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세계사 - 생명의 탄생부터 세계대전까지, 인류가 걸어온 모든 역사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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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 문과인 주제에 유독 역사에 대한 흥미는 그리 크지 않다.

가뜩이나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우는 터라 이런저런 이름들과 연도를 외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역사 교양서보다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서처럼 문학적 터치가 가미된 역사책들을 더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역시 SF 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이라 기대가 되었다.

책의 원제는 'A short history of the world', 즉 '세계의 짧은 역사'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이 짧다고?'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한국 제목처럼 인류의 기원부터 시작해 1차 세계 대전까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짧은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왜 하필 1차 세계대전에서 끝났나 하면 저자가 1차 세계대전 직후에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인류의 기원, 즉 단세포 생물부터 시작해 인간이 되기까지의 생물학적인 진화 과정은 물론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등장한 이후로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지나 고대,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술된 책이다.

기원전 6세기는 사실 전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시기 중 하나였다.

세계 각지에서 인간이 왕권과 신관, 제물의 전통에서 깨어나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2만 년의 유아기를 거쳐 비로소 인류가 청소년기에 도달한 것 같았다.

(pg 103)

여러 장점이 있는 책이지만 그중에서도 시각 자료가 굉장히 풍부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역사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지명이 등장하고, 옛 지명이 현 국가명과 달라서 위치적인 혼란이 올 수 있는데 이 책은 지도가 필요할 때 딱 나와주는 느낌이라(게다가 풀 컬러!) 가독성이 좋았다.

주요 인물들의 초상화나 유적지, 건축물 등의 사진 자료도 풍부해서 책을 읽는 동안 별도의 검색이 필요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또한 서양 사람의 시각으로 기독교 문화권인 서양사만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도 장점이다.

중국을 비롯한 유교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인 중동지역의 역사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어서 꽤 균형감이 좋았다.

과거의 노예 제도는 물론이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탐욕에 이르기까지 서양사에서 비교적 어두운 측면들도 가감 없이 드러내 비판의 칼을 켜누는 부분들도 인상적이었다.

로마가 남긴 거대한 도로와 찬란한 유적, 전통은 우리 후세대들이 경탄할 만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 모든 영광이 좌절된 의지와 억눌린 사람들,

일그러진 욕망 위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pg 144)

역사가의 입장에서 종교를 언급함에 있어서도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한 측면이 돋보인다.

기독교 문화권이 현재 서양 문화를 대표하고는 있지만, 특정 종교에 대한 가치 판단 없이 그저 사실관계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담백하게 다루고 있다.

역사가의 역할에만 충실하려는 입장에서는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해석을 수용할 수도 없고 부인하기도 어렵다.

역사가가 다루어야 할 예수는 인간으로서의 예수인 것만은 확실하다. - 중략 -

활동을 시작했을 때의 나이가 서른 살 정도였는데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직접 기록한 책은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가 있다.

네 복음서 모두 한 인간의 모습을 매우 뚜렷하게 그려내고 있다.

(pg 148)

다만 워낙 짧은 분량 안에 긴 역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사건 각각에 대한 설명이 그리 길지는 않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가 발전해 온 과정을 한 번에 훑기 좋다는 장점은 있지만, 특정 사건의 전후 사정이나 자세한 내막까지 알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이 책을 마무리 지으면서 인류에게 남기는 메시지만큼은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 저자가 세계정세가 이대로라면 20년 이내에 같은 전쟁이 되풀이될 것이라 예언했는데 이 예언이 기가 막히게 적중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류의 정신이 진보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이 깊은 감동을 남겼다.

우리가 평화를 성취하리라는 것을, 우리의 후손들이 더 멋지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게 되리라는 것을, 모험과 성취가 확장되는 가운데

인류가 나날이 강해지리라는 것을 누가 의심할 수 있을까?

과거는 시작의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 온 모든 것들은 앞으로 올 새벽의 여명일 뿐이다.

오늘날까지 인류가 해온 것들, 현재까지 이룩한 성취들,

그리고 이제까지 이 책에서 이야기한 이 모든 역사는

인류가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들의 서막에 불과하다.

(pg 371)

역사 교양서치고 이 책처럼 술술 읽히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꽤 옛날 책이지만 저자의 멋진 문장과 방대한 사진 자료, 적절한 주석들 덕분에 읽는 맛이 좋았다.

저자가 유명해진 이유는 물론 SF 소설들 때문이겠으나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 뒤에는 탄탄한 역사적 토대가 있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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