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감하는 양자역학 -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적 구조를 머릿속에 바로 떠올리는 색다른 물리 강의
마쓰우라 소 지음, 전종훈 옮김, 장형진 감수 / 보누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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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돌이로 근 40년을 살아온 내가 갑자기 양자역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단연 김상욱 교수라 할 수 있다.

그의 말과 글 솜씨에 반해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을 맛보기 위해 나름 교양서를 몇 권 읽었다.

그러던 중 '교양서보다 깊고, 교과서보다 쉽다'라며 "츄라이 츄라이"를 외치는 책이 나와 읽어보게 되었다.

다른 문돌이들과 동일하게 수식에 극단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나지만 '중, 고등학교 수준'의 수식만 활용해 설명했다는 말에 그래도 문과 치고는 수학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과거를 떠올리며 안심(?)하고 책을 펼쳤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수식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나의 수학 지식은 수능 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깔끔하게 휘발되었음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에서 등장하는 수식 중 내가 이해한 부분은 진짜 너그럽게 봐줘야 한 15%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 또한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새로운 시각은 양자역학과 고전물리학의 관계였다.

기존에 읽어 온 교양서에서는 고전물리학은 거시적인 역학, 양자역학은 미시적인 역학으로만 단순하게 설명했다.

즉 현실 세계는 거시적이기 때문에 고전물리학을 적용해야 하고 원자와 전자 수준으로 작은 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을 적용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했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훨씬 더 큰, 더 근본적인 개념이고 고전물리학은 양자가 특정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에 한해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즉 둘이 전혀 다른 개념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고전물리학의 상위호환인 셈이다.

이 세계는 일정한 법칙을 따라 움직이며,

우리는 그 규칙대로 움직이는 상태밖에 본 적이 없으므로 당연하다고 느낀 것뿐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자연계에 규칙이 있다는 그 사실 자체다.

(pg 33)

김상욱 교수가 한 강연에서 '사실 우주에서는 죽어있는 것이 디폴트고 살아 있는 것이 예외적인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인용한 문구에도 비슷한 시각이 들어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모두 양자로 되어 있고, 이들이 모여 양자의 특징인 중첩과 불안정성을 잃은 대신 지금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분자 수준의 특징들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고전물리학으로도 설명이 가능해지는 것이라 이해했다.

한편 여러 상황 증거로 볼 때,

갓 태어난 우주에는 거의 수소와 헬륨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주변에 있는 여러 원자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렇다.

바로 별 내부에서 합성됐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옛날 큰 항성이 수명을 다했을 때,

그 항성 안에서 합성된 무거운 원소가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서 태양계를 형성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우리는 글자 그대로 '별의 조각'인 것이다.

(pg 87)

이 책을 이해하고자 지금부터 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행렬 부분은 너무 중요해 보여서 유튜브 수능특강으로 기억을 되살려가며 행렬 부분은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애를 썼다.

수학이 싫어 문과를 선택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했을법한 생각이지만, 학창 시절에는 대체 행렬 따위를 배워서 어디다 쓸까 궁금했었는데 양자역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행렬이었다.

한 좌표에서의 위치와 속도가 정해진 것을 대상으로 하는 고전 물리학과는 달리 양자는 위치와 속도가 동시에 정해질 수 없기 때문에 행렬로 표기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수의 곱셈과 달리 행렬의 곱셈에서 앞, 뒤 순서를 바꾸면 결과값이 달라지는 것처럼 양자를 행렬로 표시함으로써 위치와 속도의 불확정성을 수학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설명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양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불확정적이며,

그 측정치에는 반드시 그 불확정성만큼의 오차가 있다.

그리고 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의 곱에는

플랑크 상수에 비례하는 하한이 있다.

오늘날 '불확정성의 원리' 또는 '불확정성 관계'라고 부르는 양자의 특징적인 성질이다.

(pg 103)

즉 양자 상태에는 확정된 물리량 정보가 처음부터 들어 있지 않으며, 고전물리학처럼

측정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는 값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은 원리상 불가능하다. - 중략 -

한 번 측정하는 값을 예측할 수 없다면, 양자라는 것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무법 상태에 있는 것일까? - 중략 -

같은 조건으로 몇 번이고 측정을 반복하면 잘 측정되는 값,

측정되지 않는 값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측정치의 분포'다.

(pg 113)

수식이 조금 많이 등장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존의 양자역학 교양서와 흐름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기에 이를 양자라고 부른다는 설명부터 시작해 양자컴퓨터에 대한 전망으로 끝을 맺고 있다.

양자의 불확정성, 중첩, 얽힘 등을 설명하는 것도 큰 차이는 없다.

다만 그 설명에 수식이 조금 더 포함되어 있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사람에 따라서 그 수식이 있어서 이해가 더 쉬운 사람도 있겠고, 되려 수식 때문에 혼란스러운 (나 같은)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수식이 다소 어렵다면 그냥 설명만 쭉 읽어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양자역학을 책 한 권으로 이해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같은 주제로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긴 한다.

그리고 수학으로의 접근을 더 하지 않으면 글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은 대충 이 정도겠구나 하는 점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제목처럼 양자역학을 직감으로 이해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책에서 양자를 설명하는 시각에도 행렬역학, 파동역학, 경로적분 등 여러 가지가 있다고 소개했듯이, 양자역학을 비전공자에게 소개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만큼 시중에 많은 교양서들이 나와 있는데, 이 책이 비전공자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양자역학은 모든 상태가 중첩한 양자 상태를 다루지만,

우리가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를 실제로 눈으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것이 양자역학이 까다로운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pg 218)

앞으로 수십 년 정도는 고전 컴퓨터도 계속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언젠가는 그것도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 중략 -

양자컴퓨터가 모든 계산기를 대체하는 미래는 반드시 온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매사를 보는 관점이 지금과 완전히 다를 것이다.

(pg 258)

개인적으로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었기에 이 책에 도전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양자역학에 관한 교양서 한두 권 정도는 읽어 보거나 최소한 유튜브 강의 영상이라도 보고 나서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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