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하시모토 고지 지음, 서수지 옮김, 김석현 감수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10월
평점 :
절판


물리학 전공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사실 '물리'와 '재미'가 같이 쓰기 좋은 단어의 조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관심이 끌린 책인데, 다 읽은 소감을 먼저 말하자면 의외로 진짜 '재미'가 있었다.

책을 한 마디로 소개하면 물리를 너무 재미있어하는 한 물리학자가 자신의 평소 사고방식이 얼마나 독특한지 소개하는 에세이라 할 수 있겠다.

대단한 물리적 지식을 알려준다기보다는 물리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소개가 많고 반쯤은 '내가 이렇게 독특하고 천재적인 사람이다'라는 자기 자랑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가볍게 읽힌다.

어린 시절, 인간의 평균수명이 약 여든 살이라는 사실을 알고 일수로 계산해본 적이 있다.

80년에 단순히 365일을 곱했다. 답은 3만 일이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가고 하루를 보냈다.

이 생활을 3만 번 반복하기만 해도 내 인생은 끝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진실을 알고 나니 두려워졌다.

(pg 129)

단순히 위의 사례만 보더라도 저자가 초등학교 때부터 독특한 사고를 해왔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초등학생이 인생의 유한함을 계산을 통해 깨닫다니 그 시절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 나로선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메타인지가 뛰어난 사람이 우수한 성과를 얻기 쉽다는 사실을 저자를 통해 관찰할 수 있었다.

저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그것이 자신이 하는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자신이 잘하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과정이 책 구석구석에 잘 드러난다.

이론물리학자의 작업이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풀고 싶은 문제를 만나고,

그 문제에 몰두하는 데 자신을 바치고,

또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아이디어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수는 돈이 아닌 자신의 탐구심을 충족하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pg 149)

당연히 과학, 특히 물리학에 대한 저자의 애정도 많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을 사랑하는 것은 일면 당연한 것이기도 할 테지만 일반적인 사람의 시각으로는 자신의 생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만은 않기에 일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먹고사는 문제만 아니면 은퇴 시점을 기다리게 마련일 텐데 저자는 은퇴 이후에도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내게 연구는 취미다. 즐겁고 신이 나서 멈출 수가 없는 일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래서 특정한 나이가 되면 끝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pg 247)

폭넓은 과학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것도 학생이라면 물론이고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보다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저자 역시 과학 지식과 과학적인 사고가 일반적인 대중들에게 폭넓게 보급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도움이 된다는 관점은 근시안적이고 국소적이다.

중력파의 예언부터 관측까지 100년 사이에 인류의 생활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떠올려보면 이 발견이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의 기준 자체가 바뀔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기초 과학의 발견은 보편성에 중점을 두는 게 자연스럽다.

도움이 될지 여부는 보편성에서 뻗어나가는 여러 갈림길 중 하나가 아닐까.

(pg 141)

정말로 과학이 일반 사회와 분리되어버리는 순간에 과학은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러나 현실에서 과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과학의 성과 중 아주 일부가 기술로 이어져 인류 생활에 변혁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또 과학이 인류가 지닌 궁극의 논리 구조인 수학에 기반을 두고 있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pg 171)

일상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물리학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들을 궁리하는 저자의 삶을 엿보는 것이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문돌이로 타고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자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는 없겠지만 저자와 비슷한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잠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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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밤하늘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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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최신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인 SF 작품이라 기대가 컸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인간을 쏙 빼닮은 휴머노이드와 장기 생산용 클론을 가전제품 찍어내듯 만들어낼 수 있는 미래의 이야기다.

무분별한 휴머노이드와 클론의 범람으로 등록되지 않은 개체들은 수용소로 격리해 처분해 버리는 사회.

주인공인 철이는 평생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살았던 휴머노이드다.

그의 아버지 혹은 개발자는 인공지능에 윤리를 부여하는 기술자로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가교 역할을 할 개체를 만들 생각으로 철이를 만들었다.

가장 인간다운 휴머노이드,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그대로 가지고

인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해나갈 휴머노이드,

혹시 그게 바로 나 아니었을까?

때문에 로봇이긴 하나 먹고 자야 하며 초인 같은 힘도, 엄청난 속도의 연산 능력도 없이 아버지의 회사 캠퍼스 안에서만 살았다.

그러다 잠시 캠퍼스를 벗어나게 된 그는 경비대의 단속에 걸려 수용소에 격리된다.

그곳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로봇인 줄 몰랐던 애완용 휴머노이드 민이와 클론으로 태어난 선이를 만나게 되고 이들과 함께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꽤나 철학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애초에 주인공의 이름도 '철학'의 '철'자를 따 지어졌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면 단골로 등장하는 테세우스의 배(이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딜레마도 다루어진다.

