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자 시리즈 세트 - 전3권 - 수확자 / 선더헤드 / 종소리 수확자 시리즈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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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드라이'라는 작품을 통해 긍정적인 인식이 박힌 작가인데 최근에 수확자 시리즈로 불리는 3권짜리 작품이 나와서 읽어보게 되었다.

시리즈지만 시리즈 자체 제목은 없고 각 권마다 별도의 제목이 붙어있어 편의상 수확자 시리즈라 부르겠다.

작품은 '선더헤드'라는 울트라 AI가 인류의 모든 지식을 흡수한 뒤 사회의 필요를 예측해 생산과 분배 등 사회의 모든 운영을 도맡아 하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인류의 한계점이었던 질병과 죽음, 사고까지도 모두 극복되어 사람들은 '회춘'이라는 절차를 통해 원하면 언제든 20대의 몸으로 계속해서 돌아갈 수 있다.

다만 지구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우주로 나가는 것은 계속해서 실패했으며 인간의 수명은 불멸이라는 설정인지라 지구의 인구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혹시라도 인류의 수명을 무한대로 늘리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주에 식민지도 하나 건설하지 못하는지 궁금하다면 3권에서 모든 의문이 해결되니 의문을 유지한 채 쭉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 역할만은 AI에게 맡길 수 없었기에 '수확자'라는 계층을 두어 인구수를 관리하고 있다.

사망 시대의 인간은 얼마나 속이 좁고 위선적이었는지,

생명을 끝내는 자들은 혐오하면서도, 자연은 사랑했다.

그 시절에는 태어난 모든 인간의 목숨을 다 앗아간 그 자연을 말이다.

자연은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자동적인 사형 선고라 여겼고,

지독히도 한결같이 죽음을 가져왔다. 우리가 바꿨다.

우리는 이제 자연보다 더 큰 힘이다.

(1권, pg 238)

모든 수확자들에게는 일정 기간 동안 수확해야만 하는 할당량이 주어지지만 그 실행 방법 자체는 전적으로 수확자의 자유에 따르며 모든 수확자들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10가지 계명 외에는 그 어떤 법에도 구속받지 않는다.

각 수확자들은 개인의 도덕적인 기준이나 과거의 사망 통계를 활용하는 등 각자의 기준에 맞추어 수확을 행한다.

여기에도 수확자 제도가 창시될 시절의 엄격함과 청렴함을 올곧게 추구하는 일명 '보수파'와 자신들이 새로운 시대의 신과 같은 존재라며 온갖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수확 자체를 즐거움으로 삼는 일명 '신질서파'가 있다.

1권은 엄격한 보수파인 한 수확자가 평범했던 소년(로언), 소녀(시트라)를 수확자 수습생으로 거두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종의 사건 이후로 시트라는 보수파 중 한 명의 수습생이, 로언은 신질서파 수장의 수습생이 된다.

체제의 안녕을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달라지면서 이 둘의 궤적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2권의 제목이 세계를 관리하는 AI의 이름인지라 이 AI가 실은 모든 일의 배후였다는 식상한 전개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을 법한데, 다행이라면 그런 접근법은 취하고 있지 않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언급하면, 저자가 선더헤드와 수확령 사이의 관계를 굉장히 절묘하게 잘 설정해두었기 때문에 선더헤드는 직접적으로 인류의 탄생과 죽음에 관여할 수 없다.

1권에서 세계관과 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면 2권에서는 보수파에서 신질서파로 힘의 위계가 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음파교라는 사이비 종교가 초반부터 등장하는데, 2권까지는 그저 농담처럼 등장하는 집단이지만 3권에서부터는 이야기에 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3권의 제목인 '종소리' 역시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음파교의 지도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너는 끔찍한 사람이야." 선더헤드가 말했다. "너는 훌륭한 사람이야."

"뭐야, 어느 쪽이야?" 그레이슨이 물었다.

그러나 똑같이 희미하게 들려온 응답은 답변이 아니라 또다른 질문이었다.

"어째서 둘 다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지?"

(3권, 475)

죽음과 질병이 극복된 세상, 누구나 일을 하지 않아도 굶어죽을 염려를 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펼쳐져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세상이라면 우리가 지금의 감정과 정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내 목숨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할 수 있고, 증오할 수 있으며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행복할 수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좌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거세된 세상에서 저자는 오히려 타인의 목숨을 거두어야 하는 수확자들이야말로 그나마 인간적이라 부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들이 목적을 위해 더 분투했다고 믿는다.

그들은 시간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죽을 운명이었던 이들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모든 것을 미룰 수 있다.

죽음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라 예외가 되어 버렸기에.

(1권, pg 432)

전반적으로 매우 재미나게 읽었다.

물론 하드 SF는 아니기 때문에 약간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개인적으로 바로 이전에 읽은 SF 소설이 '삼체'라서 그렇게 느꼈을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세계관도 굉장히 매력적이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개성이 잘 살아 있다.

총 3권이지만 페이지로는 1800페이지 정도라서 그리 짧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3권의 초반 전개가 다소 지지부진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전개도 빠르고 이야기에 군더더기도 없었다.

결말 역시 찜찜한 요소 없이 모두가 흡족할 만한 결말이어서 다 읽고 나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미 영화화가 진행 중이라는데, SF지만 배경이 아주 미래적인 느낌은 아니기 때문에 CG보다는 배우들의 액션 연기가 더 중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시트라 역에 '헤일리 스타인펠드'가 딱일 것 같은데 과연 누가 나올지 궁금하다.

영화 역시 3부작으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작품이어서 모쪼록 원작의 재미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제대로 만들어져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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