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와인드 디스톨로지 세트 박스 - 전4권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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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죽음이 극복된 세상에서 죽음을 다루는 사람들을 그려내 상당한 재미를 안겨줬던 '수확자' 시리즈의 저자가 이번에도 죽음을 주제로 한 SF 작품을 발표했다.

이번 작품의 시리즈명은 '언와인드 디스톨로지'로 총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마다 접두사 'un'으로 시작하는 제목이 달려있고, 모든 제목이 작품의 세계관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 세계관이 비범하다.

멀지 않은 미래, 미국에서 낙태의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내전이 일어난다.

전쟁으로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공교육이 무너지자 길 잃은 10대들이 강력 범죄로 빠지거나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과격한 집단행동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10대 청소년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 가지 안이 만들어진다.

문제 청소년들이 10대 후반이 되면 부모의 동의를 얻어 그들을 분해한 뒤(말 그대로다.) 각 장기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 제도의 이름이 바로 시리즈의 제목이자 1권의 제목인 '언와인드'다.

언와인드는 법에 따라 고통 없이 이루어지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신체적 고통보다 나쁜 것도 있다.

그는 두려움에, 외과 의사들이 다가오고 팔다리가 얼얼하다 마비되고

의료용 보존 아이스박스가 시야에서 들려 나갈 때,

그 아이들이 하나하나 느꼈던 순수한 무력감에 비명을 지르곤 한다.

감각은 하나하나 차단되고 기억은 하나하나 증발한다.

그렇게 각각의 언와인드가 망각 속으로 사라지면서, 언제나 그 끝은 소리 없는,

저항조차 무기력한 비명이다.

(3권, pg 147)

필요한 장기만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99% 이상이 이식되기에 흩어질 뿐, 죽는 것이 아니라는 궤변으로 무장한 그 안은 무법천지의 10대를 두려워하던 낙태 찬성파와 반대파 모두를 그럭저럭 만족시킬 수 있었고 전쟁은 종식된다.

이 제도가 정착되자 문제아들은 물론이고, 버려진 아이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 등 태생적으로 언와인드 되기 쉬운 아이들이 생겨나고, 종교적 이유로 아이를 십일조로 보내고자 하는 부모도 생겨나는 등 기상천외한 세상이 펼쳐진다.

완벽한 세상이라면 모든 어머니가 모두 아기를 원할 테고,

낯선 사람들은 사랑받지 못한 아기를 위해 자기 집 문을 열어 줄 것이다.

완벽한 세상이라면 모든 것이 검거나 희고, 옳거나 그를 것이다.

모두가 그 차이를 알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완벽한 세상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완벽하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1권, pg 118)

작품은 부모가 언와인드에 동의한 문제아 '코너', 보육원에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리사', 부모의 세뇌로 자신의 사명이 십일조로 언와인드 되는 것이라고 믿었던 '레브'라는 세 청소년의 이야기다.

해체되기 위해 이동하던 그들이 우연한 기회에 만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미친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1권에서 셋은 언와인드 시설 중 하나를 박살 내며 언와인드의 세상에 경종을 울리게 된다.

1권을 덮으면서 이 시점에서 이야기가 끝나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그와 비슷한 두께의 책이 세 권 더 있어서 살짝 의아한 마음으로 다음 책들로 넘어갔다.

시리즈를 다 읽고서 검색해 보니 1권이 이미 오래전에 발매된 적이 있었고(국내에는 '분해되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더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소개하면 나머지 세 권이 거대한 사족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우려되겠지만, 4권에서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멋진 결말을 보여주고 그때까지의 여정도 꽤 재미있기 때문에 두꺼운 책이지만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작품 속 세상이 어떻게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를 나머지 세 권에서 상세히 밝혀주기 때문에 1권을 읽으면서 '도대체 이 세계 사람들은 정신머리가 어떻길래 이런 제도를 찬성했을까'라는 질문이 들었다면 이후의 부분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비인간성을 잘 알고 있다는 듯, 해당 세계 안에서 어떤 프로파간다가 펼쳐지는지를 찬반 양쪽에서 추진하는 광고 형태로 묘사함으로써 세계관에 현실성과 개연성을 부여한다.

