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자유
이재구 지음 / 아마존북스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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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근래 읽은 작품 중 가장 힘들게 읽은 작품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작품이 어렵거나 현학적이기 때문은 물론 아니다.

저자가 보여주는 가상의 세계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이 작품은 돈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돈 이야기를 참 싫어한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학 전공이지만 그 흔한 주식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내가 하는 금융생활이란 대출과 상환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런 나에게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왔다 사라지는 이 작품은 마치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세상이 허무맹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너무도 차갑고도 현실적이라 글에 가슴이 베이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의 중심인물은 8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형구'다.

말 그대로 찢어질 듯이 가난했던 집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던 그는 다른 형제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돈을 모아 사업을 일으킨다.

일제강점기부터 공자왈 맹자왈 하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생활력이 없었던 첫째는 술독에 빠지고, 셋째가 착실하게 공부를 지원해 미국에서 박사까지 한 둘째는 부모형제를 뒤로한 채 오로지 돈과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인물로 성장한다.

형구의 할아버지 세대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형구의 자식들 세대까지 이어지며 피로 이어진 관계가 돈 앞에서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있지도 아니하고 없지도 아니한 티끌 같은 내가 왔다.

새끼 아홉 놈을 떨구었지만 나를 안아 주는 놈이 없구나.

(pg 154)

저자는 중심인물에게 형제들의 공통 돌림자인 '형' 자와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듯한 '구'로 끝나는 이름을 붙여주고, 형구의 아내 이름도 자신의 아내 이름의 역순인 이름을 부여했다.

이 점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 두 인물의 행보는 저자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바를 정직하게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배우지 못했지만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선험적으로 알았던 '형구'와 지식으로 무장했지만 사랑의 가치를 잃은 '형남'의 대비가 작품 속 중요한 갈등의 축을 이룬다.

하지만 결국 '형구' 역시 형제들에게 복수의 칼을 겨누게 되고 결국 똑같은 돈의 노예가 되면서 작품의 갈등은 봉합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럼, 돈보다 중한 건 뭘까? 허허, 벌레도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데..."

(pg 172)

저자는 끝내 그 어떤 인물들에게도 행복한 결말을 안겨주지 않는다.

돈에 눈이 멀어 부모형제의 뒤통수도 서슴없이 치던 자는 물론이거니와 그와 대척해 가족들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조차도 그 끝은 그다지 개운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돈에 미친 자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경고라면 수긍할 만한 결말이라 할 것이다.

이 작품이 저자의 첫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체적인 이야기는 밀도가 있었다.

형제들이 많은 만큼 인물 간의 갈등이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계속되며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일부를 제외하면 선악의 구분도 그다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자신들의 이익 앞에 지나치게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 집안의 이야기임에도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서사가 꽤나 일관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아쉬웠던 부분을 찾자면 중후반쯤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 부분이 다소 뜬금없어 사족처럼 느껴졌다는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해당 부분은 저자가 한 작품 안에 한국 사회의 모순을 지나치게 많이 담아내고자 했던 욕심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여하간 일제 후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4대에 이르는 한 가족을 통해 현재 한국을 지배하는 돈의 가치가 얼마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는지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는 작품이다.

돈 때문에 형제간에 연을 끊었다는 소식은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한 다리만 건너면 돈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을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는 요즘, 자신은 돈에게 얼마나 지배당하고 있는지를 자성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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