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권력을 만났을 때 - 서로 협력하거나 함께 타락하거나
제프 멀건 지음, 조민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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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문, 사회학이 발 디딜 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눈으로는 보지 못하는 부분을 찾아내 보여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반적으로는 전혀 동떨어진 분야로만 보이는 과학과 정치가 실제로는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참신함이 돋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을 필요로 하고, 과학은 국민의 혈세가 자신의 연구로 흘러들어오게 하기 위해 정치를 필요로 한다.

역사적으로 이 둘의 관계는 정치의 통제, 혹은 계획 아래 과학이 힘을 보태주는 형태로 존속해왔다.

하지만 최근의 과학은 너무도 빠르게 발전하는 반면, 정치의 속도는 이에 비하면 너무도 느리기 때문에 과학과 정치가 괴리되고 있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라 보면 되겠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과학은 너무 정치적이지 못하고, 정치는 너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결과로 과학과 일반 대중사회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정치는 비과학적인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사회적인 문제라고 보고 있다.

정치계는 과학의 주권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권위와 합법성에 대한 과학계의 주장에도 귀 기울이지 않으며,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과학적 통찰을 다른 유형의 지식과 융합하는

종합 역량이 부족한 과학의 약점도 애써 외면한다.

과학을 활용하지 않는 정치적 결정도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과학적 결정도 여전히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pg 36)

요약하자면 과학 정책 추진을 위한 인적 조직이나 연구 지원 등의 구성은

우리의 기대보다 과학적이지 않다.

정책의 우선순위 또한 증거보다는 정치적 관행, 이해관계, 편의로

설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선순위를 정할 때 실제 대중의 의견은 '전혀' 또는 '거의' 반영되지 않으며,

때때로 정치인들은 높은 위상을 지닌 과학자들에게 감히 도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pg 239)

더욱이 과학이 구체적인 기술의 형태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녹아들기 시작해버리면 이후에 부작용이 발견된다 한들 제도적으로 이를 보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SNS가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상당히 안 좋을 수 있다는 점은 최근의 연구에서야 지적되고 있는데, 이미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SNS를 지금에서야 규제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과학과 정치는 일정 정도의 규제가 필요하고 이를 일반 대중들도 인지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렇게 되기 위해 저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과학과 정치의 관계는 아래와 같다.

과학은 정치에 지식을 '공급'하고 정치는 그 지식을 '수용'해 전파함으로써

주변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을 미디어와 시민 사회가 감시하고 조율한다.

(pg 207)

물론 과학은 더 정치적이어야 하고 정치는 더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은 굉장히 논리적이지만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문제를 단일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저자 역시 기대하지 않는다.

게임 중독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과 인공수정 시 DNA 조작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은 미치는 파급력이나 수반되는 과학 기술에서나 차이가 크다.

이 둘을 같은 제도로 규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탄력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밖에 없다. - 중략 -

절대적이고 고정된 주권은 이상적인 개념일 뿐이며 늘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그때그때 상황과 환경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게 바람직하다.

(pg 262)

정치계도 변화가 필요하고 과학계 역시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미디어와 시민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대중들의 변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제도적인 정비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치와 과학이라는 두 세력의 활동에 우리의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진짜로 납세자들이 원하는 분야에 적정한 재원이 투입되는지, 또 그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감시할 수 있는 역량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문제를 포괄적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려면 거듭 강조하지만 '메타인지',

즉 생각할 대상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떠올리는 능력,

직면한 과제에 가장 적합한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 중략 -

이 경우 메타인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를 인지할 때

그 각각에 적용되는 메커니즘을 구별할 줄 알고

특정 방법이 특정 문제에 가장 적합한 이유를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이다.

(pg 253)

물론 제도적으로도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특히 정치중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면서도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구(심지어는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국제적인 규모로도)의 구성과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환경 파괴 등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창출하는 활동에 과세를 한 뒤 그 재원으로 이러한 기구를 운영하는 방법 등 구체적인 방안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후미의 참고 자료 목록을 제외하면 300페이지 후반으로 그리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원문 자체가 문장도 길고 꽤 현학적으로 쓰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사례를 좀 길게 설명해 주면 이해에 도움이 될 텐데, 마치 자신이 이렇게나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여러 나라와 학자의 사례들을 쭉 열거하는 부분이 많아서 읽는 양 대비 머리에 남는 양이 그리 많지 않아 아쉬웠다.

