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핑크 후회의 재발견 -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가장 불쾌한 감정의 힘에 대하여
다니엘 핑크 지음, 김명철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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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다니엘 핑크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읽고 나면 뭔가 뻔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읽을 땐 희한하게 새로운 것 같고 희한하게 재밌는 글을 쓰는 작가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런 그가 이번에는 '후회'라는 감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하니 기대가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후회'라는 감정은 사람이라면 되도록 피하고 싶은 감정이다.

저자도 유명한 프랑스 노래를 인용하긴 했지만, 국내 가요에서도 후회는 가사의 단골 주제라 할 수 있다.

그만큼 보편적인 감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후회가 개인에게 심적은 물론 육체적으로까지 부담을 주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피하려 하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흔히 '지금부터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라는 목표를 내심 세우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후회를 제대로만 한다면 우리에게 굉장히 이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문단이 친절하게도 책 서두에 등장한다.

후회는 건강하고 보편적이며 인간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게다가 후회는 값지다. 후회는 명료하게 해준다. 후회는 가르침을 준다.

제대로만 하면 곤경에 빠질 이유가 없다.

후회는 우리를 고양시킬 수 있다.

(pg 27)

이 책을 한 문단으로 정리하라고 하면 저 내용이 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에 이어질 의문은 이것일 것이다.

과연 후회란 무엇이고, 후회를 어떻게 해야 건강한 방법으로 후회할 수 있을까?

저자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후회는 인간이 가진 상상력의 산물이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두뇌활동이다.

즉, 인간은 자신이 했거나 혹은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행동의 결과를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산출되는 감정의 하나가 후회이기 때문에 뇌가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후회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후회가 없는 사람들은 심리적 건강의 본보기가 아니다.

그들은 보통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pg 45)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뇌의 특정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후회라는 감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너무 후회에 매몰되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적당히(?)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도 맞다는 의미다.

그럼 사람들은 어떤 일을 주로 후회할까?

저자는 이를 알아내기 위해 광범위한 사례 연구와 직접 실행한 설문조사를 통해 사람들의 후회를 일정 카테고리로 나누었다.

이를 내가 이해한 바대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기반성 후회 : 공부나 건강 등 장기적인 삶의 안정을 위해 했어야 했거나 하지 않아야 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

ex: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것, 금연하지 않은 것, 젊을 때 저축을 더 하지 않은 것 등

2. 대담성 후회 : 위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지 못했거나 소극적으로 한 것들에 대한 후회

ex: 이상형을 만났는데 말을 걸지 못한 것, 이직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한 것 등

3. 도덕성 후회 : 자신의 도덕기준에 반하는 행동을 했거나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후회

ex: 누군가를 괴롭힌 것, 왕따 당하는 친구를 감싸주지 못한 것 등

4. 관계성 후회 : 누군가와의 관계가 악화되거나 끊어질 행동 혹은 바로잡을 행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ex: 죽은 가족에게 모질게 한 것, 사과하는 친구를 받아주지 못한 것 등

재미있는 것은 이 중에서도 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이다.

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기회가 있지만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사실 바로잡을 기회를 만들기조차 어렵다는 이유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했던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의 기회보다 했어야 할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의 기회를 더 크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지 않은 행동'들이 하나씩은 다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몇 년 전에 비트코인을 샀어야 했는데' 이런 후회 말고)

이런 심리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설문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위한 방법으로 '후회 복권'이라는 방식도 소개하는데 매우 재미있으니 동기부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이제 후회의 유형도 알았으니 후회를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일단 후회를 가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 써보는 것도 좋고 말로 표현하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내가 후회를 하고 있고, 그 후회가 어느 유형이며 그 유형의 후회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때 너무 후회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후회는 당연히 너무도 힘든 감정이기 때문에 여기에 매몰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의 감정(비하가 아닌)을 가지고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후회를 진지하게 하면 무엇이 좋아질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자가 말한 바를 몇 구절 인용한다.

후회를 예측하면 사고 속도가 느려진다.

