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눈을 감는 시간에 걷는사람 소설집 5
조영한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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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을 많이 즐기는 편은 아니어서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내 평생 읽은 책 중 가장 음울한 작품을 만났다.

오죽하면 책 후미에 실린 추천사에서조차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라는 문장이 등장할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책 소개에 '우리 현실 어디에나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집중했다는 문구에 혹해서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 문제를 잘 담아낸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 같다는 기대였다.

그 기대는 훌륭하게 충족되었으나 이렇게까지 '잘' 표현할 줄은 몰랐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잘' 표현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책을 덮은 후 '작가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BTS다, 오징어 게임이다 해서 갈수록 위상이 높아져가는 대한민국이지만 마찬가지로 이 나라를 널리 알리는데 지대한 기여를 한 영화 '기생충' 역시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 책 역시 빈부격차 스펙트럼의 가장 바깥쪽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만 차이라면 여기에는 부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단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일말의 유쾌한 장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 속 '전직 알바'의 시각에서 보는 '사장'도 내 입장에서는 그리 윤택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대학 조교, 시간강사, 정육업자 정도가 그나마 '직업명'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직업이고, 나머지는 '기타 일용직'으로 분류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건물 유리창을 닦거나 절의 연등을 다는 등 소위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하는 직업이 있는가 하면 성매매 업소의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이라는 법의 경계 밖에 있는 직업도, 전염병 지역의 가축을 매장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인간성을 시험해야 하는 직업까지 폭넓게 소개된다.

작품은 매우 담담하다.

작가는 애써 이들을 가엽게 여기거나 동정을 불러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 사건들과 그 속에 있는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거기에 따른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읽어줄 뿐이다.

아주 특별한 사건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일용직이면서 내일 일이 없을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면서 폭력이 없기를 기대할 수 없으며 전염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가축들을 생매장하면서 고기가 맛있게 느껴지길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일들을 겪어내는 등장인물들에게 두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담배와 열패감이다.

책을 읽는데 묘하게 담배 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작품 속은 담배연기로 자욱하다.

나도 흡연자로 지낼 당시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한숨을 쉬는 행위와 비슷해서 끊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책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대체로 그런 모습이다.

자신의 한숨을 담배연기로 가리고 있는 느낌, 담배를 핑계로 마음껏 한숨이라도 쉬는 느낌.

그리고 그 담배연기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과 그럼에도 숨을 쉬며 음식을 먹는 이들이 느끼는 열패감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요 정서였다.

각 이야기들이 느슨하게 얽혀 있어서 단편집이라 봐도 되고, 어차피 현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담고 있으니 옴니버스 식의 한 작품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각각의 이야기들은 매우 일관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고, 등장인물들에게는 꿈도 희망도 주어지지 않는다.

꿈과 희망이라는 것도 최소한의 사회적, 경제적 안정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작가가 섣불리 꿈과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았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자신이 맡은 과업을 해야 할 것이었다.

별다른 희망도, 보람도, 기대도 없이.

(pg 204)

어찌 됐든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직업들이고 그들의 삶이 소설과 그렇게까지 차이가 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 이 책이 주는 불편함의 실체일 것이다.

이 작품은 불편함을 준다.

머나먼 이국 땅의 굶주린 아이들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불편함을 준다.

애써 가린 눈을 돌리면 보일뿐더러 자신 역시 지금 딛고 있는 곳에서 한 발만 삐끗하면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불편함을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읽기에 편한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같은 불편함을 느껴봤으면 한다.

창가에 걸어 놓은 부채꼴 모양의 리넨 커튼이 미풍에 조금씩 흔들렸다.

눈으로 좀처럼 잡아내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그는 이곳에도 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눈에 띄지 않거나,

저렇게 잘 보이지 않게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pg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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