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자유주의 - 우리를 병들게 하는 낙인
김동춘 지음 / 필요한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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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이 색깔론은 선진국의 우익 세력이 표방하는 인종주의의 한국적 버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인종주의의 균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종주의와 같은 비이성적인 차별화의 논리는 지역주의와 색깔론으로 

주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주의와 색깔론은 상대방과의 대화의 길을 완전히 차단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것들은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입지가 어려워지면 언제나 이 무기를

사용하게 된다. (pg 42-43)



일상에 지쳤다는 핑계로 가벼운 문학작품들만 간간히 읽어왔던 나를 다시 본래의 독서 습관으로 돌아오게 만든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와 안면이 있는데, 저자가 일개 직원이었던 나를 기억할지는 모르겠으나 내 입장에서는 학교 안 팎으로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던 터라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집었다.


'우리를 병들게 하는 낙인'이라는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저자는 비판적인 사회과학자로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배했던 이념인 반공자유주의가 우리의 정치 현실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일목요연하고 간결하게 분석하여 제시하고 있다.


가장 먼저 '반공자유주의'라는 단어가 가진 모순적인 의미부터 설명하고 있다.

'반공'과 '자유'라는 두 단어가 합쳐져 있지만 실상은 전자에 그 무게중심이 쏠려 있고 반공을 위해서 필요한 자유만을 옹호하는 것이

한국에서 관찰되는 반공자유주의의 실체라는 것이다.


즉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자유'를 지키자는 법이 실제로는 '자유'를 탄압하는 법률이 될 때 그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 그러한 사회에 필요한 인간형,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에 대한 성찰이 완전히 결여된 

가장 천박하고 타락한 자유주의, 즉 '붉은 세력'에게 몽둥이를 가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와 억압적 기구를 환영하는 '자유주의'인 것이고, 

편법과 몽둥이를 자유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pg 28-29)


이러한 반공자유주의는 여러 독재자들을 거치며 꾸준히 성장해 지금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혹자는 '요즘 세상에도 반공을?'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3대 언론사를 꼽으라면 누구에게나 이견없이 꼽히는 언론사들은 여전히 이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반공자유주의의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저자는 언론을 지적한다.

수출 규모의 지속적인 확대와 BTS, 오징어게임 등 경제적, 문화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있다고 평가되는 대한민국이지만, 

언론의 신뢰도만 놓고 보자면 아직도 한참 후진국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문구들에서 저자의 언론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공공성을 지닌 언론이 아니라 입지가 좁아진 극우반공주의의 정치선전지와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우익 매체들은 40년대 말의 서북청년단, 50년대의 김창룡, 6-70년대의 군부와 공안 기구, 80년대의 5공 정권과 안기부가 

했던 '위대한', '역사적 역할'을 마무리하고 있는 셈이다. (pg 44)


이제 분단과 군사 정권의 일방적 지원과 보호 속에서 자라나 부를 축적하고 막강한 여론 주도력을 가진 보수 매체들이 '말의 지배'를 

구사할 수 있는 시점이 되자 이들이 정부의 세무 조사를 정치 탄압으로 맞받아치는 논리로서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는 모습은 

한국에서 자유의 이념이 어디까지 희극적인 모습을 지닐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pg 46)


당연히 반공자유주의를 부르짖는 쪽이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이므로 이 책의 주된 비판의 화살은 보수 세력을 향해 있다.


한국의 우익들이 보여 주는 "'국가'와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들은 무조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는 곧 30년대 독일과 일본,

50년대 남한과 미국에서 나타난 '광신적 반공주의'에 다름 아니다. - 중략 -

또한 이 논리에는 '국가'를 지키자는 것 외에, '국가의 무엇을 어떻게 지키자'는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한국의 우익에는 이념이나 사상이 없다.

그들에게 일관된 것이 있다면 그냥 '공산주의 반대'거나 그렇지 않으면, 친미, 친자본, 반노동, 반북한으로 집약해볼 수 있다. (pg 25)


하지만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진보 세력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인 정치 스펙트럼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굉장히 오른쪽으로 쏠려 있다.

