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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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재능의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의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 (pg 395)



개인적으로 이렇게 단기간에 같은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재미'라는 측면에서 탁월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쉽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두꺼운 것처럼 보여도 막상 읽기 시작하면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장면들만 지속되면서도 줄거리의 긴장감은 유지되기 때문에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주는 부담감이 별로 없다. 

요즘처럼 뭔가 정신적, 심리적으로 지쳐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별로 책 읽고 싶다는 생각이 잘 안들게 되는데 

그럴 때 책장에 있으면 유용하게 읽히는 책이 바로 작가의 작품들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이신지 아버지가 은퇴 후 당근마켓에서 작가의 책이 뜨면 꼭 사다 두시는 바람에 한동안 읽을 거리 걱정이 없어졌다.)

이 책 역시 그의 작품 답게 시종일관 지속되는 긴장감과 군더더기 없는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줄거리를 언급하기에 앞서 소설의 중요한 배경으로 신세 개발이라는 기업에서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특정 운동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유전자 패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패턴을 가진 젊은이로 여성 스키 유망주인 카자미와 남성 스키 유망주인 신고가 등장하며 이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도록

기업에서 지원과 연구를 해주고 있었다. 

이 연구의 책임자인 유즈키라는 학자가 본 작품의 핵심적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주축이다. 


그리고 줄거리 진행에 핵심적인 세 명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스키 유망주 카자미의 아버지인 히다 히로마사는 일본에서 잘 나가던 스키선수였다. 

어린 딸을 키우던 아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홀로 딸을 키웠다. 

그의 딸 역시 스키에 재능을 보여 히다는 선수 은퇴 후 아이의 코치 역할을 자처한다. 

하지만 곧 자신의 아이라고 믿고 키우던 딸이 친딸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된다. 


한 기업의 사장인 가미조 노부유키에게는 불치병에 걸려 골수이식이 반드시 필요한 아들이 있다. 

그리고 히다의 딸이 사실은 잃어버린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은밀히 접근하려 한다. 


전직 산악가였던 도리고에 가쓰야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아들인 신고를 키우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는 아들이 음악가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돈을 위해 신세 개발에서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육성되는 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카자미와 가미조가 함께 탈 예정이었던 셔틀버스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설치한 장치로 사고가 발생한다.

카자미는 우연히도 버스에 탔다가 내려 화를 면했지만, 버스에 타고있던 가미조는 중상을 입는다.

이 사고가 누구를 노린 사고였는지, 왜 이들을 노렸는지를 밝혀내는 것, 그리고 여기에 얽힌 카자미의 출생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저자답게 책의 제목이 상당히 직설적인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히다는 뻐꾸기의 알을 대신 키우는 새처럼 

자신의 친딸이 아닌 카자미를 헌신적으로 길러 낸다.

하지만 작가는 뻐꾸기 알을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재능을 빗대는 표현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재능의 유전자란 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의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지." (pg 395)


"그런데 그 뻐꾸기 알은 내 것이 아니야. 신고 것이지. 

 신고만의 것이야.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고. 유즈씨 씨 당신 것도 아니지."(pg 396)


추리물의 형태를 띄고 있긴 하지만 재능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과연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과 일치하는 것일까?

내가 잘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사람은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스토리에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정리해보면, 카자미의 경우 재능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해서 비교적 안정적인 커리어를 밟을 수 

있었던 반면 신고는 결국 스키판을 떠나게 된다. 

이 점에서 작가는 재능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각기 처한 위치와 상황이 다른 세 명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부성애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알고도 '키운 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히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고 싶어 타인의 손에 길러진 딸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고자 했던 가미조, 

경제적인 조건 때문에 자식이 꿈을 포기해야 했던 것을 후회하는 가쓰야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각기 다른 모습의 아버지상을 잘 엿볼 수 있었다. 


다만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떡밥 회수 같은 것들에서 보이는 개연성이 아주 치밀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스포라 자세히는 못적겠지만 결말까지 모두 읽어도 왜 그 인물이 이런 행동을 했었을까 궁금점을 남기는 인물도 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페이지 이상의 적지 않은 두께를 읽으면서 지루함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이 작품 역시 재미만큼은 

확실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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