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자유주의 - 우리를 병들게 하는 낙인
김동춘 지음 / 필요한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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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이 색깔론은 선진국의 우익 세력이 표방하는 인종주의의 한국적 버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인종주의의 균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종주의와 같은 비이성적인 차별화의 논리는 지역주의와 색깔론으로 

주로 나타나고 있다. 지역주의와 색깔론은 상대방과의 대화의 길을 완전히 차단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것들은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입지가 어려워지면 언제나 이 무기를

사용하게 된다. (pg 42-43)



일상에 지쳤다는 핑계로 가벼운 문학작품들만 간간히 읽어왔던 나를 다시 본래의 독서 습관으로 돌아오게 만든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와 안면이 있는데, 저자가 일개 직원이었던 나를 기억할지는 모르겠으나 내 입장에서는 학교 안 팎으로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아있던 터라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집었다.


'우리를 병들게 하는 낙인'이라는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저자는 비판적인 사회과학자로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배했던 이념인 반공자유주의가 우리의 정치 현실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일목요연하고 간결하게 분석하여 제시하고 있다.


가장 먼저 '반공자유주의'라는 단어가 가진 모순적인 의미부터 설명하고 있다.

'반공'과 '자유'라는 두 단어가 합쳐져 있지만 실상은 전자에 그 무게중심이 쏠려 있고 반공을 위해서 필요한 자유만을 옹호하는 것이

한국에서 관찰되는 반공자유주의의 실체라는 것이다.


즉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자유'를 지키자는 법이 실제로는 '자유'를 탄압하는 법률이 될 때 그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추구하는 사회의 모습, 그러한 사회에 필요한 인간형,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에 대한 성찰이 완전히 결여된 

가장 천박하고 타락한 자유주의, 즉 '붉은 세력'에게 몽둥이를 가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와 억압적 기구를 환영하는 '자유주의'인 것이고, 

편법과 몽둥이를 자유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pg 28-29)


이러한 반공자유주의는 여러 독재자들을 거치며 꾸준히 성장해 지금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혹자는 '요즘 세상에도 반공을?'이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3대 언론사를 꼽으라면 누구에게나 이견없이 꼽히는 언론사들은 여전히 이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반공자유주의의 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저자는 언론을 지적한다.

수출 규모의 지속적인 확대와 BTS, 오징어게임 등 경제적, 문화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있다고 평가되는 대한민국이지만, 

언론의 신뢰도만 놓고 보자면 아직도 한참 후진국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의 문구들에서 저자의 언론에 대한 실랄한 비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공공성을 지닌 언론이 아니라 입지가 좁아진 극우반공주의의 정치선전지와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우익 매체들은 40년대 말의 서북청년단, 50년대의 김창룡, 6-70년대의 군부와 공안 기구, 80년대의 5공 정권과 안기부가 

했던 '위대한', '역사적 역할'을 마무리하고 있는 셈이다. (pg 44)


이제 분단과 군사 정권의 일방적 지원과 보호 속에서 자라나 부를 축적하고 막강한 여론 주도력을 가진 보수 매체들이 '말의 지배'를 

구사할 수 있는 시점이 되자 이들이 정부의 세무 조사를 정치 탄압으로 맞받아치는 논리로서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는 모습은 

한국에서 자유의 이념이 어디까지 희극적인 모습을 지닐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pg 46)


당연히 반공자유주의를 부르짖는 쪽이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이므로 이 책의 주된 비판의 화살은 보수 세력을 향해 있다.


한국의 우익들이 보여 주는 "'국가'와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들은 무조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는 곧 30년대 독일과 일본,

50년대 남한과 미국에서 나타난 '광신적 반공주의'에 다름 아니다. - 중략 -

또한 이 논리에는 '국가'를 지키자는 것 외에, '국가의 무엇을 어떻게 지키자'는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한국의 우익에는 이념이나 사상이 없다.

그들에게 일관된 것이 있다면 그냥 '공산주의 반대'거나 그렇지 않으면, 친미, 친자본, 반노동, 반북한으로 집약해볼 수 있다. (pg 25)


하지만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진보 세력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인 정치 스펙트럼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굉장히 오른쪽으로 쏠려 있다.

때문에 대통령과 여당 의석을 그렇게나 많이 몰아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이 기대하는 만큼의 개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거의 빈사상태였던 국민의힘이 다시 힘을 되찾고 차기 대선에서 위협적인 상대로까지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저자 역시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다음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활동을 평가한 아래의 문단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그 결과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개혁 과제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단순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복원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완성도 어렵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정치 개혁, 비례대표의 확대를 포함한 

선거법 개혁도 추진했으나 민주당의 기득권 고수 전력으로 좌초되었다.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에 거의 사활을 걸었으나 도중에 그치고 말았으며, 재결 개혁, 조세 개혁, 연금 개혁, 금융 개혁, 언론 개혁, 

교육 개혁 등은 거의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pg 119)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대한민국이 진정한 '자유주의'가 포함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pg 115)


대체로 위의 단계들은 순차적으로 발전되어 가는데, 특히 정치적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한 대한민국은 각 단계가 중첩되어 진행되고 있다.

아직도 근대(1) 단계에서 진행되었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는 만큼 진정한 자유주의의 회복이 무엇보다 급한 과제라는 것이 핵심이다.


자유주의의 빈곤이야말로 오늘의 한국 정치나 한국 사회가 이렇게 뒤틀리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이지만, 

과거나 현재나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은 이러한 점을 외면하면서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고 개탄하는 일을 타성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pg 47)


물론 대통령 후보들이 어떤 정책에 대해 의지를 갖고 있고, 선거 캠프에서 그것을 공약으로 입안했다고 해서 

그것이 당선 이후 곧바로 정책으로 실행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거론도 되지 않았거나 후보들 간에 큰 쟁점이 되지 않았던 정책안이 입법화되거나 실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략-

그러나 대통령 후보나 정당, 사회 세력이 아무리 어떤 사안에 대해 소신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선 국면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의제와 

제기되지 못하는 의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정치의 플랫폼, 이데올로기 지형, 이후 유권자가 될 국민 일반의 인식과 관점이 주는 

제약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정치 이데올로기 지형을 반공자유주의가 지배한다. (pg 134)


다소 딱딱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지만 전체적인 길이가 130페이지 정도로 짧은 편이며 폰트도 크고 중간중간 사진 자료도 많이 있어서

읽기에 부담스러운 책은 아니었다.

원래 이쪽(?) 성향인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새롭다거나 놀라운 시각은 아니었지만 짧은 길이로 잘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다만 이 점이 이러한 책들에게 갖는 필연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데, 책의 주요 독자층이 나처럼 애초에 이 책과 비슷한 생각을 

이미 갖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점이다.

책이 목표한 바를 이루려면 원래는 이런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이 책을 읽음으로써 변화되어야 하지만, 

생각이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공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표지만 보아도 읽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출판사 이름도 '필요한책'인데, 분명 필요한 책은 맞지만 널리 읽히는 책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하간 곧 있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잠시나마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을 제공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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