기계의 발달로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해가는 세상에서 인간과 휴머노이드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게다가 실험실에서 복제된 클론은 당연히 인간일진대 명백히 필요에 의해 특정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한들 그들을 다른 평범한(?) 인간의 도구처럼 사용하고 처분하는 것은 정당한가.

철이가 만난 선이는 마치 도인과도 같은 세계관을 지녔다.

원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 세상에서 '의식'을 가진 개체가 탄생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에 너무도 소중하고 때문에 각 개체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가 끝나면 비로소 우주의 구성 요소로 돌아가게 되고 억겁의 세월이 흘러 다시 의식을 가진 개체가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도 말한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수용소를 떠난 뒤 만나게 된 '달마'라는 로봇은 개별 의지를 지닌 AI들을 모두 통합해 하나의 군체의식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얼핏 더 거대한 그 무엇의 일부로 돌아간다는 측면만 보면 둘의 세계관이 비슷해 보이지만 철이는 그 안에 담긴 차이를 느끼고 고민에 빠진다.

기계인 철이와 인간인 선이가 체감하는 시간의 흐름은 당연히 같지 않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기나긴 세월이지만 기계의 기준으로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 흐르고 철이가 선이의 마지막을 지켜본 뒤 내린 선택은 긴 여운을 남겼다.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선이는 옳았다.

훗날 때가 왔을 때, 선이도 나도 일말의 의심 없이 알 수 있었다.

끝이 우리 앞에 와 있고,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호흡이 그리 길지 않은데도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SF 영화로 치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AI'와 로빈 윌리엄스의 '바이센테니얼 맨'이 동시에 떠오르는 이야기였지만 작가의 덤덤한 문체가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읽은 김영하의 작품인데, 이 작품은 꼭 영상화가 되면 좋겠다.

그것도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나와주면 작품의 분위기와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OTT 기업들이 최근 한국 콘텐츠에 돈을 쏟아붓는데, 빨리 이 좋은 이야기가 거대 자본을 만나 독특한 영상미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탄생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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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살인사건 봉제인형 살인사건
다니엘 콜 지음, 유혜인 옮김 / 북플라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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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꽤 인상적으로 읽었던 봉제인형 살인사건의 후속작이다.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울프는 전작의 엔딩 이후 자취를 감춘 상태이고, 그와 함께 봉제인형 살인사건을 수사한 백스터가 커티스와 루쉬라는 새로운 동료(?)들을 데리고 본 작품을 이끌어간다.

물론 전작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던 에드먼즈는 이번 작품에서도 적지 않은 활약을 펼친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스마트한 범인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죽여나간(?) 전작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가스라이팅, 그것도 사이비 종교 수준의 대규모 가스라이팅으로 세뇌된 인간 꼭두각시(Puppet)들이 그들의 주인(Puppeteer)을 대신해 사람들을 죽여나간다.

전작에 비해 일단 그 피해의 규모가 굉장히 커졌다.

전작이 영국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해자들이 발생한다.

피해자의 규모도 처음에는 그저 '살인사건' 정도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던 정도라면 작품의 중반쯤에는 '테러'라는 단어가 더 적합한 수준으로 스케일이 커진다.

다수의 꼭두각시들이 시시각각 일으키는 테러를 막으면서 그들의 조종사인 진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작품의 큰 줄기라고 할 수 있겠다.

대단한 반전이 있는 추리소설이 아닌 범죄 스릴러물에 가까운 만큼 스포일러가 치명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스토리는 모르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으므로 아래의 내용은 책을 읽을 사람이라면 지나치길 바란다.

다 읽은 소감은 전작인 '봉제인형'에 비하면 다소 긴박감이 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작이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였던 것에 반해 이번 작품에는 나름 개그 장면도 많이 들어 있어서 작가가 드라마 제작을 염두해 두고 쓴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도 들었다.

개그 장면이 웃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적합한지, 굳이 들어가야 하는 내용인지는 의문이었다. (특히 호텔에서 거미가 나온 장면!)

개인적으로는 울프를 대신해 활약하는 커티스와 루쉬의 캐릭터가 그다지 개성적이지 않다는 점도 아쉬웠다.

'고위직 아버지의 낙하산이라는 낙인을 벗어버리고 싶은 요원'과 '가족을 잃은 뒤 자신의 삶은 포기한 채 범인 잡기에만 몰두하는 요원'은 너무 어디선가 많이 본 느낌이 든다.