때문에 대통령과 여당 의석을 그렇게나 많이 몰아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이 기대하는 만큼의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거의 빈사상태였던 국민의힘이 다시 힘을 되찾고 차기 대선에서 위협적인 상대로까지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저자 역시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다음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활동을 평가한 아래의 문단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그 결과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개혁 과제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단순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복원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완성도 어렵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정치 개혁, 비례대표의 확대를 포함한 

선거법 개혁도 추진했으나 민주당의 기득권 고수 전력으로 좌초되었다.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에 거의 사활을 걸었으나 도중에 그치고 말았으며, 재결 개혁, 조세 개혁, 연금 개혁, 금융 개혁, 언론 개혁, 

교육 개혁 등은 거의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pg 119)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대한민국이 진정한 '자유주의'가 포함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pg 115)


대체로 위의 단계들은 순차적으로 발전되어 가는데, 특히 정치적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한 대한민국은 각 단계가 중첩되어 진행되고 있다.

아직도 근대(1) 단계에서 진행되었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는 만큼 진정한 자유주의의 회복이 무엇보다 급한 과제라는 것이 핵심이다.


자유주의의 빈곤이야말로 오늘의 한국 정치나 한국 사회가 이렇게 뒤틀리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지만, 

과거나 현재나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은 이러한 점을 외면하면서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고 개탄하는 일을 타성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pg 47)


물론 대통령 후보들이 어떤 정책에 대해 의지를 갖고 있고, 선거 캠프에서 그것을 공약으로 입안했다고 해서 

그것이 당선 이후 곧바로 정책으로 실행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거론도 되지 않았거나 후보들 간에 큰 쟁점이 되지 않았던 정책안이 입법화되거나 실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략-

그러나 대통령 후보나 정당, 사회 세력이 아무리 어떤 사안에 대해 소신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선 국면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의제와 

제기되지 못하는 의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정치의 플랫폼, 이데올로기 지형, 이후 유권자가 될 국민 일반의 인식과 관점이 주는 

제약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정치 이데올로기 지형을 반공자유주의가 지배한다. (pg 134)


다소 딱딱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지만 전체적인 길이가 130페이지 정도로 짧은 편이며 폰트도 크고 중간중간 사진 자료도 많이 있어서

읽기에 부담스러운 책은 아니었다.

원래 이쪽(?) 성향인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새롭다거나 놀라운 시각은 아니었지만 짧은 길이로 잘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다만 이 점이 이러한 책들에게 갖는 필연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데, 책의 주요 독자층이 나처럼 애초에 이 책과 비슷한 생각을 

이미 갖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점이다.

책이 목표한 바를 이루려면 원래는 이런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이 책을 읽음으로써 변화되어야 하지만, 

생각이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공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표지만 보아도 읽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출판사 이름도 '필요한책'인데, 분명 필요한 책은 맞지만 널리 읽히는 책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하간 곧 있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잠시나마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제공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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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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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학 작품 읽기에 빠져있는 것 같다.

이번에는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이다.

일본에서는 미스터리 소설로 여러 차례 입상한 유명 작가라 하고 단편집이라 읽는 데 부담도 적을 것 같아 선택하게 되었다.


제목부터 강렬한 느낌이다.

그 아래에 '소외된 여성을 표현한 그림이다'라고 적혀 있는 듯한 그림이 있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는 그 중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이다.


작가 소개에 '인간 내면의 어둠을 단정하고 서늘한 필치로 담아내는 작가'로 소개되어 있는데 다 읽고 나니 

과연 적확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다섯 작품 모두 미스터리물 답게 죽음을 소재로 삼고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다섯 작품이 각각 배경이나 사건의 느낌은 굉장히 이질적인 반면, 심리적으로 핀치에 몰린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책을 다 읽고서 작가가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소외된 여성의 감성을 짧은 소설 안에 잘 녹여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첫 작품인 '용서를 바라지 않습니다'에서는 일본 지방의 베타적인 문화 때문에 평생을 고통에 시달린 여성이 등장한다.

작품의 화자는 외손자와 그의 애인인데, 외할머니의 비극적인 삶에 담긴 마지막 반전에 머리를 한 방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략 작품당 60-70 페이지 정도로 분량이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반전을 계속 주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미스터리 하면 역시 반전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재미있을 책인 것 같다.(물론 나도 정말 재밌게 읽었다.)


