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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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재미'다.

글을 읽으면서 흐름을 따라가는 재미.

그런 면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작품을 만났다.

이미 많이 알려진 작가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예상컨대 앞으로 꽤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소설은 정신적으로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사회화가 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남자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어느 날 중학교 동창이었지만 안면은 없었던 한 여성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녀가 과거에 아주 유명한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딘가 뒤틀린 구석이 있는 그녀에게 빠져들면서 그는 과거의 그 미궁 같았던 사건을 추적하게 된다.

책의 분류가 추리소설인 만큼 밀실 살인 사건의 진범을 알아가는 것이 책의 핵심이겠지만 사실 진범은 책의 중반쯤이 지날때쯤 대충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인물이 진범이라는 것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이..아니겠지..설마..'하는 마음으로 사건의 전말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무슨 내용이 나올지 궁금해서 책을 쉽게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사실 사건의 전말이나 흐름이 예상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이 재미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든 느낌은 '음울함'이었다.

이 책은 시종일관 음울함이 지배한다.

소설의 화자가 과거에 불행한 기억을 가진 어딘가 음울한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그 음울함 자체가 그가 이 사건을 접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네가 그 사건을 궁금해하는 이유를 알려줄까?

그 사건의 깊은 곳에서, 그 수수께끼의 깊은 곳에서, 자네 자신을 보고 있지?

자신 속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분이 기묘하게도 그 사건에 반응을 하지?

그 사건의 진상에 가까이 다가가면 자신 속의 그 정체 모를 부분도 해명된다는 듯이.

언젠가 자신을 망가지게 할 터인 자네 자신의 핵심을."

(pg 67)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불행한 기억이 전혀 없는 사람의 삶을 상상할 수가 없긴 하지만 어린 시절 잠깐이라도 불행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딘가 한구석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알 것이다.

그 느낌이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쭉 이어진다.

그런데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그 느낌을 안다면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읽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생은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당연한 얘기죠.

다시 일어 설 수 없는 인생 따위 없어요. 문제는 내게 그럴 마음이 없다는 거예요.

다시 살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게 아니라."

(pg 81)

책 뒤편에 실린 역자 후기에 작가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너무 감명 깊게 읽어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언급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정작 '인간실격'에서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이 책에서 매력을 느꼈던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은 내 스스로의 답은 이렇다.

'인간실격'에서의 음울함이 끝이 없는 음울함, 즉 스스로의 삶을 끝내지 않는 한 멈출 수 없는 음울함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 속 음울함에는 극복에 대한 열의가 숨어 있다.

소설의 화자는 물론이고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여성 역시 자신의 음울함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남은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작품 속에서 충분히 느껴진다.

역자 해설에서 이를 '위악'이라는 단어로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해석보다는 나 자신이 내린 결론이 더 마음에 들어서 이를 남겨두고 싶다.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요소 중 어디 한구석이 망가졌다는 것을 '자각'한 개인은 더 이상 구제불능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는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개인이라 할지라도 구제불능인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 책의 화자와 그가 만난 여성은 서로를 구제해 주었다.

작품은 별다른 에피소드 없이 열린 결말처럼 끝이 났지만 나는 그들이 여생을 다른 사람처럼 충분히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세계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다.

누가 죽건 누가 살건, 별다를 것 따위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pg 221)

이 작품이 2011년에 있었던 일본의 대지진 사건 이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거대한 자연재해를 겪은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인간의 어두운 면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을 살고 싶어 했다.

이러나저러나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는다.

밀실 살인사건이라는 추리소설의 겉옷을 입었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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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묻힌 곳 일본문학 컬렉션 3
에도가와 란포 외 지음, 안영신 외 옮김 / 작가와비평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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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은 읽는데 부담이 없어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거나 관심 있는 주제가 나오면 찾아보는 편인데, 이 책은 화려한 저자 라인업이 돋보였다.

일본의 추리소설이 꽤 유명하고 인기도 많은데 일본 소설 중에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책들이 꽤 된다.

그 상의 주인공인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아직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아서 이 책을 통해 읽어보고 싶었다.

그의 작품 외에도 인간실격으로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까지 실려있다고 해서 기대가 컸다.

다른 세 명의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 작가들이라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는 기회였다.