다만 저자의 문제 인식에는 격렬히 공감할 수 있었고, 사회과학 저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난 문제 제기만 할 거야. 해결책은 다 같이 찾아보자고. 안녕!' 식의 결말이 아닌 적극적인 해결책 제시도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책 중간중간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다른 학자들에 대한 디스가 꽤 많이 숨어 있다.)

과학을 주제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과학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책은 전혀 아니고, 오히려 정치나 사회에 관심이 많다면 사회를 보는 눈을 더 키워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의 역설은 주권자인 국민이 자각하면 자각할수록 개인 지식의 한계, 편향과 왜곡, 문제와 격차, 다른 분야 지식의 중요성 등을 더 많이 깨닫게 된다는 데 있다.

(pg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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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 - 스티븐 호킹의 마지막 제자에게 듣는 교양 물리학 수업
다카미즈 유이치 지음, 김정환 옮김, 김범준 감수 / 북라이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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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단골 주제인 시간 여행이 과연 과학적으로 가능할지 궁금해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솔깃할 제목을 가진 물리학 책이다.


책 제목이 질문이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하자면, 당연히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시간을 되돌리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 과정이 왜 불가능한지를 여러 과학적 사실들로부터 밝혀가는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가령 SF 마니아들이 상대성 이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자주 등장하는 타임머신도,

설령 만들 수 있다 한들 인과율 때문에 미래로만 갈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서 원인에 어떤 영향을 주면 현재의 결과와 모순이 발생해

인과율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pg 76)

시간이 무엇인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를 정리한 후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해 현재까지 인류가 밝혀낸 시간에 대한 개념들이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상대성 이론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면 공간은 3차원인데 시간은 왜 1차원인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이 책은 이 의문에 대한 지금까지의 과학적 해석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아닌 여러 학설들도 같이 소개하고 있어서 여러 시각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우리는 아직 우주의 형태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명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학설들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책에 소개된 여러 이론들 중 카를로 로벨리의 루프 양자중력 이론으로 설명한 시간의 개념이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시간이란 사전에 정해진 특별한 무엇인가가 아니다.

시간은 방향 지어져 있지 않으며, 현재도 없고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렇다면 대체 시간의 무엇이 남는가?

남는 것은 오직 관측되었을 때 정해지는 사건끼리의 관계뿐이다.

극히 국소적인 A라는 사건과 B라는 사상 사이의 관계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pg 190)

결국 시간이라는 것도 우리의 관념이 만들어낸 것일지 모른다는 이론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고 하니 다음에 꼭 읽어볼 생각이다.

여러 이론과 과학적 사실들을 통해 알아낸 바로는 양자 수준에서는 시간을 역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지만, 양자의 세계는 너무도 작은 세계이기 때문에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그러한 결과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다소 힘이 빠지는 결론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물질의 근원인 양자부터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까지 꽤 폭넓은 과학적 사실들을 책 한 권으로 훑어볼 수 있어서 읽는 과정이 꽤 즐거웠다.

과학 지식들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게 잘 풀어주는 커뮤니케이터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 역시 이 분야에서 꽤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우리는 자신이 순수하게 지성만으로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뇌라는 물리적 기능 없이는 사고가 성립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물리적인 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의 화살도 이러한 사고를 통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pg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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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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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책이다.

주로 단편소설집이 공통된 주제들을 갖고 있기 쉽지 않은데, 이 책 속의 작품들은 대체로 시간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표제작이자 첫 작품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독특한 시간 인식을 다루고 있다.

작품 속에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자살하기 전 남긴 소설이 하나 등장한다.

동반자살하는 한 커플이 등장하는 작품인데 특이하게도 죽기 직전,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과거로 하루하루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을 한다.

즉 가장 좋았던 과거가 오히려 가장 미래에 일어난다면 삶의 궤적이 매우 달라진다는 경험을 한 것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은 과거는 기억할 수 있지만 미래는 기억할 수 없기에 오히려 미래를 기억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 中

마지막 작품인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라는 작품에서도 인간에게 시간이란 개념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바르바라'라고 불렸던 세 여인의 삶과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세계를 인식하는 시간의 흐름이 독특하게 맞물려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80년을 살면서 이전 80년의 이야기를 듣고 죽음 이후의 80년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240년이라는 독특한 발상(?!)인데, 이 발상이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의 과거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지고 살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담긴 '난주의 바다 앞에서', 아내를 잃은 슬픔을 안고 몽골로 떠난 남자의 이야기인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젊은 날의 사랑을 추억하는 '엄마 없는 아이들', 이미 끝나버린 사랑이었지만 그 여정이 뜻밖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인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등도 읽는 재미가 좋았다.