다섯 작품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을 아역배우로 키워준 할머니를 살해하려고 하는 손녀의 이야기(고마워, 할머니)와

육아에 지친 한 여성이 결국 아동 학대를 저지르는 이야기(언니처럼)는 그 반전이 정말 인상 깊었다.

'인상 깊었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반전이 물론 허를 찌르는 느낌도 있었지만 섬뜩할 정도로 무섭기도 했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만큼 무서운 것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반전이었다.


요즘 문학을 자주 접하는 이유가 비문학에 치중되어 있던 독서 습관을 좀 바꿔보려는 의지도 있었지만, 

사실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이 줄어든 탓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덕분에 이렇게 또 한 명의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쁜 마음이 든다. 

단편인지라 인상깊은 구절이 있진 않았지만 문장들이 마음에 드는 편이라 작가의 장편을 접한다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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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최고의 엄마 아빠인지 알려 줄까? - 아주 특별한 엄마 아빠들,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자연 속 탐구 쏙 2
레이나 올리비에.카렐 클레스 지음, 스테피 파드모스 그림, 김미선 옮김 / 상수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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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동물들이 그려진 책이라면 일단 좋아하는 편이다.

이미 집에 동물 도감이 많은 편이어서 더는 증식시키지 않으려 했는데 이 책은 전에 봤던 '내가 왜 커다란지 알려줄까?'가 

너무 좋았어서 왠지 시리즈로 갖고 싶은 욕심이 났다. 


 


전작과 작가들이 동일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컨셉은 비슷하다.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얕게 알려주기 보다는 소수의 동물들을 아이들 눈에 맞춰 최대한 상세히 알려주는 것이 목적인 책이다.

기본적인 생태와 습성은 물론이고 서식지와 천적 정보까지 해당 동물에 대해 아는 척 하고 싶다면 알아야 할 정보들은 

다 갖추고 있는 느낌이다. 


전작이 압도적인 사이즈를 자랑하는 동물들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양육에 특화된 동물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어린 개체가 무력한 것은 어지간한 생물군이라면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일텐데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어류나 곤충처럼 어린 개체 수를 엄청나게 늘려서 압도적인 숫자로 희생되는 개체 대비 생존률을 확보하는 형태가 있을 것이고, 

포유류나 조류처럼 부모 개체가 어린 개체를 일정 수준 성장할 때까지 돌보는 형태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후자인 부모 개체가 어린 개체를 열심히 돌보는 9가지 동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읽어보면 다 신기한 동물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캥거루의 양육 방식은 정말 독특한 것 같다.

특히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포유류들은 어린 개체와 어른 개체의 크기 차이가 그렇게 극심하진 않은데, 

캥거루 새끼는 2센티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하니 다 크면 어지간한 성인 키만한 동물이라고 쉽게 생각되지 않아서 더 신기했다.


특이하게도 도감 형식의 책이지만 사진 대신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사진보다 당연히 현실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만큼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에 적합한 그림이 실려져 있다.

비록 동물 그림이지만 부모와 자식이 따뜻하게 함께 살아가는 그림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르게 되는 것 같다. 


제목에 최고의 '엄마, 아빠'라고 강조한 이유인지 수컷이 알을 돌보는 황제펭귄이나 흰동가리 등이 같이 소개되어 있다.

사실 자연상태에서는 암컷이 새끼를 키우는 비중이 훨씬 클 것이다. 

그거라도 넣어줌에 감사하며 인간 애비는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줘야겠다.


 


새끼를 돌보는 동물에게도 그렇겠지만 사람에게 부모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물론 부모에게 자식도 그렇다.

아동용 서적이지만 아이와 함께 책을 보면서 그 단순한 진리를 새삼 다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끝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쓴 글이지만 내용이 좋았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아이들에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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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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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재능의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의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 (pg 395)



개인적으로 이렇게 단기간에 같은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재미'라는 측면에서 탁월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쉽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두꺼운 것처럼 보여도 막상 읽기 시작하면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장면들만 지속되면서도 줄거리의 긴장감은 유지되기 때문에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주는 부담감이 별로 없다. 

