체들의 집단이었다.

(pg 156)

이 지점에서 이 책의 마지막 킥이 등장한다.

보통의 과학자라면 이전 움벨트 기반의 분류학을 다소 미개한 것으로, 최신 분류학 이론들을 우수한 것으로 소개하고 끝낼 법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움벨트를 포기하지 않는다.

분명 분류학은 객관성을 향한 과학적 진보를 이뤄내고 있었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움벨트로 자연을 인식하는 행위는 무의미하며 자연의 관찰과 분석은 과학자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버렸다.

그래서 지구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생물 다양성 위기를 그렇게 많은 과학자들이 걱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들은 그저 무관심할 뿐인데 저자는 여기에 과학의 책임도 크다고 보고 있다.

오랜 세월 과학을 이해의 다른 모든 방법 위에 두고,

과학자들만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다고 믿어온 결과,

우리는 생명의 세계를 우리 자신의 시각으로 볼 수 없게 되고

생명의 언어를 말할 수 없게 되었으며, 생명이 있는 존재들과 단절되고

그들에게서 관심을 거둔 채 쇼핑몰만 헤매다니고 있다.

(pg 403)

저자는 분류에 대한 엄격함을 추구하는 대신(이건 과학자들의 몫이다.) 자신의 움벨트로 자연을 더 인지할 것을 요구한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 우리 주변에 있는 생물들에게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김춘수가 '꽃'을 통해 인지의 시작이 곧 사랑의 시작임을 노래한 것처럼 저자 역시 주변 생물들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일단 생물들을 알아보기 시작하면, 일단 특정한 야수들, 새들, 꽃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

당신의 눈에 생물들의 형태와 자연의 질서가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생명이 존재하는 곳, 당신 주변 어디에서나 생명을 알아보기 시작할 것이다.

(pg 411)

글을 너무 길게 써서 아무도 읽지 않을까 두렵긴 하지만 이렇게 길게 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책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분류학'의 'ㅂ'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해가 잘 되고 재미도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새로운 생물학적 지식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러면서도 과학 찬양 일변도의 논지도 아니어서 신선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자신의 전공 분야를 대중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과학의 대중화도 상당히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어떤 내용일지 대충 짐작이 된다.

번역된 순서대로 그 책을 읽고 이 책을 읽는 것도 좋겠으나, 그 책의 저자가 이 책을 모티브로 썼다고 하니 이 책을 읽고 그 책으로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명은 단순히 가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생명은 항상 변화하고 있다.

어느 순간이든 우리에게 보이는 건 흐르는 시간 속의 스냅숏 한 컷, 그 계통이 새로운

종들로 갈라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유장한 변화의 흐름 속 한 순간일 뿐이다.

(pg 112)

종에 대한 합의된 정의가 여전히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거의 확실히 그런 정의는 없으리라는 점에도 신경을 끄자.

종이란 정의하고 명확히 기술할 수 있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항상 진화하는 실체라는 점도 무시하자.

종들은 우리가 도저히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pg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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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로또부터 진화까지, 우연한 일들의 법칙
데이비드 핸드 지음, 전대호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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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반박하기 위해 했던 말로 유명한 문장이다.

물리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믿었기에 했던 말인데 지금 우리는 전자를 비롯한 많은 것들이 확률로만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 유명한 문장으로 서두를 열면서 우리가 기적처럼 느끼는 작은 확률의 일들이 어떻게 우리 주변에서 이리도 쉽게 관찰될 수 있는지를 통계학적인 시각에서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로또에 연달에 두 번 당첨된 사람이나 번개를 일곱 번이나 맞은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역시 '될놈될, 안될안'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무언가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증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쉽사리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종종 발견되는데 통계적으로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저자는 필연성의 법칙, 아주 큰 수의 법칙, 선택의 법칙, 확률 지렛대의 법칙, 충분함의 법칙 등 기막힌 확률을 이해하기 위한 여러 개념들을 충분한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각각의 법칙은 개별적으로 작용했을 때보다 두세개의 법칙이 함께 작용할 경우 해당 사건의 발생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이게 된다.

특히 우리가 신기해할 대부분의 내용은 필연성의 법칙과 아주 큰 수의 법칙에 따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서 '그럴 수 있는 일'로 설명할 수 있다.

