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이름 붙이기 -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할 때
캐럴 계숙 윤 지음, 정지인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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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그 책의 저자가 자신의 집필 모티브로 삼은 책이 바로 이 작품이라고 해서 이 책 역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모티브가 된 책이 이 책이므로 순서상 이 책을 먼저 읽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어 읽게 된 책이다.

최근 여러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과학적 사실을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주는 책들을 많이 발표하고 있는데 이 책 역시 '분류학'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생물학의 한 분야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가 어떤 생물을 분류할 때 '어류', '조류', '곤충류'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카테고리들을 정의하는 것이 '분류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분류학의 기저에는 인간이 무엇이든 유형화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그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MBTI 같은 몇 가지 성격 유형으로 나누고자 애를 쓰는 것은 단순한 재미 이상으로 우리가 이 수많은 개체들을 특정 유형으로 구분 짓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은 자연에 있는 이 엄청난 수의 동물과 식물을 관찰하면서 이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저자는 이렇게 세계를 유형화하여 인식하는 능력을 '움벨트'라는 단어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는 개념이어서 그대로 옮겨 보았다.

움벨트는 글자 그대로 '환경' 또는 '주변 세계'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지만,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단어로 더 구체적인 무언가를 가리켰다.

이 생물학자들에게 움벨트란 지각된 세계, 즉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의미한다. 각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 및 인지 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이다.

(pg 35)

중요한 것은 움벨트가 우리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능력 중 하나라는 점이다.

아이를 키워보면 경험하게 되는데, 어느 날 아이가 처음으로 지나가는 요크셔테리어를 보았다고 했을 때 부모가 그 동물을 '개'라고 가르친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아이는 처음 보는 품종의 개, 예컨대 요크셔테리어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진돗개를 만난다 하더라도 그 동물이 고양이나 돼지가 아닌 '개'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린다.

이러한 '유형화 능력'은 선천적인 것이어서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그 무언가를 경험했을 때 본능적으로 그것을 특정 유형에 넣고 싶어 한다.

이러한 능력은 진화적으로 생존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추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식물들 중에서 먹어도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부터 구분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연을 민감하게 관찰하고 구분하는 개체가 더 오래 살아남아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능력이 모두에게 있지만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각 사람들마다도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시대나 문화권에 따른 차이도 크게 나타날 것이다.

더욱이 생활터전이 그리 넓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에 비해 지금의 인류는 땅 끝에서부터 바다 깊은 곳에서까지 새로운 생물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있는데 이를 하나의 움벨트로 분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때문에 '분류학'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통일된 체계를 만들지 못해 내외부에서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려왔다.

논란의 핵심은 움벨트가 아무리 인간의 선천적이고 중요한 능력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과학자들은 수학적 통계를 이용하는 수리분류학, 화학적으로 DNA를 연구하는 분자생물학, 다른 특질은 제외하고 오직 진화상의 새로움에만 의지하는 분기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움벨트를 객관적인 무언가로 대체해 나갔다.

기본적으로 하나의 종이라는 실체는 분류학자들이 추정하는 바 별개의 한 종이 되기

충분할 만큼 다른 것들과 다르지만, 그러나 새로운 종을 구성해야 할 정도로 기존의

모든 종과 다르지는 않으며, 기존에 알려진 한 종의 단순한 변형으로 간주될 만큼

비슷하지는 않아 보이는 유기체들의 집단이었다.

(pg 156)

이 지점에서 이 책의 마지막 킥이 등장한다.

보통의 과학자라면 이전 움벨트 기반의 분류학을 다소 미개한 것으로, 최신 분류학 이론들을 우수한 것으로 소개하고 끝낼 법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움벨트를 포기하지 않는다.

분명 분류학은 객관성을 향한 과학적 진보를 이뤄내고 있었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일반 대중들에게 움벨트로 자연을 인식하는 행위는 무의미하며 자연의 관찰과 분석은 과학자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버렸다.

그래서 지구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생물 다양성 위기를 그렇게 많은 과학자들이 걱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들은 그저 무관심할 뿐인데 저자는 여기에 과학의 책임도 크다고 보고 있다.

오랜 세월 과학을 이해의 다른 모든 방법 위에 두고,

과학자들만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다고 믿어온 결과,

우리는 생명의 세계를 우리 자신의 시각으로 볼 수 없게 되고

생명의 언어를 말할 수 없게 되었으며, 생명이 있는 존재들과 단절되고

그들에게서 관심을 거둔 채 쇼핑몰만 헤매다니고 있다.

(pg 403)

저자는 분류에 대한 엄격함을 추구하는 대신(이건 과학자들의 몫이다.) 자신의 움벨트로 자연을 더 인지할 것을 요구한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 우리 주변에 있는 생물들에게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김춘수가 '꽃'을 통해 인지의 시작이 곧 사랑의 시작임을 노래한 것처럼 저자 역시 주변 생물들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일단 생물들을 알아보기 시작하면, 일단 특정한 야수들, 새들, 꽃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

당신의 눈에 생물들의 형태와 자연의 질서가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생명이 존재하는 곳, 당신 주변 어디에서나 생명을 알아보기 시작할 것이다.

(pg 411)

글을 너무 길게 써서 아무도 읽지 않을까 두렵긴 하지만 이렇게 길게 쓰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책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분류학'의 'ㅂ'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해가 잘 되고 재미도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새로운 생물학적 지식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러면서도 과학 찬양 일변도의 논지도 아니어서 신선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자신의 전공 분야를 대중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과학의 대중화도 상당히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어떤 내용일지 대충 짐작이 된다.

번역된 순서대로 그 책을 읽고 이 책을 읽는 것도 좋겠으나, 그 책의 저자가 이 책을 모티브로 썼다고 하니 이 책을 읽고 그 책으로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명은 단순히 가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생명은 항상 변화하고 있다.

어느 순간이든 우리에게 보이는 건 흐르는 시간 속의 스냅숏 한 컷, 그 계통이 새로운

종들로 갈라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유장한 변화의 흐름 속 한 순간일 뿐이다.

(pg 112)

종에 대한 합의된 정의가 여전히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거의 확실히 그런 정의는 없으리라는 점에도 신경을 끄자.

종이란 정의하고 명확히 기술할 수 있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항상 진화하는 실체라는 점도 무시하자.

종들은 우리가 도저히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pg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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