뇌가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우리가 무엇을 할지 결정하기 전에

추가 정보를 수집하고 숙고할 시간을 빌어준다.

예측된 후회는 행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극복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pg 255)

우리의 일상생활은 수백 가지의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는 우리의 행복에 결정적인 것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은 것도 많다.

그 차이를 이해하면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후회(사람을 미치게 하고, 당혹스럽게 하고, 부정할 길 없이 진정한 감정)는

잘 사는 삶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pg 271)

결국은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후회라는 의미다.

읽을 땐 엄청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정리하고 보면 이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내용인가 싶긴 하다.

하지만 마냥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후회라는 감정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고 하는 발상의 전환은 분명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후회는 나를 인간으로 만든다. 후회는 나를 더 낫게 만든다. 후회는 내게 희망을 준다.

(pg 280)

인간에게 후회라는 감정이 생긴 근원을 진지하게 따져 묻자면 우리의 자유 의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하든 사실은 모든 게 다 더 높은 의지에 따라(그게 신이든 운명이든 뭐라고 불리든 간에)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집단(설문조사에 참여한 미국인 4명 중 3명)은

자신에게 자유의지가 있으며, 동시에 대부분의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믿음을 피력한 것이다.

이 신비로운 집단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한 끝에 이들을 '인간'으로 명명했다.

(pg 277)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 인간이라는 종을 참 잘 설명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구절을 읽은 것만으로도 이 책에 시간을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다니엘 핑크의 저서답게 굉장히 읽기 편하다.

번역이 깔끔하기도 하지만 원문 자체를 번역에 무리가 없게 친절하게 썼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이 진행한 설문 사례들도 많이 등장하고 후회와 관련된 연구 사례들도 핵심만 잘 소개하고 있어서 어렵다는 느낌 없이 누가 읽어도 공감이 되는 책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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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눈을 감는 시간에 걷는사람 소설집 5
조영한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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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어서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내 평생 읽은 책 중 가장 음울한 작품을 만났다.

오죽하면 책 후미에 실린 추천사에서조차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라는 문장이 등장할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책 소개에 '우리 현실 어디에나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집중했다는 문구에 혹해서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 문제를 잘 담아낸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 같다는 기대였다.

그 기대는 훌륭하게 충족되었으나 이렇게까지 '잘' 표현할 줄은 몰랐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잘' 표현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책을 덮은 후 '작가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BTS다, 오징어 게임이다 해서 갈수록 위상이 높아져가는 대한민국이지만 마찬가지로 이 나라를 널리 알리는데 지대한 기여를 한 영화 '기생충' 역시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 책 역시 빈부격차 스펙트럼의 가장 바깥쪽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만 차이라면 여기에는 부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단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일말의 유쾌한 장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 속 '전직 알바'의 시각에서 보는 '사장'도 내 입장에서는 그리 윤택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대학 조교, 시간강사, 정육업자 정도가 그나마 '직업명'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직업이고, 나머지는 '기타 일용직'으로 분류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건물 유리창을 닦거나 절의 연등을 다는 등 소위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성매매 업소의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이라는 법의 경계 밖에 있는 직업도, 전염병 지역의 가축을 매장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인간성을 시험해야 하는 직업까지 폭넓게 소개된다.

작품은 매우 담담하다.

작가는 애써 이들을 가엽게 여기거나 동정을 불러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 사건들과 그 속에 있는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거기에 따른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읽어줄 뿐이다.

아주 특별한 사건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일용직이면서 내일 일이 없을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면서 폭력이 없기를 기대할 수 없으며 전염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가축들을 생매장하면서 고기가 맛있게 느껴지길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일들을 겪어내는 등장인물들에게 두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담배와 열패감이다.

책을 읽는데 묘하게 담배 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작품 속은 담배연기로 자욱하다.

나도 흡연자로 지낼 당시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한숨을 쉬는 행위와 비슷해서 끊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대체로 그런 모습이다.