쉬운 예로 로또에 당첨되는 것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일이지만 내가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

하지만 로또를 구매하는 사람 역시 너무도 많기 때문에 당첨자는 무조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불행한 사건이 당신에게 또는 지구상의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 일어날 확률은 낮을지

몰라도, 지구에 현재 약 70억 명이 산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각각이 특정한 날에 사고를 당할 확률이 p라면 또한 사고가 각각 독립적으로 일어난다면,

그날 인구 N명 가운데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없을 확률은 (1-p)를 N번 곱한 값과 같다.

N이 지구의 인구 70억이고 p가 100만분의 1이라면,

그날 아무도 사고를 당하지 않을 확률은 약 103,040분의 1로 그야말로 지극히 미미하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사고를 당할 개연성이 압도적으로 더 높다는 말이다.

(pg 157)

당첨 확률을 높이는 유일한 길은 복권을 더 많이 사는 것뿐이지만, 만약 당첨되었을 때

당첨금이 높으려면 다른 사람들이 선택할 가능성이 낮은 번호를 선택해야 한다. - 중략 -

사람들이 생각해낼 만한 규칙을 모두 예측해서 배제할 수는 없으므로,

타인과 똑같은 번호를 선택할 확률을 낮추는 전략은 무작위로 숫자들을 선택하는 것이다.

로또 판매점에는 대게 이 전략을 쉽게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가 있다. ​​

(pg 170)

저자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경향성을 발견하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실은 우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인과가 있을 것이라 추측하는 경향이 많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특히 특정 동물들이 지진 전조증상을 느낀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지만 저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초능력 동물이 스포츠 예측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잠깐만 검색해도,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기이한 행동을 보인 동물부터

주인이 곧 집에 돌아올 것을 알고 기다리는 개까지 유사한 사례를 수천 건 발견할 수 있다.

동물들이 지진에 앞서 발생하는 모종의 지반 진동을 감지할 수 있다는 추측이

제기되어 왔지만, 시민 보호를 위한 국제지진예보위원회는 그런 예측력이 존재한다는

신뢰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위원회에는 아주 큰 수의 법칙의 존재와 미디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조언할 수 있을 것이다.

(pg 154)

또한 우리는 우리가 인지하는 여러 사건들 중 특히 관심을 가지는 사건들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오래 기억하는데 그러다보면 아무 연관성이 없는 사건들도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한 사회가 재난을 겪으면 곧이어 그 재난의 징조가 도처에 널려 있었다며 호들갑을 떠는 언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측과 사후예측의 극명한 대비는 도처에서 나타난다.

한 예로 큰 재난을 당한 뒤 사람들은 "왜 우리는 재난을 예상하지 못했을까?"라고

물으면서 처음부터 징후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 중략 -

사후에 조각들을 맞춰 그것들이 연속적인 사슬을 이루어 참사로 이어졌음을

보여주기는 쉽다. 그러나 사전에는 수많은 조각과 잠재적 사슬이 존재한다.

어떤 사건이 서로 관련이 있는지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 중략 -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정보가 입수됨에 따라 기억을 소급해서 조정함으로써 재난에

이른 사슬을 확인하고는 사후에 "자, 이걸 보라고. 위험 징후가 우리 눈앞에 있었어!"라고

말하는 본능적인 경향이 있다. 이를 '사후 과잉확신 편향'이라고 한다.

이것은 오래된 개념이며 선택의 법칙이 나타나는 한 방식이다.

(pg 163)

확률과 통계는 학창 시절 많은 학생들에게 수학을 더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매일 아침 비가 올 확률을 검색하며 면접이나 입시를 앞두면 내가 붙을 확률을 계산한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로또나 토토의 인기는 사그라질 줄 모른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인간은 분명 확률을 좋아한다.

다만 확률을 수학적 개념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뿐인데 이 책은 어려운 수식이 많이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많은 예시를 통해 확률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꽤나 친절하게 서술되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학창 시절 확률을 배웠던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람은 물론 확률과 통계 진도를 앞둔 중고등학생에게도 유용할 것 같은 책이었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한 방향으로 흐른다.

미래는 가능성들이 거품처럼 들끓는 카오스의 바다와 같다.

