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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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멸종'이라는 단어에 '찬란하다'라는 수식어가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인간의 경제 활동이 곧 기후 위기를 낳았고 기후 위기가 여러 생물의 멸종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우리는 멸종이라는 단어에 책임감을 느끼며 기필코 막아야 하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지구상에 다섯 번의 대멸종이 존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절멸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현재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고, 그리고 각각의 대멸종마다 최상위 포식자는 멸종의 길을 걷게 되는데 현재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는 바로 우리 인간이라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지난 다섯 차례 대멸종의 원인은 자연이었다. 당시 생명은 속수무책이었다.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 인류세의 원인은 무엇인가? - 중략 -

오로지 당신들 인류의 소행이다. 그러니 해결법도 간단하다.

당신들만 변하면 된다.

(pg 111)

저자는 수 천, 수 억년 전에 있었던 다섯 차례의 대멸종 이야기를 여러 존재의 시각으로 들려준다.

때로는 범고래였다가, 때로는 티라노사우루스였다가, 때로는 작은 삼엽충이었다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시간 순서대로 집필된 것도 아니다.

옴니버스 식 만화를 보는 것처럼 각각의 생물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본 진화와 멸종, 또 다른 종의 출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지난 대멸종의 계기는 지진이나 운석, 화산 폭발 등 자연재해에 따른 급격한 환경 변화였다.

대멸종 이후에는 생물의 약 95%가 절멸하는데, 이때의 95%란 100마리 중에 95마리가 죽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100종의 생물 중 5종만 살아남는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한다.

즉 그 살아남은 5종 중에서도 극소수만 살아남을 정도의 충격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는 인간의 짧은 삶에 비추어 볼 때에 너무도 길기 때문에 그 혹독한 절멸을 겪고서도 새로운 생명들이 다시금 태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번성하게 된다.

인간이 초래한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만약 인간이 절멸하게 된다 하더라도 또다시 지질학적 수준의 유의미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우리의 자리를 차지할 그 어떤 생물체가 출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되돌아보며 나는 자연의 근본적 진리, 즉 진화와 변화는 필연적이며

변화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룡의 등장은 단순히 힘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들의 등장은 지속적인 지구 생태 변화의 한 부분이었다.

지배적인 조건에 잘 적응한 생물이 챔피언이다.

모든 시대에는 새로운 챔피언이 등장한다.

이제 그들의 시간이 왔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게 자연의 순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pg 230-231)

결국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이미 지구는 지금의 온난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던 적도 있었고 그때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생물들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생물의 조상들이다.

최근에 경험하고 있는 극심한 기후 위기에 우리는 '지구를 걱정한다'라고 표현하지만 실상 지구는 이 정도의 변화쯤 우습게 버텨낼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이 여섯 번째 대멸종을 과연 막을 수 있을지, 기어이 막지 못한다면 그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을지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 지구가 포용할 수 있는 척추동물의 양은 정해져 있다.

가축과 인류가 늘어나자 야생동물이 살 수 있는 곳이 줄어들었다.

즉 야생동물의 수와 종이 줄었을 뿐이지 지구에 살고 있는 동물의 생물량은 그대로다.

(pg 111)

참고로 "응~ 난 화성 가면 그만이야~"라고 말할 것만 같은 한 인물이 떠오른다면, 이 책의 저자는 단호하게 화성으로의 이주는 실패로 끝날 것이라 말한다.

단기적으로 지구의 생물을 이동시킬 수야 있겠지만 지구 내부의 금속성 물질이 자전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자기장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견해는 과학자마다 다를 것이라 생각되지만, 화성으로의 이주가 가능한 수준의 기술력과 자원이라면 지구의 문제 해결에 쓰는 것이 현명하다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됐든 지구의 입장에서는 특정 종의 멸종과 탄생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죽음은 그 자체로 순환을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대상이 우리 자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죽음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발달, 유지, 적응을 촉진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정교하게 프로그램된 세포의 자멸은 세포의 생명 주기를 조절하며, 보다 넓은 개념의 죽음은 유전자 변이와 자연 선택에 의한 생명의 영속과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생명의 능력은 지구 생명체의 복잡성과 회복력의 원천이다.

(pg 324)

저자가 한 유튜브에 나왔던 영상을 보고 읽게 된 책인데, 과연 그만큼 재미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 순서는 좀 지켜주었더라면 이해가 더 쉬웠을 것 같은데, 어찌 됐든 시간 순으로 외우는 공부법에 싫증을 느낄 독자들의 시각에서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자료도 풍부하고 설명도 쉽기 때문에 중학생 이상만 되어도 누구나 읽을 수 있을 책이며 내용도 상당히 훌륭해서 널리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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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종말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3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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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벌써 세 번째 접하는 저자의 책이다.

