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넛지 - 치밀하고 은밀한 알고리즘의 심리 조작
로라 도즈워스.패트릭 페이건 지음, 박선령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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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라는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대한민국에서도 가히 '신드롬'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개인적으로도 당시가 HRD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여서 모든 기업들이 마케팅에 넛지를 도입할 지점은 없는지 교육을 통해 찾고자 하는 시도가 유행처럼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넛지'라는 단어는 그대로 써도 굳이 뜻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일반화된 것 같다.

이 책은 그러한 '넛지'가 우리의 일상에 너무도 많이 도입되어서 되려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것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는 통찰을 기반으로 한다.

행동과학자와 저널리스트인 저자들은 이렇게 사람들의 정신과 행동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해로운 넛지들을 통틀어 '다크 넛지'라 부르고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그야말로 '넛지'에 대한 온갖 사례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총 20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다른 방식의 '다크 넛지'를 소개하고 이를 회피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를 정리해 주고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는 데 더 능숙하다.

연구에 따르면 지능은 '헛소리' 능력과 관련이 있으며,

똑똑한 사람은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더 크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하는 데 능하므로

사기를 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결론에 도달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그에 대한 명분을 잘 찾아낸다.

(pg 108)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인터넷 포털이나 쇼핑몰 사이트 등 온라인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매장에 퍼지는 특정한 향이 우리의 지갑을 더 잘 열도록 만들기도 하고, 들리는 음악에 따라 주문하는 와인의 가격이 달라지기도 하는 등 가장 원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오감마저도 마케팅의 힘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물론 SNS를 비롯한 영상 매체의 파괴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저자들과 문화권이 달라서인지 이 부분에서 재미난 시각 차이를 발견했는데, 저자들은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 제고나 폭력에 반대하는 메시지, 성소수자 인식 개선 등 결과적으로 볼 때 긍정적이라 평할 수 있는 개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상징이나 음모론 관련 내용들은 '진지하게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생경한 느낌마저 들었다.

음모론을 예로 들면, 저자들은 음모론에도 모종의 진실이 숨어있을 수 있으니 섣불리 '음모론'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다.

즉 메시지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인식이나 행동을 교정하려는 시도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시지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넛지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가장 좋은 게 뭔지 알고 있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넛지'라는 용어를 창안한 캐스 선스타인의 말처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

그들이 자신과 가족, 사회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것을 더 쉽게 선택하도록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pg 291)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의견은 아니었다.

이미 있는 매체로 사회를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 나는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역사를 통해 국가기관에 소위 '통수'를 맞아본 경험은 어느 국가에나 있을 테니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직도 지구는 평평하며 모든 우주 지식들은 나사의 농간이라고 믿는 음모론에도 모종의 진실이 숨어 있을 수 있으니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워낙 충고들이 많아서 다 기억하기도 어려울 정도지만, 큰 줄기는 비슷비슷하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나에게 도달하는 쉬운 정보들은 되도록 경계하고 책이나 서면 등 적극적으로 곱씹고 이해할 수 있는 정보 위주로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해결책은 '다크 넛지'를 마치 '마술'과 같이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우리의 눈을 현혹하는 마술사들의 공연은 모르고 볼수록 재미가 있다.

예전에 마술에 숨겨진 트릭을 알려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마술들은 더 이상 청중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접하는 정보 중 어떤 것들이 '다크 넛지'일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도달하는 정보들이 '다크 넛지'이기 쉬운지를 미리 알고 있다면 여기에 현혹될 확률이 극적으로 낮아진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주제의식과 다양한 사례가 넘쳐나는 책이다.

다만 문장들이 영 한눈에 들어오는 맛이 덜한데, 이는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원문 자체가 좀 장황한 느낌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책답게 불과 1-2년 전의 최신 사례까지도 포함하고 있어서 지금 읽기에 최적인 책임에는 틀림없다.

산에 틀어박혀 '자연인'으로 살아도 넘쳐나는 매체의 홍수를 온전히 피할 수는 없다.

게다가 우리에게 도달하는 정보에 얼마나 진실이 담겨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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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자 시리즈 세트 - 전3권 - 수확자 / 선더헤드 / 종소리 수확자 시리즈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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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드라이'라는 작품을 통해 긍정적인 인식이 박힌 작가인데 최근에 수확자 시리즈로 불리는 3권짜리 작품이 나와서 읽어보게 되었다.

시리즈지만 시리즈 자체 제목은 없고 각 권마다 별도의 제목이 붙어있어 편의상 수확자 시리즈라 부르겠다.