요즘처럼 뭔가 정신적, 심리적으로 지쳐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별로 책 읽고 싶다는 생각이 잘 안들게 되는데 

그럴 때 책장에 있으면 유용하게 읽히는 책이 바로 작가의 작품들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이신지 아버지가 은퇴 후 당근마켓에서 작가의 책이 뜨면 꼭 사다 두시는 바람에 한동안 읽을 거리 걱정이 없어졌다.)

이 책 역시 그의 작품 답게 시종일관 지속되는 긴장감과 군더더기 없는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줄거리를 언급하기에 앞서 소설의 중요한 배경으로 신세 개발이라는 기업에서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특정 운동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유전자 패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패턴을 가진 젊은이로 여성 스키 유망주인 카자미와 남성 스키 유망주인 신고가 등장하며 이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도록

기업에서 지원과 연구를 해주고 있었다. 

이 연구의 책임자인 유즈키라는 학자가 본 작품의 핵심적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주축이다. 


그리고 줄거리 진행에 핵심적인 세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스키 유망주 카자미의 아버지인 히다 히로마사는 일본에서 잘 나가던 스키선수였다. 

어린 딸을 키우던 아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홀로 딸을 키웠다. 

그의 딸 역시 스키에 재능을 보여 히다는 선수 은퇴 후 아이의 코치 역할을 자처한다. 

하지만 곧 자신의 아이라고 믿고 키우던 딸이 친딸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된다. 


한 기업의 사장인 가미조 노부유키에게는 불치병에 걸려 골수이식이 반드시 필요한 아들이 있다. 

그리고 히다의 딸이 사실은 잃어버린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은밀히 접근하려 한다. 


전직 산악가였던 도리고에 가쓰야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아들인 신고를 키우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는 아들이 음악가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돈을 위해 신세 개발에서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육성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카자미와 가미조가 함께 탈 예정이었던 셔틀버스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설치한 장치로 사고가 발생한다.

카자미는 우연히도 버스에 탔다가 내려 화를 면했지만, 버스에 타고있던 가미조는 중상을 입는다.

이 사고가 누구를 노린 사고였는지, 왜 이들을 노렸는지를 밝혀내는 것, 그리고 여기에 얽힌 카자미의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저자답게 책의 제목이 상당히 직설적인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히다는 뻐꾸기의 알을 대신 키우는 새처럼 

자신의 친딸이 아닌 카자미를 헌신적으로 길러 낸다.

하지만 작가는 뻐꾸기 알을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재능을 빗대는 표현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재능의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의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 (pg 395)


"그런데 그 뻐꾸기 알은 내 것이 아니야. 신고 것이지. 

 신고만의 것이야.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고. 유즈씨 씨 당신 것도 아니지."(pg 396)


추리물의 형태를 띄고 있긴 하지만 재능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과연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과 일치하는 것일까?

내가 잘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사람은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스토리에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정리해보면, 카자미의 경우 재능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해서 비교적 안정적인 커리어를 밟을 수 

있었던 반면 신고는 결국 스키판을 떠나게 된다. 

이 점에서 작가는 재능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각기 처한 위치와 상황이 다른 세 명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부성애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알고도 '키운 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히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고 싶어 타인의 손에 길러진 딸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고자 했던 가미조, 

경제적인 조건 때문에 자식이 꿈을 포기해야 했던 것을 후회하는 가쓰야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각기 다른 모습의 아버지상을 잘 엿볼 수 있었다. 


다만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떡밥 회수 같은 것들에서 보이는 개연성이 아주 치밀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스포라 자세히는 못적겠지만 결말까지 모두 읽어도 왜 그 인물이 이런 행동을 했었을까 궁금점을 남기는 인물도 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페이지 이상의 적지 않은 두께를 읽으면서 지루함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이 작품 역시 재미만큼은 

확실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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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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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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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pg 204)



작가의 책은 '소년이 온다' 이후로 두 번째 접하게 되었다.

전에 접한 작품 역시 읽을 때는 몰입해서 읽은 것 같은데 서평을 남기지는 않았었다.

뭔가...정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읽을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는데 막상 책을 덮은 후 이 책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감이 잘 안잡힌다.

그 어떤 현학적인 비문학, 이론서보다도 나는 이런 문학 작품의 감상을 남기는 일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평을 쓰지 않은 책은 금방 머리에서 휘발되기 때문에 읽은 감각이 아직 남아있을 때 한자라도 남겨보려 한다.


