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꽃
이곤 지음 / 종이로만든책 / 202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쁜 이름에 예쁜 표지를 가진 만화 작품이다.

요즘 보기 드문 주제인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이라고 해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배경이 일제 치하이기는 하지만 등장인물과 사건은 모두 픽션이다.

따라서 실제 역사와의 비교나 고증 등을 따질 필요 없이 그저 스토리를 따라가면 된다.

주인공은 김애정이라는 젊은 여성으로 본 것을 정확히 기억해 그려내는 능력을 가졌다.

자신의 능력이 독립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김애정은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러 경성으로 가는데, 가는 열차에서 우연히 조선 총독의 아들을 만난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독립운동가들은 그녀의 세세한 그림을 토대로 조선 총독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조선 총독 아들과의 인연이 닿은 애정은 계획에 추진력을 더해준다.

이하의 스토리는 스포가 될 수 있어 생략하지만, 엄청난 반전이 있다거나 너무 만화처럼 허황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대략적인 줄거리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라면 감동을 느끼는 포인트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만화 작품이니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흑백으로 된 만화라 그런지 묘하게 수묵화 느낌이 난다.

등장인물들의 외형은 상당히 요즘 만화 같은데 전체적인 느낌은 요즘 만화보다는 어릴 적 읽던 옛날 작품 느낌인데 이 느낌이 일제강점기라는 배경을 그려내기엔 더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이 작품 속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아래의 페이지를 꼽을 것 같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결국 이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언급하면 그렇게 스포가 될 내용은 아니다.)

(pg 163)

210페이지 정도의 한 권짜리 만화책인지라 서사가 길지는 않지만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있어서 읽고 난 뒤 찜찜함이 남거나 아쉬운 느낌은 없었다.

등장인물도 많지는 않지만 각각 특색들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이야 물론 픽션이기는 하겠으나 실제 독립운동 당시에 여성과 학생의 역할도 상당했으리라 생각한다.

역사 기록의 한계로 지금 우리에게 기억되지 못한 수많은 영혼들께 새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행복한 이유 워프 시리즈 1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냥 긍정의 힘을 믿는 사람이 쓴 에세이 같은 제목이지만 그렉 이건이라는 작가가 쓴 SF 단편 소설집이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고 추천사도 많아서 호기심에 읽어 보게 되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SF 소설에도 '하드' SF라는 하위 장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드 SF라 하면 과학적 사실 및 이론에 상충되지 않는 SF 소설을 말하는데 이 책의 작가가 그 분야에서 꽤 유명한 편이라 한다.

총 520페이지 정도로 살짝 두꺼운 책 안에 11편의 단편이 알차게 실려있다.

각 단편마다 다루는 주제들이 상이해서 한 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내가 행복한 이유'는 중병으로 뇌에서 행복감을 담당하는 부분이 모두 손상되어 일말의 행복감도 느끼지 못하던 남자가 최신 치료기법의 임상시험 대상자가 되어 그 부분을 회복해가는 이야기이다.

기술의 도움으로 얻는 행복감이 과연 진짜 자신의 행복이라 할 수 있는지, 또 이를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행복이 없는 인생은 견딜 수 없지만, 행복 그 자체는 목표가 되지 못한다.

나는 행복의 이유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또 그런 선택에 만족해할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자력으로 만들어 낸 나의 새로운 자아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간에,

나의 모든 선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pg 119)

그러나 언제든 머릿속의 버튼 몇 개의 위치를 움직이기만 하면

그런 감정들을 사라져 버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줄리아에 대한 내 감정이 진짜라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pg 132)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등장하는 '도덕적 바이러스 학자'이다.

종교에 광신적인 신념을 가진 한 남자가 '신의 섭리를 거스르며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는' 자들만 노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유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을 읽은 후 코로나19도 인간관계가 넓은 '인싸'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었던 한 미친놈의 작품은 아니었을까 하는 공상에 잠길 수 있었다.

'실버파이어'라는 작품 역시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을 다루고 있는데, 책을 다 읽은 후 이 작품의 집필 시기가 1995년이라는 점을 알게 되어 소름이 돋았다.