일이 일어나는 데는 이유가 있거나 아무 이유가 없다.

인간의 인생은 영광스러운 태피스트리의 실오라기이거나,

그저 절망적으로 뒤엉킨 매듭에 불과하다.

(2권, pg 558)

그들이 맞서고자 하는 것이 거대한 이권이 걸린 사회 제도 그 자체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그 사회를 떠받치는 모두가 정신이 나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로 인해 생긴 어려움을 사람들을 통해 해결해 가면서 각각이 모두 독특한 방식으로 성장해 나간다.

나만큼 오래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건...

사람들이 완전히 선하지도, 완전히 악하지도 않다는 거야.

우리는 평생 어둠과 빛을 드나든다.

(1권, pg 168)

사실 법적으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지금도 장기를 이식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10대 청소년들의 강력 범죄가 자극적으로 보도되면서 이런 아이들은 미리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여론도 이미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 두 가지 사실이 결합되면 이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지옥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발달에는 사회적인 규제가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잠깐만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두면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는 다시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가게 될 것이고, 이 작품 속 사람들처럼 '우리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에는 너무도 늦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작 말 한마디 때문에 그런 짓을 했다고? 말로는 다치지 않아."

그건 이 세상 아이들을 상대로 어른들이 영원히 되풀이하는, 가장 범죄적인 거짓말이다.

말은, 어떤 신체적 고통보다 아프다.

(2권, pg 24)

꽤 두꺼운 네 권으로 구성된 시리즈지만 저자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들 덕분에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너무도 많은 어려움들을 너무도 운 좋게 풀어가는 과정이 후반부가 되면 살짝 지겨워지기도 하는데, 작품의 전반적인 인상을 부정적으로 바꿔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 작품 역시 영화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스토리가 꽤 길어서 여러 편으로 나오거나 미드로 나오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어찌 됐든 제대로 영상화가 돼서 원작의 재미를 충분히 담아내주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수확자' 시리즈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의 기존 작품들을 좋아했던 사람뿐 아니라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꽤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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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쾅툭탁 힘과 운동 이야기 교과서가 쉬워지는 교과서 12
김성호 지음, 김고은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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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가 읽으면 좋을 것 같은 과학 책이 나왔다.

'교과서가 쉬워지는 교과서'라는 시리즈로 이미 열 권이 넘는 책이 출간되어 있고, 이 책이 그중 12번째 책이다.

딸아이가 읽기에는 아직 난이도가 조금 높을 것 같았는데, 책 내용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읽어주게 되더라도 아이가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에 접하게 되었다.



책은 과학이라는 학문의 기원부터 시작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과학 역시 철학의 한 가지였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여러 학설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중에서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것 중 하나는, 물체의 무게에 따라 중력 가속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우리의 직관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주는 부분이었다.

공기로 가득한 우리 주변에서는 공기의 저항을 많이 받는 물체일수록 늦게 떨어지기 때문에 깃털과 같은 가벼운 물체가 무거운 물체에 비해 늦게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갈릴레이는 큰 우박과 작은 우박이 동시에 떨어진다는 것을 관찰하고는 피사의 사탑에서 아래의 실험을 했다고 전해진다.

(pg 20)

이후 뉴턴이 등장하면서 고전 물리학을 정립한 과정과 고전 물리학의 3개 법칙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다.

산책을 하다 아이와 부딪힐 때 아이가 밀려나면 우스갯소리처럼 '이게 바로 작용, 반작용이야'라고 알려주기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후미에는 전자기학의 기초적인 부분들을 다루며 책이 마무리된다.

이 책은 인터넷 서점 기준 초등 3-4학년 서적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난이도가 꽤 있는 편이어서 고학년들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씨의 양이 엄청 많다거나 설명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공이 날아가다 떨어지는 현상과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같은 현상이라는 것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교과에서 이 부분을 다루기 전에 재미 삼아 읽어본다면 학교에서 이 부분을 다룰 때 꽤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인슈타인부터 양자역학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이 편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는데, 시리즈로 계속해서 나올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 부분을 다룬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모르던 부분을 배웠을 정도로 기대했던 만큼 내용도 충실하고 재미있었다.

