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
제레미 해리스 지음, 박병철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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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양자역학하면 떠오르는 고양이 그림이 귀엽게 반겨주는 물리학 교양서가 나왔다.

산뜻한 표지처럼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읽게 되었는데, 진짜 이게 양자역학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쉽고 읽는 재미도 있었다.

문돌이 주제에 양자역학이 알고 싶어 이런저런 과학 교양서를 들춰오다 보니 요즘 드는 생각이 있다.

사실 비전공자 입장에서 양자역학의 교양서를 읽는 것이 종교인이 경전을 읽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종교인이 경전을 읽을 때는 '아, 이게 신의 말씀이구나' 하며 그냥 적힌 문구를 믿는 수밖에 없다.

비전공자가 보는 양자역학 교양서도 그렇다.

'아, 이게 과학자가 증명한 내용이구나'를 믿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믿음이 수많은 과학자들이 같이 증명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보다 능동적인 태도로 양자역학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양자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고, 또 여러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데 이를 관측하는 순간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된다는 점이다.

이 '관측'이라는 것이 꼭 눈으로 봐야만 한다는 의미인지도 모호하고 또 인간이 아닌 개나 햄스터가 관측하면 붕괴되지 않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정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한 유튜브에서 이를 설명할 때 '우주는 그냥 그렇게 움직인다. 이게 실험 결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우리는 결과를 통해 우주가 이렇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도의 뉘앙스로 설명한 것이 기억난다.

저자는 이러한 태도에 적극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파동함수가 왜 붕괴하는지를 두고 양자역학의 거장 보어가 설명한 것처럼 '큰 물체와 작은 물체는 다른 법칙으로 움직인다'라는 것이 현재 학계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고, 다른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이들의 의견이 가볍게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붕괴 과정에 '의식'이라는 개념을 결합한 해석들이 있는데 과학자들은 '의식'이라는 말만 들어도 뒷부분을 듣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물리학자들은 의식과 같은 모호한 개념을 도입해서 비웃음을 사느니,

차라리 보어의 가설처럼 불완전한 이론을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물론 그 심정은 나도 십분 이해하지만,

사실 이것은 논리적 선택이 아니라 다분히 심미적인 편견이다.

(pg 93)

저자는 보어의 설명을 대체하고자 했던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아미트 고스와미'는 우주가 잠재적 세계와 관측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잠재적 세계에는 모든 가능성들이 중첩된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것이 '의식적'인 행위로 관측되면 그 가능성 중 하나가 짠하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해석은 신의 존재를 믿는 것보다 더 믿기 어려우므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자가 더 좋아하는 견해이기도 하고, 요즘 많은 SF 작품에서 차용되고 있는 견해가 바로 다중우주 개념이다.

이 견해의 창시자는 '휴 에버릿 3세'로 생전에는 보어를 비롯한 주류 물리학자들에게 재고의 여지도 없는 가설로 무시당했었지만 그 매력적인 해석 덕분에 최근 들어 더 주목받는 모양이다.

물론 이 역시 검증의 불가능성 때문에 아주 '과학적'인 가설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해석들이 논리적으로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이러한 견해들을 현재 우리 사회의 도덕, 법, 철학에 적용해 보는 부분이 훨씬 재미있었다.

물리학을 통해 우리가 진정 자유의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지, 이 우주가 결정론적인지 아닌지 등의 여부는 우리가 한 행위의 정당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가 현재 AI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곧 창조하게 될 인공적인 '의식'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가 아직 철학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데, 물리학에서 이 부분의 기초를 제공해야 한다고 저자는 믿고 있다.

기본적으로 저자가 농담을 굉장히 많이 섞어 놓아서 읽기에 별 부담이 없었다.

특히 중요한 부분에서는 '켓'이라는 기호를 통해 그림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꽤 있는데 이 그림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쏙쏙 된다.

번역도 과학자가 해서 중간중간 역자가 저자의 설명을 돕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이 책이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적합할지는 다소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양자 중첩과 파동함수의 붕괴 정도는 알고 있어야 저자가 이야기하는 대안적인 가설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비전공자에게 과학자가 쓴 책은 마치 경전과 같은 느낌으로 읽히기 때문에 저자가 제시하는 가설들이 모두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이라는 주제로 쓴 책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양자역학에 도전했다가 비전공자의 서러움을 느껴본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힐링(?!)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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