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라 그리고 말하라
법정 지음, 김인중 그림 / 열림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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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제목이 그 자체로 모순이지만 저자에 '법정'이라고 쓰여있으니 뭔가 중요한 메시지가 있을 것만 같다.

법정 스님이 열반에 드신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럼에도 아직 그의 가르침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가 남긴 가르침이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속에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소유의 세상, 미래의 더 많은 소유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다시금 되새기고 싶은 마음에 책을 펼쳤다.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은 침묵을 익힌다는 말이기도 하다.

침묵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자기 내면의 바다이다.

말은, 진실한 말은 내면의 바다에서 자란다.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하고 남의 말만 열심히 흉내 내는 오늘의 우리는 무엇인가.

(pg 126)

이 책은 법정 스님이 생전에 집필했던 작품들에서 좋은 글귀들을 뽑아 화가 김인중의 그림과 함께 수록한 책이다.

화가 소개를 보니 프랑스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사제라고 한다.

즉 책 자체가 종교의 통합을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법정 스님 역시 종교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종교를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여러 저서에서도 밝힌 바 있어 생전 그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총 네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기는 하나, 여기 저서에서 짧게 인용한 글들의 모음이라 딱히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편집 역시 한 페이지에 길어야 열두 줄을 넘지 않고, 중간중간 강렬한 색채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 잔잔한 법정 스님의 글과 대비를 이루며 시각적인 재미를 더해준다.

장미꽃을 보면서, 왜 이토록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에 하필 가시가 돋쳤을까

생각하면 기분이 언짢고 불만이 생긴다.

그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나무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구나 하고 생각하면

그저 대견스럽고 고마울 뿐이다.

(pg 167)

책의 후반부에는 법정 스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단어가 '무소유'인 만큼 소유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집중되어 있다.

예전에 그의 책을 읽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었는데, 그의 철학이 최근에 유행했던 미니멀리즘 운동에도 영향을 꽤나 주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는지라 그의 철학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디를 가나 물질의 홍수에 떠밀리고 있다. - 중략 -

물건이 너무 흔하기 때문에 아낄 줄을 모르고 고마워할 줄도 모른다.

옛날 같으면 좀 깁거나 때우거나 고치면 말짱할 물건도 아낌없이 내다 버린다.

물건만 버리는 게 아니라 아끼고 소중하게 아는 그 정신까지도

함께 버리고 있는 것이다.

(pg 169)

생전 법정 스님이 사후 자신의 책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이 버젓이 박힌 책이 나오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의 한 측면이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가르침 자체가 잊히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유를 지양하라는 그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의 목소리를 곁에 두고 삶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의 저작을 좀 읽었던 사람이라면 굳이 다시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지만, 깔끔한 편집과 아름다운 그림이 합쳐져 읽기에 편한 책이므로 그의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장에 두고 심란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무 곳이나 펴서 다시 읽으면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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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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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직장인으로 산 지도 15년이 넘었다.

첫 직장은 책 읽는 걸 권장하는 분위기여서 책 선물을 많이 받았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에는 도서관이 있어서 그런지 책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많지 않다.

여하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 선물을 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게다가 서점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에이, 도서관에서 빌리지 뭐' 하고 내려놨던 책을 선물받았을 때의 기분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꽤 오랫동안 해외문학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23년에 소개되었는데, 지금 판매되는 판본이 무려 106쇄일 정도로 인기가 많다.

배우 '킬리언 머피'가 주연으로 출연한 동명의 영화도 있어서 읽은 후 영화로 감상을 이어가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120페이지 정도로 그리 두껍지 않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저자 소개를 보니 저자의 스타일이 길게 쓰지 않고, 작품을 많이 내지도 않는 모양이다.

짧아서 그런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으면서도 문학적으로 인정도 많이 받는 것 같아 어떤 작품일지 궁금했는데 좋은 기회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 길지 않은 작품이라 주요 서사도 사실 그리 큰 사건이 아니다.

제목처럼 사소한 일상 속 어느 한 지점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작품은 '펄롱'이라는 남성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그는 한 부잣집 하인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주인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해 운수업을 하며 슬하에 딸 다섯을 두고 평범한 일상을 꾸려간다.