300페이지 중반 정도로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에 무려 열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편집이다.

표지를 열면 저자의 멋진 서명과 함께 '자본주의 타파하고 지구를 지킵시다 투쟁'이라는 문구가 친필로 적혀있다.

아직 빨갱이 감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라 피 끓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포문을 여는 작품은 '지향'이라는 작품으로 다양한 '성적 지향' 중에서도 '무성애자'에 관한 이야기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여러 소수자들의 이야기들이 버무려져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이쪽으로 공부를 많이 했나 보다' 정도의 감상 이외에 서사적으로는 큰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살짝 실망감이 찾아올 때쯤 읽게 된 두 번째 작품인 '무르무란'은 신석기 시대쯤 될 때의 인류를 상상해 본 작품으로 죽음과 죽음을 먹는 괴물이라는 판타지적인 요소와 사냥과 도구 제작, 동굴 벽화라는 현실적인 소재들이 만나 상당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할 때에는 모계사회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는데, 이 작품 역시 모계로 이어지는 지식과 문화의 전수를 주제로 삼고 있다.

저자가 페미니즘적 작품을 많이 쓰긴 하지만 그런 소재들이 서사의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고 오히려 매력적인 장치로 작용하고 있어서 읽는 맛이 좋았다.

두 번째 작품부터 재미가 올라오기 시작할 때쯤 만나게 되는 '개벽'은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에 빠지는 사람들이 어떤 심리로 그렇게 되는지를 짧은 이야기 안에 잘 녹여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수록작 중 가장 재미있었는데, 실제로 가족 친지 중 다단계에 빠져 큰일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던 터라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표제작은 성소수자라는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를 사이보그라는 SF의 가장 전형적인 소재와 버무려낸 작품이다.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그런 사람에게 어느 날 거대 네트워크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라며 온전한 사이보그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어떨까?

외로움에 굴복하기보다 그 외로움이야말로 진짜 인간을 만드는 요소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한자리에 같이 있더라도, 심지어 신체가 접촉하고 있을 때에도

한 인간은 다른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감각을 완전하게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몸속에 갇혀있고 그것이 실존적 고립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언제나 실존적 거리가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실존적 거리 때문에, 실존적으로 고립된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각자 고유하다는 것이다.

(pg 153, '작은 종말' 中)

그 밖에도 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희생된 자들의 기억을 세대를 넘어 전달하는 이야기인 '증언', 군대와 감시 기술로 자유를 빼앗긴 사회에 맞서 결연한 투쟁의 의지를 이어가는 자매의 이야기인 '행진'이라는 작품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얼마나 쉽게, 또 악랄하게 억압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또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에 대한 이야기인 '은둔자의 영혼', 외계인의 시각으로 지구인의 모순을 보여주는 '통역', 지식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인프라인 도서관에 대한 찬양이 돋보이는 '도서관 물귀신', 엄연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싸다'라는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낙인'까지, 모든 작품들에서 힘이 없어 당해야만 했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인물들을 통해 지금의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모순들을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저자의 작품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단편집이어서 호흡이 그리 길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읽고 나면 한참 동안 여운을 곱씹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저자의 단편집이 몇 권 더 있지만, 이제는 저자의 장편에도 손을 뻗을 시기가 된 것 같다.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많아서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작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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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미 공작소의 입체 가게놀이 종이와 창의력이 만나는 띠부띠부 도안집 2
아르미 박사 지음 / 시대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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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인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 아이들은 줄고 있다지만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의 가짓수는 나날이 늘어만 가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들은 생각보다 장난감의 가격이나 품질에 그리 민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른의 찌든 눈으로 보면 비싸고 기능 많은 장난감이 아이들의 최애 장난감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낸 조잡한 장난감을 더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토이스토리4'에서도 '보니'가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이 '포키'였다는 점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우리 딸도 그래서인지 스스로 자르고 붙여서 인형 놀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도안 놀이집을 정말 좋아한다.

이 책 역시 배송이 오자마자 아빠 고맙다며, 빨리 저녁 먹고 만들자며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인형 놀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총 일곱 가지나 들어 있다.

놀이의 배경이 될 장소 역시 마트, 편의점, 분식집, 젤리 가게 등 아이들이 좋아하면서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익숙한 장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배경과 캐릭터 모두 코팅지로 코팅한 후 한 땀 한 땀 자르고 붙여서 완성해야 한다.

