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하시모토 고지 지음, 서수지 옮김, 김석현 감수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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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전공자들이 들으면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사실 '물리'와 '재미'가 같이 쓰기 좋은 단어의 조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관심이 끌린 책인데, 다 읽은 소감을 먼저 말하자면 의외로 진짜 '재미'가 있었다.

책을 한 마디로 소개하면 물리를 너무 재미있어하는 한 물리학자가 자신의 평소 사고방식이 얼마나 독특한지 소개하는 에세이라 할 수 있겠다.

대단한 물리적 지식을 알려준다기보다는 물리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소개가 많고 반쯤은 '내가 이렇게 독특하고 천재적인 사람이다'라는 자기 자랑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가볍게 읽힌다.

어린 시절, 인간의 평균수명이 약 여든 살이라는 사실을 알고 일수로 계산해본 적이 있다.

80년에 단순히 365일을 곱했다. 답은 3만 일이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가고 하루를 보냈다.

이 생활을 3만 번 반복하기만 해도 내 인생은 끝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진실을 알고 나니 두려워졌다.

(pg 129)

단순히 위의 사례만 보더라도 저자가 초등학교 때부터 독특한 사고를 해왔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초등학생이 인생의 유한함을 계산을 통해 깨닫다니 그 시절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 나로선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메타인지가 뛰어난 사람이 우수한 성과를 얻기 쉽다는 사실을 저자를 통해 관찰할 수 있었다.

저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그것이 자신이 하는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자신이 잘하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과정이 책 구석구석에 잘 드러난다.

이론물리학자의 작업이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풀고 싶은 문제를 만나고,

그 문제에 몰두하는 데 자신을 바치고,

또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아이디어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수는 돈이 아닌 자신의 탐구심을 충족하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pg 149)

당연히 과학, 특히 물리학에 대한 저자의 애정도 많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을 사랑하는 것은 일면 당연한 것이기도 할 테지만 일반적인 사람의 시각으로는 자신의 생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만은 않기에 일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일반적인 직장인이라면 먹고사는 문제만 아니면 은퇴 시점을 기다리게 마련일 텐데 저자는 은퇴 이후에도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내게 연구는 취미다. 즐겁고 신이 나서 멈출 수가 없는 일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래서 특정한 나이가 되면 끝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pg 247)

폭넓은 과학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것도 학생이라면 물론이고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보다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저자 역시 과학 지식과 과학적인 사고가 일반적인 대중들에게 폭넓게 보급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도움이 된다는 관점은 근시안적이고 국소적이다.

중력파의 예언부터 관측까지 100년 사이에 인류의 생활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떠올려보면 이 발견이 '도움이 될까'라는 질문의 기준 자체가 바뀔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기초 과학의 발견은 보편성에 중점을 두는 게 자연스럽다.

도움이 될지 여부는 보편성에서 뻗어나가는 여러 갈림길 중 하나가 아닐까.

(pg 141)

정말로 과학이 일반 사회와 분리되어버리는 순간에 과학은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러나 현실에서 과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과학의 성과 중 아주 일부가 기술로 이어져 인류 생활에 변혁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또 과학이 인류가 지닌 궁극의 논리 구조인 수학에 기반을 두고 있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pg 171)

일상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물리학을 적용할 수 있는 사례들을 궁리하는 저자의 삶을 엿보는 것이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문돌이로 타고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자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는 없겠지만 저자와 비슷한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잠시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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