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가슴 아픈 10대 소녀의 짝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제목과 표지 그림이지만 그 옆에 달린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쉽게 풀리지 않을 사건이 벌어질 것을 예고하는 듯하다.
700페이지에 달하는 벽돌 느낌의 책이지만 역시나 그의 소설답게 몰입감이 좋아서 책이 도착한 날 모두 읽을 수밖에 없었다.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여서 다루는 주제도 다양한데, 이번 작품에서는 '성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30대 남성인 데쓰로는 학창 시절 미식축구를 같이 하던 동기들을 만난 후 귀갓길에 미식축구 팀의 여성 매니저였던 미쓰키를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미쓰키는 데쓰로에게 세 가지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자신이 FTM 트랜스젠더라는 것, 데쓰로의 아내를 친구가 아닌 여자로서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 중이라는 것이었다.
죽은 자는 한 술집 종업원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던 스토커였고 이를 미쓰키가 막아내는 과정에서 죽이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데쓰로는 미쓰키와의 우정을 생각하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이니만큼 미쓰키가 말한 것이 모두 단순한 사실일 리 없으므로 사건의 큰 흐름은 당연히 살인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작가가 진짜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의문스러운 살인 사건의 해결보다는 미쓰키처럼 조금 특별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의 프리랜서 스포츠 작가인 데쓰로는 사회 통념상 전형적인 남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가 사건을 쫓으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가 알고 있던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성 소수자로는 FTM, MTF 트랜스젠더는 물론, 레즈비언과 반음양(남녀의 생식기를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장애)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들이 살아가며 겪고 있는 고민의 양상도 모두 다르다.
작가는 작품 중반에 남성과 여성을 뫼비우스의 띠로 묘사한다.
누구나 자신은 앞 혹은 뒤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그 둘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후반에는 이를 스펙트럼으로도 표현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비유가 더 와닿았다.)
양 극단에 남자와 여자가 있는 스펙트럼에서 우리는 누구나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100% 남자), (95% 여자 + 5%남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개인은 물론 스펙트럼의 어느 지점에도 존재할 수 있으므로 그 지점이 50%인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반음양으로 태어난 어린 달리기 선수의 대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