작가가 시간 차를 두고 쓴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이라는 세 편의 연작소설이라 하는데, 

읽는 입장에서는 어차피 한 권으로 묶여져 있으므로 한 작품 속 세 챕터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다. 


줄거리는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의 가정 폭력, 남편으로부터의 정서적, 육체적 폭력에 시달리던 영혜는 어느 날 갑자기 꾼 꿈 하나에

극단적인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 여인의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관찰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인의 남편 시점으로 전개되는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가 채식을 시작하면서 겪는 갈등과 주변 사람들의 당혹감이 그려진다.

(사실 '채식을 시작했다'라는 표현 보다는 '육식을 단호하게 거부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적합해 보인다.)

영혜가 채식의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 역시 영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그것이 가부장적인 모습의 폭력이든, 모성애라는 모습의 애정이든 영혜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은 바람만이 보여질 뿐이다.  


이어지는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몸에 작은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말에 기묘한 예술적 영감과 성욕을 느낀 형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형부는 미디어 아트 예술가로 소개되는데, 육식을 거부하던 영혜는 형부에게 떠오른 영감이 곧 인간을 식물로 표현하는 것이어서 

영혜 자신도 형부 작품의 일부가 되기를 기꺼이 자청한다. 


"그런데 이거, 물로 씻으면 지워져요?"

마치 그것만이 궁금하다는 듯 그녀는 물었다. 한손으로 자신의 가슴께를 가리킨 채였다.

"쉽게 지워지진 않을 거야. 몇차례 씻어내야 완전히..."

그의 말을 자르며 그녀가 말했다. 

"안지워지면 좋겠어요." 그는 잠시 망연해져, 어둠에 반쯤 덮인 그녀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pg 108-109)


'몽고반점'에서 결국 마지막 선을 넘은 영혜와 형부를 목격한 영혜 언니의 시점으로 '나무 불꽃'이 진행되며 이야기는 결말로 치닫는다.

자신의 남편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동생을 꼬드겨 포르노를 찍었다는 사실에 절망한 언니는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만 같다는 근거 없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그 저녁, 영혜의 말대로 그들이 영영 집을 떠났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까.

그날의 가족모임에서, 아버지가 영혜의 뺨을 치기 전에 그녀가 더 세게 팔을 붙잡았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까.

영혜가 처음 제부를 인사시키려 데려왔을 때, 어쩐지 인상이 차가워 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육감대로 그 결혼을 그녀가 만류했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까.

그렇게 그녀는 영혜의 운명에 작용했을 변수들을 불러내는 일에 골몰할 때가 있었다.

동생의 삶에 놓인 바둑돌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헤아리는 일은 부질없었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pg 192)


육식을 거부하다 결국엔 자신이 식물이 되겠다며 물 이외 그 어떤 음식도 거부하는 영혜를 보며 언니는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그녀 역시 가부장적인 부모에게 자라고 가정에 무관심한 남편과 살면서 진짜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타인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으로만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아예 정신을 놓아버린 동생과 가까스로 타인의 시선에 맞춰가는 자신 중 누가 더 불행한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pg 204)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결국 영혜를 가장 많이 이해한 존재로 그려진다.

결말쯤 가서는 동생의 생명을 살리고 싶지만, 폭력에 대한 극한의 저항으로 자신이 가진 동물성을 버리고 식물이 되고자 하는 

동생을 일면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하간 정신나간 등장인물들에 정신나간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뛰어난 문장력 덕분인지 끝날 때까지 책을 내려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어렵다는 점 역시 부정하기 어려웠다. 

무엇이 어려운가? 

문장이 이해가 안된다거나 스토리가 어렵다는 건 전혀 아니다.

그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뭘 말하고 싶었을까?' 이것을 파악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가부장적인 남성의 폭력과 그로 인한 폐해를 알리고 싶었을까? 

육식에 수반되는 폭력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까?

한 사람의 정신적인 변화를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들마저 외면하는 현시대의 가족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어느 것이든 너무 가볍고 단편적인 이해가 아닌가 하는 걱정에 서평을 남기기가 다소 꺼려졌다.

하지만 가벼운 이해든 무거운 이해든 내가 이해한 바가 중요하니 일단 남겨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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