진범이 따로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살인의 실행 주체인 꼭두각시들이 그저 정신이 불안정한 가스라이팅 피해자일 뿐이라는 점도 약간 맥이 빠졌다.

전체적으로 '동기'라는 측면이 진범을 제외하면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았다.

전작의 범인이 확실한 동기로 공감이 확 갔던 것과 비교가 되어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는 확실히 있었다.

미국과 영국을 넘나드는 장소의 변화도 많고, 사건이 워낙 많이 일어나서 숨 쉴 틈 없이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진다.

사건에 매진하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부분은 놓치고 살아가는 백스터의 답답함도 시시각각 보여주고, 그런 그녀를 묵묵히 돕는 주변의 천사 같은(?) 동료들도 잘 표현되어 있어서 끔찍한 사건을 다루지만 나름 따뜻한 부분도 많이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한다.

영상화를 한다면, 전작보다는 이번 작품이 훨씬 더 긴 드라마로 만들 여지가 있어 보이긴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의 의도가 이쪽이지 않나 싶다.)

"때로는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해 봐야 삶의 의지가 생기는 거야."

작품의 중반쯤 쓱 지나가는 문장이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어 옮겼다.

소설 속 인물들이지만 진범도, 커티스도, 루쉬도, 백스터도 저 문장을 들으면 잠시 숨을 멈추고 생각에 잠길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전작 봉제인형 살인사건 서평: https://blog.naver.com/rssun_books/22289527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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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물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 자연이 알려준 나를 사랑하는 법
래니 샤 지음, 김현수 옮김, 최재천 감수 / 드림셀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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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가 집필한 책도 아닌데 최재천 교수의 사진이 저자 사진보다 더 크게 인쇄되어 있는 걸 보니 그의 인지도가 높기는 한 모양이다. (심지어 띠지도 아닌 앞표지에 인쇄되어 있다.)

그리 마음에 드는 상술은 아니지만 생물들의 생태를 보며 살아가는 지혜를 구하는 책이라 하니 흥미가 갔다.

책에는 총 18종의 생물이 소개되어 있고, 각 생물에게서 배울 수 있는 짧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18개의 꼭지가 모두 '어떤 생물이 있다 - 그 생물에게는 특별한 행동이나 습성이 있다 - 그 생물을 통해 우리는 이런 점을 배울 수 있다'라는 논리로 글이 전개된다.

인류가 다른 생물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에는 사실 끝이 없지만 저자가 주목하고자 한 부분은 '자기 돌봄'에 관한 깨달음이다.

연비가 훌륭한 해파리의 고요에서부터 눈을 멀게(혹은 귀를 먹게)하는

갯가재(사마귀새우)의 아름다움과 고슴도치의 회복력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지구의 유쾌한 생물들로부터 조화로운 삶을 찾고

자신을 더 잘 돌보는 법을 정말 많이 배울 수 있다.

(pg 18)

모든 생물은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유전자의 대물림에 용이한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야생 생물에게 내일이란 확실하게 정해진 미래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에게 내일은 거의 확실한 미래에 가깝다.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매일 생존의 위기에 몰려 있지도 않고 오늘 잠들면 내일 눈 뜨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현대 인류의 스트레스 지수는 점점 늘어가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생물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자기 파괴적 경향도 폭넓게 확산되는 것 같다.

따라서 저자는 생물들을 통해 '균형'을 찾는 '자기 돌봄'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원문과 함께 소개해 본다.

버빗원숭이라는 동물은 위험이 발견되면 무리에게 특정한 소리로 신호를 보내는데, 이때 어린 개체가 신호를 보낼 경우 다른 어른 원숭이를 통해 실수 여부를 확인한 뒤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특이한 점은 실수한 어린 개체를 나무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빗원숭이 무리는 어린 원숭이에게 화를 내는 대신 실수도 배움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상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시스템은 원숭이들의 실수를 어느 정도 용납할 수 있게끔 해준다.

인간들이 아직 미숙한 부분이다.

(pg 90)

저자는 자신의 실수에도 관대할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소개한 것이지만 육아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육아에서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인 것도 같아서 기억에 남기고 싶었다.

흔히 '우파루파'라고 알려진 동물의 원 이름이 '액솔로틀'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는데, 더욱 놀라웠던 점은 이 동물이 죽지 않을 정도의 신체적 손상이라면 얼마든지 재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뇌 조직도 재생이 가능하다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비록 오늘은 액솔로틀이 팔다리를 하나 잃었을지 몰라도 내일은 다시

자라날 수도 있다는 것, 간단히 말해서 아직 자라는 중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pg 102)

우리의 인생에서도 자라날 기회는 언제나 있다는 의미로 인용한 사실이었지만 사실 자체가 워낙 신기해서 관련 내용을 구글로 한참 찾아봤었다.