작품은 '선더헤드'라는 울트라 AI가 인류의 모든 지식을 흡수한 뒤 사회의 필요를 예측해 생산과 분배 등 사회의 모든 운영을 도맡아 하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인류의 한계점이었던 질병과 죽음, 사고까지도 모두 극복되어 사람들은 '회춘'이라는 절차를 통해 원하면 언제든 20대의 몸으로 계속해서 돌아갈 수 있다.

다만 지구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우주로 나가는 것은 계속해서 실패했으며 인간의 수명은 불멸이라는 설정인지라 지구의 인구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혹시라도 인류의 수명을 무한대로 늘리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주에 식민지도 하나 건설하지 못하는지 궁금하다면 3권에서 모든 의문이 해결되니 의문을 유지한 채 쭉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 역할만은 AI에게 맡길 수 없었기에 '수확자'라는 계층을 두어 인구수를 관리하고 있다.

사망 시대의 인간은 얼마나 속이 좁고 위선적이었는지,

생명을 끝내는 자들은 혐오하면서도, 자연은 사랑했다.

그 시절에는 태어난 모든 인간의 목숨을 다 앗아간 그 자연을 말이다.

자연은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자동적인 사형 선고라 여겼고,

지독히도 한결같이 죽음을 가져왔다. 우리가 바꿨다.

우리는 이제 자연보다 더 큰 힘이다.

(1권, pg 238)

모든 수확자들에게는 일정 기간 동안 수확해야만 하는 할당량이 주어지지만 그 실행 방법 자체는 전적으로 수확자의 자유에 따르며 모든 수확자들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10가지 계명 외에는 그 어떤 법에도 구속받지 않는다.

각 수확자들은 개인의 도덕적인 기준이나 과거의 사망 통계를 활용하는 등 각자의 기준에 맞추어 수확을 행한다.

여기에도 수확자 제도가 창시될 시절의 엄격함과 청렴함을 올곧게 추구하는 일명 '보수파'와 자신들이 새로운 시대의 신과 같은 존재라며 온갖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수확 자체를 즐거움으로 삼는 일명 '신질서파'가 있다.

1권은 엄격한 보수파인 한 수확자가 평범했던 소년(로언), 소녀(시트라)를 수확자 수습생으로 거두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종의 사건 이후로 시트라는 보수파 중 한 명의 수습생이, 로언은 신질서파 수장의 수습생이 된다.

체제의 안녕을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달라지면서 이 둘의 궤적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2권의 제목이 세계를 관리하는 AI의 이름인지라 이 AI가 실은 모든 일의 배후였다는 식상한 전개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을 법한데, 다행이라면 그런 접근법은 취하고 있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언급하면, 저자가 선더헤드와 수확령 사이의 관계를 굉장히 절묘하게 잘 설정해두었기 때문에 선더헤드는 직접적으로 인류의 탄생과 죽음에 관여할 수 없다.

1권에서 세계관과 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면 2권에서는 보수파에서 신질서파로 힘의 위계가 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음파교라는 사이비 종교가 초반부터 등장하는데, 2권까지는 그저 농담처럼 등장하는 집단이지만 3권에서부터는 이야기에 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3권의 제목인 '종소리' 역시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음파교의 지도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너는 끔찍한 사람이야." 선더헤드가 말했다. "너는 훌륭한 사람이야."

"뭐야, 어느 쪽이야?" 그레이슨이 물었다.

그러나 똑같이 희미하게 들려온 응답은 답변이 아니라 또다른 질문이었다.

"어째서 둘 다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지?"

(3권, 475)

죽음과 질병이 극복된 세상, 누구나 일을 하지 않아도 굶어죽을 염려를 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펼쳐져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세상이라면 우리가 지금의 감정과 정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내 목숨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할 수 있고, 증오할 수 있으며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행복할 수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좌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거세된 세상에서 저자는 오히려 타인의 목숨을 거두어야 하는 수확자들이야말로 그나마 인간적이라 부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들이 목적을 위해 더 분투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죽을 운명이었던 이들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모든 것을 미룰 수 있다.

죽음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라 예외가 되어 버렸기에.

(1권, pg 432)

전반적으로 매우 재미나게 읽었다.

물론 하드 SF는 아니기 때문에 약간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개인적으로 바로 이전에 읽은 SF 소설이 '삼체'라서 그렇게 느꼈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세계관도 굉장히 매력적이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개성이 잘 살아 있다.

