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를 죽여라 - 온라인 극우주의, 혐오와 조롱으로 결집하는 정치 감수성의 탄생
앤절라 네이글 지음, 김내훈 옮김 / 오월의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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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책.

'Normies'라는 단어를 '인싸'로 번역한 제목인데 개인적으로는 옮긴이의 센스가 초월 번역 수준이라 생각한다.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일까 싶지만 부제를 보면 책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온라인 극우주의,

혐오와 조롱으로 결집하는 정치 감수성의 탄생

트럼프의 당선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 4chan과 reddit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결집한 극우 세력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베, 메갈, 가세연 등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라고 보면 되겠다.

이들이 부상하게 된 계기는 당연한 말이지만 인터넷의 보급 덕분이다.

하지만 극우 세력의 집에만 인터넷이 보급된 것도 아닐 텐데 왜 좌우가 동등하게 성장하지 않고 극우 세력들만 유독 '눈에 띌'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을까?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좌파 사이버유토피아주의자들은 '분노가 네트워크가 되었다'고 주장하며 제도권의 전통적인 미디어는 더 이상 정치를 통제할 수 없고,

리더 없는 이용자 생산 소셜미디어에 기반한 새로운 공론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말한 그 네트워크라는 것이 분명 만들어지긴 했다.

하지만 이는 좌파가 아니라 우파가 권력을 잡는데 일조했다.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인터넷 중심의 네트워크를 물신화하며 그 외 다른 형태의 정치 행위를 모두 구태의 것으로 폄하했던 좌파는 '리더 없음'은 단지 형식일 뿐이며 그것이 철학적, 도덕적 혹은 개념적 내용에 관해서는 전혀 말해주는 바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pg 57)

오늘날 온라인 우파의 부상은 우파 정체성 정치가 승리를 거둔 결과이기도 하고, 1960년대 좌파의 반문화 및 위반의 형식들이 사회적으로 수용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pg 116)

말이 조금 어려운데, 내가 이해한 바를 정리하면 이렇다.

현재의 일베 등의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도전이나 반문화적인 행위들이 1960년대에는 좌파 세력들이 당시의 기득권이었던 우익 세력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때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좌파들이 이제는 새로운 기득권이 되자, 현재의 젊은이들은 정 반대 노선으로 그 전략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면서 그 물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이를 설명하면,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486세대가 이제 사회의 주축이 되자 그들을 '꼰대'로 보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들이 결집된 곳이 일베라고 보면 미국과 한국의 현실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탄생 배경이 이렇기 때문에 이들은 태생적으로 현재의 가치에 반하는 주장을 펴게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것은 안티페미니즘, 이민자 인권 무시, 인종차별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여성, 이민자, 흑인, 동양인 등이 백인 남성의 지위를 모두 빼앗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이 처음 세력을 형성할 무렵 좌파에서의 대응도 이들의 성장에 불을 붙였다.

이들을 그저 '교육이 덜 된' 존재로 치부하고, '공부하면 알게 된다'라는 식의 대응밖에 하지 못했던 것이다.

상징적 재현의 다양성과 이에 대한 인정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정체성을 지워버렸다'고 꾸짖었으며

[당신이] 백인, 이성애자, 남성, 시스젠더라면 그저 '듣고' '믿으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pg 140)

표적이 된 좌파와 우파 사이에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면

우파는 온갖 문제적 발언으로 더욱 폭주하는 반면,

좌파는 당혹스러워하거나 방어적이거나 변명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좌파로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까지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기 좌파 정치의 텀블러화가 초래한 지적 퇴행이

한동안 지속될 악영향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pg 157)

문제는 이러한 세력들의 활동이 표면적으로는 '유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애초에 일베도 '일간 베스트'라는 유머 게시판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모든 대상을 조롱한다.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좌파들이 이런 시도를 무조건적으로 용인하는 정도가 더 강했던 것 같다.)

우리가 기억하는 일베의 모습은 단식투쟁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폭식 행위나 전 대통령, 세월호 희생자 등 고인에 대한 비하 같은 행위를 일삼는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들은 그것 못지않게 자기 스스로를 조롱하는 활동에도 열심이다.

애초에 그런 커뮤니티에서 안티 페미니즘이 태동하게 된 계기도 자신들은 번식이라는 생물의 가장 근원적인 활동에서 배제된 존재들이라는 점을 활용한 유머에서 기인했다.

그러다 보니 전업주부를 취집이라 비하하거나 패미니스트를 쿵쾅이로 부르는 등 여성 혐오 단어들이 생겨나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려 살아가는 남성들 역시 퐁퐁남이다 뭐다 하면서 비하하는 컨텐츠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제목인 '인싸를 죽여야'하는 이유들이 태동하게 된다.

자신들이 잃은 것 혹은 잃었다고 믿는 것을 얻고 있는 자들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발현되는 것이다.

일부일처의 쇠퇴로 인해 달라진 성생활에서 엘리트 남성은 한층 더 넓은 성적 선택권을

쥐는 반면 그렇지 않은 대다수 남성 인구는 점점 더 독신주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자신의 낮은 지위에 대한 그들의 불안과 분노는 여성과 인종 문제를 향한

철저한 위계질서의 주장으로 이어졌다. - 중략 -

대안우파의 인종적 위계질서 정치는 이러한 인셀들의 사회로부터 배태됐다.

(pg 189)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이러한 현상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지적에서 멈춘다.

그저 '이들이 더 세력을 확장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도의 바람으로 결말을 맺고 있는 것이다.

사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이들을 강제적으로 없앨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니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아쉬운 결말이었다.

전반적으로 주제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는 주제지만 저자가 미국인이고 책에 실린 사례 역시 미국 사례뿐이어서 독서가 아주 즐겁지는 않았다.

게다가 역자가 미칠듯한 초월 번역 센스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문장 자체가 너무 길고 장황한데다 책의 대부분이 사례의 나열이어서 읽는 과정이 재밌다고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저자가 '얘네들이 이렇게 나쁜 짓들을 많이 한다니까요!'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외국인 독자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보다는 그런 사례를 통한 저자의 생각과 주장, 통찰을 더 읽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후반부에 '옮긴이의 말'이 있는데 이 부분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잘 담고 있어서 오히려 책 본문보다 이 부분이 더 좋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단순히 '옮긴이의 말'이라 하기엔 분량이 다소 많아 보일 정도로 역자가 이 책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차라리 역자가 우리나라의 사례로 이런 책을 쓰면 더 재미있고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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