자신의 한숨을 담배연기로 가리고 있는 느낌, 담배를 핑계로 마음껏 한숨이라도 쉬는 느낌.

그리고 그 담배연기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과 그럼에도 숨을 쉬며 음식을 먹는 이들이 느끼는 열패감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정서였다.

각 이야기들이 느슨하게 얽혀 있어서 단편집이라 봐도 되고, 어차피 현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담고 있으니 옴니버스 식의 한 작품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각각의 이야기들은 매우 일관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고, 등장인물들에게는 꿈도 희망도 주어지지 않는다.

꿈과 희망이라는 것도 최소한의 사회적, 경제적 안정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작가가 섣불리 꿈과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았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자신이 맡은 과업을 해야 할 것이었다.

별다른 희망도, 보람도, 기대도 없이.

(pg 204)

어찌 됐든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직업들이고 그들의 삶이 소설과 그렇게까지 차이가 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불편함의 실체일 것이다.

이 작품은 불편함을 준다.

머나먼 이국 땅의 굶주린 아이들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불편함을 준다.

애써 가린 눈을 돌리면 보일뿐더러 자신 역시 지금 딛고 있는 곳에서 한 발만 삐끗하면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불편함을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읽기에 편한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같은 불편함을 느껴봤으면 한다.

창가에 걸어 놓은 부채꼴 모양의 리넨 커튼이 미풍에 조금씩 흔들렸다.

눈으로 좀처럼 잡아내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그는 이곳에도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눈에 띄지 않거나,

저렇게 잘 보이지 않게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pg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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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역사
제임스 수즈먼 지음, 박한선.김병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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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사람이 종사할 수 있는 일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공놀이도 선수들이 하면 일이 되고 남들과 웃고 떠드는데 너무 웃겨서 사람들이 돈을 주면서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면 그것도 일이 된다.

요즘엔 심지어 많이, 복스럽게 먹는 것을 정성스럽게 찍는 것조차도 일이 된다.

이렇게 일의 근원을 유추해 본다고 하면 흔히 수렵 채집 생활부터 시작해 농경, 상업, 수공업 등등 경제 발전사에 맞게 일 역시 변화해왔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즉 인간이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활동에서 일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이 논리를 동물 관찰부터 시작해나간다.

생각보다 많은 동물들이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에 주목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작은 새라 할지라도 남는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 인간이 보기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활동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발달사를 통해 살펴본 인간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를 엔트로피 법칙으로 풀어나간다.

엔트로피는 반드시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인류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 이상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순간 인류는 그 에너지를 소모하기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아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인류가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에도 불의 사용으로 인해 잉여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시기가 있었다.

불은 인간종의 역사에서 최초의 위대한 에너지 혁명일뿐만 아니라

최초의 위대한 노동 절약 테크놀로지이기도 했다. - 중략 -

우리가 알기에 한 해의 많은 기간 동안 비교적 혹독한 여건에서 살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호모 사피엔스 성인들 집단은 보통 매주 15시간 내지 17시간

일하여 본인들 및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같은 수의 부양가족을 먹여 살린다.

(pg 126-127)

놀랍게도 이렇게 시간이 많아진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언어'다.

현재까지 연구된 결과에 따르면 언어는 특정 시점에 굉장히 광범위하게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바로 그 점이 지금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가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의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정 종족에서 먼저 탄생해 외부로 전파되었다면 비슷비슷한 형태로 전수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여하간 저자에 따르면 이 언어의 탄생 시점이 인류가 불을 사용한 시점과 비슷하다는 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이미 인류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자유 시간이 생겨도 편안해지지 못하고 뭔가로 마음을 채워야 할 필요가 진화 과정에서

지루함이 주는 부담을 없애줄 능력을 갖춘 자를 선택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똑똑하고, 상상력 있고, 음악적, 언어적으로 기민한 자들,

그러니까 언어를 이용하여 이야기하고, 재미있게 해주고, 매혹시키고,

차분하게 안정시키고, 즐겁게 하고, 영감을 고취시키고, 유혹할 수 있는 자들이 선호된다.