그 바다에서 한 순간 일어날 것처럼 보이는 일들은 개연성이 더 큰 다른 일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개연성이 큰 일들도 또 다른 일들로 대체된다.

현재는 남극의 바람과 같다. 현재가 닥치면, 사건들은 얼어서 굳어진다.

영영 변화할 수 없는 결정으로 바뀌어 고정된 과거에 편입된다.

(pg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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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 - 현대 과학이 외면한 인간 본성과 도덕의 기원
로저 스크루턴 지음, 노정태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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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달로 인류는 지구의 생명체 중 처음으로 자신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알 수 있게 되었다.

존재의 기원뿐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하는 언행들 역시 진화적인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진화생물학의 견해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원리가 여타 동물들과 그리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정작 과학자들은 아직까지 자신들의 발견이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인지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하는데 인문학, 특히 '문사철'로 분류되는 순수 인문학은 그러한 과학의 발달에 상당한 위협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이 책 역시 철학자인 저자가 과학이 인간을 매우 단편적으로 보고 있다는 시각에 반기를 들기 위해 집필한 책이다.

저자는 과학이 사람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종교와 철학은 물론 예술의 영역에까지 광범위한 인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우리가 사회적으로 축적해온 가치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면, 인류는 자신의 핏줄이 아니더라도 어린이를 보호하거나 노인을 공경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우리의 행동 양식을 유전자가 결정한다고 보는 시각으로는 이러한 행동을 충분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어린 개체나 늙은 개체를 보호하는 행위가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인데 물론 진화심리학적으로도 이러한 행동이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유전자 존속에 유리하다고 설명할 수 있기는 하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사회가 추구해 오던 여러 미덕이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더 줄어드는 방향으로, 즉 자신의 삶 외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던 인간의 본성은 대신

마지못해 살아내야 할 무언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생물학적 환원주의는 바로 이런 "마지못해 살아냄"을 길러내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그쪽으로 빠져들고 있지요.

냉소를 존경의 대상으로, 인색함을 멋진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류는 우리의 관대함과 함께 소멸하게 됩니다.

(pg 87)

저자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또 구별되어야만 하는 이유로 우리에게 '인격'이라는 개념이 있으며 이는 단순히 진화를 통해 '획득'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념적인 활동을 통해 '창발'한 인간 고유의 개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여기서 '창발'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양적으로 축적된 무언가가 아니라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무언가가 생겨났다는 의미라고 이해하면 된다.

인격은 생물학적인 것에 부가되어 있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마치 캔버스 위에 배치된 색깔로부터 얼굴이 창발하는 것과 같이,

생물학적인 것으로부터 창발하는 것입니다.

(pg 74)

인간에게 이러한 인격이 있다는 의미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 역시 자신과 대등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유하고 있는 자신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사유하며 나와 소통하고 있는 상대방 역시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가분성을 지닌 개인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책임을 인지하고, 스스로에게 1인칭 시점을

적용한 결과 불가피하게 타인을 2인칭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는 등,

이 모든 것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조건인 것이죠.

그러니 분명 우리는 타자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

다른 이들과 기꺼이 돕고 살기 위해 우리의 감정과 습관을 어떻게 융합해야 할지,

이런 고민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pg 132-133)

우리가 이룩한 사회 역시 단순한 진화의 산물이거나 사회계약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사람들간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만이 아니라 순수하게 인간만이 가능한 지적 활동들을 통해 여러 제도와 도덕적 관념을 개발해온 결과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인간 공동체를 다른 관찰 가능한 모든 사회적 동물들의 조직과 구분 짓게

해주는 것은 다층적인 의무와 헌신이며, 우리는 상호 관계에 얽혀 있는 상호책임성의

수준에 따라 그런 의무와 헌신을 받아들입니다. - 중략 -

우리가 의무를 만들고, 수용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의무가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pg 117)

또한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계산해 보지 않더라도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타인에게 인식되지 못하면 자아도 인식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타인을 대하는 특정 행동 양식을 개발해왔고 이러한 것을 우리가 도덕이라고 부른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도덕적 관념은 비록 물리적 실체가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언행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심한 눈으로

우리의 행동을 바라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가늠하며 사고의 유희를 즐기죠.