하드 SF가 생각보다 과학적 전망에 기반을 크게 두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위 두 작품에 더해 책의 마지막 작품인 '체르노빌의 성모'까지 읽어 보면, 주제는 각기 다르지만 작가가 종교에 대한 신념, 특히 광신적으로까지 빠지는 신념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과학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보기에 비이성의 극치라고 느꼈기 때문일까,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와 비슷한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블랙 코미디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에게 중요한 것들은 모두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 역사, 문학, 예술을 손가락으로 한 번 누르기만 하면

방대한 정보의 보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힘들게 얻은 진실을 자식들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도덕은 오로지 우리의 내면에서 오며, 의미 역시 오로지 우리의 내면에서 오고,

우리의 두개골 밖에 존재하는 우주는 우리에게 아예 관심이 없다는 진실을.

(pg 447)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주제들을 풀어내고 있긴 하지만 '하드'라는 장르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소설이지만 내용이 조금 어려운 작품들도 있었다.

특히 수학적 공리를 주제로 한 '루미너스'라는 작품은 문체는 꽤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는데 소재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왜 긴박해야 하는지 공감이 잘 안되는 작품이었다.

우리의 상식과 현재의 경험으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세계들도 등장한다.

'100광년 일기'라는 작품은 시간의 흐름이 선형적이지 않고 반복되는데 등장인물들이 그 반복을 인지할 수 있으며, '무한한 암살자'라는 작품은 공간이 멀티버스인데 이 멀티버스가 모두 한 인물을 중심으로 수없이 중첩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최선을 다해 정리했지만 위의 문장을 읽는 사람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될까 싶을 정도로 직관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배경들이다.

하지만 전자는 시간에 대한 관념 자체가 변한다 하더라도(미래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진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존재인지를 묻고 있는 작품이고 후자는 마블 영화에서나 맛보기로 등장하는 멀티버스의 개념을 훨씬 더 집약적이고 급진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어서 읽은 뒤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 밖에도 유전자 공학이나 뇌과학 측면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이고 이를 기술적으로 모방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는 '행동 공리'나 '내가 되는 법 배우기' 등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한 작가의 작품들을 담은 단 한 권의 책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SF적 상상력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어서 마치 '블랙 미러'나 '러브 데스 로봇' 같은 시리즈물을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SF작가들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과장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작가의 명성 대비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된 작품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다소 아쉽다.

이 책이 많이 팔려서 다른 작품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치적 올바름 - 한국의 문화 전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 들어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이하 PC)이 무슨 개념인지 설명하는 책인가?' 싶은데, '대한민국에서 PC가 나아가야 할 길' 정도의 부제가 붙어 있다면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최근 한국에서 보이는 정치적 올바름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본 뒤 대중들의 상당수가 PC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 피곤함을 극복할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적인 정치 성향으로 따지자면 나 역시 빨갱이에 가깝지만 사실 지금 국내의 PC는 너무 성역화 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불편함을 언제부턴가 느껴왔다.

PC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언제나 옳고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보수적인 꼰대로 몰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느낌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PC가 최근 문화 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건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서구 사회는 이미 정치는 물론이고 교육기관이나 직장 등 일상생활 수준에서도 PC 운동이 상당 기간 벌어져왔고, 그 성과도 적지 않았다.

다양한 인종 기반을 가진 국가들에서는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확산이 가장 큰 성취일 것이고, 여타 국가들에서는 페미니즘의 확산을 주요 성과로 들 수 있겠다.

정치 제도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대형 콘텐츠 메이커들이 이 시류에 편승해 콘텐츠 제작의 기반 사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게다가 SNS가 폭넓게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PC의 사상을 전방위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PC 메시지가 담긴 글과 사진을 퍼나르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야말로 PC가 현대사회의 주류 사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문제는 이 양상이 너무 과도하게, 그리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확산되다 보니 대중들에게서 반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데에 있다.

특히 PC가 '내가 이렇게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PC의 근본 이슈들이 대부분 좌파들의 이슈였던 만큼 그 반감 역시 우파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반감들이 모여 미국에서는 트럼프를 당선시키는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같은 좌파 진영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로 PC는 지금 위협에 처해있다.

