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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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오는 표현을 빌자면 나 역시 '운명적 문과'로 분류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 역시 '운명적 문과'로 꽤 오랜 시간을 살아오다가 우연히 과학 서적들을 읽게 됐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관이 바뀌게 되었다며 자신이 과학 공부를 하며 알게 된 점을 '운명적 문과'들과 나누고 싶어 본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평소 저자를 좋아하기도 하고 과학 교양서도 꽤 거부감 없이 읽는 편인지라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했다.

저자는 왜 문과들이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지부터 설명한다.

인문학(저자는 이 개념을 사회과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과 과학은 연구의 근본이 되는 질문부터가 다른데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학이 과학 이론들에 익숙하다면 인문학도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물론 '통섭'이니 '융합'이니 학제간 연구 교류가 중요하다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 통섭과 융합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저자는 파인만이 한탄하며 지적했던 '거만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과학 공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pg 127)

이어 뇌과학에서 출발해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공부한 지식들을 소개하고 이런 지식들이 문과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를 주는지 역설하고 있다.

읽을 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후미에 보면 저자가 목차에도 상당한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을 궁금해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 인문학이라면 그 자신을 궁금하게 여기는 주체가 담긴 뇌에서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뇌과학을 읽다 보면 자연히 생물학으로 연결되고 생물의 탄생 과정을 알려면 화학을 설명해야 하며 화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이, 물리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저자가 의도한 순서대로 책을 읽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모든 종에게 유전자는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성장하라. 짝을 찾아라. 자식을 낳아 길러라. 그리고 죽어라.

너의 사멸은 나의 영생이다. 너의 삶에는 다른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목적을 추구한다. - 중략 -

그런 점에서 나는 호모 사피엔스를 '진화가 만든 기적'으로 본다.

내가 기적의 산물임을 뿌듯한 기분으로 받아들인다.

(pg 128)

나름 과학 교양서들을 좀 읽었던지라 지식적인 측면에서 전혀 몰랐던 무엇을 알게 되는 부분은 적었다.

하지만 전에 읽어서 기억에 대강 남아 있던 개념들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인문학적 시각에서 과학 지식들을 안내하는 접근법도 꽤 마음에 들었다.

이전에 읽은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 같은 책과도 느낌이 비슷해서 그 책을 재미나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도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본 책이 김상욱 교수의 저작과 비교된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할 것이다.)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정보 전달의 비중을 좀 낮추고 저자가 이 정보를 알게 됨에 따라 어떤 인문학적 견해나 깨달음이 생겼는지를 설명하는 비중이 조금 높아졌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운명적 문과'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매우 친절하게 쓴 책이므로 내용이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아무리 '운명적 문과'로 태어났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다른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저서로 눈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영구기관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이러한 저엔트로피 상태를

영원히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화와 죽음이 필연이라는 말이다.

나는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며 내가 한 모든 말과 행위가

완전히 잊힐 것임을 받아들인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게 의존하지 않고

마지막 시간까지 내 인생을 내 생각대로 밀어 갈 작정이다.

(pg 2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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