따라서 가위, 테이프, 코팅지 정도는 필수로 준비해야 하고, 넓은 박스 테이프와 양면테이프까지 있다면 더 좋다.

딸아이가 워낙 이런 놀이를 좋아하는지라 모든 준비물이 구비되어 있어서 바로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제작 방법이 책 초반에 상세한 그림과 함께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초등학생 정도라면 옆에서 조금만 도와줘도 뚝딱뚝딱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를 제대로 완성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리 딸의 원픽은 휴게소였다.

본가가 꽤 거리가 있는 편이라 본가에 갈 때면 항상 휴게소를 한두 번쯤 들르게 되는데 그때마다 맛있는 간식을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아이가 휴게소 가는 것을 꽤나 좋아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소떡소떡도 소품에 포함되어 있어서 더 좋아했다.



각각의 아이템마다 가격도 책정되어 있어서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돈 계산을 해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점도 좋았다.

쓰레기가 상당히 많이 나오는 놀이인지라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아이가 워낙 좋아하니 부모로서 말릴 도리가 없다.

차분하게 종이를 자르며 인내심과 집중력을 기르기에도 좋은 취미이니 아이와 함께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면 추천해 주고픈 책이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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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가장 우연하고 경이로운 지적 탐구 서가명강 시리즈 37
천명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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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여러 학문들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서가명강' 시리즈 중 하나로 이 책에서는 '인간동물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하고 있다.

인간이면 인간이고 동물이면 동물이지 인간동물학은 또 뭔가 싶었는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고찰하고 인류와 동물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동물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단순히 최근의 식단에서 육류가 포함되지 않은 적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태초부터 동물을 섭취하도록 진화한 우리는 점차 동물의 노동력도 이용하게 되었고, 동물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할 수 있게 되자 동물을 한 식구처럼 집 안에서 돌보게 되었다.

이처럼 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주로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쓰느냐, 즉 동물의 쓰임 위주로 생각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매우 상황적이고 맥락적이다.

그래서 종 차이를 기반으로 인간종과 동물종을 나누어 일반적으로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종의 전체적인 특성 외에 어떤 한 인간과 어떤 동물 개체 간의

개별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것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pg 48)

즉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를 단순히 주인과 반려동물로만 설정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길고양이의 경우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불쾌한 동물일 수도 있고, 들고양이의 경우 멸종 위기종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는 무자비한 포식자로 비추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인간과 동물을 굳이 종이나 쓰임으로 구별하지 말고 같은 생명체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이 동물 복지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분절된 관계 안에서 우리는 동물을 존재 그대로 보기보다는

기능과 필요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

그런 이유로 현대 사회에서 동물의 물건화와 상품화는 가속될 수밖에 없다.

(pg 125)

과거에 비하면 동물 복지에 대한 시각이 꽤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개 패듯 한다'라는 관용구가 있을 정도로 개는 화풀이의 대명사 격이었지만 요즘 함부로 개를 때렸다가는 인터넷 여론을 뜨겁게 달구게 될 것이다.

마트에만 가도 '동물 복지'라는 단어가 붙은 축산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비용이 올라가기는 하지만 동물을 괴롭게 하면서 생산되는 축산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점차 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물론 동물 복지라는 것이 인간의 먹고사는 일에 우선하기는 어렵다.

저자 역시 경제적, 사회적으로 발전된 국가일수록 동물에 대한 복지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는 도시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그럼에도 동물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도시는 동물의 본성과 어긋나는 지점이 너무 많아 동물에게 온전히 행복한 환경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반대한다.)

동물에 대한 폭력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기 쉽기에 동물에 대한 폭력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설명도 공감이 된다.

다만 워낙 개론적인 내용뿐이어서 어떤 방향으로 동물 복지가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구체적인 생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물론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일독할 가치가 충분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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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이타주의자 -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 앞서가는 사람들
슈테판 클라인 지음, 장혜경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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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출판사 증정

뭔가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주제의 자기개발서 같은 제목이지만 인류가 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자연과학 책이다.

저자는 생물물리학자로서 인류가 이타주의라는 개념을 발달시키게 된 이유를 과학적으로 풀어가고 있다.

사실 자연 상태에서는 자신의 생존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의 유전자 역시 우리를 통해 지속되는 불멸의 꿈을 꾸기 때문에 유전자 수준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하도록 우리의 정신과 행동을 통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인류가 보여주는 다양한 이타적 행동들은 오랫동안 미스터리였고, 진화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사회화의 산물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진화는 사회의 진화와 더불어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지금 우리가 보여주는 다양한 양상의 이타성 또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차근차근 논증하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단순한 협동과 이타성을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협동은 그저 단일 개체로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다른 개체들과 함께함으로써 이뤄내고 그 결실을 나눠갖는 과정이다.

