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 시대의 지성, 노엄 촘스키에게 묻다
노암 촘스키.C. J. 폴리크로니우 지음, 최유경 옮김 / 알토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난달에 읽었던 '어떻게 살 만한 세상을 만들 것인가'라는 책에 이어 또 다른 대담집이 출간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지난 책과 마찬가지로 노엄 촘스키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엮은 것이며 이전 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위기를 주로 다뤘다면, 이 책에서는 기후 위기라는 큰 틀은 유지하고 심화되는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를 추가했다고 보면 되겠다.

사실 기후 위기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고 하나의 국가가 나서서 해결할 수도 없기에 전 지구적인 변화가 필요한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정치권이 이 문제의 해결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정치권이 그런 모습으로 바뀌게 된 원인으로 민주주의의 약화를 들 수 있는데, 그의 표현을 빌면 '합리적 담론의 붕괴'가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관찰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운명의 날 시계'를 자정 100초 전으로 앞당긴 세 가지 주요 요인인 핵 위협,

기후 위기, 합리적 담론'의 붕괴가 지난 한 해 동안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결론입니다.

(pg 111)

기후 위기는 정치적 어젠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대 정당에서 기후 위기를 해결하자는 목소리를 높이면 상대를 방해하기 위해 '기후 위기란 그저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는다'라며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주장들을 언론과 기업계가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일반 유권자들의 시각도 극단적인 두 방향으로 갈라지게 된다.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 정책이 초래한 주요 결과 중 하나는 사회 질서의 붕괴입니다.

그 붕괴는 극단주의, 폭력, 증오, 희생양 만들기 같은 현상이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며, 이 틈을 타 권위주의적 인물들이 '구세주'의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조성됩니다.

우리는 지금, 신파시즘의 한 형태로 나아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pg 120)

또한 미국 내 화석연료 기반의 기업들은 아직도 그 영향력을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기에 이들이 지속적으로 정치권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마련인데, 이는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기업들은 아직 효과성이나 경제성이 검증된 바 없는 탄소 포집 기술 등에 투자를 늘리는 경향이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경향이 곧 '우리가 파괴하면 누군가는 해결해 줄 것이다'라는 어처구니없는 희망 위에 기반한 것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게다가 공교육의 붕괴와 실질 임금의 감소, 빈부격차의 심화 등으로 중산층이라 불리는 계층이 아예 사라져버렸다는 점 역시 이러한 현상과 궤를 같이 한다.

7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주도적으로 채택한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켰고, 경제적으로 불안한 유권자들은 쉽게 파시즘적 리더에게 이끌리게 되며 그 결과 더욱 불평등이 심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실제의 정책 모델은 경제의 지배 세력이 국가를 장악하여,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제약 없는 계급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pg 120)

경제적인 불평등은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악영향을 미친다.

고소득 국가일수록, 그리고 고소득자일수록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큰데,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는 저소득 국가의 저소득층부터 발생한다는 점 역시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정치 체계로서의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해결책 역시 정치 체계로서의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견해를 가진 여러 학자들의 의견들을 인용하며 미국 유권자들에게 변화를 기대하고 있지만, 2025년 현재 언론을 통해 파악한 미국과 국제 정세는 그리 순탄하지 않아 보인다.

민주주의를 향한 한층 진지한 한 걸음은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을 넘어서려는

시도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그런 변화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미국은 여전히 매우 자유로운 사회이며,

의미 있는 변화가 실현 가능한 범위 안에 놓여 있습니다.

문제는 그 가능성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분명하게 자리 잡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금 말 그대로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pg 153)

대담을 가진 시점이 트럼프의 재집권 이전이라 저자가 아직 진정한 절망(?)을 목격하지 않은 시기였다는 한계를 가진다.

하지만 저자 역시 책 후반부에서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중심적 외교를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누가 되었든지 간에 인류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움직일 시간이 점점 더 늦춰지고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류는 과연 파괴를 가능케 하는 기술적 능력과

이를 제어할 수 있는 도덕적 능력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요?"

이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얻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질문에도 관심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요.

(pg 195)

사실 너무도 명백한 문제에 너무도 명백한 해결책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류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책의 딜레마가 이런 책을 통해 생각을 변화시켜야 할 사람들은 결코 읽지 않고, 원래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읽는다는 것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절망적인 미래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금 인류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정제된 언어로, 많은 사례들과 함께 설명하고 있으므로 현재 인류의 위치와 방향성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