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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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가슴 아픈 10대 소녀의 짝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제목과 표지 그림이지만 그 옆에 달린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쉽게 풀리지 않을 사건이 벌어질 것을 예고하는 듯하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느낌의 책이지만 역시나 그의 소설답게 몰입감이 좋아서 책이 도착한 날 모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여서 다루는 주제도 다양한데, 이번 작품에서는 '성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30대 남성인 데쓰로는 학창 시절 미식축구를 같이 하던 동기들을 만난 후 귀갓길에 미식축구 팀의 여성 매니저였던 미쓰키를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미쓰키는 데쓰로에게 세 가지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자신이 FTM 트랜스젠더라는 것, 데쓰로의 아내를 친구가 아닌 여자로서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 중이라는 것이었다.

죽은 자는 한 술집 종업원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스토커였고 이를 미쓰키가 막아내는 과정에서 죽이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데쓰로는 미쓰키와의 우정을 생각하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니만큼 미쓰키가 말한 것이 모두 단순한 사실일 리 없으므로 사건의 큰 흐름은 당연히 살인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작가가 진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의문스러운 살인 사건의 해결보다는 미쓰키처럼 조금 특별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프리랜서 스포츠 작가인 데쓰로는 사회 통념상 전형적인 남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가 사건을 쫓으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가 알고 있던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성 소수자로는 FTM, MTF 트랜스젠더는 물론, 레즈비언과 반음양(남녀의 생식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장애)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들이 살아가며 겪고 있는 고민의 양상도 모두 다르다.

작가는 작품 중반에 남성과 여성을 뫼비우스의 띠로 묘사한다.

누구나 자신은 앞 혹은 뒤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 둘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후반에는 이를 스펙트럼으로도 표현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비유가 더 와닿았다.)

양 극단에 남자와 여자가 있는 스펙트럼에서 우리는 누구나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100% 남자), (95% 여자 + 5%남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개인은 물론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도 존재할 수 있으므로 그 지점이 50%인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반음양으로 태어난 어린 달리기 선수의 대사였다.

"결국은 다,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이렇다고 마음대로 규정하고

자신과의 차이에 괴로워하는 것 같았어요.

남자가 무엇인지, 여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더라고요." - 중략 -

"내게 남녀는 나 이외의 인간이에요.

다들 남자 아니면 여자로 나뉘어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예요. 나누는 것에 의미 같은 건 없어요."

(pg 268)

조사 도중 성 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도 만나게 된다.

물론 지금에야 이를 지지해 줄 수 있는 부모도 많아졌으리라 생각하지만, 이 책이 발간된 것은 무려 20년 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즈음 가수 하리수가 데뷔하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막 시작됐을 무렵이니 이때에는 자식이 성 소수자인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부모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을 이해하지 못해 연을 끊고 살던 한 아버지는 노년에 이르러 아래와 같은 고백을 한다.

"니시와키 씨, 자녀는?"

"아직 없습니다."

"그래요?"

"아이가 없어서 심정을 모른다고 하시려는 건가요?"

"아뇨. 그런 말은 안 합니다." - 중략 -

"아이가 있든 없든 그 마음은 이해할 겁니다.

다만 아이가 있으면 조금은 더 상상하기 쉽겠죠."

"아이를 생각하는 부모의 사랑이요?"

"아뇨. 부모의 이기심이죠."

(pg 340)

살인사건의 진상은 책의 중후반부쯤 되면 대충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상을 밝혀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데 이들이 대체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태어나 '호적'이라는 것에 등록되고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성 역할에 맞춰 살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을 숨기고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선택을 한다.

(사실 주민등록번호와 금융실명제가 사회의 근간이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다.)

자신이 평범한 남성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데쓰로는 이들을 만나면서 성 정체성과 성 역할을 단순히 두 가지로만 구분하려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한 사람은 여성의 마음으로 여성을 사랑하는 데 죄책감을 느꼈고,

다른 한 사람은 남성으로 여성을 사랑하면서도 육체가 여성인 것에 괴로워했다.

자살이라는 결론은 같았으나 그곳에 도달한 길은 전혀 다르다.

다만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 이른바 윤리라 불리는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윤리가 반드시 인간의 옳은 길을 드러낸다는 보장은 없다.

대부분은 그다지 대단한 근거도 없는 사회 통념에 불과하다.

(pg 397)

'살인사건의 추적'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성 소수자들의 삶과 맞물려 독특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들마다 성별이 헷갈려서 '그래서 남자라는 거야, 여자라는 거야'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읽었었지만 읽다 보니 작가가 '이들도 그냥 사람일 뿐이다'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납득이 되면서도 구체적인 것은 독자들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결말 역시 깔끔했다.

일반적인 소설의 두 권 정도에 해당하는 다소 긴 느낌을 주는 책이지만 어려운 문장도 없고 진상에 서서히 다가가면서 보여주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흥미를 계속 이어주기 때문에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을 포함하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만 총 8개의 작품을 읽었는데 아직도 못 본 작품이 수두룩하다.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래서 배제하려 하죠.

아무리 성정체성장애라는 단어가 부각되어도 변하는 것은 없어요.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우리 마음은 전해지지 않을 거예요.

짝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죠."

(pg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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