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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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직장인으로 산 지도 15년이 넘었다.

첫 직장은 책 읽는 걸 권장하는 분위기여서 책 선물을 많이 받았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에는 도서관이 있어서 그런지 책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많지 않다.

여하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 선물을 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게다가 서점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에이, 도서관에서 빌리지 뭐' 하고 내려놨던 책을 선물받았을 때의 기분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꽤 오랫동안 해외문학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23년에 소개되었는데, 지금 판매되는 판본이 무려 106쇄일 정도로 인기가 많다.

배우 '킬리언 머피'가 주연으로 출연한 동명의 영화도 있어서 읽은 후 영화로 감상을 이어가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120페이지 정도로 그리 두껍지 않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저자 소개를 보니 저자의 스타일이 길게 쓰지 않고, 작품을 많이 내지도 않는 모양이다.

짧아서 그런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으면서도 문학적으로 인정도 많이 받는 것 같아 어떤 작품일지 궁금했는데 좋은 기회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 길지 않은 작품이라 주요 서사도 사실 그리 큰 사건이 아니다.

제목처럼 사소한 일상 속 어느 한 지점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작품은 '펄롱'이라는 남성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그는 한 부잣집 하인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주인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해 운수업을 하며 슬하에 딸 다섯을 두고 평범한 일상을 꾸려간다.

하지만 그는 그 평범한 일상을 같이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점점 더 민감하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언제 그들처럼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이 정도라도 유복하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하는 양가적인 감정으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

작품의 배경은 1985년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로, 동네에 흑맥주처럼 검은 강 배로가 흐르고 규모가 제법 큰 것으로 묘사되는 수녀원이 있다.

바로 이 수녀원에서 실제로 아일랜드에서 1996년까지 운영되었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운영한다.

인터넷에 '막달레나 수녀원 사건'을 검색하면 사건의 진상이 상세히 나오는데, 성모의 이름을 딴 그 세탁소에서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노동력 착취와 학대, 감금으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꽤나 최근까지 교회의 이름으로 벌어진 인권 유린 사건이라 그 심각성이 더 부각되는 모양이다.

여하간 '펄롱'은 어느 날 수녀원에 배송을 하러 갔다가 석탄 창고에 감금된 한 여자아이를 목격하게 된다.

수녀원장은 마치 아이들의 장난인 양 넘기려 하고, 입막음용임이 명백한 봉투까지 건네자 그는 돈을 챙겨 집으로 오게 된다.

주변에서도 수녀원과 맞서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조언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는 어린아이가 그토록 참혹한 환경에 던져져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pg 119)

어찌 보면 작품을 통틀어 단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가 한 것이라고는 문을 열어 아이를 밖으로 데려온 것뿐이지만, 그 하나의 움직임이 평범한 일상을 사는 소시민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도 교회 권력은 사회를 좌지우지할 힘이 있는데 그 당시 교회와 척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지를 짐작해 본다면 그의 행동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쳐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pg 120)

길이가 길지 않아 금방 읽을 수 있었지만, '옮긴이의 글'에서 역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반복해서 읽으면 간결한 문장들 속에 숨겨진 의미가 더 잘 느껴질 것 같다.

시종일관 잔잔한 호수같이 진행되다가 딱 한 번 수면에 떨어진 돌처럼 마음속에 파문을 남기는, 재미와 감동이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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