첫 시작은 에도가와 란포의 'D언덕의 살인 사건'과 '심리 테스트'라는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아케치 고고로'라는 명탐정이 등장한다.

이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본 책에 실린 두 작품 외에도 꽤 되는 모양이다.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중 '아케치 고고로'에서 따온 이름이 들어있을 정도로 지금까지도 일본 탐정물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작품이라 한다.

1920년대에 나온 작품이어서 지금 읽으면 추리소설로서는 '그냥 평범한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이러한 추리소설 장르의 시작을 열었다는 것이 이 작품의 의의일 것이다.

이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아내 죽이는 법'과 '비밀'이 실려있다.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는데 단편이지만 몰입도가 상당해서 작가의 장편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내 죽이는 법'은 특이하게도 두 사람의 대화로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짧은 길이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치밀한 전개를 보여주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으로는 '범인'이라는 단편이 실려 있다.

돈 문제로 가족을 죽이게 되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는 그리 재미있게 읽지 못했던 '인간실격'보다 이 작품이 더 재미있었다.

'추리'나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죄를 짓게 되는 사람의 심리와 범행 후 행적들이 꽤나 현실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이 외에 사카구치 안고와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의 미스터리 단편 소설이 한 작품씩 실려있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 쪽은 그다지 취향이 아닌지 두 작품 모두 앞에 나온 작품들에 비하면 감흥이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분위기가 굉장히 독특해서 읽는 즐거움은 부족하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벚꽃이 만발한 숲에서'는 일본판 '전설의 고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오래된 작품들이 많아서 일본의 초창기 추리, 미스터리 작품들이 어떤 느낌인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이 장르의 작품과 작가가 끊임없이 나와주는 모양이다.

300페이지 정도로 얇고 작은 책이지만 여러 작가의 작품이 실려 있어서 읽는 재미는 충분했다.

굳이 장르소설의 팬이 아니더라도 일본 소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봄직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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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 -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걷는사람 에세이 16
이병철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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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녹을 먹는 입장에서 시간강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불편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원이지만 그만한 대우를 받고 있지도 않고 고용의 형태 역시 불안하다.

물론 시수도 적고 연구나 행정에 대한 부담도 적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정도의 임금 차이가 정당하냐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불편함을 더해주는 듯 시간강사이면서 배민 라이더를 뛰는 저자의 책이 나왔다.

책의 서두는 저자 자신의 자조로 출발한다.

내 얘길 듣고 속이 탄 엄마는 "공부를 그렇게 많이 했으면서 할 알이 그것밖에 없어?"

말했고, 나는 "공부를 많이 해서 할 일이 이것밖에 없는 거야" 대답했다.

(pg 14)

책은 담백하게 제목 그대로의 내용을 담았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배달을 뛰는 삶,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배달이 주업이 되고 수업과 글쓰기는 부업이 되어버린 삶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청승맞거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내용만 담고 있지는 않다.

작가가 나와 비슷한 연배인 듯한데 아직 독신이어서 그런지, 태생이 원래 긍정적인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 배달 일을 뛰는 자신에 대해 지나친 비하에 빠지거나 우울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지는 않았다.

(자녀가 있고 이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배달을 뛰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우울한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담겼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의 후반 '작가의 말'에서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페이소스 과잉이 될까 두려워' 책 쓰기를 망설였다는 고백이 있는데 이 점을 의식하며 쓴 덕분인지 책 자체가 마냥 우울하진 않다.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감정들이 충실하게 담겨 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 배달을 다니면서 겪게 되는 부조리한 일들, 배달기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한 씁쓸함,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들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감동까지 말이다.

게다가 작가가 시집을 두 권이나 출판한 시인이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문장들도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소개하고 싶은 구절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 중 추리고 추려서 몇 가지만 남겨 두려고 한다.

사이드미러에 차오르는 붉은 노을이 너무나 아름다워 한참 바라보았다.

신호를 기다리다 보니 누군가는 머리에 쟁반을 이고, 누군가는 리어카를 끌고,

또 누군가는 양손에 무거운 봇짐을 들고 횡단보도를 바삐 건너고 있었다.

다들 치열하게 살아가는구나.

저 노을은 수많은 이들의 성실한 생이 익어 가는 빛깔이겠지.

그래, 다시 달려 보자. 안 좋은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또 오겠지.