만약 제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기 인식하는 행위자의 책임 있는 행태가 도덕성의 뿌리라면, 이는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충족해야 할 기준은 불편부당한 타자에 의해 설정되는 것입니다.

(pg 145)

우리는 인격체로서 우리의 행동과 마음 상태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다른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찾는 습관은

우리가 스스로 그런 이유를 요구하도록 만들죠.

그렇게 우리는 남이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판단의 대상이 됩니다.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인식은 우리를 짓누릅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희구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지 알지도 못한 채

회한에 사로잡히기도 하죠.

(pg 217)

전반적으로 과학과 사회학의 발달이 인간의 지위를 상당히 낮추고 있다는 주장이며 인간은 그보다 더 고등하고 고결한 존재라는 일종의 인간 찬사가 담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태생적 문과'인 내 시각에서 보더라도 저자의 주장이 생각보다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물론 나 자신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그저 관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유물론자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저자가 근거로 드는 대부분의 것들이 지금은 조금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철학자들의 주장이라는 것이 살짝 실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그러한 관념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같은 종이지만 먹이를 두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상대를 죽일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오랜 기간에 걸쳐 확립해 온 도덕이나 미덕을 유지하는 것은 과학이나 사회학의 발전과는 별개로 소중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200페이지 정도로 그리 두껍지 않고 서술도 친절한 편이지만 관념과 인식을 다루고 있어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기술과 학문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인간은 점점 더 경시되는 것 같은지 궁금했던 사람이라면 꽤 통찰력 있는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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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최진혁 사진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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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소양이 일천한지라 솔직히 소설을 읽을 때 문장의 아름다움보다는 이야기의 재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서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네 번째 읽는 한강의 작품.

이번에는 깔끔하기 그지없는 제목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집사람이 책 제목을 보더니 '하얀색이라는 뜻이야?'라고 물었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여서 '미묘하게 달라'라고 대답했더니 뭐가 다르냐 묻길래 작가가 한 말을 보여줬다.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pg 186, 작가의 말 中)

명료하게 대답하긴 어렵지만 작가가 의도한 뉘앙스가 뭐였는지는 제법 알 것 같다.

이 작품은 제목처럼 '흰' 색을 가진 것들의 목록을 쭉 나열한 뒤 각 단어들에 작가의 인생과 상념을 한 조각씩 투영한 작품이다.

활로 철현을 켜면 슬프거나 기이하거나 새된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단어들로 심장을 문지르면 어떤 문장들이건 흘러 나올 것이다.

그 문장들 사이에 흰 거즈를 덮고 숨어도 괜찮은 걸까.

(pg 10)

편집도 그렇고 글의 양도 그렇고 소설이 아니라 시집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각각의 제목 아래 길어야 두 페이지 정도의 글이 실려있는데, 길이가 짧기 때문에 딱히 서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작가에게 생후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채 죽은 언니가 있었다는 것과 작가가 바르샤바를 여행하면서 지난 역사 속에서 벌어진 죽음에 대한 생각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는 흔적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다.

딱히 줄거리가 없어서 그런지 문장에 더 집중하며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책 후미에 본문보다 더 어려운 해설이 있지만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그다지 도움이 된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작가의 풍부한 감성을 굉장히 절제된 손길로 다듬은 문장들을 읽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언니와 바르샤바에서 벌어진 대학살로 죽어간 사람들의 죽음들과 이를 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아무리 시간이 약이라지만 보통 몸이 아프면 시간도 더디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작가는 아플 때 더디 가는 시간을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시간의 감각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 몸이 아플 때 특히 그렇다.

열네 살 무렵 시작된 편두통은 예고 없이 위경련과 함께 찾아와 일상을 정지시킨다.

해오던 일을 모두 멈추고 통증을 견디는 동안,

한 방울씩 떨어져내리는 시간은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들 같다.

손끝이 스치면 피가 흐를 것 같다.

숨을 들이쉬며 한순간씩 더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pg 11)

그 밖에도 상당히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많다.

