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블로거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무리 유명한 작품이라 하더라도 과제처럼 느껴지는 책을 읽고 싶지는 않아서 세월이 좀 지난 문학 작품들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작품들에 손이 가려면 계기가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새로운 판본의 등장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내용이 같다 하더라도 철 지난 폰트와 디자인의 책과 깔끔하고 산뜻한 신형 판본의 책은 독서 경험의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가져온다.
그런 의미에서 거장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이 예쁜 표지로 재출간된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일단 책을 펼 때 기분이 좋다.
옅은 녹색 계열로 표지는 물론이고 책배 부분까지 통일된 색채여서 눈이 편안하다.
폰트도 크고 간격도 넉넉해 400페이지 정도로 얇지 않은 책임에도 읽는데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부담으로 나가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저자가 픽션임을 반복하여 주장하긴 했으나, 저자의 개인적 역사가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는 것이 정설이고 사실상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면 조상 중 누군가는 필히 저자와 비슷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품은 6.25 전쟁이 막바지에 달할 무렵, 미군 PX에서 기념품용 초상화를 그려 판매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화자는 '이경'이라는 젊은 여성으로 미군들을 상대로 그림 의뢰를 받아 화가(책 속 표현으로는 '환쟁이')들에게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옥희도'라는 화가가 새로 들어오게 되고, 그녀는 다른 '환쟁이'들과는 무언가 질적으로 다른, 그만의 고독을 품고 있는 듯한 그에게 끌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