(pg 102)

시인의 감성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신호를 기다릴 때 주변의 차를 보며 '나랑 비슷한 나이인 거 같은데 뭘 해서 저렇게 좋은 차를 탈까'를 궁금해하는 나와는 사뭇 다른 감성을 보여준다.

밥 한 끼를 얻어먹은 감상도 아래처럼 멋있게 표현하고 있다.

사람의 일생이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온 세상을 떠돌아 헤매는 일이 아닌가.

나는 OO족발에서 그 밥 한 끼를 먹었다. 이만하면 성공한 생이다.

거나하게 취해 인사하고, 문 열어 밖에 나오니

봄바람에 실려 온 라일락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발레리의 시구를 외웠다.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겠다!"

(pg 122)

작가가 배달기사 일을 하면서 느낀 다양한 소회들이 짧은 글들에 담겨 있는데 이 중에서도 애주가인 나에게 너무나도 와닿는 글이 하나 있었다.

'소주 한잔하자'라는 글인데 이 부분은 전체를 다 인용하고 싶을 정도로 문장마다 명문이다.

소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슬플 때도 맥주 마시는 미친놈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소주에 대한 감상은 가슴속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소주는 눈물이다. 소주는 비틀거리며 마시는 술, 울면서 마시는 술, 나타샤를 기다리며 혼자 쓸쓸히 앉아 마시는 술, 빗물에 타서 마시는 술이다.

사업 망하고 생맥주 마신다는 사람 못 봤다.

실연당하고서 복분자주 마시는 미친놈도 못 봤다.

기쁜 날에 마시는 술은 소주 말고도 많지만 슬프고 괴로울 때는 오직 소주뿐이다.

(pg 166)

소주는 일단 싸다. 그리고 쓰다. 싸고 쓰다는 건 가성비가 좋다는 얘기다.

사람마다 주량 따라 다르겠지만, 두 병 3천 원이면 원만하게 슬픔과 합의가 된다.

한 병쯤 더 마시면 블랙아웃, 부활이 예정된 유사 죽음을 경험할 수도 있다. - 중략 -

소주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계속 썼고, 쓰고, 쓸 것이다. 나도 소주처럼 쓰고 싶다.

(pg 167-168)

사실 배달기사라는 직업이 인식이 좋은 직업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위험하기도 한데다 경제적인 보상 외에는 그리 얻을 것이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이렇게 멋진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짐작건데 작가의 시집들보다는 판매량이 제법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페이지 정도로 얇아서 금새 다 읽는데 다 읽고서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배달시켜 먹은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누구나 읽어도 공감할 만한 내용인데다 작가의 문장 자체가 정말 좋다.

좋았던 구절 중 서평 속에 담지 못한 구절들을 인용한다.

아래의 문장들이 마음에 든다면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스쿠터가 닿는 길들은 다 옛날로 이어져 있고, 거기엔 아직 내가 너무 많다.

담벼락에 기대 서 있고,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슈퍼에서 나오고, 술 취한 채 비틀거리고,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오다가, 더 오지 못한다.

시간이 멈춘 풍경에는 그 풍경에 갇혀 버린 사람이 보인다.

투명한 유리막 속에서 순간이 영원인 줄 아는,

한때 나였으나 이젠 내가 아닌 수많은 내가 길 위에 있다.

(pg 145)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욕심내도 되는 세상,

'건강'과 '행복'도 좋지만 더 크고 많은 것들을 원해도 되는 세상,

다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쯤은 반드시 이뤄져서

노력마다, 눈물마다 순수익이 늘어나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불법 상속과 증여, 투기, 탈세, 사기 등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거져먹는 자들,

남의 것 뺏어먹는 자들만 없어져도 우리 삶의 수익이 증대할 텐데,

그러면 건강과 행복은 이자처럼 따라붙을 텐데 말이다.

(pg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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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를 죽여라 - 온라인 극우주의, 혐오와 조롱으로 결집하는 정치 감수성의 탄생
앤절라 네이글 지음, 김내훈 옮김 / 오월의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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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책.

'Normies'라는 단어를 '인싸'로 번역한 제목인데 개인적으로는 옮긴이의 센스가 초월 번역 수준이라 생각한다.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일까 싶지만 부제를 보면 책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온라인 극우주의,

혐오와 조롱으로 결집하는 정치 감수성의 탄생

트럼프의 당선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 4chan과 reddit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결집한 극우 세력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베, 메갈, 가세연 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라고 보면 되겠다.

