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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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상하게 들릴 테지만 오로지 책을 읽고 싶어서 휴가를 낼 때가 있다.

그런 날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보람이 큰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약간 두꺼운 책이었지만 휴가 낸 것이 아깝지 않게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작품은 두 여성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언니를 잃은 초보 작가와 자살로 아버지를 잃은 영화감독.

자살을 모티브로 한 영화로 이미 유명세를 얻은 감독은 다음 작품으로 15년 전에 한 마을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에 주목하고, 그 마을 출신인 작가와 함께 사건에 숨겨진 전말을 함께 추적한다.

어린 시절에 그 마을에 살았던 것을 제외하면 전혀 접점이 없던 두 사람이지만 사건을 파헤쳐 감에 있어서 그 이상의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여성의 시각을 오가며 진행된다.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가 있는데 초반에는 이 상처들이 현재까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조금씩 드러난다.

특히 소중한 누군가가 자살로 세상을 떠난 경험은 큰 상처로 남는다.

유족들은 그 죽음에 내 책임이 있지는 않은지 한참을 죄의식에 시달린다.

나 역시 친동생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 터라 인물들의 심정에 적잖이 공감할 수 있었다.

부모로부터의 학대 역시 상처의 큰 축을 이룬다.

아이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의 처벌이라는 극단적인 관심 속에 발생하는 학대와 방치와 외면이라는 극단적인 무관심 속에 발생하는 학대가 모두 다루어진다.

개인적으로도 아이를 키우는 아비다 보니 나는 아이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고, 아이 눈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체념하면 울 기력조차 없어지는 것일까.

그래도 역시 가슴으로는 울부짖었을지 모른다. 도와줘. 나 좀 도와줘, 하고.

그럴 때 누가 손을 내밀면, 손가락 끝으로 신호를 보내고,

서로를 격려하는 상대가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곧 생명의 은인 아닌가.

(pg 185)

두 사람과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였던 사건이 실은 두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작품이 마무리되는데, 일가족 살인 사건이라는 끔찍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말이 꽤나 해피엔딩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 모두 소중한 사람이 떠난 이유가 본인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결말이어서 책을 덮으면서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인식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실제로 발생한 일은 사실,

거기에 감정이 더해지면 진실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재판에서 공표되는 내용은 사실뿐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공평하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의 행동에는 반드시 감정이 따르잖아요.

그 감정을 배려할 필요가 있으니 재판에서 판가름하는 것도 그 진실이어야 마땅할 탄데,

과연 그게 진짜 진실일지."

(pg 252)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흡인력이 좋아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사건의 베일이 한 꺼풀씩 천천히 벗겨지는 편이지만 지루한 느낌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매력이 있었다.

저자의 책은 처음 접했는데 이미 국내에도 소개된 작품이 적지 않아서 곧 저자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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