(pg 134)

불의 사용 덕분에 고대의 인간 공동체가 혼자서는 먹고 살 수 없는 사람들,

또 재능 있는 이야기꾼이나 샤먼처럼 자신들의 가치를 비물질적 형태로 제공하는 사람들도 먹여 살리기가 쉬워졌다.

(pg 135)

이후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농경 사회로의 전환과 도시의 형성,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력의 증대까지 인류의 성장 과정이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도 핵심은 생산력 확대로 인한 '잉여 에너지의 확대'이다.

산업혁명 초기까지만 해도 생산력의 확대가 인구증가에 상쇄되어 그 효과가 크지 않았지만 산업화가 고도화되면서 잉여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서비스 산업 종사자 비율이 농업 및 제조업 종사자에 비해 월등히 많은 선진국형 경제 체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사실은 수렵채집인들이 적은 시간만 일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었던 것에 반해 지금 우리는 주 40시간 이상을 일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시절 인류의 욕구가 매우 소박한 것들이었고 그 욕구를 손쉽게 채워줄 수 있는 자연환경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늘어나는 자유 시간만큼 우리의 욕구도 키워왔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여러 일을 창조하며 진화해왔다는 의미가 된다.

식량 생산에 시간이나 노력을 전혀 쓰지 않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대규모로

모여 살게 되면서 그들은 잡다한 상황과 호기심과 지루함의 혼합물에 유도되어

자신들의 에너지로 할 만한 다른 창조적인 일을 찾아 나섰다.

(pg 306)

농경 공동체에서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집중했으나,

도시와 소도시에서는 상이한 필요와 욕망들이 사람들의 야심을 부추겨

그들이 일하는 방식과 이유를 만들어가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pg 317)

재밌게도 우리 인류는 이미 동물로서의 필요를 충분히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생산력을 보유했지만 노동 시간을 줄이지는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인간이 적은 노동 시간을 원하는지도 이 책에 의하면 의심해 봄직하다.

개인적으로 이해는 안가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 폐지에 상당수의 노동계층이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래의 사례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1950년대까지는 켈로그의 공장에서 주당 30시간 노동이 정규로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켈로그 공장 직원의 4분의 3이 8시간 근무와 주당 40시간 노동으로 돌아가는

편을 선호하는 쪽으로 표를 던져 경영진을 놀라게 했다. - 중략 -

그들은 미국의 전후 유복한 시기에 시장에 나오는 끊임없이 수준이 높아지며 끝없이

등장하는 소비재를 구매하기 위해 더 긴 시간 일하여 더 많은 봉급을 받고 싶어한 것이다.

(pg 362)

저자에 따르면 이런 현상이 등장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필요'라는 것이 이미 생물로서의 기본 욕구를 한참 뛰어넘은 것이며 여기에는 한계가 없어 보인다는 점 때문이다.

인간이 도시에 모여 살기 시작한 이후 언제나 그들의 야심은 자급농부들이 느끼는

결핍감과는 다른 종류의 결핍감,절대적 필수품보다는 열망, 질투,

욕망의 언어로 발언된 형태의 결핍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종류의 상대적 결핍감은 더 오래 일하고,

사회적 사다리를 더 높이 올라가고 동료 이웃들을 따라잡게 만드는 박차 역할을 한다.

(pg 320)

이는 최근에 읽었던 '가짜 노동'이라는 책에서도 지적되었던 것인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논지가 등장해 반가웠다.

이 책에서도 '가짜 노동'에서 지적한 '불쉿 직업(bullshit jobs)'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기본 논지는 잉여 에너지 발생이 일과 노동 시간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 정도로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최근 노동 시장에서 노동시간 감소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진짜 이유를 탐색하고 싶다면 '가짜 노동'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어찌 됐든 인류의 진보는 사회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정치 체계만 봐도 왕이 명령하면 그저 따르기만 했던 것에서 지금은 기초 자치단체부터 대표성을 갖는 대리인을 선출해 운영하고 있다.