2015년 10월 민주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그걸 잘 말해준다. "PC가 국가적으로 큰 문제"라는 진술에 동의한 사람은 62퍼센트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진술이 트럼프가 한 말이라는 걸 밝혔을 땐 동의율은 36퍼센트로 급감했지만,

응답자들의 정파적 반감을 감안하자면 'PC 피로증'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pg 29)

그렇다면 PC 운동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PC 운동가들의 교조적이고 오만한 태도일 것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아래와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PC 운동의 취지와 당위성엔 동의와 지지를 보내면서도,

동의와 지지를 보낼 뜻이 있는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운동 방식의 문제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운동 방식의 문제는 과유불급의 원리와 관련된 것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로 압축해 지적할 수 있다. - 중략 -

어떤 사람이 무심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을 때 "그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다"고

지적하는 것과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PC에 근거한 비판은 곧잘 후자의 딱지 붙이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pg 30-31)

대중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부분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이름을 달고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에도 PC를 강조하기 위해 여성이나 유색인종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PC 요소를 끼워 넣기 위해 기본 서사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이를 지적하면 '공부를 더 하라'거나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딱지를 붙여버리니 PC를 옹호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 전반에 걸쳐 PC에 관련된 다양한 논쟁들을 취합해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해외 사례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최근에 있었던 싸이의 흠뻑쇼를 둘러싼 논쟁(가뭄이라 농민들은 고통 받는데 물 펑펑 쓰는 쇼를 꼭 해야 하나에 관한 논쟁)까지 두루 다룬다.

예시 후에는 자유, 위선, 계급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PC에 대한 쟁점을 압축해 소개한다.

PC에 반대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 중 하나가 바로 PC가 표현의 자유를 상당히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는 혐오 발언의 자유 또한 자유로 봐야 하는가 하는 또 다른 논쟁을 낳기에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단순한 실수나 악의가 없는 발언에 관해서도 쏟아지는 무차별적인 비난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본다.

또한 PC를 옹호하는 자들이 대체로 말만 하지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고 위선이라며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서 슬랙티비즘(SNS에서만 올바름을 외치는 게으른 행동주의를 비꼬는 말)에 관한 논쟁도 소개된다.

일면 위선의 태도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분명 관점 전환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예를 들면, SNS에 #AllLivesMatter 태그만 달아놓을 뿐 실질적인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의견과 그렇다 하더라도 이 태그를 다는 행위 자체가 그 문제를 인식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계급의 문제는 계급문제를 사회문제의 핵심으로 보는 좌파 진영에서 주로 제기되는 문제로, PC가 사람들의 관심을 부차적인 것으로 돌려 진짜 중요한 계급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시각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시각에 대해 모두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들의 의견 자체가 PC의 불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PC 운동 자체가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나와 견해가 다른 자를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방법으로는 충분한 동의와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PC에 대한 논쟁이 일면 '싸가지'와 '과유불급'의 문제라고 본다.

사실 나는 PC의 생명은 겸손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흔히 하는 말로 '지적질'을 받고 기분이 상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 중략 -

특정인을 겨냥해 속된 말로 잘난 척하면서 싸가지 없게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pg 88)

나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한다.

아무리 좋은 말도 기분 나쁘게 말하면 듣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PC 운동을 통해 진짜로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현재의 교조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상대편을 까내리기 위해 PC적인 접근을 활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솔직히 이번 대선에서 매일 국민을 부끄럽게 만드는 자를 뽑게 한 많은 원인 중에 PC에 대한 사람들의 지긋지긋함이 상당히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탁한다. 아니 읍소하련다. 제발 그러지 말자.

PC를 남에게 으스대는 '완장'의 용도로 쓰지 말자.

그건 PC를 죽이는 일이다.

(pg 100)

책의 후반부에는 PC 운동이 야기한 가해자 지목 문화와 피해자 의식 문화의 폐해와 사회적 약자에게 '선'의 프레임을 씌우는 언더도그마 현상까지 간단하게 훑고 있다.