독서의 힘이 좀 갖춰진 아이들이라면 분명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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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 시대의 지성, 노엄 촘스키에게 묻다
노암 촘스키.C. J. 폴리크로니우 지음, 최유경 옮김 / 알토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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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난달에 읽었던 '어떻게 살 만한 세상을 만들 것인가'라는 책에 이어 또 다른 대담집이 출간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지난 책과 마찬가지로 노엄 촘스키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엮은 것이며 이전 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위기를 주로 다뤘다면, 이 책에서는 기후 위기라는 큰 틀은 유지하고 심화되는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를 추가했다고 보면 되겠다.

사실 기후 위기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하나의 국가가 나서서 해결할 수도 없기에 전 지구적인 변화가 필요한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정치권이 이 문제의 해결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정치권이 그런 모습으로 바뀌게 된 원인으로 민주주의의 약화를 들 수 있는데, 그의 표현을 빌면 '합리적 담론의 붕괴'가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관찰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운명의 날 시계'를 자정 100초 전으로 앞당긴 세 가지 주요 요인인 핵 위협,

기후 위기, 합리적 담론'의 붕괴가 지난 한 해 동안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결론입니다.

(pg 111)

기후 위기는 정치적 어젠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 정당에서 기후 위기를 해결하자는 목소리를 높이면 상대를 방해하기 위해 '기후 위기란 그저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주장들을 언론과 기업계가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일반 유권자들의 시각도 극단적인 두 방향으로 갈라지게 된다.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 정책이 초래한 주요 결과 중 하나는 사회 질서의 붕괴입니다.

그 붕괴는 극단주의, 폭력, 증오, 희생양 만들기 같은 현상이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며, 이 틈을 타 권위주의적 인물들이 '구세주'의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조성됩니다.

우리는 지금, 신파시즘의 한 형태로 나아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pg 120)

또한 미국 내 화석연료 기반의 기업들은 아직도 그 영향력을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기에 이들이 지속적으로 정치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마련인데, 이는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기업들은 아직 효과성이나 경제성이 검증된 바 없는 탄소 포집 기술 등에 투자를 늘리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경향이 곧 '우리가 파괴하면 누군가는 해결해 줄 것이다'라는 어처구니없는 희망 위에 기반한 것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게다가 공교육의 붕괴와 실질 임금의 감소, 빈부격차의 심화 등으로 중산층이라 불리는 계층이 아예 사라져버렸다는 점 역시 이러한 현상과 궤를 같이 한다.

7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주도적으로 채택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경제적으로 불안한 유권자들은 쉽게 파시즘적 리더에게 이끌리게 되며 그 결과 더욱 불평등이 심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실제의 정책 모델은 경제의 지배 세력이 국가를 장악하여,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제약 없는 계급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pg 120)

경제적인 불평등은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악영향을 미친다.

고소득 국가일수록, 그리고 고소득자일수록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큰데,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는 저소득 국가의 저소득층부터 발생한다는 점 역시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정치 체계로서의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해결책 역시 정치 체계로서의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견해를 가진 여러 학자들의 의견들을 인용하며 미국 유권자들에게 변화를 기대하고 있지만, 2025년 현재 언론을 통해 파악한 미국과 국제 정세는 그리 순탄하지 않아 보인다.

민주주의를 향한 한층 진지한 한 걸음은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을 넘어서려는

시도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그런 변화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미국은 여전히 매우 자유로운 사회이며,

의미 있는 변화가 실현 가능한 범위 안에 놓여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가능성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분명하게 자리 잡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금 말 그대로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pg 153)

대담을 가진 시점이 트럼프의 재집권 이전이라 저자가 아직 진정한 절망(?)을 목격하지 않은 시기였다는 한계를 가진다.

하지만 저자 역시 책 후반부에서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중심적 외교를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누가 되었든지 간에 인류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움직일 시간이 점점 더 늦춰지고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는 과연 파괴를 가능케 하는 기술적 능력과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도덕적 능력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요?"

이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얻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질문에도 관심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요.

