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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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책이다.

주로 단편소설집이 공통된 주제들을 갖고 있기 쉽지 않은데, 이 책 속의 작품들은 대체로 시간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표제작이자 첫 작품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독특한 시간 인식을 다루고 있다.

작품 속에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자살하기 전 남긴 소설이 하나 등장한다.

동반자살하는 한 커플이 등장하는 작품인데 특이하게도 죽기 직전,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과거로 하루하루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을 한다.

즉 가장 좋았던 과거가 오히려 가장 미래에 일어난다면 삶의 궤적이 매우 달라진다는 경험을 한 것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은 과거는 기억할 수 있지만 미래는 기억할 수 없기에 오히려 미래를 기억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 中

마지막 작품인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라는 작품에서도 인간에게 시간이란 개념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바르바라'라고 불렸던 세 여인의 삶과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세계를 인식하는 시간의 흐름이 독특하게 맞물려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80년을 살면서 이전 80년의 이야기를 듣고 죽음 이후의 80년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240년이라는 독특한 발상(?!)인데, 이 발상이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의 과거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지고 살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담긴 '난주의 바다 앞에서', 아내를 잃은 슬픔을 안고 몽골로 떠난 남자의 이야기인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젊은 날의 사랑을 추억하는 '엄마 없는 아이들', 이미 끝나버린 사랑이었지만 그 여정이 뜻밖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인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등도 읽는 재미가 좋았다.

책의 길이는 짧은데 문장들이 좋아서 기억에 남는 구절들이 꽤 많았다.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까?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거야, 그 이유를."

"이유가 뭔데?"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中

영원한 여름이란 환상이었고, 모든 것에는 끝이 있었다.

사랑이 저물기 시작하자, 한창 사랑할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마음이 점점 길어졌다.

길어진 마음은 사랑한다고도 말하고, 미워한다고도 말하고, 알겠다고도 말하고,

모르겠다고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말만 하고.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다.

'사랑의 단상 2014' 中

수록된 작품들 중 '진주의 결말'만은 유독 분위기가 독특하다.

마치 추리소설처럼 한 여인이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죽이고 집에 불까지 지른 후 도망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녀가 진짜 범인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는 인간이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런 일이 가능은 한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2022년에 발매된 작품이어서 그런지 코로나19가 지배하고 있던 세상의 모습이 작품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고 여덟 작품 중 두 작품에서 세월호 이야기를 직,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등, 배경으로는 현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꽤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야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이야기의 형식은 언어다.

따라서 인간의 정체성 역시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렇듯 인간의 정체성은 허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규정하는 것도 언어이므로 허상은 더욱 강화된다.

말로는 골백번을 더 깨달았어도 우리 인생이 이다지도 괴로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中

저자의 작품은 이 책으로 처음 접했는데 문장들이 너무 좋아서 e북이라는 집중 안 되는 매체로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꽤 단시간에 읽은 것 같다.

저자가 단편은 오랜만에 썼다고 할 정도로 장편이 더 많은 것 같아서 다음에는 저자의 장편을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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