모든 현상들이 최근의 대한민국에서도 활발하게 관찰되는 현상들이며 책에도 비교적 최신 사례(장애인 지하철 시위와 이를 바라보는 이준석의 관점 등)들이 실려있는 편이라 지금 시점에 읽기 딱 적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PC 운동이 일어난 것인데, - 중략 -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는 걸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pg 60)

니체의 말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

괴물과 싸우다 보면 나도 괴물이 되기 쉽다.

(일베와 싸우기 위해 탄생했던 메갈을 보면 그 둘의 차이는 그저 염색체 하나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PC가 딱 이런 모양이지 않은가 싶어 씁쓸한 느낌이 들 따름이다.

주제 자체가 가볍진 않지만 저자가 쉬운 문체로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설명하기 때문에 읽기에 어려움은 없다.

분량도 후미의 주석을 제외하면 170페이지 정도의 소책자라서 한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정독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최근 정치적 입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견해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민주당이나 국짐당이나 할 것 없이 까주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PC에 대한 견해만 비슷하다면 무난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뭔가 가슴 아픈 10대 소녀의 짝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제목과 표지 그림이지만 그 옆에 달린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쉽게 풀리지 않을 사건이 벌어질 것을 예고하는 듯하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느낌의 책이지만 역시나 그의 소설답게 몰입감이 좋아서 책이 도착한 날 모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여서 다루는 주제도 다양한데, 이번 작품에서는 '성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30대 남성인 데쓰로는 학창 시절 미식축구를 같이 하던 동기들을 만난 후 귀갓길에 미식축구 팀의 여성 매니저였던 미쓰키를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미쓰키는 데쓰로에게 세 가지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자신이 FTM 트랜스젠더라는 것, 데쓰로의 아내를 친구가 아닌 여자로서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 중이라는 것이었다.

죽은 자는 한 술집 종업원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스토커였고 이를 미쓰키가 막아내는 과정에서 죽이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데쓰로는 미쓰키와의 우정을 생각하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니만큼 미쓰키가 말한 것이 모두 단순한 사실일 리 없으므로 사건의 큰 흐름은 당연히 살인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작가가 진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의문스러운 살인 사건의 해결보다는 미쓰키처럼 조금 특별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프리랜서 스포츠 작가인 데쓰로는 사회 통념상 전형적인 남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가 사건을 쫓으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가 알고 있던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성 소수자로는 FTM, MTF 트랜스젠더는 물론, 레즈비언과 반음양(남녀의 생식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장애)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들이 살아가며 겪고 있는 고민의 양상도 모두 다르다.

작가는 작품 중반에 남성과 여성을 뫼비우스의 띠로 묘사한다.

누구나 자신은 앞 혹은 뒤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 둘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후반에는 이를 스펙트럼으로도 표현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비유가 더 와닿았다.)

양 극단에 남자와 여자가 있는 스펙트럼에서 우리는 누구나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100% 남자), (95% 여자 + 5%남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개인은 물론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도 존재할 수 있으므로 그 지점이 50%인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반음양으로 태어난 어린 달리기 선수의 대사였다.

"결국은 다,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고 마음대로 규정하고

자신과의 차이에 괴로워하는 것 같았어요.

남자가 무엇인지, 여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더라고요." - 중략 -

"내게 남녀는 나 이외의 인간이에요.

다들 남자 아니면 여자로 나뉘어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나누는 것에 의미 같은 건 없어요."

(pg 268)

조사 도중 성 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도 만나게 된다.

물론 지금에야 이를 지지해 줄 수 있는 부모도 많아졌으리라 생각하지만, 이 책이 발간된 것은 무려 20년 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즈음 가수 하리수가 데뷔하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막 시작됐을 무렵이니 이때에는 자식이 성 소수자인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부모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을 이해하지 못해 연을 끊고 살던 한 아버지는 노년에 이르러 아래와 같은 고백을 한다.

"니시와키 씨, 자녀는?"

"아직 없습니다."

"그래요?"

"아이가 없어서 심정을 모른다고 하시려는 건가요?"