(pg 195)

사실 너무도 명백한 문제에 너무도 명백한 해결책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류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책의 딜레마가 이런 책을 통해 생각을 변화시켜야 할 사람들은 결코 읽지 않고, 원래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읽는다는 것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절망적인 미래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금 인류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정제된 언어로, 많은 사례들과 함께 설명하고 있으므로 현재 인류의 위치와 방향성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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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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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름은 알았어도 저작은 읽어보지 못했다가 최근에서야 대표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이하 '고양이')를 읽고 푹 빠졌었는데, 저자의 다른 작품이 새로운 판본으로 출시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발표된 연도는 '고양이' 이후 바로 다음 해인 1906년으로 약 120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다.

작품의 화자는 집에 하인이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유복한 가정의 차남이었다.

그래서 제목인 '도련님'도 집안의 하인이었던 노부인이 화자를 어릴 적부터 부르던 호칭이다.

사고뭉치였던 탓에 혼나기 일쑤였고 아버지가 형을 편애해 가정에서는 안정을 찾지 못했던 그에게 도련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늘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기요'의 존재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그는 기요를 친할머니 혹은 제2의 어머니처럼 여기며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애정의 상징이었던 그 호칭이 성장 후에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학업을 마치고 고향인 도쿄를 떠나 한 시골마을의 수학교사로 가게 된 그는 사람들이 그 호칭을 '도시에서 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놈'과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풍족했지만 정서적인 지지를 충분히 받지 못했던 탓에 그에게는 아직 어린아이와 같은 인정의 욕구가 남아 있다.

반면에 자존심 강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는 피해를 보더라도 기어코 해내고야 마는 당찬 면모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상반되는 특질을 동시에 지니게 마련이지만, 이 작품 속 화자는 조금 더 특이하다.

나쁘게 말하면 부잣집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 사회성이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좋게 보자면 사회가 정한 관행이 자신의 신념이나 원칙에 반할 때 두려움 없이 나서는 강단 있는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하간 처음 부임한 교사면서도 교장이 이런저런 조언을 하니 대뜸 이런 말을 던질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아무래도 교장 선생님 말씀대로 할 자신이 없습니다. 이 임명장은 돌려드리겠습니다."

(pg 27)

그 밖에도 여러 당돌한 행동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저 대사의 임팩트가 너무 강했다.

평생을 내 몸뚱어리 이외에는 기댈 구석 없이 살아와서 그런지 직장인 생활 15년이 넘은 지금, 아무리 과거를 돌이켜보아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순간이 내 삶에 단 한순간이라도 있었을까 싶다.

여하간 그가 도착한 중학교는 교사도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곳임에도 고여있는 인간 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모순들을 그대로 품고 있다.

착한 척, 친절한 척 가면을 쓴 늑대가 사실 가장 위험한 녀석이었고, 정직하거나 물러터진 사람들은 이리저리 이용당하다 가치가 없어지면 단칼에 베어지고 만다.

선생이란 모름지기 고결한 취미를 가져야 한다던 자가 수시로 게이샤 업소를 들락거리며 이미 임자가 있던 동네 미녀도 꼬셔내고 자신의 연적은 아예 깡촌으로 보내버리는 등 어지간한 빌런도 한 작품에서 다 하기 힘든 업적들을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연이어 성공해 낸다.

피해자들은 눈물을 삼키며 고향을 떠나거나 교활한 술수에 휘말려 스스로 사표를 내고 만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그가 느끼는 환멸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람들은 가끔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들을 보면,

도련님이니 애송이니 하며 트집 잡고 깔본다.

그럴 거면 애당초 초등학교나 중학교 윤리 시간에 거짓말하지 마라, 정직하게 살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는 편이 낫다.

차라리 학교에서 대놓고 거짓말하는 법이나 남을 믿지 않는 요령,

사람을 속이는 방법 같은 걸 가르치는 쪽이 세상을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나을 것이다.

빨간 셔츠가 호호호호 웃은 건 내 단순함을 비웃은 것이다.

단순함이나 진솔함이 비웃음거리가 되는 세상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pg 74)

전반적으로 '고양이'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이었다.