하지만 그는 그 평범한 일상을 같이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점점 더 민감하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언제 그들처럼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이 정도라도 유복하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하는 양가적인 감정으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작품의 배경은 1985년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로, 동네에 흑맥주처럼 검은 강 배로가 흐르고 규모가 제법 큰 것으로 묘사되는 수녀원이 있다.

바로 이 수녀원에서 실제로 아일랜드에서 1996년까지 운영되었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운영한다.

인터넷에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을 검색하면 사건의 진상이 상세히 나오는데, 성모의 이름을 딴 그 세탁소에서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노동력 착취와 학대, 감금으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꽤나 최근까지 교회의 이름으로 벌어진 인권 유린 사건이라 그 심각성이 더 부각되는 모양이다.

여하간 '펄롱'은 어느 날 수녀원에 배송을 하러 갔다가 석탄 창고에 감금된 한 여자아이를 목격하게 된다.

수녀원장은 마치 아이들의 장난인 양 넘기려 하고, 입막음용임이 명백한 봉투까지 건네자 그는 돈을 챙겨 집으로 오게 된다.

주변에서도 수녀원과 맞서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조언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는 어린아이가 그토록 참혹한 환경에 던져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g 119)

어찌 보면 작품을 통틀어 단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가 한 것이라고는 문을 열어 아이를 밖으로 데려온 것뿐이지만, 그 하나의 움직임이 평범한 일상을 사는 소시민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도 교회 권력은 사회를 좌지우지할 힘이 있는데 그 당시 교회와 척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지를 짐작해 본다면 그의 행동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쳐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pg 120)

길이가 길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지만, '옮긴이의 글'에서 역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반복해서 읽으면 간결한 문장들 속에 숨겨진 의미가 더 잘 느껴질 것 같다.

시종일관 잔잔한 호수같이 진행되다가 딱 한 번 수면에 떨어진 돌처럼 마음속에 파문을 남기는, 재미와 감동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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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자유
이재구 지음 / 아마존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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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근래 읽은 작품 중 가장 힘들게 읽은 작품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작품이 어렵거나 현학적이기 때문은 물론 아니다.

저자가 보여주는 가상의 세계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이 작품은 돈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돈 이야기를 참 싫어한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학 전공이지만 그 흔한 주식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내가 하는 금융생활이란 대출과 상환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런 나에게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왔다 사라지는 이 작품은 마치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세상이 허무맹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너무도 차갑고도 현실적이라 글에 가슴이 베이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의 중심인물은 8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형구'다.

말 그대로 찢어질 듯이 가난했던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던 그는 다른 형제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돈을 모아 사업을 일으킨다.

일제강점기부터 공자왈 맹자왈 하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생활력이 없었던 첫째는 술독에 빠지고, 셋째가 착실하게 공부를 지원해 미국에서 박사까지 한 둘째는 부모형제를 뒤로한 채 오로지 돈과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인물로 성장한다.

형구의 할아버지 세대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형구의 자식들 세대까지 이어지며 피로 이어진 관계가 돈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있지도 아니하고 없지도 아니한 티끌 같은 내가 왔다.

새끼 아홉 놈을 떨구었지만 나를 안아 주는 놈이 없구나.

(pg 154)

저자는 중심인물에게 형제들의 공통 돌림자인 '형' 자와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듯한 '구'로 끝나는 이름을 붙여주고, 형구의 아내 이름도 자신의 아내 이름의 역순인 이름을 부여했다.

이 점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 두 인물의 행보는 저자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바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배우지 못했지만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선험적으로 알았던 '형구'와 지식으로 무장했지만 사랑의 가치를 잃은 '형남'의 대비가 작품 속 중요한 갈등의 축을 이룬다.

하지만 결국 '형구' 역시 형제들에게 복수의 칼을 겨누게 되고 결국 똑같은 돈의 노예가 되면서 작품의 갈등은 봉합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럼, 돈보다 중한 건 뭘까? 허허, 벌레도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데..."

(pg 172)

저자는 끝내 그 어떤 인물들에게도 행복한 결말을 안겨주지 않는다.

돈에 눈이 멀어 부모형제의 뒤통수도 서슴없이 치던 자는 물론이거니와 그와 대척해 가족들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조차도 그 끝은 그다지 개운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돈에 미친 자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경고라면 수긍할 만한 결말이라 할 것이다.