"아뇨. 그런 말은 안 합니다." - 중략 -

"아이가 있든 없든 그 마음은 이해할 겁니다.

다만 아이가 있으면 조금은 더 상상하기 쉽겠죠."

"아이를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이요?"

"아뇨. 부모의 이기심이죠."

(pg 340)

살인사건의 진상은 책의 중후반부쯤 되면 대충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상을 밝혀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데 이들이 대체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태어나 '호적'이라는 것에 등록되고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성 역할에 맞춰 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을 숨기고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선택을 한다.

(사실 주민등록번호와 금융실명제가 사회의 근간이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자신이 평범한 남성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데쓰로는 이들을 만나면서 성 정체성과 성 역할을 단순히 두 가지로만 구분하려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한 사람은 여성의 마음으로 여성을 사랑하는 데 죄책감을 느꼈고,

다른 한 사람은 남성으로 여성을 사랑하면서도 육체가 여성인 것에 괴로워했다.

자살이라는 결론은 같았으나 그곳에 도달한 길은 전혀 다르다.

다만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 이른바 윤리라 불리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윤리가 반드시 인간의 옳은 길을 드러낸다는 보장은 없다.

대부분은 그다지 대단한 근거도 없는 사회 통념에 불과하다.

(pg 397)

'살인사건의 추적'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성 소수자들의 삶과 맞물려 독특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들마다 성별이 헷갈려서 '그래서 남자라는 거야, 여자라는 거야'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읽었었지만 읽다 보니 작가가 '이들도 그냥 사람일 뿐이다'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납득이 되면서도 구체적인 것은 독자들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결말 역시 깔끔했다.

일반적인 소설의 두 권 정도에 해당하는 다소 긴 느낌을 주는 책이지만 어려운 문장도 없고 진상에 서서히 다가가면서 보여주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흥미를 계속 이어주기 때문에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을 포함하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만 총 8개의 작품을 읽었는데 아직도 못 본 작품이 수두룩하다.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래서 배제하려 하죠.

아무리 성정체성장애라는 단어가 부각되어도 변하는 것은 없어요.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우리 마음은 전해지지 않을 거예요.

짝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죠."

(pg 4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직감하는 양자역학 -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적 구조를 머릿속에 바로 떠올리는 색다른 물리 강의
마쓰우라 소 지음, 전종훈 옮김, 장형진 감수 / 보누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돌이로 근 40년을 살아온 내가 갑자기 양자역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단연 김상욱 교수라 할 수 있다.

그의 말과 글 솜씨에 반해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을 맛보기 위해 나름 교양서를 몇 권 읽었다.

그러던 중 '교양서보다 깊고, 교과서보다 쉽다'라며 "츄라이 츄라이"를 외치는 책이 나와 읽어보게 되었다.

다른 문돌이들과 동일하게 수식에 극단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지만 '중, 고등학교 수준'의 수식만 활용해 설명했다는 말에 그래도 문과 치고는 수학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과거를 떠올리며 안심(?)하고 책을 펼쳤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수식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나의 수학 지식은 수능 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깔끔하게 휘발되었음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에서 등장하는 수식 중 내가 이해한 부분은 진짜 너그럽게 봐줘야 한 15%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 또한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새로운 시각은 양자역학과 고전물리학의 관계였다.

기존에 읽어 온 교양서에서는 고전물리학은 거시적인 역학, 양자역학은 미시적인 역학으로만 단순하게 설명했다.

즉 현실 세계는 거시적이기 때문에 고전물리학을 적용해야 하고 원자와 전자 수준으로 작은 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을 적용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했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훨씬 더 큰, 더 근본적인 개념이고 고전물리학은 양자가 특정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에 한해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즉 둘이 전혀 다른 개념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고전물리학의 상위호환인 셈이다.

이 세계는 일정한 법칙을 따라 움직이며,

우리는 그 규칙대로 움직이는 상태밖에 본 적이 없으므로 당연하다고 느낀 것뿐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자연계에 규칙이 있다는 그 사실 자체다.