꼴에 먹물 좀 들었다고 하는 자들이 보여주는 위선과 담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피해를 받는 현실은 작품이 발표된 지 1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후반부에 약간의 카타르시스가 있기는 하나, 결과적으로 웃는 자는 술수에 능한 자다.

묵묵히 일하던 패자의 결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선을 가르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선한 사람은 바보가 되는 인간 사회의 모순을 이 작품에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분량에 압도되어 대표작인 '고양이'에 손이 가지 않았다면 이 작품으로 저자의 작품에 입문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얇은 분량에 재미도 있고 저자의 문제의식도 비슷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고양이'가 훨씬 재미있었다.)

대표작 이외에도 이미 국내에 소개된 작품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디자인이나 폰트 측면에서 새로운 판본이 읽기에 더 좋기 때문에 새로운 판본이 나오면 족족 읽어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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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프로듀서 퇴사하겠습니다
오조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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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SF 작품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너무 가볍거나 허황된 이야기를 즐기지는 않는 편이어서 책 제목만 처음 봤을 때는 읽을까 말까 꽤나 망설였다.

하지만 책 소개를 보니 경쾌한 이야기 속에 현실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잘 담아냈을 것 같아서 읽기로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작품의 배경은 마블의 엑스맨처럼 기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난 후 자연스럽게 사회의 한 축으로 정착된 세상을 그리고 있다.

경제 활동을 비롯한 모든 활동에 특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활약하고, 그중 특출난 사람들은 마치 아이돌 그룹처럼 매니지먼트 회사가 달라붙어 관리하는 스타로 자리 잡는다.

물론 개중에는 영화처럼 물이나 불을 통제하는 유용한 능력도 있지만, 생각만으로 단체(스팸) 메일을 보낸다거나 손에서 형광펜이 나오는 것처럼 일상에서 딱히 쓸 일이 있을까 싶은 능력도 등장한다.

작품의 주인공인 조영은 이런 사회에서 별 능력이 없는 일반인으로(작품 속 표현으로는 '이능력미소지자') 신인 능력자들을 발굴해 히어로로 키우는 회사의 직원이다.

과거에 한 히어로를 키우다가 대실패로 끝난 이후 속죄하는 마음으로 회사에서 떨어지는 일들을 밀린 빨래를 하듯 쳐내고 있던 그녀는 어느 날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평소 그녀를 높게 샀던 직장 상사가 딱 한 달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 히어로만 데뷔시켜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작품의 초반 스토리이며 이후로 도의상 일을 떠맡았던 그녀가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고 보면 되겠다.

일단 세계관이 상당히 재미있다.

농사마저 능력자들을 통해 5분 만에 작물을 키워내는 세상에 아직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부터가 재미있고, 그런 능력자들이 있어봐야 이곳이 '헬조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지라 저임금과 노동착취에 시달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도 재미있다.

덩치만 큰 중소기업이 돈이 많은 이유는 사람 굴리는 데 쓰는 돈을 최대한 아껴서,

한 명의 직원이 피 말라 죽을 때까지 업무를 가중시켜 잔고를 채우기 때문이니까.

그것이 중소기업의 정수니까.

(pg 148)

저자는 다소 허황된 배경을 유머로 포장해 읽는 이의 정신적 무장을 똑똑하게 해제시킨다.

그런 다음 이토록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에서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아름답게 여기고, 또 그런 사람들을 응원하게 되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뻔하지 않게 잘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에 사건이 모두 해결되는 장면에서도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스펙터클함보다는 아기자기하지만 필사적인 장면들을 모아 감동과 함께 풀어냄으로써 이 말도 안 되는 세계의 일들이 꽤나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마음 한편에 재미를 추구하는 철부지 같은 생각을 품고 살아올 수 있었던 건,

회사와 히어로와 여론이 늘 손을 들어주지 않아도

조영 자기 자신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된다는 확신, 사람들이 내 결과물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

(pg 150)

어린 작가라 그런지 기본적으로 인물들의 티키타카가 트렌디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느껴졌고, 줄거리도 전형적인 왕도물 같지만 그 안에 공감 가는 드라마를 잘 녹여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첫 장편이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꽤 재미있게 읽었다.

다음에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지 기대되는 작가로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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