예전의 왕정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행정 인력이 추가로 필요해졌을지(왕이 죽기 전까지 종신 집권을 할 때 민주정에서는 4-5년에 한 번씩 전국적인 선거를 치러야 한다.) 상상해 보면 저자의 주장이 이해가 될 것이다.

건축물의 구조가 복잡할수록 그것을 짓고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엔트로피의 영원한 명령은 인간의 신체에든 사회에든 똑같이 적용된다.

곡식밭을 빵덩이로 변형시키는 데 에너지가 드는 것과 똑같이 진흙을 벽돌로,

벽돌을 건물로 변형시키는 데도 일이 투입된다.

그에 따라 특정 시간대에 특정 사회가 띠는 복잡성 정도는 그들이 획득한 에너지 분량을

측정하는 유용한 척도가 되며, 이 정도의 복잡성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작업 분량(문자 그대로 물리적인 의미의)의 척도이기도 하다.

(pg 233)

430페이지 정도로 살짝 두꺼운 데다 주제도 쉬운 주제는 아니어서 읽기에 아주 편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사례가 정말 많이 등장하고 중간중간 그림 자료도 제법 실려있어서 지루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을 하나 꼽으라면 요즘 책답지 않게 오타가 너무 많고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더러 있다는 것이다.

물론 원문 자체의 호흡이 다소 길고 어렵게 쓰였을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번역된 글을 국어 사용자 입장에서 좀 더 세심하게 검수해 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책이 잘 팔려서 부디 다음 판본에서는 오타나 비문이 대폭 수정되기를 바란다.

좋든 싫든 인류의 삶에서 일이라는 것을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일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곧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과 같다.

그런 측면에서 한 권으로 인류의 발전사를 훑어보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대중적인 접근성이 얼마나 좋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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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쟁이 사과만 신나는 파티 제제의 그림책
휴 루이스-존스 지음, 벤 샌더스 그림, 김경희 옮김 / 제제의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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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할머니와 함께 등장했던 심술쟁이 사과가 이번에는 파티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다.

지난 작품에서도 기존의 유아용 동화답지 않게 획일화된 모습을 단호하게 거부하던 심술쟁이 사과가 이번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사실 지난 작품 같은 경우에는 어른들 눈으로는 살짝 당혹스럽기까지 한 내용이었다.

어른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 생각하는 (나 같은)동양의 선비가 보기에는 더욱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부모가 읽어주고 싶은 책 말고 아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은 뭔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그랬기에 이번 책도 분명히 좋아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역시나 퇴근 후 책을 보여주자마자 그때까지 하고 있던 게임까지 뒷전으로 한 채 책부터 읽어본다.



이번 책은 잔소리 할머니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심술쟁이 사과의 이야기다.

역시 심술쟁이 사과는 파티를 엉망으로 만들기 위해 다른 친구들을 골탕 먹이는 등 장난에 몰두한다.

아이는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깔깔거리며 웃기 바쁘다.

아이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눈은 가렸지만 노출된 잇몸의 면적으로 얼마나 즐거워하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다행히(?) 지난 작품보다는 덜 당황스럽게 끝났다.

그래도 할머니에게 말이라도 공손히 하라는 메시지로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원문이 영어였을 테니 말 끝에 'please'를 붙여라 정도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책을 들고만 있어도 좋겠다 싶고, 아이가 책을 좀 본다 싶으면 조금 더 수준 있는 책을 봤으면 좋겠고,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 싶으면 내용도 좋은 책을 봤으면 싶은 것이 부모의 욕심일 것이다.

모든 아이가 책을 좋아할 수는 없듯이 모든 책이 재미와 교훈, 감동 등 많은 조건을 충족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라면, 그래서 아이가 '읽고 싶어' 하는 책을 고민하는 부모라면 이 책이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하고 싶다.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그러려면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자주 접하게 해줘야 한다.

이 책은 단언컨대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될 것이다.

