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넛지 - 치밀하고 은밀한 알고리즘의 심리 조작
로라 도즈워스.패트릭 페이건 지음, 박선령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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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라는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대한민국에서도 가히 '신드롬'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개인적으로도 당시가 HRD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여서 모든 기업들이 마케팅에 넛지를 도입할 지점은 없는지 교육을 통해 찾고자 하는 시도가 유행처럼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넛지'라는 단어는 그대로 써도 굳이 뜻을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일반화된 것 같다.

이 책은 그러한 '넛지'가 우리의 일상에 너무도 많이 도입되어서 되려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것들도 덩달아 늘고 있다는 통찰을 기반으로 한다.

행동과학자와 저널리스트인 저자들은 이렇게 사람들의 정신과 행동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해로운 넛지들을 통틀어 '다크 넛지'라 부르고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그야말로 '넛지'에 대한 온갖 사례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총 20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다른 방식의 '다크 넛지'를 소개하고 이를 회피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를 정리해 주고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는 데 더 능숙하다.

연구에 따르면 지능은 '헛소리' 능력과 관련이 있으며,

똑똑한 사람은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더 크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하는 데 능하므로

사기를 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결론에 도달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그에 대한 명분을 잘 찾아낸다.

(pg 108)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인터넷 포털이나 쇼핑몰 사이트 등 온라인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매장에 퍼지는 특정한 향이 우리의 지갑을 더 잘 열도록 만들기도 하고, 들리는 음악에 따라 주문하는 와인의 가격이 달라지기도 하는 등 가장 원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오감마저도 마케팅의 힘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물론 SNS를 비롯한 영상 매체의 파괴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저자들과 문화권이 달라서인지 이 부분에서 재미난 시각 차이를 발견했는데, 저자들은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 제고나 폭력에 반대하는 메시지, 성소수자 인식 개선 등 결과적으로 볼 때 긍정적이라 평할 수 있는 개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상징이나 음모론 관련 내용들은 '진지하게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생경한 느낌마저 들었다.

음모론을 예로 들면, 저자들은 음모론에도 모종의 진실이 숨어있을 수 있으니 섣불리 '음모론'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다.

즉 메시지에 상관없이 사람들의 인식이나 행동을 교정하려는 시도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시지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넛지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가장 좋은 게 뭔지 알고 있다는 가정에 근거한다.

'넛지'라는 용어를 창안한 캐스 선스타인의 말처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면

그들이 자신과 가족, 사회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것을 더 쉽게 선택하도록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pg 291)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의견은 아니었다.

이미 있는 매체로 사회를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 나는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역사를 통해 국가기관에 소위 '통수'를 맞아본 경험은 어느 국가에나 있을 테니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아직도 지구는 평평하며 모든 우주 지식들은 나사의 농간이라고 믿는 음모론에도 모종의 진실이 숨어 있을 수 있으니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다.

워낙 충고들이 많아서 다 기억하기도 어려울 정도지만, 큰 줄기는 비슷비슷하다.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나에게 도달하는 쉬운 정보들은 되도록 경계하고 책이나 서면 등 적극적으로 곱씹고 이해할 수 있는 정보 위주로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해결책은 '다크 넛지'를 마치 '마술'과 같이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우리의 눈을 현혹하는 마술사들의 공연은 모르고 볼수록 재미가 있다.

예전에 마술에 숨겨진 트릭을 알려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마술들은 더 이상 청중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접하는 정보 중 어떤 것들이 '다크 넛지'일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도달하는 정보들이 '다크 넛지'이기 쉬운지를 미리 알고 있다면 여기에 현혹될 확률이 극적으로 낮아진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주제의식과 다양한 사례가 넘쳐나는 책이다.

다만 문장들이 영 한눈에 들어오는 맛이 덜한데, 이는 번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원문 자체가 좀 장황한 느낌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책답게 불과 1-2년 전의 최신 사례까지도 포함하고 있어서 지금 읽기에 최적인 책임에는 틀림없다.

산에 틀어박혀 '자연인'으로 살아도 넘쳐나는 매체의 홍수를 온전히 피할 수는 없다.

게다가 우리에게 도달하는 정보에 얼마나 진실이 담겨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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