책의 길이는 짧은데 문장들이 좋아서 기억에 남는 구절들이 꽤 많았다.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까?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거야, 그 이유를."

"이유가 뭔데?"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中

영원한 여름이란 환상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사랑이 저물기 시작하자, 한창 사랑할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마음이 점점 길어졌다.

길어진 마음은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미워한다고도 말하고, 알겠다고도 말하고,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만 하고.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사랑의 단상 2014' 中

수록된 작품들 중 '진주의 결말'만은 유독 분위기가 독특하다.

마치 추리소설처럼 한 여인이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죽이고 집에 불까지 지른 후 도망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녀가 진짜 범인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는 인간이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런 일이 가능은 한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2022년에 발매된 작품이어서 그런지 코로나19가 지배하고 있던 세상의 모습이 작품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고 여덟 작품 중 두 작품에서 세월호 이야기를 직,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등, 배경으로는 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꽤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야기의 형식은 언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역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은 허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규정하는 것도 언어이므로 허상은 더욱 강화된다.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中

저자의 작품은 이 책으로 처음 접했는데 문장들이 너무 좋아서 e북이라는 집중 안 되는 매체로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꽤 단시간에 읽은 것 같다.

저자가 단편은 오랜만에 썼다고 할 정도로 장편이 더 많은 것 같아서 다음에는 저자의 장편을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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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세계사 - 생명의 탄생부터 세계대전까지, 인류가 걸어온 모든 역사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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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 문과인 주제에 유독 역사에 대한 흥미는 그리 크지 않다.

가뜩이나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는 터라 이런저런 이름들과 연도를 외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역사 교양서보다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서처럼 문학적 터치가 가미된 역사책들을 더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역시 SF 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이라 기대가 되었다.

책의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the world', 즉 '세계의 짧은 역사'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이 짧다고?'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한국 제목처럼 인류의 기원부터 시작해 1차 세계 대전까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짧은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왜 하필 1차 세계대전에서 끝났나 하면 저자가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인류의 기원, 즉 단세포 생물부터 시작해 인간이 되기까지의 생물학적인 진화 과정은 물론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등장한 이후로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지나 고대,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술된 책이다.

기원전 6세기는 사실 전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시기 중 하나였다.

세계 각지에서 인간이 왕권과 신관, 제물의 전통에서 깨어나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2만 년의 유아기를 거쳐 비로소 인류가 청소년기에 도달한 것 같았다.

(pg 103)

여러 장점이 있는 책이지만 그중에서도 시각 자료가 굉장히 풍부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역사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지명이 등장하고, 옛 지명이 현 국가명과 달라서 위치적인 혼란이 올 수 있는데 이 책은 지도가 필요할 때 딱 나와주는 느낌이라(게다가 풀 컬러!) 가독성이 좋았다.

주요 인물들의 초상화나 유적지, 건축물 등의 사진 자료도 풍부해서 책을 읽는 동안 별도의 검색이 필요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또한 서양 사람의 시각으로 기독교 문화권인 서양사만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다.

중국을 비롯한 유교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인 중동지역의 역사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어서 꽤 균형감이 좋았다.

과거의 노예 제도는 물론이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탐욕에 이르기까지 서양사에서 비교적 어두운 측면들도 가감 없이 드러내 비판의 칼을 켜누는 부분들도 인상적이었다.

로마가 남긴 거대한 도로와 찬란한 유적, 전통은 우리 후세대들이 경탄할 만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 모든 영광이 좌절된 의지와 억눌린 사람들,

일그러진 욕망 위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pg 144)

역사가의 입장에서 종교를 언급함에 있어서도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한 측면이 돋보인다.

기독교 문화권이 현재 서양 문화를 대표하고는 있지만, 특정 종교에 대한 가치 판단 없이 그저 사실관계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담백하게 다루고 있다.

역사가의 역할에만 충실하려는 입장에서는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해석을 수용할 수도 없고 부인하기도 어렵다.

