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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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재미'다.

글을 읽으면서 흐름을 따라가는 재미.

그런 면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작품을 만났다.

이미 많이 알려진 작가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예상컨대 앞으로 꽤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소설은 정신적으로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사회화가 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남자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어느 날 중학교 동창이었지만 안면은 없었던 한 여성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녀가 과거에 아주 유명한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딘가 뒤틀린 구석이 있는 그녀에게 빠져들면서 그는 과거의 그 미궁 같았던 사건을 추적하게 된다.

책의 분류가 추리소설인 만큼 밀실 살인 사건의 진범을 알아가는 것이 책의 핵심이겠지만 사실 진범은 책의 중반쯤이 지날때쯤 대충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인물이 진범이라는 것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이..아니겠지..설마..'하는 마음으로 사건의 전말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무슨 내용이 나올지 궁금해서 책을 쉽게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사실 사건의 전말이나 흐름이 예상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이 재미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책을 덮고 가장 먼저 든 느낌은 '음울함'이었다.

이 책은 시종일관 음울함이 지배한다.

소설의 화자가 과거에 불행한 기억을 가진 어딘가 음울한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그 음울함 자체가 그가 이 사건을 접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네가 그 사건을 궁금해하는 이유를 알려줄까?

그 사건의 깊은 곳에서, 그 수수께끼의 깊은 곳에서, 자네 자신을 보고 있지?

자신 속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분이 기묘하게도 그 사건에 반응을 하지?

그 사건의 진상에 가까이 다가가면 자신 속의 그 정체 모를 부분도 해명된다는 듯이.

언젠가 자신을 망가지게 할 터인 자네 자신의 핵심을."

(pg 67)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 불행한 기억이 전혀 없는 사람의 삶을 상상할 수가 없긴 하지만 어린 시절 잠깐이라도 불행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딘가 한구석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대충 알 것이다.

그 느낌이 소설의 시작부터 끝까지 쭉 이어진다.

그런데 그 느낌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그 느낌을 안다면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읽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생은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당연한 얘기죠.

다시 일어 설 수 없는 인생 따위 없어요. 문제는 내게 그럴 마음이 없다는 거예요.

다시 살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게 아니라."

(pg 81)

책 뒤편에 실린 역자 후기에 작가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너무 감명 깊게 읽어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언급이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정작 '인간실격'에서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이 책에서 매력을 느꼈던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은 내 스스로의 답은 이렇다.

'인간실격'에서의 음울함이 끝이 없는 음울함, 즉 스스로의 삶을 끝내지 않는 한 멈출 수 없는 음울함이라고 한다면 이 작품 속 음울함에는 극복에 대한 열의가 숨어 있다.

소설의 화자는 물론이고 밀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여성 역시 자신의 음울함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남은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가 작품 속에서 충분히 느껴진다.

역자 해설에서 이를 '위악'이라는 단어로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해석보다는 나 자신이 내린 결론이 더 마음에 들어서 이를 남겨두고 싶다.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요소 중 어디 한구석이 망가졌다는 것을 '자각'한 개인은 더 이상 구제불능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는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개인이라 할지라도 구제불능인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 책의 화자와 그가 만난 여성은 서로를 구제해 주었다.

작품은 별다른 에피소드 없이 열린 결말처럼 끝이 났지만 나는 그들이 여생을 다른 사람처럼 충분히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세계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다.

누가 죽건 누가 살건, 별다를 것 따위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pg 221)

이 작품이 2011년에 있었던 일본의 대지진 사건 이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거대한 자연재해를 겪은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인간의 어두운 면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을 살고 싶어 했다.

이러나저러나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는다.

밀실 살인사건이라는 추리소설의 겉옷을 입었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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