세상에 태어나 죽지만 말아 달라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 말고는 들어본 적 없이 사라진 언니를 생각하며 썼기 때문일까, 모국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 단어에 걸맞은 한국어의 맛과 뉘앙스를 잘 살린 표현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소싯적 번역일로 잠시 먹고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의 구절들은 나라면 도저히 영어로 옮기지 못할 것 같은, 다른 언어라면 다른 의미가 되어 버릴 것 같은 문장들이다.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라는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춰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pg 59)

하얗게 웃는다, 라는 표현은 (아마) 그녀의 모국어에만 있다.

아득하게, 쓸쓸하게, 부서지기 쉬운 깨끗함으로 웃는 얼굴. 또는 그런 웃음.

너는 하얗게 웃었지.

가령 이렇게 쓰면 너는 조용히 견디며 웃으며 애썼던 어떤 사람이다.

그는 하얗게 웃었어.

이렇게 쓰면 (아마) 그는 자신 안의 무엇인가와 결별하려 애쓰는 어떤 사람이다.

(pg 78)

글 양도 적고 분량도 본문만은 130페이지 정도라서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문장이 짧은 만큼 문장 사이사이에 의미를 많이 집어넣은 느낌이라 곱씹으며 읽기에 좋을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읽으면서 몰아치는 감정이 너무 과하지 않아서 좋았고, 읽고 나서도 한동안 그 잔상에 시달리지 않아서 좋았다.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읽은 작품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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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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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오는 표현을 빌자면 나 역시 '운명적 문과'로 분류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 역시 '운명적 문과'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아오다가 우연히 과학 서적들을 읽게 됐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관이 바뀌게 되었다며 자신이 과학 공부를 하며 알게 된 점을 '운명적 문과'들과 나누고 싶어 본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평소 저자를 좋아하기도 하고 과학 교양서도 꽤 거부감 없이 읽는 편인지라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했다.

저자는 왜 문과들이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지부터 설명한다.

인문학(저자는 이 개념을 사회과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과 과학은 연구의 근본이 되는 질문부터가 다른데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학이 과학 이론들에 익숙하다면 인문학도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물론 '통섭'이니 '융합'이니 학제간 연구 교류가 중요하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 통섭과 융합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저자는 파인만이 한탄하며 지적했던 '거만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학 공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pg 127)

이어 뇌과학에서 출발해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공부한 지식들을 소개하고 이런 지식들이 문과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주는지 역설하고 있다.

읽을 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후미에 보면 저자가 목차에도 상당한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을 궁금해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 인문학이라면 그 자신을 궁금하게 여기는 주체가 담긴 뇌에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뇌과학을 읽다 보면 자연히 생물학으로 연결되고 생물의 탄생 과정을 알려면 화학을 설명해야 하며 화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이, 물리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저자가 의도한 순서대로 책을 읽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모든 종에게 유전자는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성장하라. 짝을 찾아라. 자식을 낳아 길러라. 그리고 죽어라.

너의 사멸은 나의 영생이다. 너의 삶에는 다른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목적을 추구한다. - 중략 -

그런 점에서 나는 호모 사피엔스를 '진화가 만든 기적'으로 본다.

내가 기적의 산물임을 뿌듯한 기분으로 받아들인다.

(pg 128)

나름 과학 교양서들을 좀 읽었던지라 지식적인 측면에서 전혀 몰랐던 무엇을 알게 되는 부분은 적었다.

하지만 전에 읽어서 기억에 대강 남아 있던 개념들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인문학적 시각에서 과학 지식들을 안내하는 접근법도 꽤 마음에 들었다.

이전에 읽은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 같은 책과도 느낌이 비슷해서 그 책을 재미나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도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본 책이 김상욱 교수의 저작과 비교된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할 것이다.)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정보 전달의 비중을 좀 낮추고 저자가 이 정보를 알게 됨에 따라 어떤 인문학적 견해나 깨달음이 생겼는지를 설명하는 비중이 조금 높아졌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운명적 문과'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매우 친절하게 쓴 책이므로 내용이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아무리 '운명적 문과'로 태어났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른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저서로 눈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영구기관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이러한 저엔트로피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화와 죽음이 필연이라는 말이다.

나는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며 내가 한 모든 말과 행위가

완전히 잊힐 것임을 받아들인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게 의존하지 않고

마지막 시간까지 내 인생을 내 생각대로 밀어 갈 작정이다.

(pg 2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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