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 한국의 문화 전쟁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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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어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이하 PC)이 무슨 개념인지 설명하는 책인가?' 싶은데, '대한민국에서 PC가 나아가야 할 길' 정도의 부제가 붙어 있다면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최근 한국에서 보이는 정치적 올바름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본 뒤 대중들의 상당수가 PC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 피곤함을 극복할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적인 정치 성향으로 따지자면 나 역시 빨갱이에 가깝지만 사실 지금 국내의 PC는 너무 성역화 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불편함을 언제부턴가 느껴왔다.

PC를 부르짖는 사람들은 언제나 옳고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보수적인 꼰대로 몰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느낌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PC가 최근 문화 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건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서구 사회는 이미 정치는 물론이고 교육기관이나 직장 등 일상생활 수준에서도 PC 운동이 상당 기간 벌어져왔고, 그 성과도 적지 않았다.

다양한 인종 기반을 가진 국가들에서는 인종차별 철폐 운동의 확산이 가장 큰 성취일 것이고, 여타 국가들에서는 페미니즘의 확산을 주요 성과로 들 수 있겠다.

정치 제도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대형 콘텐츠 메이커들이 이 시류에 편승해 콘텐츠 제작의 기반 사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게다가 SNS가 폭넓게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PC의 사상을 전방위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PC 메시지가 담긴 글과 사진을 퍼나르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야말로 PC가 현대사회의 주류 사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문제는 이 양상이 너무 과도하게, 그리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확산되다 보니 대중들에게서 반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데에 있다.

특히 PC가 '내가 이렇게 올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PC의 근본 이슈들이 대부분 좌파들의 이슈였던 만큼 그 반감 역시 우파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반감들이 모여 미국에서는 트럼프를 당선시키는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같은 좌파 진영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로 PC는 지금 위협에 처해있다.

2015년 10월 민주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그걸 잘 말해준다. "PC가 국가적으로 큰 문제"라는 진술에 동의한 사람은 62퍼센트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진술이 트럼프가 한 말이라는 걸 밝혔을 땐 동의율은 36퍼센트로 급감했지만,

응답자들의 정파적 반감을 감안하자면 'PC 피로증'이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pg 29)

그렇다면 PC 운동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PC 운동가들의 교조적이고 오만한 태도일 것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아래와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PC 운동의 취지와 당위성엔 동의와 지지를 보내면서도,

동의와 지지를 보낼 뜻이 있는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운동 방식의 문제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운동 방식의 문제는 과유불급의 원리와 관련된 것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말로 압축해 지적할 수 있다. - 중략 -

어떤 사람이 무심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을 때 "그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다"고

지적하는 것과 "당신은 인종차별주의자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PC에 근거한 비판은 곧잘 후자의 딱지 붙이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pg 30-31)

대중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부분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이름을 달고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에도 PC를 강조하기 위해 여성이나 유색인종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PC 요소를 끼워 넣기 위해 기본 서사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이를 지적하면 '공부를 더 하라'거나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딱지를 붙여버리니 PC를 옹호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 전반에 걸쳐 PC에 관련된 다양한 논쟁들을 취합해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해외 사례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최근에 있었던 싸이의 흠뻑쇼를 둘러싼 논쟁(가뭄이라 농민들은 고통 받는데 물 펑펑 쓰는 쇼를 꼭 해야 하나에 관한 논쟁)까지 두루 다룬다.

예시 후에는 자유, 위선, 계급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PC에 대한 쟁점을 압축해 소개한다.

PC에 반대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 중 하나가 바로 PC가 표현의 자유를 상당히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는 혐오 발언의 자유 또한 자유로 봐야 하는가 하는 또 다른 논쟁을 낳기에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단순한 실수나 악의가 없는 발언에 관해서도 쏟아지는 무차별적인 비난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본다.

또한 PC를 옹호하는 자들이 대체로 말만 하지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고 위선이라며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서 슬랙티비즘(SNS에서만 올바름을 외치는 게으른 행동주의를 비꼬는 말)에 관한 논쟁도 소개된다.

일면 위선의 태도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분명 관점 전환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예를 들면, SNS에 #AllLivesMatter 태그만 달아놓을 뿐 실질적인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의견과 그렇다 하더라도 이 태그를 다는 행위 자체가 그 문제를 인식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계급의 문제는 계급문제를 사회문제의 핵심으로 보는 좌파 진영에서 주로 제기되는 문제로, PC가 사람들의 관심을 부차적인 것으로 돌려 진짜 중요한 계급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시각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시각에 대해 모두 비판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들의 의견 자체가 PC의 불필요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PC 운동 자체가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나와 견해가 다른 자를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방법으로는 충분한 동의와 추진력을 얻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PC에 대한 논쟁이 일면 '싸가지'와 '과유불급'의 문제라고 본다.

사실 나는 PC의 생명은 겸손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흔히 하는 말로 '지적질'을 받고 기분이 상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 중략 -

특정인을 겨냥해 속된 말로 잘난 척하면서 싸가지 없게 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pg 88)

나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한다.

아무리 좋은 말도 기분 나쁘게 말하면 듣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PC 운동을 통해 진짜로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현재의 교조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상대편을 까내리기 위해 PC적인 접근을 활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솔직히 이번 대선에서 매일 국민을 부끄럽게 만드는 자를 뽑게 한 많은 원인 중에 PC에 대한 사람들의 지긋지긋함이 상당히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탁한다. 아니 읍소하련다. 제발 그러지 말자.

PC를 남에게 으스대는 '완장'의 용도로 쓰지 말자.

그건 PC를 죽이는 일이다.

(pg 100)

책의 후반부에는 PC 운동이 야기한 가해자 지목 문화와 피해자 의식 문화의 폐해와 사회적 약자에게 '선'의 프레임을 씌우는 언더도그마 현상까지 간단하게 훑고 있다.

모든 현상들이 최근의 대한민국에서도 활발하게 관찰되는 현상들이며 책에도 비교적 최신 사례(장애인 지하철 시위와 이를 바라보는 이준석의 관점 등)들이 실려있는 편이라 지금 시점에 읽기 딱 적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PC 운동이 일어난 것인데, - 중략 -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는 걸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pg 60)

니체의 말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본다.

괴물과 싸우다 보면 나도 괴물이 되기 쉽다.

(일베와 싸우기 위해 탄생했던 메갈을 보면 그 둘의 차이는 그저 염색체 하나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PC가 딱 이런 모양이지 않은가 싶어 씁쓸한 느낌이 들 따름이다.

주제 자체가 가볍진 않지만 저자가 쉬운 문체로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설명하기 때문에 읽기에 어려움은 없다.

분량도 후미의 주석을 제외하면 170페이지 정도의 소책자라서 한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정독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최근 정치적 입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견해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민주당이나 국짐당이나 할 것 없이 까주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PC에 대한 견해만 비슷하다면 무난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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