총 3권이지만 페이지로는 1800페이지 정도라서 그리 짧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3권의 초반 전개가 다소 지지부진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전개도 빠르고 이야기에 군더더기도 없었다.

결말 역시 찜찜한 요소 없이 모두가 흡족할 만한 결말이어서 다 읽고 나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미 영화화가 진행 중이라는데, SF지만 배경이 아주 미래적인 느낌은 아니기 때문에 CG보다는 배우들의 액션 연기가 더 중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시트라 역에 '헤일리 스타인펠드'가 딱일 것 같은데 과연 누가 나올지 궁금하다.

영화 역시 3부작으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작품이어서 모쪼록 원작의 재미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제대로 만들어져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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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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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상하게 들릴 테지만 오로지 책을 읽고 싶어서 휴가를 낼 때가 있다.

그런 날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보람이 큰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약간 두꺼운 책이었지만 휴가 낸 것이 아깝지 않게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작품은 두 여성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언니를 잃은 초보 작가와 자살로 아버지를 잃은 영화감독.

자살을 모티브로 한 영화로 이미 유명세를 얻은 감독은 다음 작품으로 15년 전에 한 마을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에 주목하고, 그 마을 출신인 작가와 함께 사건에 숨겨진 전말을 함께 추적한다.

어린 시절에 그 마을에 살았던 것을 제외하면 전혀 접점이 없던 두 사람이지만 사건을 파헤쳐 감에 있어서 그 이상의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여성의 시각을 오가며 진행된다.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가 있는데 초반에는 이 상처들이 현재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조금씩 드러난다.

특히 소중한 누군가가 자살로 세상을 떠난 경험은 큰 상처로 남는다.

유족들은 그 죽음에 내 책임이 있지는 않은지 한참을 죄의식에 시달린다.

나 역시 친동생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 터라 인물들의 심정에 적잖이 공감할 수 있었다.

부모로부터의 학대 역시 상처의 큰 축을 이룬다.

아이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의 처벌이라는 극단적인 관심 속에 발생하는 학대와 방치와 외면이라는 극단적인 무관심 속에 발생하는 학대가 모두 다루어진다.

개인적으로도 아이를 키우는 아비다 보니 나는 아이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고, 아이 눈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체념하면 울 기력조차 없어지는 것일까.

그래도 역시 가슴으로는 울부짖었을지 모른다. 도와줘. 나 좀 도와줘, 하고.

그럴 때 누가 손을 내밀면, 손가락 끝으로 신호를 보내고,

서로를 격려하는 상대가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곧 생명의 은인 아닌가.

(pg 185)

두 사람과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였던 사건이 실은 두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작품이 마무리되는데, 일가족 살인 사건이라는 끔찍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말이 꽤나 해피엔딩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소중한 사람이 떠난 이유가 본인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결말이어서 책을 덮으면서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인식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실제로 발생한 일은 사실,

거기에 감정이 더해지면 진실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재판에서 공표되는 내용은 사실뿐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공평하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의 행동에는 반드시 감정이 따르잖아요.

그 감정을 배려할 필요가 있으니 재판에서 판가름하는 것도 그 진실이어야 마땅할 탄데,

과연 그게 진짜 진실일지."

(pg 252)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흡인력이 좋아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사건의 베일이 한 꺼풀씩 천천히 벗겨지는 편이지만 지루한 느낌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매력이 있었다.

저자의 책은 처음 접했는데 이미 국내에도 소개된 작품이 적지 않아서 곧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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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 - 불완전한 진화 아래 숨겨진 놀라운 자연의 질서
앤디 돕슨 지음, 정미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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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표지에 마치 철학 책처럼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제목이지만 생각해 보면 폐호흡을 하는 고래가 물 밖에서 숨을 쉬는 것은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저자는 이 당연한 사실에서 하나의 의문을 찾아낸다.

우리보다 훨씬 더 먼저 지구에 존재했던 고래는 왜 아직도 물속에서 호흡하는 법을 진화시키지 못했을까?

저자는 진화와 자연선택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자연의 변화에 따라 '최적화되듯이' 진행되는 과정이 아님을 설명하고자 이 책을 썼다.

진화는 그저 무작위적인 돌연변이가 때마침 이점을 가질 수 있고 그 형질을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을 때에만 일어나는 매우 느리고도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사례를 들어 진화가 일반적으로 보기에 생활에 더 불편한 방향으로, 심지어는 생존에도 불리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선 진화가 필요에 따라 적응 형태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그 대신 자연 선택은 우연히 발생한 유용한 돌연변이만 선호할 수 있다.