굴이 진주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었다.

굴이 외투막에 상처를 입으면 그 부분을 진주를 형성하는 물질로 한 겹 한 겹 감싸기 시작한다.

그 상처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까지 천천히 계속 감싸는 것이다.

우리가 영구적인 손상을 입기 전까지 감당할 수 있는 역경의 이상적인 숫자 같은 건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판단이 잘 서지 않을 땐 굴이 하는 대로 해보자.

계속 헤엄쳐나가는 거다.

(pg 157)

18가지의 생물이 소개되어 있긴 하지만 총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이고, 텍스트도 페이지의 절반 정도만 차지해서 읽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분량이 짧아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만큼 부담 없이 읽기에는 좋았지만 뭔가 깊은 깨달음을 기대했다면 다소 가벼운 내용에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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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정온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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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특한 소재를 가진 국산 SF 소설이 나왔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한 스토리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이라고 하니 아직 대중적으로 검증되진 않았지만 개성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본 작품은 SF의 단골 소재인 시간 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에 영화 '엔드게임'에서 봤던 시간 여행 개념이 아닌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백 투 더 퓨처'식의 시간 여행이라 과거에 어떤 일을 하고 오면 그 결과가 현재에도 바로 나타난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타임머신이 개발된다. 
빈부격차의 심화로 자살률이 치솟던 상황, 이제 막 개발된 타임머신은 아주 먼 과거로까지는 돌아갈 수 없어서 자살자를 막는 용도로만 제한적으로 활용하기로 한다. 
마치 영화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자살한 사람이 발생하면 그 사람이 죽기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가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가능해진 사회인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회영은 몇 년 전 홀로 자신을 키워온 어머니가 자살로 세상을 떠난 후 힘겨워하는 젊은 여성이다.
타임머신을 이용해 자살자를 구하는 TF에 소속되어 많은 사람을 구했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구할 정도로 멀리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있었다. 
그러던 회영이 타임머신의 백도어에 10년을 넘어 30년까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자 회영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무단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소재는 분명 참신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SF라기보다는 따뜻한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일단 세계관에 논리적인 부분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엄청난 장치를 만들었는데(심지어 휴대용!) 이를 특정한 나라에서 아주 제한된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전 세계가 내버려 둔다는 설정도 그렇고,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주인공처럼 철없어 보이는 젊은이가 사적으로 마구 사용하는데도 타임머신에 블랙박스조차 달지 않았다는 점 등이 읽으면서 계속 의문으로 남아야 했다.
타임머신은 하나도 신기해하지 않는데, 지금의 스마트워치에 AI가 탑재되었을 뿐인 스마트워치를 보며 신기해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도 자연스럽진 않았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타임머신이 아니라 마법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판타지물이었어도 스토리에는 큰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말하는 스마트 워치도 말하는 동물로 얼마든지 갈음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이 하드 SF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만큼 드라마의 서사는 좋았다. 
가까운 누군가를 자살로 잃은 상실감을 이겨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도와주고자 하지만 자신이 닫아 둔 마음의 문을 스스로 열고 나오지 않으면 타인의 도움도 도움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모든 감정의 변화를 겪어낸 후 결국 회영이 맞이하는 심리적 안정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정립이 애잔하면서도 충분히 공감 가능한 괜찮은 결말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자살 유가족으로서 그 상실감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나도 '엔드게임'을 보면서 나에게 타임 스톤이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야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를 상상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곧 부질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녀석은 결국 스스로 떠났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 작품이 끌렸는지도 모른다. 
SF 작품을 좋아하기도 해서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진 않았으나, 나름 힐링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슬프고 불행한 순간도 있겠죠. 
그런데 난, 한순간이라도 행복하니까 그 길을 선택하는 거에요. 
남들이 지금까지 내 인생이 불행했을 거라고 깎아내려도, 
난 분명 내 인생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행복했어요. 
다시 물어볼게요. 나한테 그런 삶이 불행했다고 한마디라도 들은 적 있어요?" 
(pg 221)
유전자의 보존은 인류 이전부터 새겨진 모든 생명체의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삶을 끊어낸다는 것은 어지간한 의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타인이 이를 쉽게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오만한 생각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자살의 책임은 죽은 자가 모두 가지고 떠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 죽음에 우리가 보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그저 남은 삶을 남은 사람들과 함께 충실하게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이 작품 속 회영이 찾은 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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