동물 수준에서도 이러한 협동의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고, 그 결과가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개체에게 긍정적이라면 그 행동은 강화되는 쪽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물론 협동의 결과가 정의롭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동물 수준에서는 사냥에 지대한 공을 세운 개체가 먹이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다른 개체들이 배려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협동은 얼마든지 진화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타성은 다르다.

인류는 때론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는 수준에서까지 타인을 돕는, 심지어는 인간도 아닌 다른 동물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거는 행동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동물들은 먹이를 먹을 때 그 먹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식탁에 오르게 될 동물이라 하더라도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타성은 분명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만의 특징임에 틀림없다.

이타주의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학술적 정의에 따르면 타인을 위해 아주 사소한 이익을 포기하기만 해도

이미 이타적인 행동이다.

(pg 28)

저자는 먼저 인류가 보여주는 이타적인 특성이 문화권에 구예받지 않고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즉 이타성이 사회화의 산물이라면 이렇게 보편적으로, 동시대적으로 발달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인류는 어떻게 이타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하게 되었을까?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은 물론 뇌일 것이다.

우리는 뇌의 발달로 우리의 사고력이나 창조력과 같은 이성적인 측면만 발달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성적인 측면도 함께 발달했다.

처음에는 협동으로 시작한 공동체 생활에서 점차 이타성이 발현하기 시작한 데에는 노인과 어린아이, 사냥 중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을 돕기 위한 과정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개체들은 자신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라는 분명한 사실과 생활하면서 언제든지 치명적으로 다칠 수 있다는 위험을 깨닫게 되면서 그러한 행동들을 장려하는 문화도 생겨났을 것이다.

그렇다는 의미는, 타인의 고통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잘 배려할 줄 아는 개체가 결국 성 선택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이 진화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빠르게, 쉽게 타인과 협력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 중략 -

친절과 온순, 봉사정신 같은 성격적 특성들이 탄생한 이유는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진화의 경쟁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pg 159)

이 과정에서 인류는 자신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이기적인 개체를 본능적인 수준에서 꺼리는 경향도 함께 발달시키게 되었다.

특히 공동체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기적인 개체에 대한 사회적 처벌이 없다면 공동체 자체가 와해되기 쉽다는 실험 결과는 우리의 현대 사회에서 준법정신으로 대표되는 시민의식이 왜 중요한지를 상기시켜 준다. (이기적인 개체가 많은 집단일수록 공동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때문에 집단 간의 갈등에서 도태되기 쉽다는 논리적인 귀결에 이르게 된다.)

타인을 위해 얼마나 헌신할지는 감정이입보다는 타인의 목적과 동기를 해석하는

능력에 달렸다. 이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타인을 이해하기 힘든 사람은 이기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항상 자기 이익만 따지는 것은 정서적 편협함을 넘어 정신적 편협함의 한 형태인 것이다.

(pg 121)

몇 년 전부터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은 곧 지능이 낮은 것이다'라는 개념이 인터넷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데, 이 책에 따르면 단순히 지능이 낮은 정도가 아니라 진화 자체가 덜 된 것이라 보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진화된 현 인류는 기술 발전이 거듭되면서 처음 내집단 사이에서만 발현되던 이타심의 경계를 전 세계 범위로 넓혀가고 있다.

비단 마이클 잭슨의 노래 가사에서뿐 아니라 지구 어느 한 곳에서 재앙이 일어나면 전 세계에서 구호의 손길을 내밀어 기꺼이 자신의 몫을 나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국경을 넘어 서로 나누며 살고 있다.

여러 문화와 대륙이 함께 성장하기에, 먼 거리는 이미 의미를 잃었기에,

지식이 가장 값진 생산재가 될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런 세상에서 제 잇속 차리기에 바쁜 사람은 분명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pg 340)

저자의 책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이후로 두 번째 접하게 되었는데, 이번 책 역시 과학적 사실들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어서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면서도 양질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다만 검수의 문제인지 비문이나 오타가 꽤 많이 보이는데, 차기 판본에서는 보다 세심한 검수를 기대해 본다. (인터넷 서점을 보면 나 말고도 이 부분을 지적한 리뷰가 있으므로 꼭 검수를 다시 해서 이 좋은 내용의 책이 단순한 편집 실수 때문에 외면받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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