이전 작품 서평: https://blog.naver.com/qhrgkrtnsgud/22270099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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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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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SF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최근 한국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봉준호 감독이 내년에 이 작품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든다는 소개에 끌려 접하게 된 책이다.

소설은 SF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배경 위에서 시작된다.

인류의 생존지를 확장하기 위해 적합해 보이는 행성들에 파견되어 테라포밍을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인공 미키는 그중에서도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기 위한 '익스펜더블'이다.

단어의 뜻이 의미하듯 그는 일회용품처럼 소모되는 인원으로 죽고 나면 죽기 전까지의 기억이 인쇄된 새로운 몸으로 다음 임무에 투입된다.

'미키7'이라는 의미는 그전까지 총 여섯 번의 미키가 죽었다는 의미가 된다.

뜻하지 않게 미키7이 죽지 않은 채로 미키8이 깨어나게 되면서 스토리는 시작된다.

당연하게도 그의 삶이 '불멸'이냐 아니냐가 작품의 주요한 질문이 된다.

'테세우스의 배' 비유 역시 꽤나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의 삶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

(pg 19)

탐사대의 상당수가 죽어버리는 등의 극한 상황이 아니라면 복제인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키7이 미키8과 같이 존재한다는 것을 숨겨보려 노력하는 과정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라 보면 된다.

복제인간이라는 소재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 쓰임을 일회용품으로 설정한 부분이 참신하다.

작품 속 사회에서도 이를 윤리적으로 바람직하게 보고 있지만은 않아서 미키를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의 이중적인 태도(꺼림칙하지만 불쌍하게도 생각하는)나 다음 익스펜더블을 생산하는 시기와 방법 등 복제인간이 무분별하게 쓰이는 것을 막고 있는 세세한 설정도 좋았다.

하지만 소설의 전개 자체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스토리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작품 속 딜레마가 이제는 조금 식상한 '테세우스의 배'에 그치고 있다는 점도 다소 아쉬웠다.

"나는 미드가르드 시절의 미키 반스를 기억하고 그 미키 반스가 자란 집도 기억해.

그의 첫 키스도, 그가 마지막으로 엄마를 본 날도, 이 망할 탐사에 자원한 것도 기억나.

그 모든 것들을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인 것처럼 기억이 나.

그렇다고 내가 미키 반스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걸 누가 알겠어?"

(pg 297)

소설에서도 '악역'이 주인공 못지않게 중요한데, 작품 속 악역을 굳이 찾자면 탐사대의 사령관인 마샬 정도가 될 텐데 어찌 됐든 생소한 행성에 도착해 테라포밍을 성공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적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의외성을 보여주기가 좀 어려웠던 것 같다.

정리하자면 소재의 참신함이 스토리의 참신함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그래서 다소 평범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읽는 재미 면에서는 충분했다.

마냥 어두울 수 있는 소재지만 너무 어둡지 않게 유머도 잘 섞여있는 편이고 섹슈얼한 부분도 중간중간 끼워 넣어서 읽는 과정이 지루한 작품은 결코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섹슈얼한 부분에서도 생각해 볼 거리가 있는데, 미키처럼 기억을 공유하는 복제인간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살아있는 미키7을 두고 미키8과 잔 여성을 과연 '바람을 피웠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를 미키7이나 미키8이 질투할 수 있는 일인지도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인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이 이를 영화화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설국열차'처럼 소재만을 차용한 독자적인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원작을 그대로 영화화하는 감독도 아닐뿐더러 작품의 오리지널 스토리 자체가 참신함이 조금 떨어지기 때문에 되려 감독의 손길을 거친 뒤 어떤 매력적인 작품이 나와줄지 기대가 된다.

게다가 미키 역으로 로버트 패틴슨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있어 기대감을 더해준다.

개인적으로는 미키가 그리 진중한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에 보다 가벼운 느낌을 주는 배우였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워낙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니 기본 이상은 충분히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아직 개봉하려면 시간이 꽤 많이 남았기 때문에 봉준호 감독의 신작을 기다리는 팬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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