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밤하늘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최신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인 SF 작품이라 기대가 컸다.

(e북으로 읽었는데 해당 콘텐츠에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아서 발췌문에 페이지를 표기하지 못했다.)

인간을 쏙 빼닮은 휴머노이드와 장기 생산용 클론을 가전제품 찍어내듯 만들어낼 수 있는 미래의 이야기다.

무분별한 휴머노이드와 클론의 범람으로 등록되지 않은 개체들은 수용소로 격리해 처분해 버리는 사회.

주인공인 철이는 평생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살았던 휴머노이드다.

그의 아버지 혹은 개발자는 인공지능에 윤리를 부여하는 기술자로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가교 역할을 할 개체를 만들 생각으로 철이를 만들었다.

가장 인간다운 휴머노이드,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그대로 가지고

인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해나갈 휴머노이드,

혹시 그게 바로 나 아니었을까?

때문에 로봇이긴 하나 먹고 자야 하며 초인 같은 힘도, 엄청난 속도의 연산 능력도 없이 아버지의 회사 캠퍼스 안에서만 살았다.

그러다 잠시 캠퍼스를 벗어나게 된 그는 경비대의 단속에 걸려 수용소에 격리된다.

그곳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로봇인 줄 몰랐던 애완용 휴머노이드 민이와 클론으로 태어난 선이를 만나게 되고 이들과 함께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꽤나 철학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다.

애초에 주인공의 이름도 '철학'의 '철'자를 따 지어졌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면 단골로 등장하는 테세우스의 배(이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딜레마도 다루어진다.

기계의 발달로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해가는 세상에서 인간과 휴머노이드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게다가 실험실에서 복제된 클론은 당연히 인간일진대 명백히 필요에 의해 특정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한들 그들을 다른 평범한(?) 인간의 도구처럼 사용하고 처분하는 것은 정당한가.

철이가 만난 선이는 마치 도인과도 같은 세계관을 지녔다.

원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 세상에서 '의식'을 가진 개체가 탄생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에 너무도 소중하고 때문에 각 개체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가 끝나면 비로소 우주의 구성 요소로 돌아가게 되고 억겁의 세월이 흘러 다시 의식을 가진 개체가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도 말한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야.

그걸 믿어야 해.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야.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수용소를 떠난 뒤 만나게 된 '달마'라는 로봇은 개별 의지를 지닌 AI들을 모두 통합해 하나의 군체의식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얼핏 더 거대한 그 무엇의 일부로 돌아간다는 측면만 보면 둘의 세계관이 비슷해 보이지만 철이는 그 안에 담긴 차이를 느끼고 고민에 빠진다.

기계인 철이와 인간인 선이가 체감하는 시간의 흐름은 당연히 같지 않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기나긴 세월이지만 기계의 기준으로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 흐르고 철이가 선이의 마지막을 지켜본 뒤 내린 선택은 긴 여운을 남겼다.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야. 선이는 옳았다.

훗날 때가 왔을 때, 선이도 나도 일말의 의심 없이 알 수 있었다.

끝이 우리 앞에 와 있고,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호흡이 그리 길지 않은데도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SF 영화로 치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AI'와 로빈 윌리엄스의 '바이센테니얼 맨'이 동시에 떠오르는 이야기였지만 작가의 덤덤한 문체가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 세 번째 읽은 김영하의 작품인데, 이 작품은 꼭 영상화가 되면 좋겠다.

그것도 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나와주면 작품의 분위기와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OTT 기업들이 최근 한국 콘텐츠에 돈을 쏟아붓는데, 빨리 이 좋은 이야기가 거대 자본을 만나 독특한 영상미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탄생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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