이 작품이 저자의 첫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체적인 이야기는 밀도가 있었다.

형제들이 많은 만큼 인물 간의 갈등이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계속되며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일부를 제외하면 선악의 구분도 그다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자신들의 이익 앞에 지나치게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 집안의 이야기임에도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서사가 꽤나 일관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아쉬웠던 부분을 찾자면 중후반쯤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 부분이 다소 뜬금없어 사족처럼 느껴졌다는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해당 부분은 저자가 한 작품 안에 한국 사회의 모순을 지나치게 많이 담아내고자 했던 욕심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여하간 일제 후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4대에 이르는 한 가족을 통해 현재 한국을 지배하는 돈의 가치가 얼마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는 작품이다.

돈 때문에 형제간에 연을 끊었다는 소식은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한 다리만 건너면 돈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을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는 요즘, 자신은 돈에게 얼마나 지배당하고 있는지를 자성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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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
제레미 해리스 지음, 박병철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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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양자역학하면 떠오르는 고양이 그림이 귀엽게 반겨주는 물리학 교양서가 나왔다.

산뜻한 표지처럼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읽게 되었는데, 진짜 이게 양자역학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쉽고 읽는 재미도 있었다.

문돌이 주제에 양자역학이 알고 싶어 이런저런 과학 교양서를 들춰오다 보니 요즘 드는 생각이 있다.

사실 비전공자 입장에서 양자역학의 교양서를 읽는 것이 종교인이 경전을 읽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종교인이 경전을 읽을 때는 '아, 이게 신의 말씀이구나' 하며 그냥 적힌 문구를 믿는 수밖에 없다.

비전공자가 보는 양자역학 교양서도 그렇다.

'아, 이게 과학자가 증명한 내용이구나'를 믿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믿음이 수많은 과학자들이 같이 증명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보다 능동적인 태도로 양자역학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양자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고, 또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데 이를 관측하는 순간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된다는 점이다.

이 '관측'이라는 것이 꼭 눈으로 봐야만 한다는 의미인지도 모호하고 또 인간이 아닌 개나 햄스터가 관측하면 붕괴되지 않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한 유튜브에서 이를 설명할 때 '우주는 그냥 그렇게 움직인다. 이게 실험 결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우리는 결과를 통해 우주가 이렇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도의 뉘앙스로 설명한 것이 기억난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에 적극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파동함수가 왜 붕괴하는지를 두고 양자역학의 거장 보어가 설명한 것처럼 '큰 물체와 작은 물체는 다른 법칙으로 움직인다'라는 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고, 다른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이들의 의견이 가볍게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붕괴 과정에 '의식'이라는 개념을 결합한 해석들이 있는데 과학자들은 '의식'이라는 말만 들어도 뒷부분을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물리학자들은 의식과 같은 모호한 개념을 도입해서 비웃음을 사느니,

차라리 보어의 가설처럼 불완전한 이론을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물론 그 심정은 나도 십분 이해하지만,

사실 이것은 논리적 선택이 아니라 다분히 심미적인 편견이다.

(pg 93)

저자는 보어의 설명을 대체하고자 했던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아미트 고스와미'는 우주가 잠재적 세계와 관측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잠재적 세계에는 모든 가능성들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것이 '의식적'인 행위로 관측되면 그 가능성 중 하나가 짠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해석은 신의 존재를 믿는 것보다 더 믿기 어려우므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자가 더 좋아하는 견해이기도 하고, 요즘 많은 SF 작품에서 차용되고 있는 견해가 바로 다중우주 개념이다.

이 견해의 창시자는 '휴 에버릿 3세'로 생전에는 보어를 비롯한 주류 물리학자들에게 재고의 여지도 없는 가설로 무시당했었지만 그 매력적인 해석 덕분에 최근 들어 더 주목받는 모양이다.

물론 이 역시 검증의 불가능성 때문에 아주 '과학적'인 가설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해석들이 논리적으로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이러한 견해들을 현재 우리 사회의 도덕, 법, 철학에 적용해 보는 부분이 훨씬 재미있었다.

물리학을 통해 우리가 진정 자유의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지, 이 우주가 결정론적인지 아닌지 등의 여부는 우리가 한 행위의 정당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현재 AI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곧 창조하게 될 인공적인 '의식'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가 아직 철학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데, 물리학에서 이 부분의 기초를 제공해야 한다고 저자는 믿고 있다.