어떤 형태에 대한 필요와 긴급성은 돌연변이의 채택과 개체군에 퍼지는 속도를

규정하긴 하겠지만, 애초에 적절한 돌연변이가 발생할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돌연변이는 순전히 우연에 의해 생긴다.

(pg 78-79)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진화의 가장 대표적인 관계는 목숨/식사 원리라 부르는 법칙에 따르는 동물들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관계를 떠올리면 되는데, 육식동물의 경우 사냥에 실패하면 그저 한 끼를 굶을 뿐이지만 초식동물은 한 번 도망에 실패하면 그 즉시 목숨을 잃게 된다.

따라서 진화에 대한 압박이 더 강한 쪽은 언제나 초식동물이기에 초식동물의 진화 속도가 더 빠르고, 육식동물은 이 뒤를 따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역학 때문에 육식동물의 사냥법이 아무리 발달해도 초식동물들이 멸종하지 않고 공진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는 생물들이 훨씬 더 많다.

탁란하는 새들부터 바이러스 같은 기생 생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례가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성선택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공작새처럼 누가 봐도 생존에 불리할 것 같은 진화 형태를 보이는 생물들이 있다.

여기에도 재미난 법칙이 적용되는데, 몸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종의 경우 암수 중 육아에 책임을 지지 않는 성별이 몸을 치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점이다.

공작처럼 이런 경우는 주로 수컷들이지만, 드물게 암컷이 치장하는 형태로 진화하는 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수컷들이 알이나 새끼를 돌본다.

육아에 쓰일 에너지가 몸 치장으로 전환될 수 있어야지만 그런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한 외부환경의 변화가 세대를 거듭하며 진화를 축적할 시간보다 월등히 빠르다면 당연히 종 전체가 절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빠른 변화 중 상당수가 인간의 활동에 기인한다는 점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내용일 것이다.

책에서도 인간의 눈에 띈지 불과 27년 만에 절멸한 '스텔러바다소'의 사례가 등장한다.

모든 종은, 겉으로 봤을 때 번성하는 종이라도 결함을 갖고 있다.

그들은 단지 '그런대로 괜찮을' 뿐이며, 진화적 기벽, 태만, 서투른 솜씨 등

여러 잠재적 결함 중 하나 이상을 갖고 있다.

(pg 313)

게임이나 만화에서 '진화'라는 단어를 너무 극적인 형태로 사용하다 보니 흔히 진화라고 하면 '무언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라는, 가치가 포함된 단어라고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의 진화는 그저 축적된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특질이 외부 환경에 따라 변화했을 때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것이었을지 몰라도 현시점에서 볼 때엔 '왜 이렇게 불편하게 변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복잡한 적응은 아주 작은 단계들을 통해 서서히 진행되며, 그 각각의 단계는 점진적인

경로를 따라 적응도를 늘리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단계는 자연 선택에 의해 선호될 수 없고,

그에 따라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pg 335)

여러 생물을 통해 진화의 민낯을 보여주는 여정은 인류와 바이러스의 비교를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바이러스 역시 최대한의 증식이 목적이므로 숙주 안에서 계속 증식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이 너무 지나쳐 숙주가 죽어버리면 더 이상 다른 숙주로 이동할 기회를 잃어 바이러스 입장에서도 손해인 경우가 있다.

숙주 없이는 바이러스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숙주 안에서 충분히 증식하되 죽게 만들어서는 안되는데, 인간 역시 이러한 함정에 걸려들 수 있다고 저자는 엄숙히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바이러스, 지구가 숙주라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절묘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전반적으로 꽤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300페이지 후반으로 그리 얇지 않지만 학술적인 내용보다는 사례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진화에 방향성이 없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새롭지 않았지만 다양한 생물들의 사례로 생생하게 진화의 실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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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아카이브 에디션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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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블로거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과제처럼 느껴지는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아서 세월이 좀 지난 문학 작품들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작품들에 손이 가려면 계기가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새로운 판본의 등장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내용이 같다 하더라도 철 지난 폰트와 디자인의 책과 깔끔하고 산뜻한 신형 판본의 책은 독서 경험의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가져온다.

그런 의미에서 거장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이 예쁜 표지로 재출간된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일단 책을 펼 때 기분이 좋다.

옅은 녹색 계열로 표지는 물론이고 책배 부분까지 통일된 색채여서 눈이 편안하다.