이들이 부상하게 된 계기는 당연한 말이지만 인터넷의 보급 덕분이다.

하지만 극우 세력의 집에만 인터넷이 보급된 것도 아닐 텐데 왜 좌우가 동등하게 성장하지 않고 극우 세력들만 유독 '눈에 띌'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을까?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좌파 사이버유토피아주의자들은 '분노가 네트워크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제도권의 전통적인 미디어는 더 이상 정치를 통제할 수 없고,

리더 없는 이용자 생산 소셜미디어에 기반한 새로운 공론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말한 그 네트워크라는 것이 분명 만들어지긴 했다.

하지만 이는 좌파가 아니라 우파가 권력을 잡는데 일조했다.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인터넷 중심의 네트워크를 물신화하며 그 외 다른 형태의 정치 행위를 모두 구태의 것으로 폄하했던 좌파는 '리더 없음'은 단지 형식일 뿐이며 그것이 철학적, 도덕적 혹은 개념적 내용에 관해서는 전혀 말해주는 바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pg 57)

오늘날 온라인 우파의 부상은 우파 정체성 정치가 승리를 거둔 결과이기도 하고, 1960년대 좌파의 반문화 및 위반의 형식들이 사회적으로 수용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pg 116)

말이 조금 어려운데, 내가 이해한 바를 정리하면 이렇다.

현재의 일베 등의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도전이나 반문화적인 행위들이 1960년대에는 좌파 세력들이 당시의 기득권이었던 우익 세력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때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좌파들이 이제는 새로운 기득권이 되자, 현재의 젊은이들은 정 반대 노선으로 그 전략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면서 그 물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이를 설명하면,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486세대가 이제 사회의 주축이 되자 그들을 '꼰대'로 보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들이 결집된 곳이 일베라고 보면 미국과 한국의 현실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탄생 배경이 이렇기 때문에 이들은 태생적으로 현재의 가치에 반하는 주장을 펴게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것은 안티페미니즘, 이민자 인권 무시, 인종차별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여성, 이민자, 흑인, 동양인 등이 백인 남성의 지위를 모두 빼앗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이 처음 세력을 형성할 무렵 좌파에서의 대응도 이들의 성장에 불을 붙였다.

이들을 그저 '교육이 덜 된' 존재로 치부하고, '공부하면 알게 된다'라는 식의 대응밖에 하지 못했던 것이다.

상징적 재현의 다양성과 이에 대한 인정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정체성을 지워버렸다'고 꾸짖었으며

[당신이] 백인, 이성애자, 남성, 시스젠더라면 그저 '듣고' '믿으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pg 140)

표적이 된 좌파와 우파 사이에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우파는 온갖 문제적 발언으로 더욱 폭주하는 반면,

좌파는 당혹스러워하거나 방어적이거나 변명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좌파로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까지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기 좌파 정치의 텀블러화가 초래한 지적 퇴행이

한동안 지속될 악영향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pg 157)

문제는 이러한 세력들의 활동이 표면적으로는 '유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애초에 일베도 '일간 베스트'라는 유머 게시판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모든 대상을 조롱한다.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좌파들이 이런 시도를 무조건적으로 용인하는 정도가 더 강했던 것 같다.)

우리가 기억하는 일베의 모습은 단식투쟁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폭식 행위나 전 대통령, 세월호 희생자 등 고인에 대한 비하 같은 행위를 일삼는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들은 그것 못지않게 자기 스스로를 조롱하는 활동에도 열심이다.

애초에 그런 커뮤니티에서 안티 페미니즘이 태동하게 된 계기도 자신들은 번식이라는 생물의 가장 근원적인 활동에서 배제된 존재들이라는 점을 활용한 유머에서 기인했다.

그러다 보니 전업주부를 취집이라 비하하거나 패미니스트를 쿵쾅이로 부르는 등 여성 혐오 단어들이 생겨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남성들 역시 퐁퐁남이다 뭐다 하면서 비하하는 컨텐츠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제목인 '인싸를 죽여야'하는 이유들이 태동하게 된다.

