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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 - 스티븐 호킹의 마지막 제자에게 듣는 교양 물리학 수업
다카미즈 유이치 지음, 김정환 옮김, 김범준 감수 / 북라이프 / 2024년 3월
평점 :
SF의 단골 주제인 시간 여행이 과연 과학적으로 가능할지 궁금해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솔깃할 제목을 가진 물리학 책이다.
책 제목이 질문이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하자면, 당연히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시간을 되돌리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 과정이 왜 불가능한지를 여러 과학적 사실들로부터 밝혀가는 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가령 SF 마니아들이 상대성 이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자주 등장하는 타임머신도,
설령 만들 수 있다 한들 인과율 때문에 미래로만 갈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서 원인에 어떤 영향을 주면 현재의 결과와 모순이 발생해
인과율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무엇인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를 정리한 후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해 현재까지 인류가 밝혀낸 시간에 대한 개념들이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상대성 이론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하면 공간은 3차원인데 시간은 왜 1차원인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이 책은 이 의문에 대한 지금까지의 과학적 해석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아닌 여러 학설들도 같이 소개하고 있어서 여러 시각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우리는 아직 우주의 형태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명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학설들도 여러 가지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책에 소개된 여러 이론들 중 카를로 로벨리의 루프 양자중력 이론으로 설명한 시간의 개념이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시간이란 사전에 정해진 특별한 무엇인가가 아니다.
시간은 방향 지어져 있지 않으며, 현재도 없고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렇다면 대체 시간의 무엇이 남는가?
남는 것은 오직 관측되었을 때 정해지는 사건끼리의 관계뿐이다.
극히 국소적인 A라는 사건과 B라는 사상 사이의 관계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시간이라는 것도 우리의 관념이 만들어낸 것일지 모른다는 이론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고 하니 다음에 꼭 읽어볼 생각이다.
여러 이론과 과학적 사실들을 통해 알아낸 바로는 양자 수준에서는 시간을 역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지만, 양자의 세계는 너무도 작은 세계이기 때문에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그러한 결과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다소 힘이 빠지는 결론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물질의 근원인 양자부터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까지 꽤 폭넓은 과학적 사실들을 책 한 권으로 훑어볼 수 있어서 읽는 과정이 꽤 즐거웠다.
과학 지식들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게 잘 풀어주는 커뮤니케이터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 역시 이 분야에서 꽤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우리는 자신이 순수하게 지성만으로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뇌라는 물리적 기능 없이는 사고가 성립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물리적인 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의 화살도 이러한 사고를 통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