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와인드 디스톨로지 세트 박스 - 전4권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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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출처: 도서관 대출

죽음이 극복된 세상에서 죽음을 다루는 사람들을 그려내 상당한 재미를 안겨줬던 '수확자' 시리즈의 저자가 이번에도 죽음을 주제로 한 SF 작품을 발표했다.

이번 작품의 시리즈명은 '언와인드 디스톨로지'로 총 네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마다 접두사 'un'으로 시작하는 제목이 달려있고, 모든 제목이 작품의 세계관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 세계관이 비범하다.

멀지 않은 미래, 미국에서 낙태의 허용 여부를 둘러싸고 내전이 일어난다.

전쟁으로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공교육이 무너지자 길 잃은 10대들이 강력 범죄로 빠지거나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과격한 집단행동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10대 청소년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 가지 안이 만들어진다.

문제 청소년들이 10대 후반이 되면 부모의 동의를 얻어 그들을 분해한 뒤(말 그대로다.) 각 장기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이 제도의 이름이 바로 시리즈의 제목이자 1권의 제목인 '언와인드'다.

언와인드는 법에 따라 고통 없이 이루어지니까.

하지만 세상에는 신체적 고통보다 나쁜 것도 있다.

그는 두려움에, 외과 의사들이 다가오고 팔다리가 얼얼하다 마비되고

의료용 보존 아이스박스가 시야에서 들려 나갈 때,

그 아이들이 하나하나 느꼈던 순수한 무력감에 비명을 지르곤 한다.

감각은 하나하나 차단되고 기억은 하나하나 증발한다.

그렇게 각각의 언와인드가 망각 속으로 사라지면서, 언제나 그 끝은 소리 없는,

저항조차 무기력한 비명이다.

(3권, pg 147)

필요한 장기만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99% 이상이 이식되기에 흩어질 뿐, 죽는 것이 아니라는 궤변으로 무장한 그 안은 무법천지의 10대를 두려워하던 낙태 찬성파와 반대파 모두를 그럭저럭 만족시킬 수 있었고 전쟁은 종식된다.

이 제도가 정착되자 문제아들은 물론이고, 버려진 아이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 등 태생적으로 언와인드 되기 쉬운 아이들이 생겨나고, 종교적 이유로 아이를 십일조로 보내고자 하는 부모도 생겨나는 등 기상천외한 세상이 펼쳐진다.

완벽한 세상이라면 모든 어머니가 모두 아기를 원할 테고,

낯선 사람들은 사랑받지 못한 아기를 위해 자기 집 문을 열어 줄 것이다.

완벽한 세상이라면 모든 것이 검거나 희고, 옳거나 그를 것이다.

모두가 그 차이를 알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완벽한 세상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완벽하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1권, pg 118)

작품은 부모가 언와인드에 동의한 문제아 '코너', 보육원에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리사', 부모의 세뇌로 자신의 사명이 십일조로 언와인드 되는 것이라고 믿었던 '레브'라는 세 청소년의 이야기다.

해체되기 위해 이동하던 그들이 우연한 기회에 만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미친 세상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라 보면 되겠다.

1권에서 셋은 언와인드 시설 중 하나를 박살 내며 언와인드의 세상에 경종을 울리게 된다.

1권을 덮으면서 이 시점에서 이야기가 끝나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그와 비슷한 두께의 책이 세 권 더 있어서 살짝 의아한 마음으로 다음 책들로 넘어갔다.

시리즈를 다 읽고서 검색해 보니 1권이 이미 오래전에 발매된 적이 있었고(국내에는 '분해되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더 추가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소개하면 나머지 세 권이 거대한 사족처럼 느껴지지는 않을까 우려되겠지만, 4권에서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멋진 결말을 보여주고 그때까지의 여정도 꽤 재미있기 때문에 두꺼운 책이지만 읽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작품 속 세상이 어떻게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를 나머지 세 권에서 상세히 밝혀주기 때문에 1권을 읽으면서 '도대체 이 세계 사람들은 정신머리가 어떻길래 이런 제도를 찬성했을까'라는 질문이 들었다면 이후의 부분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비인간성을 잘 알고 있다는 듯, 해당 세계 안에서 어떤 프로파간다가 펼쳐지는지를 찬반 양쪽에서 추진하는 광고 형태로 묘사함으로써 세계관에 현실성과 개연성을 부여한다.

일이 일어나는 데는 이유가 있거나 아무 이유가 없다.

인간의 인생은 영광스러운 태피스트리의 실오라기이거나,

그저 절망적으로 뒤엉킨 매듭에 불과하다.

(2권, pg 558)

그들이 맞서고자 하는 것이 거대한 이권이 걸린 사회 제도 그 자체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그 사회를 떠받치는 모두가 정신이 나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로 인해 생긴 어려움을 사람들을 통해 해결해 가면서 각각이 모두 독특한 방식으로 성장해 나간다.

나만큼 오래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건...

사람들이 완전히 선하지도, 완전히 악하지도 않다는 거야.

우리는 평생 어둠과 빛을 드나든다.

(1권, pg 168)

사실 법적으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지금도 장기를 이식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10대 청소년들의 강력 범죄가 자극적으로 보도되면서 이런 아이들은 미리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여론도 이미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 두 가지 사실이 결합되면 이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지옥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발달에는 사회적인 규제가 반드시 따라붙어야 한다.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잠깐만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두면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는 다시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가게 될 것이고, 이 작품 속 사람들처럼 '우리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에는 너무도 늦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작 말 한마디 때문에 그런 짓을 했다고? 말로는 다치지 않아."

그건 이 세상 아이들을 상대로 어른들이 영원히 되풀이하는, 가장 범죄적인 거짓말이다.

말은, 어떤 신체적 고통보다 아프다.

(2권, pg 24)

꽤 두꺼운 네 권으로 구성된 시리즈지만 저자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들 덕분에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너무도 많은 어려움들을 너무도 운 좋게 풀어가는 과정이 후반부가 되면 살짝 지겨워지기도 하는데, 작품의 전반적인 인상을 부정적으로 바꿔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 작품 역시 영화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스토리가 꽤 길어서 여러 편으로 나오거나 미드로 나오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어찌 됐든 제대로 영상화가 돼서 원작의 재미를 충분히 담아내주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수확자' 시리즈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의 기존 작품들을 좋아했던 사람뿐 아니라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꽤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작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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