(pg 33)

김상욱 교수가 한 강연에서 '사실 우주에서는 죽어있는 것이 디폴트고 살아 있는 것이 예외적인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인용한 문구에도 비슷한 시각이 들어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모두 양자로 되어 있고, 이들이 모여 양자의 특징인 중첩과 불안정성을 잃은 대신 지금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분자 수준의 특징들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고전물리학으로도 설명이 가능해지는 것이라 이해했다.

한편 여러 상황 증거로 볼 때,

갓 태어난 우주에는 거의 수소와 헬륨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주변에 있는 여러 원자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렇다.

바로 별 내부에서 합성됐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옛날 큰 항성이 수명을 다했을 때,

그 항성 안에서 합성된 무거운 원소가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서 태양계를 형성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우리는 글자 그대로 '별의 조각'인 것이다.

(pg 87)

이 책을 이해하고자 지금부터 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행렬 부분은 너무 중요해 보여서 유튜브 수능특강으로 기억을 되살려가며 행렬 부분은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애를 썼다.

수학이 싫어 문과를 선택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했을법한 생각이지만, 학창 시절에는 대체 행렬 따위를 배워서 어디다 쓸까 궁금했었는데 양자역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행렬이었다.

한 좌표에서의 위치와 속도가 정해진 것을 대상으로 하는 고전 물리학과는 달리 양자는 위치와 속도가 동시에 정해질 수 없기 때문에 행렬로 표기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수의 곱셈과 달리 행렬의 곱셈에서 앞, 뒤 순서를 바꾸면 결과값이 달라지는 것처럼 양자를 행렬로 표시함으로써 위치와 속도의 불확정성을 수학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설명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양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불확정적이며,

그 측정치에는 반드시 그 불확정성만큼의 오차가 있다.

그리고 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의 곱에는

플랑크 상수에 비례하는 하한이 있다.

오늘날 '불확정성의 원리' 또는 '불확정성 관계'라고 부르는 양자의 특징적인 성질이다.

(pg 103)

즉 양자 상태에는 확정된 물리량 정보가 처음부터 들어 있지 않으며, 고전물리학처럼

측정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값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은 원리상 불가능하다. - 중략 -

한 번 측정하는 값을 예측할 수 없다면, 양자라는 것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무법 상태에 있는 것일까? - 중략 -

같은 조건으로 몇 번이고 측정을 반복하면 잘 측정되는 값,

측정되지 않는 값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측정치의 분포'다.

(pg 113)

수식이 조금 많이 등장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존의 양자역학 교양서와 흐름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기에 이를 양자라고 부른다는 설명부터 시작해 양자컴퓨터에 대한 전망으로 끝을 맺고 있다.

양자의 불확정성, 중첩, 얽힘 등을 설명하는 것도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그 설명에 수식이 조금 더 포함되어 있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사람에 따라서 그 수식이 있어서 이해가 더 쉬운 사람도 있겠고, 되려 수식 때문에 혼란스러운 (나 같은)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수식이 다소 어렵다면 그냥 설명만 쭉 읽어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양자역학을 책 한 권으로 이해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같은 주제로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긴 한다.

그리고 수학으로의 접근을 더 하지 않으면 글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은 대충 이 정도겠구나 하는 점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제목처럼 양자역학을 직감으로 이해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책에서 양자를 설명하는 시각에도 행렬역학, 파동역학, 경로적분 등 여러 가지가 있다고 소개했듯이, 양자역학을 비전공자에게 소개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만큼 시중에 많은 교양서들이 나와 있는데, 이 책이 비전공자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양자역학은 모든 상태가 중첩한 양자 상태를 다루지만,

우리가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를 실제로 눈으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것이 양자역학이 까다로운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pg 218)

앞으로 수십 년 정도는 고전 컴퓨터도 계속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언젠가는 그것도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 중략 -

양자컴퓨터가 모든 계산기를 대체하는 미래는 반드시 온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매사를 보는 관점이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pg 258)

개인적으로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었기에 이 책에 도전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양자역학에 관한 교양서 한두 권 정도는 읽어 보거나 최소한 유튜브 강의 영상이라도 보고 나서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