자신들이 잃은 것 혹은 잃었다고 믿는 것을 얻고 있는 자들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발현되는 것이다.

일부일처의 쇠퇴로 인해 달라진 성생활에서 엘리트 남성은 한층 더 넓은 성적 선택권을

쥐는 반면 그렇지 않은 대다수 남성 인구는 점점 더 독신주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자신의 낮은 지위에 대한 그들의 불안과 분노는 여성과 인종 문제를 향한

철저한 위계질서의 주장으로 이어졌다. - 중략 -

대안우파의 인종적 위계질서 정치는 이러한 인셀들의 사회로부터 배태됐다.

(pg 189)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이러한 현상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지적에서 멈춘다.

그저 '이들이 더 세력을 확장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도의 바람으로 결말을 맺고 있는 것이다.

사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이들을 강제적으로 없앨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니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아쉬운 결말이었다.

전반적으로 주제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는 주제지만 저자가 미국인이고 책에 실린 사례 역시 미국 사례뿐이어서 독서가 아주 즐겁지는 않았다.

게다가 역자가 미칠듯한 초월 번역 센스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문장 자체가 너무 길고 장황한데다 책의 대부분이 사례의 나열이어서 읽는 과정이 재밌다고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저자가 '얘네들이 이렇게 나쁜 짓들을 많이 한다니까요!'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외국인 독자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보다는 그런 사례를 통한 저자의 생각과 주장, 통찰을 더 읽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후반부에 '옮긴이의 말'이 있는데 이 부분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잘 담고 있어서 오히려 책 본문보다 이 부분이 더 좋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단순히 '옮긴이의 말'이라 하기엔 분량이 다소 많아 보일 정도로 역자가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차라리 역자가 우리나라의 사례로 이런 책을 쓰면 더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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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그래픽 노블) 동물 농장 (만화)
백대승 지음, 조지 오웰 원작, 김욱동 해설 / 아름드리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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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읽을 것이 넘쳐흐르는 시대에 같은 작품을 여러 번 읽게 되는 일은 흔치 않다.

이미 두 번에 걸쳐 서평을 써 본 동물농장이지만 이번 책은 뭔가 다르다.

바로 그래픽 노블로 발매된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고전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명작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다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표지를 보면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폴레옹이 보인다.

그리고 동물농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처음 책에서 이 구절을 읽고 받았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원작이 워낙 대단한 작품이기 때문에 작화를 담당한 사람이 되도록이면 원작의 흐름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한 것이 엿보인다.

만화책과 그래픽 노블의 경계가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픽 노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림이 단순하거나 유치한 느낌이 없어서 원작의 심각한 느낌을 잘 살린 것 같다.

등장인물들도 소설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이미지들과 대체로 잘 맞아떨어지게 캐릭터를 잘 살려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복서와 몰리는 책을 읽을 때 느꼈던 이미지가 그대로 인쇄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좋았다.

그림 소개도 할 겸 몇 페이지만 소개한다.

아래는 나폴레옹이 본격적으로 독재를 시작하는 장면이다.

독재에 반대하며 용감하게 발언해 보지만 나폴레옹의 곁을 지키는 호위대의 기세에 눌려 몸을 사려야 하는 한 돼지의 비참한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pg 90)

동물들이 혁명에 성공한 뒤 수립했던 7계명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나폴레옹의 독재가 심화되면서 그는 저 7계명 전부를 어기게 된다.

계명을 어길 때마다 문구를 수정하는데, 소설 속에서는 바뀐 문구를 동물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원래 이랬던가'라는 식으로 넘어가는데 이 책에서는 동물들이 바뀐 부분을 정확히 알고는 있지만 무서워서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하는 정도로 표현되어 있다.



(pg 45)

전반적으로 아주 흡족하게 읽은 책이다.

사실 동물농장이 스토리 자체도 중요한 책이긴 하지만 조지 오웰이 쓴 멋들어진 문장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한 작품이기 때문에 이를 그림으로 읽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픽 노블이라는 점이 심리적인 장벽을 많이 낮춰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은 물론이고 동물농장이 그저 옛날 작품이라 생각해 읽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엔 좋을 것이다.

그리고 원작을 이미 읽었던 사람들이라면 기억을 떠올리면서 컬러로 보기 좋게 그려진 그림들과 함께 감상한다면 더 좋은 독서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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