역사가가 다루어야 할 예수는 인간으로서의 예수인 것만은 확실하다. - 중략 -

활동을 시작했을 때의 나이가 서른 살 정도였는데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직접 기록한 책은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가 있다.

네 복음서 모두 한 인간의 모습을 매우 뚜렷하게 그려내고 있다.

(pg 148)

다만 워낙 짧은 분량 안에 긴 역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사건 각각에 대한 설명이 그리 길지는 않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 온 과정을 한 번에 훑기 좋다는 장점은 있지만, 특정 사건의 전후 사정이나 자세한 내막까지 알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이 책을 마무리 지으면서 인류에게 남기는 메시지만큼은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 저자가 세계정세가 이대로라면 20년 이내에 같은 전쟁이 되풀이될 것이라 예언했는데 이 예언이 기가 막히게 적중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류의 정신이 진보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이 깊은 감동을 남겼다.

우리가 평화를 성취하리라는 것을, 우리의 후손들이 더 멋지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게 되리라는 것을, 모험과 성취가 확장되는 가운데

인류가 나날이 강해지리라는 것을 누가 의심할 수 있을까?

과거는 시작의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모든 것들은 앞으로 올 새벽의 여명일 뿐이다.

오늘날까지 인류가 해온 것들, 현재까지 이룩한 성취들,

그리고 이제까지 이 책에서 이야기한 이 모든 역사는

인류가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들의 서막에 불과하다.

(pg 371)

역사 교양서치고 이 책처럼 술술 읽히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꽤 옛날 책이지만 저자의 멋진 문장과 방대한 사진 자료, 적절한 주석들 덕분에 읽는 맛이 좋았다.

저자가 유명해진 이유는 물론 SF 소설들 때문이겠으나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 뒤에는 탄탄한 역사적 토대가 있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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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꼬미 동물병원 3 - SBS TV 동물농장 X 애니멀봐 공식 동물 만화 백과 쪼꼬미 동물병원 3
최영민 감수, 김강현 지음, 이연.황정호 그림 / 서울문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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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인데 그중 반려동물 인구가 천오백만이라는 통계가 있다.

최근 가족 구성이 3인 이하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고 계산하면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반려동물이 있다는 뜻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만큼 버려지는 동물도 많다는 것이다.

유기의 원인 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병들었을 때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관련 기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116511479?OutUrl=naver)

이처럼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마냥 귀여운 순간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물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픔을 느끼고 병에 걸리며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반려동물 역시 생명이며 다양한 원인으로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게 해주는 '쪼꼬미 동물병원' 시리즈의 3권이 드디어 출시되어 아이에게 선물해 주게 되었다.



딸아이에게 그저 3권이 나왔다는 사실만 알려줬을 뿐인데 그날부터 매일 "아빠, 쪼꼬미 동물병원 3권 언제 와요?"라는 질문을 해대는 통에 기다림이 길게 느껴졌다. (사준다고 한 적은 없었...)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한 책을 보며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부모로서 뿌듯하기 이를 데 없다.

이번 3권에서도 아픈 동물들을 치료해주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역시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아지, 고양이 뿐 아니라 까마귀와 참새, 모란앵무 등의 새들도 많고 상자거북, 아홀로틀처럼 양서류, 파충류까지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아이가 읽는 동안 옆에서 같이 읽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은 알 막힘으로 병원을 찾은 모란앵무의 사례였다.

사람만 난산일 때 제왕절개를 하는 줄 알았는데 새도 산란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신기했다.

다행히 알이 무정란이어서 주사기로 내용물을 빨아들여 크기를 작게 만드는 방법으로 수술 없이 배출할 수 있었다.

만약 유정란이어서 알이 파손되었다면 굉장히 안타까운 사례가 될 뻔했다.

이처럼 동물도 아플 수 있고, 그 치료에는 당연히 비용이 따른다.

아이들이 단순히 비용적인 고려뿐만 아니라 생명 하나를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숭고한 일인지를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딸이 다 읽더니 아침에 학교에 일찍 가서 또 읽을 거라며 가방에 잘 챙겨두는 것을 보면 여러 번 읽어도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이 만화책만 읽어서 걱정인 부모들도 이렇게 좋은 내용의 만화라면 안심하고 읽게 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몇 권이나 더 발매될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도 아픈 동물들을 위해 애쓰는 수의사 선생님과 한 생명을 애정으로 끝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반려동물 주인들의 훈훈한 이야기들을 더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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