폰트도 크고 간격도 넉넉해 400페이지 정도로 얇지 않은 책임에도 읽는데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부담으로 나가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저자가 픽션임을 반복하여 주장하긴 했으나, 저자의 개인적 역사가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는 것이 정설이고 사실상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조상 중 누군가는 필히 저자와 비슷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품은 6.25 전쟁이 막바지에 달할 무렵, 미군 PX에서 기념품용 초상화를 그려 판매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화자는 '이경'이라는 젊은 여성으로 미군들을 상대로 그림 의뢰를 받아 화가(책 속 표현으로는 '환쟁이')들에게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옥희도'라는 화가가 새로 들어오게 되고, 그녀는 다른 '환쟁이'들과는 무언가 질적으로 다른, 그만의 고독을 품고 있는 듯한 그에게 끌리게 된다.

좀 전의 충족감이 포말처럼 꺼졌다. 나는 그에게서 소리 없이 밀려나 있었다.

침팬지와 옥희도와 나⋯⋯. 각각 제 나름의 차원이 다른 고독을,

서로 나눌 수도 도울 수도 없는 자기만의 고독을 앓고 있음을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pg 87)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이 작품이 정말 50여 년 전에 나온 작품이 맞는가, '이경'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50여 년 전의 여성 캐릭터가 맞는가 하는 점이었다.

물론 쓰인 단어나 말투는 결코 요즘의 언어가 아니고, 다른 인물들의 생각 역시 구태의연한 옛날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그녀가 보여주는 태도나 삶에 대한 자세, 특히나 탁월한 '어장관리' 능력(그녀는 유부남을 포함, 총 세 남성의 마음을 흔든다.) 등 요즘 MZ 세대라 하더라도 손색이 없을 만큼 독특한 솔직함을 가진 캐릭터였다.

나는 내가 도저히 견제할 수 없는 여러 갈래의 많은 '나'의 제멋대로의

아우성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아우성들을 간추린다거나 억누를 생각 같은 건 해본 적도 없이

그 아우성들에게 나를 조금씩 나누며 빙빙 어지럽게 맴을 돌고 있을 뿐인 것이다.

(pg 201)

그녀가 보여주는 독특한 삶의 태도의 근원적인 이유는 중반 이후에나 드러나게 되지만 초반부터 짐작하기 어려운 부분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살상 행위는 그 살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예리한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언제 사망자 대열에 합류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살아남은 자 특유의 부채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좌절스러운 현실 속의 청춘으로서 그녀는 세상에 저주를 퍼붓기도 하고 희망을 가져보기도 하며 죽고 싶기도 하고 살고 싶기도 한 양가적인 감정들을 느낀다.

사실 우리 모두 누구나 조금씩은 '이렇게 살아 뭐 하나'라는 자아와 '그래도 열심히 살아 봐야지'라는 자아가 끊임없이 부딪히며 살아간다.

전쟁은 그 모든 갈등을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바꿔놓을 뿐이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평화를 바라고 있지만 그렇게는 안 될걸.

전쟁은 누구에게나 재난을 골고루 나누어주고야 끝나리라.

절대로 나만을, 혁이나 욱이 오빠만을 억울하게 하지는 않으리라.

거의 광적이고 앙칼진 이런 열망과 또 문득 덮쳐오는 전쟁에 대한 유별난 공포.

나는 늘 이런 모순에 자신을 찢기고 시달려, 균형을 잃고 피곤했다.

(pg 49)

그러고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곧이어 살고 싶다로 고쳤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두 상반된 바람이 똑같이 치열해서 어느 쪽으로도 나를 처리할 수 없다.

(pg 225)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감정은 절망도, 희망도 아닌 권태의 감정이었다.

생존 이외의 가치는 전부 무의미한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 시대,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면서도 그 안에 저마다의 권태를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땐 맴을 돌고, 커가면 술을 배우고.

사람들은 원래가 똑바로 선 채 움직이지 않는 세상이

권태롭고 답답해 못 견디게 태어났나 봐."

(pg 380)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예상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물론 워낙 유명한 작품이어서 기억나진 않지만 예전에 줄거리 요약 따위를 읽었던 적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강렬한 문장들을 눈으로 서서히 곱씹으면 배어나는 독특한 맛에 이끌려 끊임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제는 역사 저편으로 박제된 '옥희도'의 그림처럼 잊혀가는 시절의 이야기지만 그 안의 인간적인 삶과 고뇌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도 현실적으로 보일 것이다.

늦은 만남이었지만 지금이라도 이 작품을 만나게 되어 다행한 마음으로 다음 책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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