기본적으로 저자가 농담을 굉장히 많이 섞어 놓아서 읽기에 별 부담이 없었다.

특히 중요한 부분에서는 '켓'이라는 기호를 통해 그림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꽤 있는데 이 그림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쏙쏙 된다.

번역도 과학자가 해서 중간중간 역자가 저자의 설명을 돕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이 책이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적합할지는 다소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양자 중첩과 파동함수의 붕괴 정도는 알고 있어야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안적인 가설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비전공자에게 과학자가 쓴 책은 마치 경전과 같은 느낌으로 읽히기 때문에 저자가 제시하는 가설들이 모두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이라는 주제로 쓴 책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양자역학에 도전했다가 비전공자의 서러움을 느껴본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힐링(?!)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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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이 알고 있다
모리 바지루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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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모든 예술 분야가 그렇듯 문학에서도 독창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소재, 배경, 줄거리, 복선, 반전 등 작가가 독창성을 발휘해 작품의 매력도를 높이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독특한데, 적어도 내 일천한 독서 경험 중에서는 이 작품처럼 장르를 넘나들며 독창성을 발휘한 작품은 처음인 것 같다.

각 장마다 제목이 붙어 있는데 특이하게도 장르가 다 다르다.

1장은 추리, 2장은 청춘, 3장은 SF, 4장은 판타지, 5장은 연애소설이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만 소개하면 단편집인가 보다 싶겠지만 놀랍게도 이 작품은 연작소설이다.

즉 이 모든 이야기가 같은 배경 안에서 펼쳐지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각 장마다 시간적인 차이가 조금씩 있기는 하나, 공간적인 배경은 그리 크지도 않은 일본의 한 변두리 마을이다.

각 장의 주요 인물과 사건만 정리하면 이렇다.

'추리'편에는 얼굴이 심하게 훼손된 야쿠자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이 등장하고 '청춘'편에서는 TV 만담 쇼 우승을 목표로 연습에 매진하는 남녀 고등학생의 도전기가 펼쳐진다.

이어지는 'SF'편은 웬 변태 시간 여행자에게 쫓기는 여고생의 이야기고, '판타지'편은 고향을 지키려다 금지된 마법을 쓰는 바람에 우리 세계로 추방되는 마법사의 이야기다.

마지막 '연애'편에는 이별의 상처를 딛고 새롭게 출발하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접점이 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조합인데, 이 책이 참신한 이유는 이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가 배경만 같은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추리'편의 탐정이 가장 좋아하는 TV 쇼가 '청춘'편의 고등학생들이 참가하는 프로그램이고, 이 고등학생들의 친구가 'SF'편의 주인공인 식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연애'편에 이르면 등장했던 대부분의 인물들이 어떻게 서로 마주치며 연결되어 있는지가 모두 밝혀지게 된다.

굉장히 이질적인 장르의 이야기들이 한 배경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서로 얽혀있다는 점 자체가 주는 참신함이 상당한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제목의 의미 또한 이 모든 이야기들이 얽혀있다는 사실을 오로지 이야기 밖의 존재인 독자만 알고 있다는 뜻인데, 제목에 걸맞게 전지적인 시점에서 이야기의 숨겨진 맥락을 꿰뚫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300페이지 후반대로 살짝 두께감이 있기는 하나, 글씨가 큰 편이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워낙 개성 넘쳐서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물론 각 장마다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장르별 특징들이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가장 관심이 갔던 'SF'편만 보더라도 작중 설명충이 왜 그런 일이 가능한지 열심히 설명하지만, SF를 좀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작품의 설정이 다소 터무니없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장이 나름의 완결성을 가지며 그 속에서 풀리지 않은 작은 의문들이 이어지는 다른 작품에서 해소될 때 느껴지는 즐거움이 상당히 좋아서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게 읽었던 것 같다.

작품 내에서 사투리가 상당히 중요한 장치인데 이를 번역을 통해 잘 살렸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저자의 데뷔작이라 하는데 흥미로우면서도 긴 서사를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었고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뚜렷한 편이라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가 된다.

호흡이 길지 않은 드라마 시리즈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내용이니 부담 없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찾고 있다면 좋은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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